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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인재근 의원, '진실의 힘' 인권상 수상 연설문

인재근 의원 '진실의 힘' 인권상 수상 연설문

 

2012년 6월 26일, 고문 생존자들의 모임인 '진실의 힘'은 '진실의 힘 인권상' 2회 수상자로 민주주의자 김근태를 선정했다. 이 글은 인재근 의원이 남편 김근태를 대신해 상을 받으며 발표한 수상 연설문이다. 인재근 의원은 수상 연설문에서 치유센터 설립 의사를 밝혔다.

 

 

 

 여러분, 그리고 김근태를 기억해 이 자리에 오신 모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재근입니다.

 

 흥사단에 서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30여 년 전 바로 흥사단에서 오늘의 인권상 수상자인 민주주의자 김근태와 결혼을 했습니다. 수배를 받던 시절이라 아들 병준이를 먼저 낳고 4개월쯤 되었을 무렵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우리 세 식구가 신혼여생을 버스를 몇 번인가 갈아타고 공주 우금치로 다녀왔습니다. 마치 엄마아빠를 위한 결혼 선물을 주듯 갓 백일을 지난 아들 병준이는 떼도 쓰지 않고 잘 울지도 않고 착하게 굴었습니다. 그렇게 인연을 맺고 30여 년 만에 다시 선 흥사단이지만 결혼식 때처럼 설렙니다. 진실의 힘 때문인가요. 오늘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30년 전 그 날보다 김근태가 더 강하게 느껴지고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아마도 남편 김근태가 살아있었다면 이 상을 받지 않았을 겁니다. 김근태는 늘 미안해 했습니다. 반독재·민주화 운동 기간 동안 고문 받고 다치고 심지어 목숨을 잃은 분들이 너무나 많은 데 그분들에 비해 김근태 자신은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에 대한 보상과 치유, 그리고 그분들을 둘러싼 잘못된 역사바로잡기가 더디기만 한 것을 속상해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진실이 밝혀지고 보상을 받게 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남편 김근태는 인권상 보다도 진실의 힘의 존재 그리고 여러분과의 만남을 더 귀하게 여겼을 겁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김근태는 미안한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진심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고문피해자 분들과 그 가족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했을까 생각하며 미안해하고 마음 아파했을 겁니다. 그리고 고문의 기억이 되살아나 며칠 몸살을 앓았겠지요. 바로 그것이 고문의 트라우마가 주는 고통이고 아픔입니다. 그렇게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보살피고 배려하는 것, 그리고 함께 힘을 모아 스스로 치유와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 바로 이것이 진실의 힘이 아니겠습니까. 진실의 힘의 활동을 보고 직접 체험하였다면 김근태는 너무나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했을 겁니다. 김근태의 흐뭇한 미소와 믿음으로 일렁이는 눈빛이 이곳에 한가득 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길고 빼곡한 진실의 힘 인권상 수상 이유를 보았습니다. 김근태와 인재근의 지난날에 크고 깊은 의미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수상소감을 어찌할지 궁리를 할수록 김근태가 진실의 힘 인권상을 수상하고 그 상을 이곳 흥사단에서 인재근이 해야 할 이유를 더 찾아오라는 시험문제를 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늘까지 그 답을 다 찾지는 못했습니다. 비록 계속 답을 찾아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제가 진실의 힘, 인권상, 김근태, 이재근을 화두로 삼고 생각한 바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저의 첫 번째 화두는 남편 김근태의 갑작스런 소천 이후 인권상과 함께 찾아 온 진실의 힘은 과연 어떤 인연, 어떤 뜻인 것일까 입니다.

 

 작년에 남편인 민주주의자 김근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파킨슨병으로 고생을 해왔는데 뇌정맥혈전증이 갑자기 찾아왔고 고비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저나 지인들 심지어 의사마저도 예상치 못한 급격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파킨슨병으로 몸이 점점 굳어지긴 했어도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읽고 쓰기는 물론 말도 잘했고 축구나 산책 같은 운동도 하고 민주대연합 관련 대외활동도 활발히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을에 갑자기 상태가 나빠졌고 끝내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바로 가을이었습니다. 남편 김근태는 가을만 되면 늘 며칠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고문을 받던 계절이 가을이어서 늘 고문의 계절이 되면 어김없이 못살이 나고 몸을 옴싹달싹 못할 정도로 아팠습니다. 직접 겪어보지 봇한 저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했을 고통의 시간들을 정신력이 워낙 강한데다 타고난 성품이 고운 사람이라서 짜증이나 화풀이 없이 혼자서 다 이겨냈던 것 같습니다. 몸이 다 부서졌다가 다시 조립되는 느낌이었지만 남편 김근태는 미소와 넉넉한 눈빛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 조차도 남편의 고통과 상처를 점점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남편 김근태가 떠나고 세상이 김근태의 인생과 파킨슨병에 주목하게 되고 민주주의와 고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께서 남편 김근태가 떠나는 길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이름으로 김근태를 기억하겠노라고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남편을 보내고 많은 분들이 김근태와 고문, 그리고 이근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보며 저 역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파킨슨병을 여러 이유 때문에 쉬쉬했던 점이 특히 후회가 되었습니다. 파킨슨병을 감추게 되자 파킨슨병의 원흉인 고문후유증도 감춰지게 되고 결국 고문을 국가나 사회가 아닌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치부하고 말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문의 개인적 차원조차 김근태의 강한 정신력과 온화한 성품으로 인해 치유가 아닌 불편함의 인내 정도로 치부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병상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고통의 한복판에서 눈을 껌벅거리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남편 김근태의 모습을 보면서 사실은 고문이 김근태를 너무나 힘들게 했엇고 그의 몸과 정신을 거의 다 허물어 뜨려 놓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상은 벼랑 끝에서 웃고 있는 김근태의 용기와 절규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아내조차 넉넉함과 부드러움으로 오해했던 것은 아닌가 싶어 문든문득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김근태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고문으로 인한 상처와 치유였습니다. 강한 정신력과 천성이 고왔던 것과 별개로 김근태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이근안을 만났어도 용서도 안 되고 치유도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전문적이지 못한 즉흥적인 이벤트로 치유가 될 리가 없었습니다. 고문을 직접 겪어보지 못했고 김근태의 인격을 높게 평가했던 주변 사람들의 제안으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고문은 이쯤 되면 용서할 때가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깊은 연구와 관심 그리고 꾸준한 치료를 통해 치유되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함세웅 신부님이 고문치유센터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저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형식으로 고문치유센터를 만들 것인가 고민하던 차에 진실의 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늦어서 죄송합니다. 남편 김근태와 함께 은페된 고문의 진실을 밝히고 현재와 미래의 고문을 막아내며 고문의 국가적, 사회적 치유에 좀 더 일찍 헌신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늦은 게 아니라 지금 시작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햐겠습니다. 김근태의 이름을 걸고 진실의 힘과 함께 고문이 없는 나라, 고문의 상처가 없는 나라를 만드는 길에 매진하겠습니다. 그 출발은 바로 고문치유센터입니다. 진실의 힘과 김근태 인재근이 만나게 된 이유를 저는 고문의 치유와 국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바로 제가 구한 첫 번체 화두의 대답입니다.

 

(중략)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진실의 힘 여러분, 그리고 동지, 동료 여러분, 감사합니다. 김근태가 영원한 민주주의자이듯, 저 인재근은 영원한 인권지킴이입니다. 인권상을 통해 케네디가문이 20세기 인권운동가 인재근에게 큰 힘이 되었듯이 진실의 힘은 인권정치인 인재근에게 좋은 친구가 될 것입니다. 비록 미약할지라도 제 모든 최선을 다해 진살의 힘의 좋은 친구로 남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김근태와 저는 진실의 힘 인권상을 통해 고문에 대한 진실과 치유, 그리고 인권의 지킴과 증진이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소명의 길은 함께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진실의 길, 인권의 길, 그리고 세상의 힘이 되는 길에 언제나 김근태가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때론 왼발이 되고 때론 오른발이 될 때 진실의 힘도 영원하고 김근태도 영원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www.ijk.or.kr/rb/?m=bbs&bid=society&uid=587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20622115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