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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장남수가 만난 사람들

[상처꽃-울릉도 1974] 전태일의 친구들, ‘상처꽃’ 재판장이 되다

 

[상처꽃-울릉도 1974] 전태일의 친구들, ‘상처꽃’ 재판장이 되다.

 

 국민 모두가 상주 된 심정으로 애통한 중에 <상처꽃-울릉도 1974>공연은 진행되고 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 극단배우는 세월호참사의 억울한 영령들을 애도하며 이 공연을 헌정한다.”고 고개를 숙인 후 막을 올린다.

 

공연 두시간여동안 관객들은 그 일로도 울고, 이 일로도 울고, 의식을 치르듯 어두운 극장에 앉아 깊은 통한을 토해낸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진실을 밝히는 국민촛불행동 ⓒ 권우성]

 

 공연이 시작 된지 40여일, 하루하루 얼굴만 바뀐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채워나가는 동안 마음이 더 처연해지는 경우가 있다. 국가적인 재난사태로 삶이 요동을 치는 터에다 연극이라는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문화적 요인도 더해 최근 250석의 극장이 썰렁해지는 날이 종종 있지만, 공교롭게도 관중석에 빈자리가 많은 날이 하필 노동자출신 운동가들이 카메오출연한 날이어서 더 그랬다.

 

 성직자들이나 현직 단체의 대표로 있는 분들이 카메오 출연하는 날은 기본적으로 관계된 분들의 예약석이 꽤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고, 시간을 투자하기도 여의치 않은 현실적 조건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아 더 애잔해졌다.

 

 ‘청계노조- 전태일의 친구들이 카메오로 출연한 지난 57, 그렇게 관객의 자리가 휑했다. 그러나 배우들은 생애 첫 연기자가 된 전태일의 친구들과 함께 혼신의 열정을 다했고 가족적인 분위기의 오붓한 집단이 된 관객들도 그 열정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깊게 공감했다.

 

[상처꽃-울릉도 1974] 5월 7일 특별출연 청계노조_최현미, 임현재, 이숙희

 

 이날 카메오출연한 분들 중 임현재선생(사진 가운데)은 전태일의 친구였다. 전태일이 분신산화한 후 그 업을 이어받아 청계노조를 만들고 구심역할을 해온 초기 운동가들 중 한 분이다.

 

 이숙희선생(사진 오른쪽)은 전태일이 분신했던 19701113일 평화시장에서 일하는데 사장이 말하기를 깡패가 무슨 난동을 부렸대나 하며 집에 가라고 해서 일 안하고 일찍 집에 가게 되어 좋아했었다. 그러나 그 깡패의 실체를 알게 된 후 청계노조를 받치고 이끄는 주요 활동가가 되었고, 현재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에서 일하고 있다.

 

 그보다 더 후배인 최현미선생(사진 왼쪽)은 청계노조의 활동가모임인 아카시아모임 회장을 맡아 일했고 지금도 청계노조 운영위원의 직무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신실한 활동가이다.

 

 생애 처음 연기를 하며 재판장옷을 걸치게 된 전태일의 친구와 후예들은 무대가 실제 우리국가의 법정이라면 어떤 판결문으로 망치를 힘차게 두드리고 싶었을까?

 

 

[상처꽃-울릉도 1974] '전태일의 친구' 임현재 선생님관람후기

 

 연극이 끝난 후 전태일의 친구인 임현재선생은 하얀 종이에 꾹꾹 눌러 적었다.

 

독재의 만행이 사람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다시 절감한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연극을 보면서 울릉도 사건의 당사자들만큼 심한 고문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합수부에 연행되었을 때나 아프리사건으로 서초경찰서로 끌려갔을 때 통닭구이당하던 장면이 확 되살아나면서 고통스러웠다고, 그들에게 사람의 인격 같은 건 없었다고……

 

 덧붙여 요즘 드라마 <정도전>을 애청하는데 기득권세력들이 私田폐지를 반대하는 것 보면서 많은 느낌을 갖는다고도 했다.

 

 지금 세월호의 문제도 선장의 문제이전에 우리사회의 유병언 같은 X들이 비자금 만들어 권력과 결탁하여 자기 배 불리고, 언론은 거기에 기생해서 살고, 관료들도 기생하고, 국민은 뒷전으로 둔 권력의 총체적인 문제가 터져 나온 것 아니냐고, 그런데도 많은 국민들이 그래도 대통령 욕하는 건 듣기 싫어한다고, 개탄했다.

 

 

[상처꽃-울릉도 1974]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이숙희 선생님의 관람후기

 

 

[상처꽃-울릉도 1974] 청계노조 운영위원 최현미 선생님의 관람후기

 아, 그렇지! 이 날 공연에 필자의 마음이 유난히 더 처연해졌던 것은 휑한 객석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콜트노조의 방종운지회장과 함께 온 그의 딸에게 자꾸 시선이 갔던 탓도 있다. 콜트노조의 해고자 한 분과 아버지 사이에 앉아 공연을 본 딸의 눈빛이 촉촉해져 있었다. 무어라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마음 하나가 또 거기 있었다.

 

 기약 없는 아버지의 복직투쟁은 5년도 훌쩍 넘었고, 수레를 끌고 자갈밭을 가는 듯 온 가족이 버티고 있는 사정을 필자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꽃-울릉도 1974] 마지막 장면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상처꽃> 마지막 장면, 벽을 화사하게 물들이는 꽃처럼 환한 세상을 만났으면 좋겠다.

 

연극이 끝난 시간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지금 너무 간절하다. 이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으면 좋겠다.

 

 

글 : 장남수

(노동저술가, 『빼앗긴 일터』(창작과비평사, 1984) 저자, 前원풍모방노동자,

인권의학연구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