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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최창남의걷기

발로 생각하기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이 사람은 관계의 존재입니다. 태어남부터 그러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두 생명의 관계 속에서 태어납니다. 그 뿐인가요. 아기는 세상에 나올 때 첫 숨을 내뱉습니다. 날숨입니다. 하지만 숨이란 들숨이 있어야 날숨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기가 세상에 나오며 내쉬는 첫 숨인 날 숨은 어머니에게 받은 들숨입니다. 태중에서 어머니에게 받은 숨을 세상에 나오면 내뱉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은 태어나기 전부터 관계 안에 놓여 있습니다. 관계의 존재입니다. 사람을 뜻하는 인간의 한자어가 ‘인’(人) 한 글자로 이루어지지 않고 ‘간’(間)자가 붙어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사람은 ‘사이의 존재’ ‘관계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사이’ ‘관계’를 잃어버릴 때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본래적 삶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관계와 함께 살아가다가 다시 관계 속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대부분은 이 관계를 잃어버림으로 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관계 중에 인간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본질적인 관계를 하나 들라하면 그것은 자연과의 관계일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연과의 단절된 삶에서 비롯된 것이 많습니다
.

 

영혼이 배제된 과학의 발전이나 사람을 우선적으로 배려하지 않는 물질 만능의 자본주의 문화는 그에 맞는 생활양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생명의 바탕인 자연과 유리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자본주의 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고층아파트에 살며 공중에 뜬 채 먹고 자고 하는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동을 할 때에도 자동차를 타고 허공에 떠서 빠르게 이동합니다.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존재적으로 부유하는 삶을 빠른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걷는 것을 잃어버린 당연한 귀결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걷는 것을 잃어버리면서 본래 하나였던 하늘과 땅, 자연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자연이 주는 생명력, 지혜, 충만함, 위로, 평안, 상생 등의 수많은 아름답고 고귀한 가치들을 상실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자연 속에서 두 발로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누리게 되는 성찰의 시간도 잃어버렸습니다. 성찰 없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적으로 걷는 존재입니다. 걷기는 사람들의 삶을 사유로 이끄는 안내자입니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걷기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사유하고 성찰하는 삶 또한 잃어버렸습니다. 생명력 충만한 숲을 걸으며 자연과 교감함으로 얻게 되는 성찰하는 삶을 잃어버렸습니다. 마음 내려놓고 깊은 숲 길 유유자적 걷다 보면 절로 얻게 되는 위로와 치유, 자유함와 평안함, 생명력과 충만함 그리고 상생의 은총들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삶은 갈급하고 영혼은 고통 받게 되었습니다. 때로 어찌할 바 몰라 책상에 앉아 가슴을 쥐어뜯기도 하고, 깊은 밤 열린 창으로 영롱한 달빛 스며드는 밤이 되면 얼굴을 무릎에 묻고 홀로 눈물짓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고통들에 우리의 삶을 그대로 내어 맡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들이 우리의 삶에 깊은 영향을 주고 지배하게끔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

 

이러한 삶의 패턴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스스로 걸어 나와야 합니다. 때로 아파트를 벗어나야 하고 자동차를 버려야 합니다. 숲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걸어야 합니다
.
걷는 것은 몸으로 모든 생명들을 느끼는 것입니다. 몸을 여는 것입니다. 마음이 열려야 몸이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열려야 마음이 열리는 것입니다. 몸이 먼저입니다.
걸으면... 숲 길 걸으면 잃어버렸던 자연과의 교감을 회복하게 됩니다. 자연이 주는 충만한 생명력으로부터 회복을 얻을 뿐 아니라 지혜와 평안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숲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유유자적 느리게 자연을 느끼고 생명을 나누며 걸어야 합니다. 발로는 땅의 기운을 느끼고 온 몸으로 하늘과 숲의 기운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곳에서 몸 열고 마음 내려놓고 걸어야 합니다.

 

생각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하는 것입니다
.
걷기는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는 안내자입니다.
첫걸음을 내딛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사)인권의학연구소 뉴스레터 22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