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 특별법 통과]

 

좋은 소식입니다.

 

지난 6월 29일,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여순사건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 법이 통과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진)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시 신월동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명령을 반대하며 촉발됐다. 당시 희생자만 1만여 명이 넘는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출처:뉴시스 / 제공=여수시청>

 

여수, 순천, 광양 등 전남권 전역에 1만여 명의 주민들이 무참히 죽임을 당한 여순사건은 제16대 국회부터 제20대 국회까지 여러 차례 특별법안이 발의됐으나 모두 자동 폐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전남 동부권 주철현, 김회재, 소병철, 서동용, 김승남 등 다섯 명의 국회의원이 주축이 되어 특별법 단일안을 제시했고, 지난해 7월 28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152명이 공동으로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사진)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시 신월동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명령을 반대하며 촉발됐다. 당시 희생자만 1만여 명이 넘는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출처: 뉴시스 / 제공: 여수시청>

 

드디어, 지난 73년을 고통 속에 살아온 희생자 유가족과 '반란'이라는 오욕을 뒤집어쓴 채 평생을 살아온 여수와 순천 시민의 한도 어느 정도 풀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늦었지만, 국가가 나서서 시민들의 아픔을 치유해야 합니다.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입니다.

https://newsis.com/view/?id=NISX20210629_0001493200&cID=10899&pID=10800# 

 

73년의 한 풀 여순 특별법 통과, 이제는 '화해와 상생'

[여수=뉴시스]김석훈 기자 =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픈 비극인 여순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의 길이 사건발발 73년 만에 활짝 열렸다

www.newsis.com

 

<기사 출처: 무등일보>

<기사 송고일: 21.05.30>

 

무등일보 홈페이지 사진

고문 후유증이나 트라우마 등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의 길이 열렸다. 헌법 재판소가 최근 광주민주화운동 보상금 수령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손해배상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한 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고문후유증과 트라우마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치료 등 작은 위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이번 헌재 판결은 국가폭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끝까지 묻는 상징적 판결로 여타의 배상판결에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헌재는 광주지법이 옛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16조 2항을 상대로 제청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법원은 보상금에는 정신적 손해에 관한 배상이 포함되지 않았으며, 보상금 지급 결정에 동의한 것만으로 배상 청구를 금지하는 것은 국가배상청구권을 제한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봤다.

이번 헌재 결정으로 정신적 배상청구까지 가능해짐으로써 1980년 광주에서 자행된 국가폭력에 대한 보상과 배상의 길이 41년 만에 채비를 갖추는 모양새다,

 

고문 후유증이나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생을 달리하는 등 고통받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피해 당사자나 그 가족의 고통을 어찌 환산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국가폭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끝까지 묻는 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이에앞서 국회도 최근 5·18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5·18 성폭력 피해자와 신군부에 저항한 해직언론인, 구금·수배자 등이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5·18이 41주년을 맞으며 새로운 역사의 장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양상이다.

 

헌재결정으로 국가의 책임 범위가 보다 명확해지고, 올 41주년 국가기념일에 사상 최초로 보수정당 국회의원들이 유족들의 초청을 받았다. 또한 사상 최초로 1980년 진압군으로 참여했던 계엄군 장교가 5·18 묘역을 찾아 참회에 나서는 등 대화합의 장을 제시했다.

 

발포명령자 등 광주의 최종진실, 책임자 규명과 철저한 책임추궁으로 더 이상 이땅에 국가폭력의 망령이 도래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치유] 국가폭력 피해생존자들, 타악기를 배우다.

 

타악기도 치유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인권의학연구소는 코로나-19 상황에서 2021 1월부터 국가폭력 생존자 집단치유 모임을 줌회의를 통한 온라인으로 진행해왔다. 고령에 접어든 생존자들을 위해 웰다잉 웰빙을 주제로 이화영(내과전문의), 손창호(정신과전문의), 백재중(내과전문의) 이사와 정형준(재활의학과전문의) 정회원 등 의료인들이 진행했었다. 그 결과 생존자 중 13명이 사전연명의료지향서를 작성하여 보건복지부에 등록을 마쳤고, 17명이 녹색병원에서 치매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다.

< 사진 1. 국가폭력 생존자 집단치유모임에서 타악기를 처음 만나다. >

 

지난 3월부터는 매주 수요일마다 음악치료 경험이 많은 김태형 심리상담사의 진행으로 인권의학연구소 소강당에서 국가폭력 생존자 집단치유 모임을 갖고 있다. 코로나 방역지침을 준수하여 참여자는 10명으로 제한했고, 모임 중 마스크 착용을 원칙으로 약속하였다.

 

< 사진2 . 봉고를 배우며 이내 박자와 리듬에 즐거움에 빠지다. >

모임에서 다루는 타악기의 종류는 젬베, 봉고, 카혼, 쉐이커 등 다소 생소한 이름도 있지만 모두가 잘 아는 북도 포함되어 있다. 처음에는 모든 타악기를 돌아가며 그냥 두드려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2~3명이 그룹이 되어 같은 악기를 함께 쳐 보았다. 이후 다른 악기들과 되돌림 형식으로 협주를 하니 다른 악기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2, 3, 4...의 타악기들이 각각의 소리로 리듬을 연주했는데, 협주를 하니 여러 악기들이 묘하게 하모니를 이루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박자 맞추기에 긴장했던 몸과 손은 어느덧 리듬을 타면서 자연스럽게 들썩이기도 했다.

 

<사진3. 각자의 타악기로 함께 박자와 리듬을 맞춰 협주하는 참여자들>

트라우마로 인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에 효과적인 치료 방법 중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요법 (EMDR)“은 다른 치료보다 짧은 시간에 효과를 보면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MDR 치료는 현재의 문제와 연결된 과거의 상처 기억을 찾아 양측성으로 자극(안구를 좌우로 운동하게 함)을 주어 뇌의 정보처리시스템을 활성화한다. 그 결과 고통스러운 과거의 상처 기억이 다시 정리되고 통합되면서 과거의 것은 과거에 남겨둘 수 있게 되어, 더 자유롭게 현재를 살아가게 한다.

 

<사진4 . 악기 표면이 나무인 카혼은 경쾌한 소리에 빠져 연주하는 참여자의 손바닥을 금새 빨갛게 한다>

타악기 집단치유 모임의 참여자들은 두 손을 사용하여 악기를 두드린다. 대부분 두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타악기 연주에 열중하곤 한다. 그러나, 마치고 나서 다른 악기의 리듬에 맞춰 자신의 타악기 리듬을 연주하면서 웃음 가득한 표정들을 쉽게 보게 된다. 좌우 두 손을 번갈아 치는 타악기 연주 역시 EMDR에서 안구의 좌우 운동과 비슷한 효과를 뇌 시스템에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양손을 번갈아 사용하게 하는 타악기 역시 트라우마 치유 도구가 될 수 있겠다.

< 사진5 . 매주 새로운 타악기로 협주를 즐기는 참여자들>  

타악기 연주 연습을 막 시작했을 때 참여자들의 손짓, 몸짓과 표정은 다소 긴장하고 굳어 있었지만, 모임을 거듭할 때마다 손과 몸이 유연해져 리듬을 타기도 한다. 혼자의 연주가 아니라 다른 이의 연주 소리를 들으면서 내 리듬을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소통의 기술도 함께 배우고 있다. 무엇보다도 참여자들은 혼자가 아닌 더불어 함께 하기에, 타악기 연주 마당에서 매주 소소한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미얀마의 잔혹함을 보면서]

 

상황이 나아지기보다는 연일 악화일로에 있는 미얀마의 상황을 보면
국제사회를 비롯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에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무력감과 동시에 다시 한번 우리의 근현대사의 아픔을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불과 얼마 전까지 국가의 이름으로 빚어진 숱한 비극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비극의 희생자들의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상처를 국가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의 아픔을 보며,

동시에 우리 사회가 겪은 그리고 우리 국가폭력의 참상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됩니다.

 

1998년 여수지역사회연구소 회원들이 여순사건 당시 학살된 양민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굴하는 모습 (출처: 부산일보)

 

아래 기사는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어 공유합니다.

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1042215122180994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치유되지 못한 우리 현대사의 트라우마, 국가폭력

사북사건 피해자들이 2001년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사무소에서 민주화 운동으로의 명예 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부산일보 DB ■“국...

www.busan.com

 

[무등일보] "인권은 존엄과 권리 지키는 지렛대" 

(보도일자: 2020.10.05)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에서 7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새로운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은 사람 우선의 자유 / 공존 / 연대의 중요성을 중심으로 '인권 서로 배우기' 강의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두번째 챕터에서는 이화영 소장이 '인권과 의학- 국가폭력과 트라우마 그리고 인권'을 주제로 인권침해 현장을 목격하고 침묵하면 공모하는 것이며 인권은 구체적 실천이며 행동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해당기사 보기: http://www.honam.co.kr/detail/K4YzjP/614891

2020년 5 26 () 오후 2, 5.18 진상규명위원회 7층 대회의실에서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 소장이  5.18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들을 대상으로 직무교육을 진행하였다. 올 초에 출범한 5.18민주화항쟁 진상규명위원회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조사관들을 위한 직무교육을 인권의학연구소에 요청하였기 때문이다. 

 

가해자 뿐 아니라 피해자를 조사해야하는 위원회 조사관들이 그 직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피해자를 배려하는(victim-sensitive) 조사를 통해 2차피해를 방지하는 것에 교육의 목적을 두었다. 교육은 2개의 강의로 진행하였는데 1강은 국가폭력 피해자 트라우마 이해하기, 2강은 피해자 조사과정에서 2차피해 방지를 위한 원칙이었다.    교육의 목표를 국가폭력 피해자의 트라우마 이해를 통해 조사 중 조사관의 피해자 감수성을 높이는데 두고, 인권 보호를 위한 피해자 중심 조사 면담 방법과 조사관 스트레스 자기관리법을 알리고자 하였다.

 

 

1강에서는 한국 현대사에서 억압적 정권에 저항하거나 희생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트라우마와 피해자들의  삶에 거쳐 영향을 미치는 PTSD에 대한 이해를 통해 조사관들의 피해자 감수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2강에서는 피해자 조사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조사관들에 의한 2차피해를 예방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조사과정에서의 2차피해로써 과거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위원회(진화위) 조사를 겪은 피해자들의 경험을 사례로 전달하였다. 

 

  조사관과 조그만 사무실에서 사건 이야기를 하는데 꼭 보안대에서 취조받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진화위 조사실이) 창문도 없고 문 하나밖에 없는 곳에서 조사를 받다보니까 보안사 조사 느낌이 들더라고요... 조사가 끝나고 마음이 어찌나 괴로운지 매일 소주를 마셨어요.”(70대 조작간첩사건 피해자)

 

 내 사건을 배정받은 조사관이 수사기관(국가기관)에서 파견나온 사람이었어, 조사 받으면서 내가 북한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하니까 그 조사관이 나보고 뭐라고 하냐면  북한에 갔다왔으면 간첩 맞네요.’ 하는 거야내 참 기가 막혀서..... (90대 조작간첩사건 피해자)

 

 위 사례에서처럼 인권보호를 위한 피해자 중심 조사에서는 조사환경과 조사과정 단계 모두 중요하다고 하겠다

 

또한, 조사관들이 트라우마 사건을 다루면서 경험하게 되는 심리적 스트레스의 관리에 대한 중요성과 방법을 살펴보았다. 조사관들이 경험하는 정서적 트라우마는 피해자 면담과정에서의 스트레스 또는 과거 자신의 트라우마 사건이 건드려지면서 오는 부정적 정서로서, 조사관의 성격과 태도 변화가 생길 수 있으나 개인적 노력과 팀원들의 지지로써 잘 관리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개별 신청도 가능하오니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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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 개소 4주년과 UN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김근태 기념치유센터 “숨” 개소 4주년과 UN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행사가 지난 6월 23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국회헌정기념관 강당에서 열렸다.

 

 


 이 날 행사에는 고문 생존자분들과 여러 시민단체와 국회의원들 그리고 성가소비녀회 수녀님 등 약 300 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1부 함께 하는 마당은 함세웅 이사장의 인사말씀으로 시작되었다. 함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국가폭력의 문제는 희생자 치유지원 뿐 아니라 가해자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새로운 정부에서 국가폭력의 가해자들에 대한 조사와 적절한 조치에 나설 것을 촉구하였다.


 
 이어서 인사말에서 김근태 기념치유센터 의 공동대표인 인재근 국회의원 역시 고문피해자 문제의 국가적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특히 올해에는 현재 발의상태인 고문피해자 치유지원법안의 입법화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축사를 하였다. 우원식 의원도 국회차원에서 고문피해자 문제 해결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노력을 약속하였다.


 손창호 소장은 지난 1년간 김근태 기념치유센터의 활동을 소개하였다. 고문피해자들에 대한 개인 및 집단상담 그리고 재심 법정동행 지원은 예년과 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트라우마 치유” “사회적 트라우마 치유”“내 삶이 인권을 만나다” 등의 주제 아래 지난 1년간 총 10회의 대중 공개강좌를 하였다. 그리고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내에 재일동포 양심수 역 사전시실을 개관한 바 있다. 특히 2016년에는 김근태 기념치유센터가 국제 고문피해자 재활협회(IRCT)의 회원이 됨으로써 국제적 연대활동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올 해의 감사패는 유해우(유동우) 선생에게 주어졌다. 유해우 선생은 지난 40년 이상의 세월을 노동운동에 헌신해 왔다. 본인 역시 1981년 소위 “학림사건”에 연루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오랜 시간 고통을 겪은 바 있는 유해우 선생은 2012년 이후 인권의학연구소와 함께 고문피해자 치유지원에도 힘써오고 있다.



 1부 마지막으로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의 합창이 있었다. 이번에 부른 노래 “꽃”은 청중들에게 감동과 위안을 선사하였다.


 2부 치유마당은 임진택 명창의 지도하에 준비한 고문생존자 판소리 모임인 길음 판소리의 공연으로 시작하였다. “사철가” 와 “농부가”로 흥이 돋워진 청중의 신명은 앵콜곡 “고고천변”에서 최고에 이르렀다.


 두 번째 무대는 이소선합창단 대표를 맡고 있는 테너 임정현 님이 맡아주었다. “님이 오시는 지” “남촌” “후대에게” “상록수” 그리고 “그날이 오면”을 열창하였다. 특히 “상록수”와 “그날이 오면” 은 청중들과 함께 부르며 참석자 모두가 하나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공식 행사가 모두 마친 후에 국회 헌정기념관 식당에서 참석자 분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진 것으로 이날 행사는 마무리 되었다.

 

[국회토론회] '과거사 재심과 국가배상소송과정에서의 인권침해와 2차 피해'에 초대합니다

 

  최근 진실화해위원회 등 여러 국가조사기구들에 의해 진실규명된 과거 국가폭력 사건들에 대한 재심, 국가배상소송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과거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국가책임을 희석하고  면탈하려는 조직적 흐름이 강화되고 있고, 이로 인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2차적인 피해와 외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은 국회 민주주의와 복지국가 연구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와 함께 최근 과거사 재심과 국가배상 소송에서 나타나는 문제점과 인권침해 사실을  피해자 증언으로 직접 청취하고, 재심과 국가배상소송 과정의 법리적 문제점 외 피해자들이 겪는 2차적 인권침해 내용과 외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석 바랍니다. 

 

 

 

상처가 꽃으로 피기까지

김봉준(화가, 상처꽃미술감독)과의 만남

 

 

정리 : 장남수

(노동저술가, 『빼앗긴 일터』(창작과비평사, 1984) 저자, 前원풍모방노동자,

인권의학연구소 운영위원)

  

 

 

 

 

그림 같은 글자, 글자 같은 그림

울릉도간첩단 사건의 생존자들을 상처 꽃이라는 세 글자에 형상화 한 김봉준화백의 그림은 절묘했다. “날카로운 칼부림에 찢어진 상처가 처절한데 그 상처들이 승화해서 으로 부활하는 듯, 받침이 촛불 꽃처럼 피어나는 그림이다. 김봉준표 캘리그라피다.

 

대학로 눈빛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상처꽃 울릉도-1974]에서는 눈을 사로잡는 치유미술영상들이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따뜻하면서 안온한 그림들이다.

농부들의 소박한 일상도 보이고, 탈을 쓴 마당극의 한 장면 같은 풍경도 있고, 걸어 들어가고 싶은 숲도 있고, 펄쩍 튀어 나올듯한 울릉도의 오징어잡이 어부 그림도 있다. 연극의 장면 장면들을 배경으로 가만히 받쳐주는 김봉준화백의 30여점 그림들은 연극과 잘 어울린다.

1974년도에 스무 살 무렵이었던 청년 김봉준은 울릉도사건을 듣도 보도 못했을진대.

 

극장 앞 작은 찻집에서 김봉준화백과 마주 앉았다.

나는 다섯 가지 폭력의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어요.”

 

어릴 때 가정폭력을 겪었고, 학교폭력, 군대폭력도 겪었다. 또한 투옥과 수배 등의 과정에서 국가폭력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대학 2학년 때 동일방직노동자들과 함께하며 동일방직사건을 극으로 만드는 연출을 했는데 이때 연행되어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26세 되던 때 광주사건이 터졌고 이때는 포고령위반으로 고달픈 피신생활을 1년이나 해야 했다. 당시 착검한 계엄군들이 요소요소에서 검문하던 때였다. 이때의 뿌리 뽑히고 끈 떨어진 삶으로 인해 도망자의 트라우마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다 포고령이 해제된 후 자수하여 이실직고하고 한 달 만에 풀려났다.

 

포고령위반으로 도망 다니면서 가진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 창작과비평에서 3개월여 일한 것이 전부였다. 그 후 대학까지 나온 놈이 그러고 있느냐는 눈총을 받던 중 농민회에서 불러 기독교농민회 문화간사로 들어가서 첫 만화를 그린 것이 농사꾼 타령이었다. 이것은 최초의 민중만화라고 꼽혔는데 그것 때문에 또 수배가 되었다. 그때 농민회 배종렬회장이 김봉준을 보호하고 대신 징역을 살았다. 긴 감옥살이 할 뻔 했는데 그렇게 넘고 넘었다.

 

그 다음엔 민중문화 협의회 활동을 하다가 끌려 들어가서 두들겨 맞고 그림도 빼앗겼다. 그 그림이 상처꽃극중에 등장한다. 목에 칼을 찬 사람을 가운데 두고 아낙네들이 둘러앉아 있는데 옆으로 총칼이 들어오는 그림이다. 당시 그 그림을 찾으러 종로경찰서에 갔는데 없다고 오리발 내미는 경찰들 탓에 찾지 못했다. 결국 구류를 살고 나온 후 화가 치밀어서 다시 그린 그림이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별따세(1985, 걸개그림)]

 

내 트라우마는 여러 종류이지만 그 중 가장 힘든 것은 내부자 폭력이었어요. 폭력의 강도는 그리 크지 않지만 믿고 따랐던 선배가 나를 모함하고 억압하는 폭력, 뺨때기를 여러 대 맞았는데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나를 모멸하며 작살을 내는 것이 너무 억울했고 그 억울함이 진짜 오래갑디다.

그런데 그이도 그런 종류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폭력이 습관화된 사람이었고 그렇게 습관화 된 사람 옆에 있으면 맞는 사람이 많이 생겨요. 나만 겪은 게 아니라 그 사람 주변에서 겪은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상처가 되는 일들을 겪으며 몸이 몹시 피폐해졌다. 결혼한지 9년 쯤 되었는데 도시를 떠나야겠다고 작정했다. 당시 부천에서 복사골 마당이라는 문화공간을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한참 풍물강습을 하던 때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래가 시골생활이 맞는 체질이지만 워낙 도시여자를 아내로 맞이한터라 부천에 자리를 잡았던 것인데 몸이 피폐해지니 버틸 수가 없었다. 이후 몸 안에서 암이 3기말까지 간 것도 알게 되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산골에 있으면서도 환자 몸으로 계속 생활비는 벌어서 송금하고 가족들이 보고 싶어 한 달에 한번정도는 왕래하며 어느 새 20여년 세월을 훌쩍 지나왔다.

 

1993년 그렇게 떠난 원주 문막 화실터에다 신화미술관을 차렸다. ‘신화는 신성한 힘의 발견’(죠셉 캠벨) 이다. 문화치유는 치유자가 단서를 제공하면 내담자 스스로 치유의 길을 찾아서 부활과 재생의 빛을 만드는 과정이다. 죽음의 문화에서 살림의 문화로 부활하는 것이므로 문화치유는 그 자체가 신화창조이다.

 

문화치유는 크게 자연치유, 예술치유, 영성치유로 구분할 수 있다.

자연치유는 나와 밖의 관계를 자연처럼 순환의 관계로 만드는 것이다. 내 몸 안에 스스로 지닌 자연의 치유력으로 심신의 안정을 구하는 것이다. 당연히 자연치유력의 으뜸은 숲이다. 예술치유는 앞에서도 언급된 것이지만 詩書畵歌舞樂으로 도에 이르는 것이다. 書道 武道 畵道란 말처럼 예도로 치유하는 것이다. 그에 더해 근대 장르주의 예술개념을 넘어 놀이치유, 영상치유, 문학치유, 드라마치유 등 다양한 예술치유가 있다. 영성치유는 영성, 요가 등을 포함하여 이 또한 다양하고 융합적인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난장(1982)]

 

트라우마를 겪은 자가 그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면 대개 네 가지 단계를 밟는다.

처음에는 숨어드는 것이다.

상처받은 동물이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숲으로 들어가 자기 상처를 핥는다. 사람도 동물이다. 그가 산골로 들어갔던 것도 바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울컥울컥 분노가 치민다.

분노를 폭발하느라 주변사람이 다치기 쉽다. 그러니 시골로 들어갔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다치게 될까 두려웠던 때문이기도 하다.

 

문막에 살면서 산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그래서 그는 자연의 치유능력을 믿는다.

 

그 다음은 하소연하고 싶어진다. 위로와 지지가 필요해지는 단계인 것이다.

이 단계가 어느 정도 지나면 용서할 마음이 생긴다.

 

그렇다면 혼자는 치유하기 어려운가?

김봉준 화백은 그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예술은 혼자서도 치유 가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만이 사람을 치유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게 그것이다. 예술치유는 자기안의 상처를 꺼내서 치유하는 기제로서 역할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린 그림들이라 이번 치유연극에 잘 어울리는 그림들이 되었던 것이다. 울릉도 사건 당사자들을 만난 적은 없지만 동시대를 겪었고 오늘날이 트라우마의 시대이니까. 그동안 트라우마를 예술로 승화하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고 임진택감독과 김수진 연출이 김봉준미술의 치유성을 간파했다.

 

용서와 화해의 그림을 그리면서 좋은 나라에 대한 꿈을 꿔왔다. ‘상처 꽃이라는 제목도 김근태치유센터에서 발제한 <치유문화론>을 양정순 작가와 임진택 감독이 보고 이번 연극 제목으로 쓰자고 한 것이다. 울릉도 사건에 맞춘 것은 아니었지만 잘 맞게 된 것이다.

 

좋은 나라라고 하는 것은 거대한 권력의 나라가 아니라 그의 그림에서 그려진 것처럼 작은 나라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그런 꿈(세계관)이 있어야 치유의 힘이 분명하게 생긴다. 자기 정체성과 정당성이 획득된다. 예술은 스스로 꿈을 가지고 스스로를 지지하기에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림 그려놓고 보면서 혼자도 좋아서 춤을 추기도 한다. 내가 걸어온 길이 옳았다고 확신하며 자기를 지지한다. 스스로에게 하소연하고 거리를 두기도 하고 지지받기도 하는 자기 소통의 방식이 치유예술이라고 말한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그리운고장(1991, 붓그림)] 

 

이 연극 큰일 내는 연극이군요.” 이 연극의 대본과 리허설을 본 후 극본을 쓴 양정순님과 밥을 먹으러 가며 한마디 던졌다. 연극의 본질은 사람들의 삶을 정면으로 이야기하는 예술이다. 국가정체성을 묻고 국가폭력과 맞장을 뜨니 한국 연극계에 큰 일 낸 것이 맞다.

 

재작년에 김근태 치유센터에서 문화치유론 발제하면서 한국근현대문화의 특징이 트라우마 시대이며 이를 치유하는 문화치유가 지금 절실하다고 말했다.

문화치유에는 자연치유와 예술치유, 영성치유가 있다고 문화치유론에서 말했지만 상처꽃은 이 세 가지가 모두 합쳐져 있다. 그렇다. 사람자체가 본래 하나다. 예술치유란 무엇인가. 상처를 드러내고 정면으로 응시하며 더러운 트라우마의 늪을 아름다움의 힘으로 스스로 빠져 나오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스스로를 살리고 서로를 살리고 세상을 살린다. 숲은 인류문화의 근원적 성지다. 싱그러운 아름다움이야 말로 상처를 상처꽃으로 부활시킬 것이다.

- 김봉준 <상처 꽃> 팜플렛에서

 

김봉준 화백의 새로운 살림의 정원에는 재생의 상처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1995년도에 그린 김순덕 할머니의 상처도, 위로와 지지가 필요한 우리 모두의 상처들도 그러하듯 김봉준 화백은 22년 간 숲으로 들어갔던 예술치유 경험에서 그 모든 상처들을 꽃송이로 이미 피워냈음을 볼 수 있었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 상처꽃 그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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