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 고등법원 서관 302호에서 유정식 선생님의 재심 관련 심문기일이 열렸습니다.

 

유정식 선생님은 1975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불법 구금, 모진 고문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23년이라는 세월을 옥중에서 보내셨습니다.

 

46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억울함을 알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재판부는 유정식 선생님의 재심신청을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이 간절한 마음을 말로 하지 않아도 너무 잘 알고 있는 여러 선생님들이 이날 재판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연구소도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사진) 서울 고등법원 앞에서 유정식 선생님의 변호인인 장경욱, 신윤경 변호사가 재판에 대해 선생님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재일양심수동우회, 2기 진화위에 진실규명 신청을 하다. 

 지난 30(), 재일양심수동우회는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2기 진화위)에 재일동포 간첩조작 진실규명 신청을 했다. 이날 신청은 특별히 인권의학연구소의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와 재일양심수동우회 대표로 이동석 선생이 직접 2기 진화위 정근식 위원장을 만나 신청서를 전달했다. 이 자리는 재일양심수동우회의 요청에 의해 인권의학연구소가 위임을 받아 마련되었다.

<사진-1> 2기 진화위 사무실에서 이화영 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정근식 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에게 진실규명 신청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20 6 9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개정되면서 약 10여 년만에 2기 진화위가 출범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 법에 근거하여 2기 진화위는 지난 12 10일 재출범하였다. 1기 진화위가 2005 12월 출범해 2010 12 31일까지 활동하면서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집단학살부터 독재 시기 간첩 조작 사건과 같은 다양한 과거사 진실규명을 위해 활동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밝혀져야 할 진실들이 산재해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재일양심수 사건이다.

 

 1970-80년대 군부 독재정부는 시민들에 의해 선출된 정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치적 정당성이 없었다. 이에 이들은 북한과 한반도 분단의 현실을 이용해 다양한 형태의 공포정치를 일삼았다. 예를 들면, 일반 시민들을 불법 구금하고 고문하여 수많은 간첩들을 만들어냈다. 그 가운데 가장 조작하기 쉬운 집단이 바로 재일동포들이었다. 당시 재일동포들이 거주하던 일본의 오사카 지역에서 민단과 조총련 사이에는 38선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그곳에서는 재일동포들이 민단과 조총련을 모두 알고 지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남북 분단의 현실을 이용해 군부 독재정부는 모국을 찾은 재일동포 유학생들을 무조건 잡아 조총련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조작간첩을 양산했다. 이 과정에서 재일동포들은 한국말이 서툴렀기 때문에 법적인 자기 방어권을 행사하는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진-2> 1975년 11월 22일, 김기춘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이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대대적으로 언론에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중앙정보부(안기부), 치안본부, 보안사령부로 대표되는 국가기관들이 만들어 낸 재일동포 조작간첩의 피해자는 150여 명(추산) 정도에 이른다. 이 가운데 1기 진화위 조사를 비롯해 2021년 기준으로 무죄를 선고받은 피해자는 38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 2기 진화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하는 재일양심수 명단은 37명에 불과하다. 이 숫자가 바로 국가기관인 2기 진화위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일단 이 과거사는 국가의 잘못이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명분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적으로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지내고 있는 피해자들을 찾아내는 것이 민간의 힘으로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국가기관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이분들을 찾아내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특히, 이분들의 나이가 고령인 점을 고려하면,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도 중요한 점이다.

<사진-3> 지난 2019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이 오사카에서 열린 재일동포와의 간담회에서 재일양심수동우회 대표인 이철 선생과 악수를 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9 6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오사카에서 열린 재일동포와의 간담회에서 재일동포 조작간첩 피해자분들에게 대통령으로서 사과를 하고, 동시에 정부 차원의 진실규명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군부 독재시절, 많은 재일동포 청년들이 공안통치를 위해 조작된 간첩사건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지난해(2018년) 12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피해자들이
모여 만든 ‘재일한국 양심수 동우회’가 제3회 ‘민주주의자 김근태상’을 수상했습니다.
올해(2019년) 초 서울고법에서 간첩단 조작사건의 피해자에게 34번째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재심으로 무죄판결이 이어지고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받기도 하지만, 마음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빼앗긴 시간을 되돌리기에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정부는 진실을 규명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갈 것입니다.
무엇보다 독재권력의 폭력에 깊이 상처 입은 재일동포 조작간첩 피해자분들과 가족들께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대표하여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통령이 직접 공개사과를 했기 때문에 과거의 진실을 밝히고 우리 사회의 화해를 위해 출범한 국가기관인 2기 진화위가 적극적으로 나서 과거 국가의 잘못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재일동포 조작간첩의 피해자분 중에는 아직도 대한민국인 모국에 오면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갈 것을 두려워해 한국에 오는 것을 꺼려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대한민국이 민주화되었고, 사회가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이번 2기 진화위 조사를 통해 알려드려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이번 2기 진화위의 역할일 것이다.

 

 다행히 이날 정근식 위원장은 이 사건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재일양심수동우회와 인권의학연구소의 요청사항에 대해 공감했다. 인권의학연구소는 지속적으로 재일양심수동우회와 긴밀히 협의하면서 이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신청과정에서 직접 정근식 위원장을 만나 진실규명의 필요성을 전달한 함세웅 이사장, 일본에서 어려운 환경임에도 신청 자료를 만들어 한국으로 보내준 이철 선생과 이종수 선생, 그리고 한국에서 직접 이 자료를 확인하고 소통창구의 역할을 담당한 이동석 선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사진-4> 2기 진화위에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하기 전, 이화영 소장(왼쪽)과 이동석 선생(오른쪽)이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36년 걸린 '무죄' 확정... 드러난 검찰의 시대착오]

 

 지난 7월 29일 목요일, 대법원에서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사형수였던 김성만, 양동화 선생에
대한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2016년 재심을 신청해 지방법원, 고등법원, 그리고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약 5년에 걸친 재심과정이 끝나는 날이었습니다. 

 

 이 기사는 단순히 이날 있었던 대법원의 무죄 판결 내용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지난 5년에 걸친 간첩조작
재심과정에서 발견된 국가기관의 시대착오적 접근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2심 재판 과정에서 검찰 측이 보여준 행태는

과연 2021년의 검찰과 1985년 당시 검찰은 시대를 인식하는 관점이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했습니다.

 

▲ 무죄 판결 후, 대법원 앞에서 다같이 찍은 사진  지난 7월 29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후 재판에 참석한 분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정금택, 김성만, 양동화, 이동석씨,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64458 

 

36년 걸린 '무죄' 확정... 드러난 검찰의 시대착오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대법원 무죄확정... 그리고 검찰이 보여준 또다른 가해

www.ohmynews.com

 

[국가폭력은 공소시효가 없어야 한다]

 

"한국에는 유신 시절에 일어난 일이라도 판결은 불가침이라는 사유가 팽배하다.

재심 절차 이용도 쉽지 않다. 그런데 독일은 연합국이 점령하던 시기에 나치 법원의 판결을 무효로 선언했다.

1998년에는 '나치 불법판결 청산법'을 만들어 그 범위를 더 넓혀 나치 특별재판소 판결을 전부 무효화했다."

 

▲ 이재승 2기 진실화해위 상임위원.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를 참고해주세요.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70216205369894?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0DKU 

 

"'과거사 정리 지겹다?' 피해자에게 국가폭력은 초시간적이다"

지난달 27일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진실 규명 신청 사건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다. 2기 진실화해위에는 지난달 21일 기준 3636건, ...

www.pressian.com

 

[‘통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서 또다시 ‘무기징역’ 구형한 검찰]

 

검찰은 변하지 않는다.

검찰은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도 알지도 못한다.

검찰은 과거 독재권력의 앞잡이 역할을 했던 그때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

 

박기래 선생에 대한 재심개시결정문 (출처: 민중의소리)

수사와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검찰은 과거 독재정권 하에 벌어진 수많은 간첩조작 사건에서 수사하지 않았다.
수사권한이 없는 보안사, 안기부, 치안본부에서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일반 시민을 간첩으로 만들어 오면 으스대며
기소를 했을 뿐이다.

 

그 수사가 법리적 토대 위에서 제대로 이루어진 것인지 따지지도 않고 자신들의 승진과 권력욕에
빠져 기소를 남발하고 사형 구형을 남발했다.

 

그런 검찰은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았다.

 

지난 6월 30일, 박정희 정권 시절 수사권한이 없던 보안사가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 조작한
'통혁당 재건위 사건'의 재심에서 어떠한 근거도 없이 또다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이미 지난 2018년 동일한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인 이동현 선생은 "당시 민간인을 수사할 수 없는 군 보안사가 이 씨 등을 영장 없이 체포하는 등 불법 수사한 점과 구타, 물고문, 전기 고문 등 가혹행위를 통해 허위진술을 받은 점 등을 인정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동일한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았던 고 박기래 선생의 이번 재심에서 검찰은 달랑 2장짜리 서면을
통해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검찰이 주장하는 무기징역의 근거는 당시 재판정에서 피고인이 했던 진술이 전부다.

 

몇 번을 더 이야기해야 하는가.

당시 그 법정에는 자신을 고문했던 수사관들이 지켜보고 있고,

검찰은 그들과 한통속이었는데.

만약 진실을 말하면 또 데리고 나가 무자비한 고문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걸 진두지휘했던 검찰이 3-40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그 유족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고 있다. 그것도 법의 이름으로.

 

검찰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그리고 검찰은 역사공부가 전제된 양심이 필요한 집단이다.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입니다.

https://www.vop.co.kr/A00001589131.html

 

‘통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서 또다시 ‘무기징역’ 구형한 검찰

‘고문 인한 허위자백’ 인정됐는데...재판부도 “이례적” 지적

www.vop.co.kr

 

[이런 판사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사법부가 인권의 보루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법부 성원(일원)으로서
깊이 사과드립니다.

이번 재심 판결이 피고인들에게 위로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납북어부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하면서

서울고법 형사12-3부 김형진 판사가 사과의 말.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입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62918540002562?did=NA 

 

"깊이 사과드린다" 납북어부 재심 무죄 선고한 재판장의 사과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고문을 받고 7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고(故) 박남선씨에 대한 재심에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고 진심 어린 사과의 뜻을 전했다. 박씨는 이날 무죄로 43년 만에 누명을

www.hankookilbo.com

 

[영원한 우리의 친구!!]

 

7월 20일 오후 6시 30분경 하원차랑 선생님은 우리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렇게도 아파하시던 선생님께서 이제 더는 아프시지 않을

영원한 안식처로 편안히 가셨답니다.

 

가시는 길에 북망산 굽이굽이 돌아 저희들을 생각하며 되돌아보셨을지,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아직도 형 갑장 동생 하며 부르시던 모습이 우리들의 온몸에 꽉 차 있건만, 여전히 하원차랑 선생의 모습이 우리들의 뇌리에 아지랑이처럼 맴돌기만 합니다.

 

너무도 아쉬운 부분은 무죄 선고받고 이제 좀 재미있게 세상에서 두 어깨 으쓱이며 남부럽지 않게 가족들과 좋은 곳으로 여행도 제대로 못 하시고, 우리와 해외여행도 한번 가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원차랑 선생을 놓아주면 안 되었지만, ‘잘 가라 친구야’ 하며 고작 머리 숙여 인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원차랑 선생이 영원한 안식처에서 이제 더는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원차랑 선생이 우리 곁에 안 계시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면 하원차랑 선생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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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평소 하원차랑 선생님을 동료 그리고 친구로 여기며 평소에 매일같이 통화로 일상을 나누던 김장호 선생님께서 먼저 소천하신 하원차랑 선생님을 생각하며 쓰신 글입니다.

 

이 글을 통해 피해자 선생님들은 차마 가족과도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와 정들을 서로 나누고 있음을 그리고 있었음을 조심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 조문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기 전 밀양역 앞에서 김장호 선생님과 이화영 소장님.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기사의 제목은 

 

"이근안 고문에 간첩 누명 쓴 피해자, 42년 만에 재심 무죄"

 

기사는  건조하게 적혀 있습니다. 

 

기사 본문 사진 캡쳐 (출처: YTN)

그러나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잠시나마 

 

 피해자가 겪었던 고문의 신체적 아픔,

 피해자가 겪었던 억울한 정신적 고통,

출소 후에 경험했을 사회적 냉대와 경제적 고통,

그리고  피해자의 가족이 겪었을 아픔까지.

 

말로 표현할  없는 아픔이었을 텐데.

더군다나 이 피해자는 무죄를 받지도 못하고 

지난 2005년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먹먹한 가슴으로 이러한 질문을 던져봅니다.

 

"수많은 국가폭력 피해생존자들에게 과연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 원문입니다.

https://www.ytn.co.kr/_ln/0103_202106292215362421

 

이근안 고문에 간첩 누명 쓴 피해자, 42년 만에 재심 무죄

고문 기술자 이근안 씨에게 간첩으로 몰려 유죄 판결을 받...

www.ytn.co.kr

 

[치졸한 대한민국의 현실]

 

"전두환 집권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간첩 조작 희생양이 됐는데 가해자는 아무런 사죄나 사과도 없다"

 

"과거 폭력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이런 모습이 대한민국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처: 뉴스핌)

 

1981년 전두환 정권 당시 억울하게 충청남도 대공분실로 끌려가 집단 구타와 물고문 등 가혹행위를 받고,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3년을 확정받은 간첩조작 피해자의 재판 후의 억울한 외침입니다.

 

억울하게 하루아침에 인생이 망가진 것도 모자라, 여전히 사법부의 판결을 보면 화가 납니다. 사법부는 국가폭력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할 위자료 액수를 3억 원으로 정하면서도 구금에 대한 보상 및 재심 재판비용으로 이미 받은 형사보상금을 제외한 6,117만 원만 최종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이렇게 치졸한 행위가 어디 있을까요.

늦었지만 환영하는 국가기관의 사과, 그러나 ....

 

 1970-80년대 억압적 권위주의 정권에서 국가권력기관들은 앞다투어 조작간첩을 양산했다. 그 대표적인 기관들이 바로 안기부(현 국정원), 보안사(현 안지사), 그리고 치안본부(현 경찰청). 이들은 당시 각각 고문실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수많은 국가폭력 희생자들을 고문했다. 그리고 그 고문을 견디지 못한 피해자들은 어쩔 수 없이 거짓 진술을 해야만 했다.

 

 현재 남영동에 위치한 민주인권기념관이 과거 치안본부(현 경찰청)가 운영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이곳에서 고문을 받았던 대표적인 피해자가  박종철 열사와  김근태 의원이다. 그리고 이외에 수많은 청년들이 이곳에서 입에 담을 수 없는 고문을 당했다. 이러한 고문의 결과로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간첩사건들은 30-40년이 지나서야 모두 국가기관과 공무원들의 고문에 의한 조작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사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새롭게 문을 연 민주인권기념관.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5 20일경, 1980년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7년의 징역형을 받았던 김 모 선생에게 인천 중부경찰서 안보과 소속 2명의 경찰관이 찾아왔다. 김 모 선생에 따르면, 2명의 경찰관이 집으로 와서 김 모 선생에게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하고, 인천 중부경찰서의 여러 경찰관 앞에서 과거 김 모 선생이 어떻게 치안본부에 의해 고문을 당했는지 등과 같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김 모 선생은 경찰들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거절하고 식사 한 끼 하는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2주 후, 그 두 명의 경찰관은 A4 용지 1장짜리 서한문을 들고 그 식사자리에 왔다.

(사진) 인천중부결창서 서장 명의로 김O 국가폭력 피해자에게 전달된 서한문.

 인천 중부경찰서에 확인한 결과, 인천 중부경찰서는 진실화해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경찰청으로 공문이 내려와서 그 공문에 따라 피해자에게 찾아가 사과를 한 것이다. 또한, 이 공문은 올해 갑자기 경찰청에만 내려진 것이 아니다.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과거사 업무지원단 이행송무과의 서모 사무관에 따르면, 1기 진실화해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해산되고 그 업무를 이어받아서 처리하고 있는 행정안전부 과거사 업무지원단은 지난 2010년부터 진화위 결과에 의거해 분기마다 각 부처에 공문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개인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 기관이 직접 나서서 사과를 한 경우는 10%에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늦었지만 과거 국가폭력을 저지른 국가기관이 직접 나서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것은 환영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 사과의 방식이 피해자를 고려하지 못할 경우, 그 사과가 아무리 진정성 있는 사과라고 할지라도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김 모 선생은 지난 2013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기 전까지 보안관찰법에 따라 출소하고 나서도 고통스러운 경험을 해야만 했다. 예를 들면, 20일에 한 번씩 직접 경찰서로 찾아가 자신의 이동상황을 보고해야 했으며, 지방에 거주할 때는 경찰들이 지방에 있는 집까지 찾아와서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했다. 이러한 경험은 트라우마로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김 모 선생 또한 처음 경찰서 안보과에서 자신을 찾아온다고 했을 때 마음이 이상했다고 이야기한다.

 

 나아가, 안보과의 경찰관이 김 모 선생에게 인천 중부경찰서의 여러 경찰관들 앞에서 과거 고문 경험을 들려줄 수 있냐는 제안은 사과가 아니라 오히려 2차 피해의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다. 평생 동안 고문 후유증과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피해자에게 찾아와서 자신을 고문했던 후배 경찰들 앞에서 과거 자신이 어떻게 고문을 당했는지 들려달라는 이야기는 매우 무례한 요구이자 명백한 2차 피해다. 그 이야기를 듣는 경찰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되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고문 피해자는 극심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과정이다.

 

 이에 두 가지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첫째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피해자를 고려하지 못한 사과라는 점이다. 피해자가 과거 경험한 고문의 트라우마와 출소 후 보안관찰의 경험을 고려한다면 피해자를 향한 사과는 더욱 피해자 관점에서 이루어졌어야 한다. 둘째는 현재 경찰청 이외의 국정원과 국방부는 이 같은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행정안전부 과거사 업무지원단이 지난 2010년부터 지속적으로 공문을 보내고 잇따른 사법부의 재심 무죄가 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과거 조작간첩을 가장 많이 만들었던 현 국정원과 국방부(안지사)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이번 고문 피해자를 향한 경찰청의 사과는 늦었지만 환영받을 일이다. 그러나 여러 측면에서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앞으로 과거 국가폭력의 가해자였던 국가기관들을 향해 세 가지 제언을 한다. 첫째, 사과는 행정편의적 또는 가해자 중심이 아니라 철저하게 피해자 중심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사과의 무게는 과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가했던 무게에 상응해야 한다. 단순히 A4 용지 한 장의 서한문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셋째, 행정안전부와 대통령실(또는 감사원) 및 국방부는 앞으로 적극적으로 세 기관(경찰청, 국정원, 안지사)의 활동을 감시하고, 피해자 중심의 사과가 이루어지는지 철저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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