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국가폭력 피해생존자들, 녹색병원에서 치매 검진을 시작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2021년 국가폭력 생존자 집단치유 모임은 줌회의를 통해 온라인으로 진행되어왔다. 지난 2월에 가진 네 번째 집단치유 모임에서는 생존자들의 의견을 모아 손창호 정신과 전문의 (인권의학연구소 이사)를 줌회의로 초청하여, “수면장애‘’ 에 대해 건강 정보를 들었다. 손창호 이사는 수면장애 증세에 대처하는 일상적 팁으로부터 약물 사용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알려주었고, 생존자들은 질의응답을 통해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집단치유 모임을 마치면서 인권의학연구소는 희망하는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향후 정신건겅검진 차원에서 녹색병원에서 치매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진행할 것을 공지하였다.

 

< 사진  1.  네 번째 온라인 집단치유모임에 손창호 정신과 전문의를 초청하다  (2.24) >

 

 마침내, 4 6 () 오전 10, 국가폭력 피해생존자 2명의 검진을 시작으로 생존자와 가족 16명은 향후 2개월 동안 녹색병원에서 치매 검진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치매 검진의 시작은 녹색병원 1층 사회복지과에서 시작한다. 양주희 사회복지사의 검진 일정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송유호 신경과 전문의의 문진 등 진찰을 받게 된다

 

   < 사진 2 . 녹색병원 치매검진은 사회복지사의 오리엔테이션으로 시작한다 (4.6)  >

 신경과 진찰을 마치면 노령을 감안하여 심전도와 흉부방사선 등 기초 검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뇌CT 촬영과 치매기능검사(K-MMSE)를 받는다. 전 과정은 약 1시간 반 정도 소요되었다. 예정된 순서대로 검사를 하고 신경과 진료실 앞에서 결과를 기다리면 일단 치매 검사는 마치게 된다. 최종적으로 신경과 진료실에서 2차 치매기능검사(CDR)와 전체 결과를 종합하여 판정을 받는다.

 

< 사진 3 ,4 . 녹색병원 산경과, 신경외과 진료실에서 (4.6)  >  

 

< 사진 5 . 녹색병원 산경과 진료실에서 (4.13)  >  

 녹색병원에서의 치매 검진 모든 과정에 인권의학연구소의 박민중 사업운영팀장이 동행하며 일일이 사소한 부분까지도 챙긴다. 검진 과정 중의 생존자들의 얼굴에서 병원에 온 환자로서 보일 수 있는 다소의 불안이나 걱정의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음 검사를 기다리는 중에 서로 작은 목소리로 담소하며 웃음소리가 마스크 밖으로 새어나오기도 하였다.

 

  < 사진 6 .  순서에 따라 치매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4.13)  > 

 송현석 신경과 전문의로부터 치매 없음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오는 생존자들의 표정은 더욱 밝아졌다. 오랫동안 치매에 대한 걱정으로 수면까지 방해받을 정도로 걱정이 많았으나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검진 결과가 좋아 정말 홀가분하다고 하였다, 내친김에 병원 앞에서 기념촬영까지 한다. 늘 오늘처럼 밝은 표정을 간직하시기를 바라며 바라보는 이의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 사진 7,8 . 검진을 모두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병원 앞에서 기념촬영하다 (4.13/4.20)  >  

 인권의학연구소는 2015년부터 국가폭력 피해생존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2년마다 신체적 건강검진을 해왔다. 건강검진에 필요한 비용은 녹색병원의 이말년기금과 인권의학연구소의 울릉도1974기금으로 충당된다. 인권의학연구소의 울릉도1974기금 은 울릉도사건 생존자들이 재심무죄 후 기부하신 후원금을 시작으로 조성된 기금이다. 이후 국가폭력 생존자들이 재심무죄 보상금의 일부를 연구소에 후원하는 경우, 인권의학연구소는 생존자들의 후원금을 이 기금에 적립하여 지금까지 여타 국가폭력 생존자들과 가족들에 대한 생활지원과 의료지원을 계속해 왔다.

[3월 15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1974년 3월 15일은

47명이 불법 고문수사를 당하고,

32명이 기소를 당하고,

그 가운데 3명은 결국 사형을 당했던

'울릉도간첩단사건'이 일어났던 날입니다.

 

불행했던 한국의 현대사에서 대표적 사법살인으로 알려진 인혁당사건은 그나마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져 왔지만,

같은 날 사형선고를 받았던 울릉도간첩단사건은 오랫동안 여전히 완전히 잊혀져 있습니다.

 

아래 영상은 울릉도간첩단사건을 알려주는 영상입니다.

더 많이 알려주세요.

 

 

www.youtube.com/watch?v=9cQOL9gfq44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 소장이 송씨간첩단사건의 피해생존자 송기복 선생님과 울릉도간첩단사건 피해생존자인 이성희 선생님 자택을 방문했던 지난 3 15일은 울릉도간첩단사건 47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974 3, 당시 거센 유신 헌법 반대에 직면한 박정희 정권은 국민의 저항을 희석하고자 대규모 울릉도간첩단사건을 조작하여 발표하였다. 1974년 울릉도간첩단사건은 중앙정보부가 남산으로 불법연행하여 고문 수사한 47명 중 검찰이 32명을 기소하였고 재판을 거쳐 3명을 사형에 처했던 대규모 조작간첩단 사건이다. 인혁당사건 관련자 8명의 사형이 확정된 1975 4 8일은 또한 울릉도간첩단사건 3명의 사형이 확정된 날이기도 하였다. 불행했던 한국의 현대사에서 대표적 사법살인으로 알려진 인혁당사건은 그나마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져 왔지만, 같은 날 사형선고를 받았던 울릉도간첩단사건은 완전히 잊혀져 있었다.

(사진) 김근태기념치유센터 함세웅 이사장과 인재근의원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이성희 선생님

울릉도간첩단사건의 피해자 중 한명인 이성희 선셍님은 1974년 당시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최종 무기징역으로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 광주교도소에서 17년을 복역하면서 1991년 석방될 때까지 재소자를 위한 의술로써 "광주교도소의 슈바이처"라고 불리기도 했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울릉도간첩단사건을 수면 위로 떠 오르게 한 것은 피해자 중 한 명인 이성희 선생님이다선생님은 제1기 진실과화해를위한괴거사정리위원회(1기진화위)에 울릉도간첩단사건 관련자 중 유일하게 진실규명 조사를 신청하였다2010년 1기 진화위가 종료되는 마지막 날이성희 선생님은 일부 진실규명결정을 받아냈다이 진실규명 결정문을 토대로 형사 재심을 신청하였고 드디어 2014년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40년 만에 조작사건임이 밝혀진 것이다.

 

(사진) 40년만에 밝혀진 진실-울릉도조작간첩단사건 무죄 선고받던 날

이후 울릉도간첩단사건으로 기소되어 사형을 당하거나 징역을 살았던 관련자 모두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있었만약, 이성희 선생님이 진실규명 조사를 신청하지 않았더라면 울릉도간첩단사건이 해결되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일과 노력이 필요했을까? 이런 점에서 이성희 선생님은 울릉도간첩단사건 해결에 마중물이 되어 수많은 관련자들과 그 가족들의 삶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데 크게 기여하였기에 김근태기념치유센터는 2014년 이성희 선생님에게 감사패를 전달하였다. (첫 번째사진)

(사진) 송기복 선생님이 손수 뜬 목도리를 전해받는 전영주 선생님

이성희 선생님의 나이는 올해 96세이고, 부인인 전영주 선생님은 91세이다. 90이 넘긴 나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이성희 선생님 내외의 건강은 좋아 보인다. 송기복 선생님은 이성희 선생님의 17년간의 투옥 중 모진 고생을 했을 부인을 생각하며 목도리를 손수 떴다고 한다. 노란 목도리를 곱게 목에 둘러주며 바라보는 송기복 선생님의 손길과 눈길에 따뜻한 기운이 가득하다. 자연스레 교도소 이야기를 시작하였고 광주교도소로 이송되어 갈 때 송기복 선생님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모두 크게 웃는다. 떠올려 생각하기조차 힘들었을 그 상황을 이제 이야기하며 크게 웃을 수 있는 것은 더는 그것이 마음의 고통으로 남아 있지 않음이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는 모습은 보는 이까지 따뜻하게 한다. 17년을 남편을 감옥에 보내고 떨어져 있어서 지금도 남편을 보면 설레인다는 전영주 선생님의 남은 여생이 지금처럼 환한 웃음으로 가득하시기를 기원한다.

 

(사진) 이성희, 전영주, 송기복 선생님의 미소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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