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센터2017.10.17 11:04

 

 

개별 신청도 가능하오니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강좌 참가신청:
https://goo.gl/forms/P0StQuRXYYXncWuy2

 

트라우마 치유 강좌 신청하기↓↓↓↓↓↓↓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치유센터2017.07.10 11:02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 개소 4주년과 UN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김근태 기념치유센터 “숨” 개소 4주년과 UN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행사가 지난 6월 23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국회헌정기념관 강당에서 열렸다.

 

 


 이 날 행사에는 고문 생존자분들과 여러 시민단체와 국회의원들 그리고 성가소비녀회 수녀님 등 약 300 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1부 함께 하는 마당은 함세웅 이사장의 인사말씀으로 시작되었다. 함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국가폭력의 문제는 희생자 치유지원 뿐 아니라 가해자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새로운 정부에서 국가폭력의 가해자들에 대한 조사와 적절한 조치에 나설 것을 촉구하였다.


 
 이어서 인사말에서 김근태 기념치유센터 의 공동대표인 인재근 국회의원 역시 고문피해자 문제의 국가적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특히 올해에는 현재 발의상태인 고문피해자 치유지원법안의 입법화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축사를 하였다. 우원식 의원도 국회차원에서 고문피해자 문제 해결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노력을 약속하였다.


 손창호 소장은 지난 1년간 김근태 기념치유센터의 활동을 소개하였다. 고문피해자들에 대한 개인 및 집단상담 그리고 재심 법정동행 지원은 예년과 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트라우마 치유” “사회적 트라우마 치유”“내 삶이 인권을 만나다” 등의 주제 아래 지난 1년간 총 10회의 대중 공개강좌를 하였다. 그리고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내에 재일동포 양심수 역 사전시실을 개관한 바 있다. 특히 2016년에는 김근태 기념치유센터가 국제 고문피해자 재활협회(IRCT)의 회원이 됨으로써 국제적 연대활동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올 해의 감사패는 유해우(유동우) 선생에게 주어졌다. 유해우 선생은 지난 40년 이상의 세월을 노동운동에 헌신해 왔다. 본인 역시 1981년 소위 “학림사건”에 연루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오랜 시간 고통을 겪은 바 있는 유해우 선생은 2012년 이후 인권의학연구소와 함께 고문피해자 치유지원에도 힘써오고 있다.



 1부 마지막으로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의 합창이 있었다. 이번에 부른 노래 “꽃”은 청중들에게 감동과 위안을 선사하였다.


 2부 치유마당은 임진택 명창의 지도하에 준비한 고문생존자 판소리 모임인 길음 판소리의 공연으로 시작하였다. “사철가” 와 “농부가”로 흥이 돋워진 청중의 신명은 앵콜곡 “고고천변”에서 최고에 이르렀다.


 두 번째 무대는 이소선합창단 대표를 맡고 있는 테너 임정현 님이 맡아주었다. “님이 오시는 지” “남촌” “후대에게” “상록수” 그리고 “그날이 오면”을 열창하였다. 특히 “상록수”와 “그날이 오면” 은 청중들과 함께 부르며 참석자 모두가 하나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공식 행사가 모두 마친 후에 국회 헌정기념관 식당에서 참석자 분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진 것으로 이날 행사는 마무리 되었다.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치유센터2014.11.24 16:07

 

[국회토론회] '과거사 재심과 국가배상소송과정에서의 인권침해와 2차 피해'에 초대합니다

 

  최근 진실화해위원회 등 여러 국가조사기구들에 의해 진실규명된 과거 국가폭력 사건들에 대한 재심, 국가배상소송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과거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국가책임을 희석하고  면탈하려는 조직적 흐름이 강화되고 있고, 이로 인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2차적인 피해와 외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은 국회 민주주의와 복지국가 연구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와 함께 최근 과거사 재심과 국가배상 소송에서 나타나는 문제점과 인권침해 사실을  피해자 증언으로 직접 청취하고, 재심과 국가배상소송 과정의 법리적 문제점 외 피해자들이 겪는 2차적 인권침해 내용과 외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석 바랍니다.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상처가 꽃으로 피기까지

김봉준(화가, 상처꽃미술감독)과의 만남

 

 

정리 : 장남수

(노동저술가, 『빼앗긴 일터』(창작과비평사, 1984) 저자, 前원풍모방노동자,

인권의학연구소 운영위원)

  

 

 

 

 

그림 같은 글자, 글자 같은 그림

울릉도간첩단 사건의 생존자들을 상처 꽃이라는 세 글자에 형상화 한 김봉준화백의 그림은 절묘했다. “날카로운 칼부림에 찢어진 상처가 처절한데 그 상처들이 승화해서 으로 부활하는 듯, 받침이 촛불 꽃처럼 피어나는 그림이다. 김봉준표 캘리그라피다.

 

대학로 눈빛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상처꽃 울릉도-1974]에서는 눈을 사로잡는 치유미술영상들이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따뜻하면서 안온한 그림들이다.

농부들의 소박한 일상도 보이고, 탈을 쓴 마당극의 한 장면 같은 풍경도 있고, 걸어 들어가고 싶은 숲도 있고, 펄쩍 튀어 나올듯한 울릉도의 오징어잡이 어부 그림도 있다. 연극의 장면 장면들을 배경으로 가만히 받쳐주는 김봉준화백의 30여점 그림들은 연극과 잘 어울린다.

1974년도에 스무 살 무렵이었던 청년 김봉준은 울릉도사건을 듣도 보도 못했을진대.

 

극장 앞 작은 찻집에서 김봉준화백과 마주 앉았다.

나는 다섯 가지 폭력의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어요.”

 

어릴 때 가정폭력을 겪었고, 학교폭력, 군대폭력도 겪었다. 또한 투옥과 수배 등의 과정에서 국가폭력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대학 2학년 때 동일방직노동자들과 함께하며 동일방직사건을 극으로 만드는 연출을 했는데 이때 연행되어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26세 되던 때 광주사건이 터졌고 이때는 포고령위반으로 고달픈 피신생활을 1년이나 해야 했다. 당시 착검한 계엄군들이 요소요소에서 검문하던 때였다. 이때의 뿌리 뽑히고 끈 떨어진 삶으로 인해 도망자의 트라우마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다 포고령이 해제된 후 자수하여 이실직고하고 한 달 만에 풀려났다.

 

포고령위반으로 도망 다니면서 가진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 창작과비평에서 3개월여 일한 것이 전부였다. 그 후 대학까지 나온 놈이 그러고 있느냐는 눈총을 받던 중 농민회에서 불러 기독교농민회 문화간사로 들어가서 첫 만화를 그린 것이 농사꾼 타령이었다. 이것은 최초의 민중만화라고 꼽혔는데 그것 때문에 또 수배가 되었다. 그때 농민회 배종렬회장이 김봉준을 보호하고 대신 징역을 살았다. 긴 감옥살이 할 뻔 했는데 그렇게 넘고 넘었다.

 

그 다음엔 민중문화 협의회 활동을 하다가 끌려 들어가서 두들겨 맞고 그림도 빼앗겼다. 그 그림이 상처꽃극중에 등장한다. 목에 칼을 찬 사람을 가운데 두고 아낙네들이 둘러앉아 있는데 옆으로 총칼이 들어오는 그림이다. 당시 그 그림을 찾으러 종로경찰서에 갔는데 없다고 오리발 내미는 경찰들 탓에 찾지 못했다. 결국 구류를 살고 나온 후 화가 치밀어서 다시 그린 그림이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별따세(1985, 걸개그림)]

 

내 트라우마는 여러 종류이지만 그 중 가장 힘든 것은 내부자 폭력이었어요. 폭력의 강도는 그리 크지 않지만 믿고 따랐던 선배가 나를 모함하고 억압하는 폭력, 뺨때기를 여러 대 맞았는데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나를 모멸하며 작살을 내는 것이 너무 억울했고 그 억울함이 진짜 오래갑디다.

그런데 그이도 그런 종류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폭력이 습관화된 사람이었고 그렇게 습관화 된 사람 옆에 있으면 맞는 사람이 많이 생겨요. 나만 겪은 게 아니라 그 사람 주변에서 겪은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상처가 되는 일들을 겪으며 몸이 몹시 피폐해졌다. 결혼한지 9년 쯤 되었는데 도시를 떠나야겠다고 작정했다. 당시 부천에서 복사골 마당이라는 문화공간을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한참 풍물강습을 하던 때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래가 시골생활이 맞는 체질이지만 워낙 도시여자를 아내로 맞이한터라 부천에 자리를 잡았던 것인데 몸이 피폐해지니 버틸 수가 없었다. 이후 몸 안에서 암이 3기말까지 간 것도 알게 되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산골에 있으면서도 환자 몸으로 계속 생활비는 벌어서 송금하고 가족들이 보고 싶어 한 달에 한번정도는 왕래하며 어느 새 20여년 세월을 훌쩍 지나왔다.

 

1993년 그렇게 떠난 원주 문막 화실터에다 신화미술관을 차렸다. ‘신화는 신성한 힘의 발견’(죠셉 캠벨) 이다. 문화치유는 치유자가 단서를 제공하면 내담자 스스로 치유의 길을 찾아서 부활과 재생의 빛을 만드는 과정이다. 죽음의 문화에서 살림의 문화로 부활하는 것이므로 문화치유는 그 자체가 신화창조이다.

 

문화치유는 크게 자연치유, 예술치유, 영성치유로 구분할 수 있다.

자연치유는 나와 밖의 관계를 자연처럼 순환의 관계로 만드는 것이다. 내 몸 안에 스스로 지닌 자연의 치유력으로 심신의 안정을 구하는 것이다. 당연히 자연치유력의 으뜸은 숲이다. 예술치유는 앞에서도 언급된 것이지만 詩書畵歌舞樂으로 도에 이르는 것이다. 書道 武道 畵道란 말처럼 예도로 치유하는 것이다. 그에 더해 근대 장르주의 예술개념을 넘어 놀이치유, 영상치유, 문학치유, 드라마치유 등 다양한 예술치유가 있다. 영성치유는 영성, 요가 등을 포함하여 이 또한 다양하고 융합적인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난장(1982)]

 

트라우마를 겪은 자가 그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면 대개 네 가지 단계를 밟는다.

처음에는 숨어드는 것이다.

상처받은 동물이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숲으로 들어가 자기 상처를 핥는다. 사람도 동물이다. 그가 산골로 들어갔던 것도 바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울컥울컥 분노가 치민다.

분노를 폭발하느라 주변사람이 다치기 쉽다. 그러니 시골로 들어갔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다치게 될까 두려웠던 때문이기도 하다.

 

문막에 살면서 산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그래서 그는 자연의 치유능력을 믿는다.

 

그 다음은 하소연하고 싶어진다. 위로와 지지가 필요해지는 단계인 것이다.

이 단계가 어느 정도 지나면 용서할 마음이 생긴다.

 

그렇다면 혼자는 치유하기 어려운가?

김봉준 화백은 그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예술은 혼자서도 치유 가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만이 사람을 치유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게 그것이다. 예술치유는 자기안의 상처를 꺼내서 치유하는 기제로서 역할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린 그림들이라 이번 치유연극에 잘 어울리는 그림들이 되었던 것이다. 울릉도 사건 당사자들을 만난 적은 없지만 동시대를 겪었고 오늘날이 트라우마의 시대이니까. 그동안 트라우마를 예술로 승화하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고 임진택감독과 김수진 연출이 김봉준미술의 치유성을 간파했다.

 

용서와 화해의 그림을 그리면서 좋은 나라에 대한 꿈을 꿔왔다. ‘상처 꽃이라는 제목도 김근태치유센터에서 발제한 <치유문화론>을 양정순 작가와 임진택 감독이 보고 이번 연극 제목으로 쓰자고 한 것이다. 울릉도 사건에 맞춘 것은 아니었지만 잘 맞게 된 것이다.

 

좋은 나라라고 하는 것은 거대한 권력의 나라가 아니라 그의 그림에서 그려진 것처럼 작은 나라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그런 꿈(세계관)이 있어야 치유의 힘이 분명하게 생긴다. 자기 정체성과 정당성이 획득된다. 예술은 스스로 꿈을 가지고 스스로를 지지하기에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림 그려놓고 보면서 혼자도 좋아서 춤을 추기도 한다. 내가 걸어온 길이 옳았다고 확신하며 자기를 지지한다. 스스로에게 하소연하고 거리를 두기도 하고 지지받기도 하는 자기 소통의 방식이 치유예술이라고 말한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그리운고장(1991, 붓그림)] 

 

이 연극 큰일 내는 연극이군요.” 이 연극의 대본과 리허설을 본 후 극본을 쓴 양정순님과 밥을 먹으러 가며 한마디 던졌다. 연극의 본질은 사람들의 삶을 정면으로 이야기하는 예술이다. 국가정체성을 묻고 국가폭력과 맞장을 뜨니 한국 연극계에 큰 일 낸 것이 맞다.

 

재작년에 김근태 치유센터에서 문화치유론 발제하면서 한국근현대문화의 특징이 트라우마 시대이며 이를 치유하는 문화치유가 지금 절실하다고 말했다.

문화치유에는 자연치유와 예술치유, 영성치유가 있다고 문화치유론에서 말했지만 상처꽃은 이 세 가지가 모두 합쳐져 있다. 그렇다. 사람자체가 본래 하나다. 예술치유란 무엇인가. 상처를 드러내고 정면으로 응시하며 더러운 트라우마의 늪을 아름다움의 힘으로 스스로 빠져 나오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스스로를 살리고 서로를 살리고 세상을 살린다. 숲은 인류문화의 근원적 성지다. 싱그러운 아름다움이야 말로 상처를 상처꽃으로 부활시킬 것이다.

- 김봉준 <상처 꽃> 팜플렛에서

 

김봉준 화백의 새로운 살림의 정원에는 재생의 상처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1995년도에 그린 김순덕 할머니의 상처도, 위로와 지지가 필요한 우리 모두의 상처들도 그러하듯 김봉준 화백은 22년 간 숲으로 들어갔던 예술치유 경험에서 그 모든 상처들을 꽃송이로 이미 피워냈음을 볼 수 있었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 상처꽃 그림 모음]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강정에 발을 디디는 일은 마치 순례와도 같다. 수많은 정보와 소통수단을 통해 강정의 소식을 듣고 한달에 한 번씩 방문하여 변화와 분위기를 느끼는 일이나, 이렇게 책을 통하여 내가 볼 수 없는 또는 바라보지 못했던 내면을 알게 되는 일은 마음 어디가에 깊이를 하나하나 쌓으며 기도하는 일이다. 쌓은 기도는 마치 지층과도 같다. 과거의 어떤 날은 너럭바위의 부드러움과 바람에 실린 파도의 거침을 만나는 자연의 감동이었다. 어떤 날은 중덕삼거리가 막히고 구럼비가 파괴되는 아픔이었다. 어떤 날은 막무가내의 폭력 앞에서의 아픔이었고, 세상의 변화 앞에서는 막연한 기대였다. 그리고 기대와 다른 변화는 허탈함이었다.

 

 누군가의 강연을 만나는 날에 평화의 의미를 깨닫는 날이었다. 성토를 듣는 날엔 현실에의 암담함이었고 누군가의 글은 안타까움이었다. 그리고 먼 과거의 역사를 지금의 현재에 끌어들여 이어지는 트라우마의 아픔을 듣는 일은 시공간속에서 현상의 입체감있는 이해를 만들어내는 작업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만들어진 그런 이해는 기도의 지층을 한 층 형성하는 일이었다.

 

 4.3의 트라우마를 현재의 강정에 끌어들이는 일은 어떤 면에서는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살아있음이 죄로 죽임을 당해야했던 시대와, 공사방해를 했다는 이유로 고착을 당하고 고소와 연행을 통해 구속이나 벌금형을 받은 현재가 같을 수는 없지만, 하나하나의 가족사에 공권력의 폭압이 아품과 막연한 두려움으로 새겨진 사람들의 공동체가 오랜 시간 후에 다시 공권력을 마주하는 일은, 각인되었던 두려움이 어쩔 수 없이 가슴 한 켠에서 고개를 드는 일이며 잊고 지냈던 트라우마가 마음 어딘가에서 존재감을 강렬하게 발산하게 만드는 일이다. 사실 겪어보지 않은 입장에서 이를 이해하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다. 하지만, 90세가 넘은 강정마을의 노인이 자신이 겪은 4.3과 현재의 해군기지 문제에 쉽게 말을 하진 않다가, 종이에 또박또박 죽은자의 이름가지 모조리 기억해 적어내며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의견을 적어내는 모습은, 마을공동체를 관통하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현재의 아픔이 얼마나 깊고 거대하며 심정적인 연결선이 얼마나 굵고 질긴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해 준다.

 

 책은 가볍다. 읽기도 부담스럽지 않다. 하지만,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 과거와 현재의 트라우마를 마음으로 느끼고 난 후엔 강정에 대해 입으로 말하고 글로 쓰는 일이 조심스러워지고 부담스러워진다. 한 개인의 상처도 남이라는 입장에서는 함부로 말하기 어려울 일일진대, 길게 이어온 역사와 현재의 규모를 지닌 공동체라는 생물이 지닌 상처를 함부로 재단하고 입에 담는 것은 어떠한 말과 글이라도 상처에 생채기를 더하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이 책을 읽고난 이들이여, 혹시 강정에 대해 해군기지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과 생각을 말하던 사람들일지라 하더라도,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에는 내가 사는 세상의 아픔과 타인의 상처에 대해 한번쯤은 눈을 감고 곰곰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떨가? 입은 다물고 손은 모으고.. 조용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이 글은 민욱아빠의 블로그(http://blog.daum.net/heroyw1)에 실린 글입니다.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