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진실과정의

1991년 곽상도 의원은 가해자였습니다.

[곽상도는 이런 사람입니다]

 

최근 대장동 의혹 관련으로 곽상도 의원이 논란의 정점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가장 앞장서서 대장동 지구의 의혹을 문제제기 했던 사람이 곽상도 의원인데,

대장동 개발에 참여한 민간 업체인 ‘화천대유자산관리’의 대리로 일을 했던 곽상도 의원의 아들이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수령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많은 언론과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보다 더 분노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곽상도 라는 사람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 검사시절 했던 일 때문입니다.

 

이미 지난 2015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났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날조했던 수사 검사가 바로 곽상도 의원입니다. 1991년 강경대 열사의 죽음 이후 노태우 정권을 향한 시민들의 비판이 고조되자 여론을 뒤엎기 위해 당시 전민련 사회부장이었던 고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신 쓰고 자살을 방조했다고 사건을 날조해 강기훈이라는 청년의 삶을 망가트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 가해자인 곽상도라는 개인은 국회의원까지 하며 사회적으로 승승장구했지만, 피해자인 강기훈이라는 개인은 오랜 시간 재판을 하며 암투병까지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을 무참히 짓밟고 양심의 가책은 물론 사회적 처벌도 없었습니다. 지난 2006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위) 조사에서 강기훈 씨는 당시 검찰과의 조사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1991년 6월 24일 검찰에 출두한 첫날부터 서울지검 11층 특별조사실에서 10여 명의 검사와 수사관으로부터 집중적인 조사를 받았는데, 조사가 시작되면 이틀씩 잠을 안 재우고 진술을 강요하고, 의자에 앉지도 못하게 하고 선 자세로 조사를 받기도 했고, 검사나 수사관은 모욕적인 말과 행동, 때로는 손찌검까지 했으며, 그 과정에서 협박과 회유를 하기도 했다.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저의 가족과 여자 친구를 거론하면서 구속 운운할 때였다. 나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물리력은 참을 수 있었지만, 나로 인해서 받은 가족들의 상처는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멍에였다.”

 

개인을 향해 이같이 무자비한 폭력을 가한 사람이 바로 곽상도 국회의원입니다.

저는 이러한 사실에 더 분노합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00929&fbclid=IwAR1jtSGAzffIR5lC62wjpYOSDhtxWoH3Cg3BaARtSttX0Uuh2ptomatfUoA 

 

곽상도와 동료들의 끔찍한 과거, 왜 사과 안 하나

[김성수의 한국 현대사] 무죄 확정된 유서대필 사건... 수사검사 중 한 사람이 곽상도 의원

www.ohm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