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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최창남의걷기

바람 머물던 풀숲 그리워하다

젊었을 때는
자신 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이들을
좋아하고 신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 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이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습니다.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다른 이들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다른 이들을 존중할 수 있겠습니까.

젊었을 때에는

마음 가득 사랑 넘치는 사람보다
신념 투철하고 의지 굳건한 사람을 좋아하고 신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보다 

사상이나 신념이 앞서는 이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습니다.

 

신념만으로는   
풀 한 포기도 자라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뜻만으로는
풀 한 가닥도 흔들리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람 지나야
풀 흔들리는 것이고
사랑 품어야
풀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풀 한 가닥 존중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이가
어찌 다른 생명들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사람을 사랑하고 지킬 수 있겠습니까.

어찌 오랜 세월 품고 있는 마음의 깊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할 수 있겠습니까.

바람 머물던 풀숲이 그립습니다.

불과 며칠 전인데
아득한 옛 일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