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은 국가범죄인데, 치유센터는 전국에 1개뿐"

 

[이털남 380회]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

 

[이털남 2-360] '인권의학의 문을 열다, 이화영 소장' 서구에선 30년전부터 시작됐지만 아직 한국에선 생소한 개념인 인권의학. 그 문을 활짝 연 사람이 있다. '김근태 치유센터' 설립준비에 한창인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을 보이는 팟캐스트에서 만나본다.

ⓒ 이종호

 

인권의학,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하지만 서구에선 7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의학분야이다. 간단히 말하면 인권 가치에 입각해 의학 활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여기엔 인류 고통의 원인에는 질병뿐만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 차별 등 사회적인 고통도 있다는 인식이 전제된다. 즉, 인권의학은 의료인들의 인권감수성을 높임으로써 사회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인권피해자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도록 이론적·실천적 지침을 제시하는 새로운 의학 분야이다.

 

한국 인권의학의 문을 연 이가 바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설립에 앞장선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이다.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은 7월 5일 '보이는 팟캐스트'를 통해 이화영 소장과의 만남을 가졌다. 이 소장은 한국의 인권의학과 함께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고문 피해자들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국가, 국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인권' 이용

 

이화영 소장이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즈음 미국에서 암을 연구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미국의 보수 언론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여성의 인권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했고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부시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침공을 선언했다.

 

이 소장은 "인권 이슈조차도 미국의 자국이익주의를 정당화시키는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밝혔다. 이 소장의 이런 불편한 심기는 더 커졌다. 부시가 이번에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명했기 때문. 이 소장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패턴을 볼 때 이번엔 한반도가 전장이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다고 한다.

 

이 소장은 이를 계기로 국제분쟁학연구소의 석사 과정을 밝기 시작했다. 미국이 한반도를 어떻게 보는지 알고 싶었던 것. 이 소장은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지역에서 현장실습을 하며 인권의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소장은 "이스라엘의 '인권을 위한 의사회"를 보며 의료를 통해 갈등이 심한 두 공동체를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걸 한반도에 도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특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권을 위한 의사회'는 이스라엘 정부에 의한 팔레스타인 고문 등을 고발하고, 피해자들의 치유에 나서곤 했는데 그런 모습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는 것.

 

예상은 했지만 한국에 인권의학을 도입하는 일은 힘들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인권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은 터라 대다수 의료계가 꺼리는 상황. 그 장벽을 깨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의대의 빡빡한 커리큘럼도 장벽이었다.

 

이 소장은 갖은 노력 끝에 2007년 연세의대에 '인권과 의료인'이라는 인권학 과목이 처음으로 개설됐다. 이후 지금까지 고려, 아주, 한림, 원주 의대 총 5개의 대학에 인권의학 과목이 개설되었다. 미약하긴 하지만 한국에도 인권의학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고문으로 인한 PTSD 발생률은 성폭력보아 높아

 

이 소장은 인권의학에서도 고문 피해자의 PTSD에 큰 관심을 보였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의 설립에 앞장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녀는 "PTSD를 가장 많이 일으키는 트라우마는 고문에 의한 트라우마"라며 고문이 한 인간에게 얼마나 끔찍한 충격을 주는 것인지 설명했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보다도 PTSD 발생률이 높으니 그 고통은 감히 직잠할 수조차 없는 정도일 것이다.

 

"PTSD를 일으키는 원인 분석에 따르면 전쟁으로 인한 사람이 15%, 강간 등의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이 60% 정도 PTSD를 일으킨다. 그런데 고문을 겪은 피해자들은 70%로 나타났다. 고문은 PTSD를 일으키는 가장 가혹한 원인으로, 달리는 자동차에 그대로 치이는 것과 같은 심리적 충격을 준다. 그 사람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강하건 약하건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다."

 

한국 정부는 고문 피해자에 관심을 두고 있는가

 

사실 고문은 국가가 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행위이므로 국가가 고문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국가가 운영하는 치유센터는 광주트라우마센터 뿐이다. 미국이 약 30개의 트라우마센터를 운영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소극적인 자세이다.

 

법이 지금까지도 만들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한 마디로 관심이 없어서다. 2009년과 2012년 두 번의 바르이가 있었지만 제대로 토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 소장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법안을 만드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고문 피해자들의 대다수는 박정희 독재 정권 하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 부담을 더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과거의 잘못을 잊어버린다면 되풀이될 뿐이다. 고문 피해자들의 고통은 우리의 모두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이기도 하다. 이화영 소장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는 이유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지원책과 배려가 국가가 얼마나 정의로운지, 또 성숙한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2013년 7월 5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던 기사입니다. 기사 원문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82908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치유센터2013.08.05 19:09

지난 1년 6개월 동안의 치유센터 건립기금 모금과 설립추진과정을 거처 마침내 지난 6월 25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 성가소비녀회(수녀원)내 성재덕관에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숨'(이하 치유센터)이 문을 열었습니다.

  

 

개소식 날 축하 손님들은 낮부터 미리 오셔서 치유센터 내부와 뜰, 잔디마당을 둘러보셨습니다. 따가운 6월의 햇살도 구름 속에 숨었고 산들바람이 간간이 수녀원 나무 그늘로 불어 행사 준비를 하는 일꾼들은 한결 일이 수월해졌습니다. 전철 길음역에서 내린 손님들은 길가에 나붙은 행사 포스터와 오렌지색 풍선길을 따라 쉬이 치유센터를 찾아오셨습니다. 

  

 

치유센터 3층 대강당에서는 사전행사로 오후 4시부터 장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가 상영되었습니다. "남영동 1985"는 김근태 민청령 의장이 1985년 악명놓은 경찰청(당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이근안 등 고문경관들로부터 가혹한 고문을 당한 사건을 그린 영화입니다. 여러 수녀님들을 포함한 200여 명의 관람객들은 고문의 참상과 이를 저항하는 고문피해자의 사투를 참담하게 또 뜨겁게 지켜보았습니다.

  

 

영화 상영이 마칠 즈음 도착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3층 대강당에서 '고문 근절'과 '피해자 치유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인사말을 드렸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인권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국가보안법의 폐해와 고문이라는 국가폭력을 책("야만시대의 기록-1,2,3)으로 출판했던 고문조사와 기록의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이어 박원순 시장은 고문피해자들을 비롯한 내빈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치유센터 내부를 함께 둘러보았고, 집단치유 진행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6시부터 성가소비녀회 수녀원에서 마련한 '소박한 밥상' 나눔이 피정의 집에서 있었습니다. 수녀님들이 준비한 150명분의 식기는 금방 동이 났습니다. 급히 식기를 더 준비하였고 조금 늦게 식당을 찾은 분들은 작은 접시에 식사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모두 맛나게 저녁식사를 마쳤습니다.

 

 

한편 그즈음 치유센터 건물 앞 중간 잔디마당에서는 강원도 원주에서 오신 김봉준 화백의 작품 전시와 "소망 글쓰기"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손님들은 치유센터에 바라는 희망의 말씀을 메모지에 남기고, 줄을 서서 김봉준 화백의 희망 손글귀를 받았습니다. 김봉준 화백은 신화와 민속의 원형 세계에서 인간본유의 치유 가능성을 회화와 조형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한일간 문화교류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계십니다. 

 

 

 

식사를 마친 후 치유센터와 잔디마당은 삼삼오오 김근태 의장과 인권의학연구소의 활동 사진을 둘러보고 치유공간을 산책하는 분들로 살짝 붐비는 느낌마저 주었습니다.

 

 

행사장 곳곳에서 함세웅 설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와 차 클레멘스 총장수녀님, 70여 명의 설립추진위원들,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이 함께 손님을 맞았습니다.

 

 

참석하신 손님들 중에는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과정에서 국가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각자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거나 정부나 의회,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 분들도 많지만, 지난 시기 국가폭력의 상흔과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한 동변상련의 감정은 모두를 예전의 하나 된 모습으로 되돌려 놓고 있습니다.

 

 

개소식 본행사는 "마당음악회"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서울 성북구에서 청소년 대상 봉사활동을 해오고 계시는 센트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5중주의 따듯한 음악이 파릇한 잔디마당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사회자 권해효 님은 축하객들에게 반가운 인사말을 드렸습니다. 함세웅 신부님, 성가소비녀회 총장 차 클레멘스 수녀님, 인재근 국회의원께서 차례로 뜻깊은 개소식을 맞은 소회를 담담하게 말씀하였습니다. 2012년 1월 김근태 의장 영결미사에서 고문피해자 치유센터를 처음 약속했던 함세웅 신부님은 남다른 감회를 들려주셨습니다. 인재근 의원님은 하늘에 계신 김근태 의장을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특히, 클레멘스 총장수녀님은 이 모든 것이 있기까지 수고하신 모든 이들에게 평화의 축복을 기원하셨습니다.

 

 

특히 재일동포 모국유학생 조작간첩 사건의 대표적 피해자인 이철 선생님은 오사카의 생업까지 잠시 미루고 멀리 일본에서 오셔서 치유센터 개소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일본에 거주하는 많은 고문피해자들을 대신하여 치유센터의 발전과 조국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말씀을 드려습니다.

 

마당음악회의 클라이맥스는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의 독창, 합창이었습니다. 참석하신 분들의 후문에 따르자면, "아베 마리아"를 들으며 영혼이 맑아지는 큰 감동을 받았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학생수녀님들의 합창도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치유센터 소식을 듣고 꼭 참석하고 싶다는 연락을 먼저 해 오신 남성중창단 "별 헤는 밤"의 씩씩한 남성중창 소리에 인근 주민들도 하나둘 씩 행사장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행사 중간에 짙어진 구름이 비가 되어 잠시 내렸습니다. 먼저 가신 고문피해자들의 얼어붙은 한이 조금씩 녹아 흐르는 것이었을까요. 참석자들은 내리는 비를 다같이 맞고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름없는 고문피해자들이 혼자 비를 맞도록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녁이 이슥하면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개소식은 막을 내렸습니다.

6월25일, 이 날은 고문과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치유 지원하기 위한 작은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만남을 통해 한 분 한 분의 치유가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마음에 전해진 깊은 울림과 감동으로 모두들 위로받는 밤이기도 했습니다.

 

 

(개소식 날 마당음악회를 "라이브 서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을 클릭하세요.)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서화숙의 만남] 김근태치유센터 설립 준비하는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

"고문피해자 심신 후유증 치유 위한 의료지원 절실

사회정의 실현 없이는 완전한 치유란 멀고 먼 길"

 

"사회정의가 완전히 이뤄지고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한

고문 피해자들의 완전한 치유는 멀고먼 일이에요.

이 땅에 다시는 폭력이 발 붙이지 못한다는 확신만이

 이들을 치유할 수 있어요." 홍인기기자hongik@hk.co.kr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민간치유센터인 김근태기념치유센터가 생긴다. 이 센터를 설립하기 위한 준비모임이 2012년 12월 10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남영동 1985'라는 영화로 재연되고 있지만 김근태(1947~2011) 전 의원은 전두환 정권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보이는 파킨슨병에 시달리다가 불과 64세의 나에로 세상을 떠났다. 살아서 그는 울컥 성내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고문의 후유증을 앓는다는 생각을 주변에서 하지 못했고 되려 그에게 젊을 때의 활기로 민주화 운동을 해주길 심지어는 고문가해자인 이근안을 용서하기까지 바랐다. 그 이근안은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최근 책을 내고 변명 아닌 변명을 일삼고 있다. 이렇게 가치전도된 세상을 참아내는 것은 얼마나 힘든 것인가. 그 분노를 사회정의를 바로잡는 일에, 고문피해자를 위한 치유를 돕는 일에 써달라고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설립준비에 앞장선 이화영(53 내과전문의) 인권의학연구소 소장은 말한다.

 

- 인권의학이 뭔가요?

 

"과거에는 건강을 위협하는 고통의 원인으로 질병만 생각했습니다. 의료인들은 어떻게 하면 질병을 없앨까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을 중심으로 사회적인 고통을 함께 봐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습니다. 건강권은 인간이 누려야 할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차별 가난 폭력 이 세가지가 건강을 위협하는 사회적 고통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차별과 가난 폭력에 의료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인권의학의 관점입니다."

 

- 원래는 내과전문의로 암전문가였다는데 어떻게 인권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제가 77학번인데 그때는 대학생이 전체의 5%쯤 되었어요. 선배들이 '대학생은 95%에게 빚진 자다.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를 강조했어요. 2000년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암센터에 암연구를 하러 갔어요. 2001년에 9.11이 일어났지요. 이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이 터지는 과정에서 보니까 미국 보수 방송에서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의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를 계속 방영하였어요. 인권문제가 전쟁을 정당화시키는 도구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라크 전쟁 시작 후에는 북한인권상황을 계속 내보내는 거예요. 북한을 공격해도 미국인들은 정의로운 전쟁을 한다 믿겠구나 싶어서 조지메이슨대 국제분쟁분석해결학 연구소에 들어갔어요. 2003년이었어요. 면접하는 교수가 너 의사인데 테러리스트 하려고 이거 하느냐고 묻더라고요. (팔레스타인 투쟁단체) 하마스의 지도자가 소아과 의사에요. (웃음) 분쟁지녁에 가서 한달간 실습을 하는 것 때문에 이스라엘에 갔을 때 '인권을 위한 의사회'를 알게 되었어요. 팔레스타인 정치범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고문을 폭로하고 치료하는 단체였어요. 의료가 분쟁지역에서 화해의 도구가 될 수 있구나 깨달았지요. 1974년부터 덴마크에서 칠레 난민들의 망명신청을 위한 고문진단서를 써주던 국제 엠네스티의 의사들이 주축이 되어서 1982년 세계최초로 고문피해재활센터 RCT(rehabilitation center for torture)를 만들어요. 이게 IRCT라는 국제기구로 커졌고요. 70여개국이 가입해서 150여개 단체가 가입했어요. 미국에서도 1985년에 미국 최초의 고문피해자센터 CVT(center for victims of torture)가 생겼고 망명자를 치유하려고 이렇게 힘을 들이는데 정작 우리나라는 국가폭력이 엄청나게 일어났고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데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어요. 의료계에서도 폭력에 의한 트라우마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어요. 한국에 가서 의대생들부터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연세대 의대에서 '인권의학' 강의를 개설하였고 2007년 가을에 귀국했어요."


- 본격적으로 연구소까지 만든 이유가 있어요?

"2009년에 용산참사 피해자를 지원하던 신부님이 그러세요. 아이들이 천막에서 학교를 다니는데 심리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고. 현장에 가보니 아이들뿐 아니라 철거민, 유족들, 올라갔다가 살아온 사람들의 정신심리적 외상이 매우 심했어요. 정신과 의사 네 분이 개인치유 지원을 했어요. 2010년 10월부터 국가폭력 피해자 대상 집단치유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울릉도 조작간첩사건, 서울도시철도 해고근로자, 70~80년대 노동운동 국가폭력 피해자, 학림사건 피해자 집단치유를 했습니다."

 

- 집단치유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마음 속에 담긴 고통을 끌어내서 재조립하고 회복하려면 의료적 개입은 반드시 있어야합니다. 집단치유 첫 시간에 이 치유프로그램은 회복을 위한 시작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고문 피해를 당하신 분들이 대부분 개인의 잘못으로 이 문제를 담아두고 계세요. 당시 벌어졌던 일에 대해서도 내가 부주의했다고 말이죠, 그 후에 고문 후유증으로 생기는 분노나 우울증, 대인기피에 대해서도 내가 성격이 좀 안좋은가보다. 그러면서 사람을 피하고 잘 믿지를 못해요. 집단치유를 하면 다른 피해자들의 어려움을 들으면서 이게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구나, 당시 정치적인 상황에서 내게 벌어진 일이구나, 고문과 같은 그런 일을 겪으면 누구나 나와 같이 될 수 있구나를 받아들이게 돼요."


- 치유의 단계가 있습니까?

 

"무력감 상실감 분노, 자기자존감이 낮아지는 것들이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걸 알려드려요. 가해자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지만 내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 뿐이다. 그건 내 인생을 안 망가뜨릴 수 있는 것도 나 자신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지요. 아내나 아이처럼 가장 만만한 상대한테로 분노가 가는 걸 막는 분노조절을 알게 하고요. 무력감은 알코올 중독이나 자살하고도 연관되지요. 고문의 영향에 대한 이해, 증상과 감정에 대한 이해로 시작하여 자신과 가족, 동료들과의 관계 회복으로 연결되게 합니다.

 

- 국가폭력 피해자는 얼마나 됩니까?

 

"정확한 숫자는 없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인권의학연구소가 90년대 중반부터 국가기관에 의해서 조사된 숫자를 정래해 보았어요. 광주민주화 거창 제주 삼청교육대 등등 쭉 조사를 해봤더니 30만명이 넘고요. 국정원이나 경찰조사에서는 건수로만 나오는데 8,560건이예요. 한 건당 사람은 한명부터 추천명까지니까 수십만명이라고 보는 거지요. 30만명도 신고된 사람일 뿐 과거사 위원회에서 신청한 것을 보면 재일교포 사건만 해도 200명 중에 20명 정도만 재심을 신청하고 있어요. 인권의학연구소가 집단치유를 한 간첩조작 사건인 울릉도 사건도 47명이 구속되어 3명은 사형선고까지 받은 사건인데 지금까지 알려지지도 않았거든요."

 

- 울릉도 사건은 기자인 저조차도 처음 들어본 듯하네요.

 

"1974년 인혁당 사건과 같은 해에 일어났어요. 서울대 최종길 교수가 사망하면서 그 책임을 지고 중앙정보부 차철권이라는 사람이 좌천이 돼요. 그가 군대 후배를 통해 처남이 일본서 성공한 사업가라는 사실을 알고는 조총령과의 연관 관계를 떠올려 무차별적으로 엮어서 전주와 울릉도 지역의 47명을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이에요. 이 사건으로 차철권은 영전을 하고 그 이후 승승장구 했어요. 간첩으로 조작된 사람 중에 3명이 사형을 당했고요. 대부분 십여년의 형기를 마치고 나오셨지요. 울릉도 사건 피해자 중 한명인 이성희 선생님은 전북대 교무처장으로 총장 물망에 올랐는데 1960년대 도쿄대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는 북한에 가서 1주일을 보낸 것이 문제가 된 것이지요. 당시 김일 부주석을 만나 간첩 보내지 말라고 설득했다니 낭만적인 통일론자였던 거지요. 그러나 고문에 의해 간첩죄의 누명을 쓰고 17년 형을 살고 나와서 전주를 떠나 강원도에 살다가 2006년에야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신청을 하면서 이 사건이 알려졌어요. 다른 분들도 모두 숨어살고 서로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참고인으로 나오셨다 사건이 밝혀지게 됐고요. 이성희 선생님은 2012년 11월 22일 38년만에 고등법원에서 간첩죄 누명을 벗어났습니다. 나머지 20여 피해자들도 현재 재심 신청하고 진행 중입니다.

 

- 국가에서 나서야 할 일 같은데요.

 

"2012년 12월 10일에 인재근 의원이 '고문방지와 고문피해자 보상 구제법안'을 발의했어요. 고문 뿐 아니라 공권력 남용에 의한 피해자가 다 대상이 되어야 하겠지요."

 

- 사회적으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오늘 누리는 인권은 과거의 누군가의 희생 덕분에 누리는 것이지요. 이 분들의 치유에 모든 이들이 나섰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사회정의가 이뤄져야 해요. 심리적인 안정감을 취했다가도 사회정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증상들이 재발하거든요. 2007년 하반기에도 이병박이 대통령이 되면 다시 잡아가지 않느냐고 굉장히 불안해하셨어요. 하물며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된다면 그 분들의 공포심은 말로 못하지요. 전두환이 저렇게 떵떵거리며 사는 걸 보는 마음은 어떻겠어요."

 


(이 인터뷰 내용은 2012년 12월 17일 한국일보에 게재되었던 기사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기사 원문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212/h2012121621204021950.htm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치유센터2013.04.22 15:04

벚꽃이 아름답게 피기 시작하던 지난 토요일(4월 13일), 모처럼 따뜻한 봄날 오후에 4기 치유프로그램(집단상담) 참여자 후속 모임이 인권의학연구소에서 있었습니다.

 

4기 치유프로그램 참여자 중 박태연 선생님, 김진철 선생님, 유동우 선생님, 이덕희 선생님, 홍영희 선생님이 참가하셨고, 4기 치유프로그램 후속모임 진행을 위해 정혜진, 이은경, 이화영, 손창호 선생님이 함께 했습니다. 오랜만에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4기 치유프로그램 후속모임 프로그램으로 "자기변형게임"이라는 영국의 영성단체 마을 '핀드혼'에서 개발한 의식변형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자신이 살아가면서 고민하고 있는 주제를 정하고 "자기변형게임"을 하다보면, 그 주제에 대한 핵심적 메시지를 알 수 있고 내적 성찰도 하게 해, 자기 문제에 대한 해답의 힌트를 얻게 됩니다. "자기변형게임"을 하면서, 윷놀이를 하듯 주사위를 던져 그림판 위의 자신의 삶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저 재미있는 놀이 같지만, 때론 허를 찔린 듯 마음속을 들여다보게도 하고, 자신의 생각을 확인시켜주기도 해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메시지에 자기 성찰을 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처럼 즐겁게 "자기변형게임"을 하며 솔직하게 마을을 열어주신 4기 치유프로그램 후속모임 참여자 선생님들이, "자기변형게임"을 통해서 삶의 길에서 작은 힌트를 얻었다면 그리고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면 함께한 시간이 더 감사하고 소중할 것 같습니다.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차기 후속모임에 대해 의견을 나눴는데, 5월에 시작하는 6기 치유프로그램(집단상담) 워크샵 때 4기 치유프로그램 참여자들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그 때에는 4기 치유자 모든 분들이 함께 참석하여 함께 생각과 느낌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정리: 정혜진(인권의학연구소 운영위원)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