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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카드뉴스] 18시간과 18년, 누가 국민의 적이며, 죄인인가? 18시간. 사형 확정 후 집행까지, 1일도 지나지 않아 8인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사법살인 사건이었습니다. 18년. 5.16 군사정변에서 10.26 사태까지 박정희와 추종자들이 집권한 기간입니다. 그들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을 꺾기 위해 그들은 무고한 국민을 대상으로 ‘인민혁명당 사건’을 만듭니다. 그러나 담당 검사들의 기소 거부와 언론의 고문 및 조작 폭로로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1974년, 반유신체제 운동을 꺾기 위해그들은 다시 10년 전 인민혁명당 사건 관련자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을 만듭니다. 그런데 불과 10년 사이 사법부는 그들의 수족.. 더보기
50년이 지난 10월 유신은 현재진행형입니다. [50년이 되었습니다] 1972년 10월 17일. 종신집권을 꿈꾸던 박정희는 ’10월 유신’을 감행합니다. 그 이후로 모두 9번의 긴급조치를 발동합니다. 이제 우리 시민들은 지난 1972년의 ‘10월 유신’을 역사 속의 과거형으로만 생각하지만, 유신으로 인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분들과 가족들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인권의학연구소와 김근태기념치유센터는 묵묵히 이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인권의학연구소 드림 더보기
[고문피해자에게 가혹한 대한민국] [고문피해자에게 가혹한 대한민국] 고문피해자였던 故 김근태 의원의 10주기 추모미사에 같은 고문피해자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추모미사가 끝나고 아무 말 없이 피켓을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10년이 지나도록 19대, 20대, 21대 인재근 의원의 1호 법안인 '고문피해자 지원법안'이 잠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를 기다리듯이 한국 정부와 국회는 고문피해자분들이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리는지. 이분들에게 시간이 없습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590011&plink=NEWLIST&cooper=SBSNEWSSPECIAL 김근태를 계승하겠다는 정치인들이 우선 챙겨야 할 법안 .. 더보기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언급' 징역형, 42년만 재심서 무죄 [42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 무죄를 받기까지 42년이 걸렸지만, 당시 유죄를 받은 이유를 보면 기가 막힌다. 이번에 무죄를 받은 이씨는 "1979년 10월 27일 정훈장교(소령)로 복무하던 중 이발소에서 동료들과 박 전 대통령 저격사건 관련 보도 내용에 관해 얘기했다가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혐의(계엄법 위반)로 계엄군법회의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얼마나 옹졸한 국가였는가. 아래 링크를 통해 관련 기사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812121800064?input=1195m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언급' 징역형, 42년만 재심서 무죄 | 연합뉴스 (청주=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군에 근무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 저격사건'과 관련한 신문 .. 더보기
[故 한삼택 씨의 억울함이 풀리길 바랍니다] [故 한삼택 씨의 억울함이 풀리길 바랍니다] 제주는 4.3사건의 아픔이 있는 땅입니다. 4.3사건 이후 제주도는 이념의 멍에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이를 이용해 수많은 시민들을 간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1970년 당시 김녕중학교 서무과 직원인 고 한삼택 씨입니다. 비록 고인이 되셨지만, 그 자녀들이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 50년 만에 재심 청구를 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故 한삼택 씨와 그 가족의 억울함이 풀리길 바랍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jejumbc.com/article/S9UjOmq9qg1E?fbclid=IwAR2Bd6O1mD9i8pTp4h-CwjHWNX2dnW4j0jQDc8PJzmU8t9W8-bE5yuo8Qeo 더보기
[고문생존자 인터뷰] "말도 꺼내고 싶지 않을 정도의 큰 슬픔과 아픔이었지만" "말도 꺼내고 싶지 않을 정도의 큰 슬픔과 아픔이었지만" 이성희 선생님 인터뷰 (조작간첩사건인 울릉도사건으로 17년 복역) 1974년 3월, 박정희 정권은 아무런 죄가 없는 40여명의 사람들을 체포하여 고문하고, 간첩 누명을 씌웠다. 이성희 선생님도 그 중 하나였다. 선생님은 원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17년을 복역해야 했다. 그 때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도 소름이 돋을 정도이니, 당사자들을 어떠하겠는가. 너무나도 끔찍했던 일이었기에 다시는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어쩌면 시간에 묻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힐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이성희 선생님 역시 당시의 시간을 "말도 꺼내고 싶지 않을 정도의 큰 슬픔과 아픔"이었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 사건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