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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센터 소식

[법률] 최근 재일동포 조작간첩사건 재심의 심각한 문제점

 [법률] 최근 재일동포 조작간첩사건 재심의 심각한 문제점 

 

 군부독재 시절, 수많은 조작간첩 사건들이 날조되었다. 당시 대서특필되었던 간첩단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을 조작했던 국가 공무원들은 특진과 함께 대통령 표창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그렇게 4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조금씩 당시 수사와 재판이 얼마나 엉터리이었는지 재심을 하나씩 통해 밝혀지고 있다. 그 시절 자행된 수많은 조작 사건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를 지난 2010 7 15일 재일동포 이종수 간첩사건의 재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이강원 부장판사가 판결문에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사건은 재일동포 유학생을 간첩으로 조작하기 위하여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보안사(국군기무사 전신)
안기부
(국정원 전신) 명의로 피고인을 불법 연행하여 39일간 강제구금한 상태에서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내고, 
그로 인하여 피고인이 5 8개월간 아까운 청춘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된 사건이다. 재외국민을 보호하고 내국인과
차별대우를 해서는 안 될 책무를 가진 국가가 반정부세력을 억누르기 위한 
정권안보 차원에서,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피고인이 한국어를 잘못하여 충분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을 악용하여
, 재일동포라는 특수성을 무시하고
오히려 
공작정치의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이 판결문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국가기관들은 모국을 찾은 재일동포들의 약점(특수성)을 파고들어 국민을 보호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를 저버린 채 재외국민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공작정치의 희생양으로 활용했다. 또한 그 행위가 정당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불법 연행과 강제구금, 그리고 모진 고문으로 조작된 증거들을 가지고 그들의 손아귀에 있는 사법부에서 하나의 통과의례로 치른 것이 재판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불법이었다는 점을 전제로 40여 년이 지난 지금 재심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재일동포 故 김병주 선생과 故 손유형 선생의 재심 과정에서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목도되고 있다. 1980년대 모국을 찾은 두 명의 재일동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간첩누명이었다. 불법구금, 강제구금, 그리고 모진 고문의 결과 각각 14 6개월과 17년을 모국의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이후 이들은 출소하고 모국이 아닌 일본으로 돌아가 고문 후유증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 정신적 및 경제적 고통을 함께 보고 겪어야 했던 유가족이 재심을 청구해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이다.

 

 <사진-1> 5월 13일 고 김병주 선생 재심 후, 조영선 변호사와 생존자 모임 회원들이 질의 응답하다.

  故 김병주 선생의 경우, 지난 1 29일 서울 중앙지방법원 재판부는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40건에 대해서는 무죄를 내렸지만, 특수탈출 혐의에 대해서 유죄를 선고하였다. 이에 변호인은 즉각 항소를 제기하여 5 1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재판이 개시되었다.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던 재판은 지난 7 6일 검찰 측에서 2명의 증인을 추가로 요청하였고, 이를 재판부가 받아들이면서 재판이 지연된 상태다.

 

<사진-2> 7월 6일, 고 김병주 선생 재판에서 검찰의 증인신청이 재판부에서 받아들여지고 향후 재판에 대해 변호사와 생존자 모임 회원들이 대화를 나누다.  

   손유형 선생의 경우 지난 5 25일 서울 고등법원에서 재심을 신청한 유족들이 모두 최후진술을 마쳤고, 당시 재판부는 재판의 재심 개시 결정이 늦어진 점에 대해 사과하며 7 13일 선고를 예정했다. 그러나 지난 7 13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손유형 선생에게 20년을 구형했으며, 재판부는 이 재판의 주범인 손유형 선생에 대한 선고는 8 31일로 연기하고, 종범인 손종규, 손유승, 손유배 선생에게만 무죄를 선고했다.  손유형 선생의 선고는 오는 8 31일 오후 2 20분에 있을 예정이다. 일본에 있는 유가족들은 또다시 피가 마르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사진-3> 5월 25일 고 손유형 선생 재판 후 김중민 변호사에게 유가족, 생존자 모임 회원들이 설명을 듣다.   
<사진-4> 7월 13일 고 손유형 선생 재판 후 김중민 변호사와 유가족, 생존자모임 회원들이 선고연기에 대한 우려를 나누다.

 아이러니하게 과거 간첩사건이었던 두 재판에서의 핵심 쟁점은 국가보안법이나 간첩죄가 아니었다. 핵심은 이 재판이 재심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인이 된 피고인이 군부독재 하의 당시 원심 법정에서 했던 진술이 법적 효력이 있는지를 다투고 있는 부분이다. , 당시 안기부, 보안사, 치안본부 등과 같은 국가기관에 의해 불법 구금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조작된 증거를 가지고 피고인들이 법정에 나와 자신들의 범행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 2021년 재심 재판에서도 법정 증거로서 효력이 있는지를 다투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 심각한 문제점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어떤 부분이 이 재판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야 하는가? 첫째, 사회적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재판부의 접근방식이다. 앞서 이강원 부장판사가 판결문에서 지적했듯이, 과거 재일동포 조작간첩 사건은 국가가 재일동포라는 약점을 이용해 불법 연행하여 강제 구금하고, 거기에 모자라 모진 고문으로 조작해낸 사건이다. 이 일을 했던 기관들이 국가기관들인데, 그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피고인이었던  김병주 선생과  손유형 선생은 법정에서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과 다른 진실을 말할 수 있었을까. 당시 재판정에는 피고인들을  고문했던 수사관들이 방청석에 앉아있었고, 법정에서 공소장 내용과 다른 말을 하면 다시 고문 수사하겠다고 협박하였음을 앞서 진행되었던 재심  피고인들의 진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1975년 서울의대 간첩단 사건의 한 피해자는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허위 자백을 했지만, 원심 재판 법정에서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했다. 그리고 용기 내어 진술한 진실의 대가는 더 가혹한 고문이었다. 그 피해자는 다음부터 법정에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진술하지 않고, 철저히 수사관들이 원하는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지금 2021년 재판부는 1970-80년대 재판부의 현실이 지금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대적 맥락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피고인 두 명은 이미 고인이 되어 방어권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두 분 모두 재일동포이면서 동시에 이미 고인이 되어버려 당시 재판 과정에서 자신들이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말할 수가 없다. 만약 이분들이 재일동포가 아니었다면, 당시 재판에 가족들 또는 친구들이 참석했을 개연성이 높으며, 그들이 지금 재심에 증인으로 나와 당시 재판 상황을 증언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이 현재 살아계시다면 재심 법정에서 왜 당시 법정에서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모두 고인이 되어 이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국, 법정 증거주의와 같은 법리를 내세워 당시의 시대적 맥락 그리고 고인이 되어버린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주어진 80년대 법정 증언을 가지고 이것이 2021년 현재 재심 과정에서도 법정 효력이 있는지를 열심히 다루고 있는 것이 현 실태다. 모국을 찾은 재일동포를 아무런 영장도 없이 불법 구금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40일 이상씩 고문하면서 만들어낸 간첩죄. 그리고 고문수사를 받으면서 했던 자백과 다른 진실을 법정에서 말하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전보다 더한 고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피고인이 과연 무슨 용기로 진실을 내뱉을 수 있을까. 그리고 연행부터 불법으로 점철된 이 같은 사건들의 진상을 밝히고자 2021년 재심을 시작한 것인데, 여전히 재판부는 시대적 맥락과 고인이 되어버려 방어권을 상실한 피고인의 상황을 묵인한 채, 단순히 교과서에 쓰인대로 재심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