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꽃밭에서]

 

날씨와 이제는 봄이 아니라 여름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지난 3월말부터 연구소에 작은 꽃밭이 생겼는데요.

 

이 꽃밭에서 우리 선생님들의 이야기꽃과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집단음악치유가 끝나고 가기 전 선생님들이 연구소 꽃밭에 들러

이런저런 이야기꽃과 웃음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화요일, 녹색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구명우 최양준 선생님 두 분께서 녹색병원 신경과 검진을 받았습니다. 여느 때처럼 녹색병원에 도착하면 양주희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환한 미소로 저희 선생님들을 맞아주시고 안내해주십니다. 그리고 송현석 신경과 과장님과의 면담을 시작으로 검진이 시작됩니다.

 

검진이 시작될 때는 선생님들이 혹시라도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 시간여의 검진이 끝나고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검사 결과를 듣고는 얼굴이 환해지십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어 선생님들과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 어느새 선생님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자리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희 연구소는 항상 선생님들의 일상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라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TMI, 오늘의 점심 메뉴는 김치찜이었습니다!)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했습니다]

 

지난주 월요일(3일)부터 연구소에서 인턴십 프로그램이 진행 중입니다. 이화영 소장님의 강의부터 시작해 다양한 기관들을 방문하는 일정들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7일)에는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으로 직접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던 이동석 선생님이 직접 인턴 학생을 데리고 현장 견학을 했습니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동석 선생님은 자신의 아픔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대가 쉽게 넘길 수 있는 역사의 아픔들을 소상히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귀한 시간 내어주신 이동석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리구요,

동시에 인턴 학생에게 정말 귀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이동석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이화영 소장(왼쪽)과 이희진 학생(오른쪽)

 

[행사인권의학연구소, 2차 정기이사회를 개최하다.

 

 4 14 () 오후 5, 인권의학연구소는 제2차 정기이사회를 온라인 줌회의로 개최하였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지난 제1차 이사회에 이어 현장 회의 대신 온라인 회의방식을 결정하였다. 이날 이사회에는 함세웅 이사장, 이화영 상임이사, 박재영 이사, 백재중 이사, 손창호 이사, 신좌섭 이사, 유츙희 이사, 주영수 이사가 참석하였고 최창남 이사는 이사장에게 위임하였다.

 

<사진1. 인권의학연구소 제2차 이사회를 온라인 줌회의로 개최하다 (4.14)>  

 이화영 상임이사가 제1차 이사회 회의록 보고와 2021년도 제1분기 사업과 재정 보고를 하였다. 사업보고 중 교육팀 운영위원회의에서 논의된 코로나-19 방역과 인권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하였다. 특히 요양병원 노인환자는 1년 이상 고립, 방치된 상태여서 가림막을 하고서라도 면회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과 인권 문제 공론화를 위해 action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사들은 요양시설에서의 보호자 면회금지나 사망환자 대우에 대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언론화할 것을 주문했다. 인권의학연구소는 제기된 사례를 기초로 인권 문제를 알리기로 하였다. 

< 사진 2.   온라인 줌회의로 개최한 인권의학연구소 교육팀 운영위원회  (4.8)>

 두 번째 안건으로 ”2021년 국제고문피해자 지원의 날과 김근태기념치유센터 개소8주년 기념행사에 대해 논의했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예년과 같은 국회에서의 현장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대신 자료집 발간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하였고, 참석 이사는 현장 행사 대신 고문방지 4을 포함한 자료집 발간제안을 이견 없이 승인하였다.

 

 기타안건으로 노인환자 인권침해 관련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이후 대응 방안을 논의하였다이화영 상임이사가 2020년 6노인환자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시작부터 2020년 12결정문 도출까지의 경과보고를 하였고쟁점에 대한 이후 행동 방안을 이사회 안건으로 제안하였다특히 노인환자 결정권 침해로 사망에 이르게 하고이에 더해 인천교구청 요청으로 환자의 사망 시간을 조작한 의료인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안을 논의하였다. 

 

  < 사진 3.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노인환자 인권침해 진정사건 결정문  (3.22)>

 

 ‘환자에게 위암사실을 고지하여 수술을 했을 때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으며, 또한 가족들이 다른 병원의 의견을 구하겠다고 했는데 주치의가 막았다면 병원 측의 과실이 분명하다.’라는 의견이 나왔다. 한편, 가족에 의해 사망 시간을 연장하는 경우가 의료현장에서 간혹 발생해 왔는데, 이 경우 법적 소송을 제기해야 할 이유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인천 교구청은 사과라도 했지만, 의도적으로 수술을 방해하고, 사망 시간을 정확히 기재하지 않았던 의사(주치의)는 반성도 없고, 사과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았다.’라면서 수술을 방해했고 임종 시간을 정확히 기재하지 않았던 의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이화영 상임이사는 법률지원팀과 의논한 후 법적 대응 등을 추후 결정하는 것으로 정리하였고 이사들은 동의하였다.

 

 마지막 안건으로 다음 이사회(3) 2021 7 14 () 6, 인권의학연구소 1층 소강당에서 개최하기로 하고 제2차 이사회를 마무리 하였다.

 

 

김근태기념치유센터은 인권의학연구소의 부설기관으로 국가폭력피해자 전문 민간치유센터입니다.

2016년 국제고문피해자재활협회(IRCT)의 회원단체로 승인되어 세계 76개국 160여 고문피해자지원단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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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동석 선생, 어학연수 중 프랑스에서 우연히 김치식당을 만나다.

 

  지난 송기복 선생의 인터뷰에 이어 이번에는 재일동포 이동석 선생의 이야기이다. 이동석 선생은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2세로 1971년 모국 유학생 제도를 통해 한국에 왔다. 2년 후, 1973년 한국외대 불어과에 입학해 연극회 활동 등 모국에서의 행복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1975 11 22일 보안사(현 국군기무사령부) 수사관들이 하숙집을 들이닥치면서 행복했던 모국에서의 유학생활은 끝이 나게 된다. 1976년 당시 대법원은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과 간첩죄를 인정해 이동석 선생에게 징역 5년형을 확정했다.

 

 그렇게 끝이 날 것 같던 이동석 선생의 모국 유학은 2018년 새롭게 시작되었다. 2015년 재심에서 무죄를 받고, 2017년 민사소송도 끝이 나자 이동석 선생은 국가가 돌려주지 못하는 청춘을 되찾기 위해 다시 한국외대 불어과에 재입학했다. 그리고 지난 2월 한국외대 불어과 졸업생이 되었다. 지금부터 한국외대의 유명인사가 된 이동석 선생의 첫 번째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다.

 

< 사진  1>  지난  3 월  30 일 ,  인권의학연구소에서 다양한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이동석 선생 .   

한국외대의 유명인사가 된 이동석 선생

Q. 선생님, 반갑습니다. 최근에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이동석) 제가 이번 2월에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했습니다. 75년도 당시 제가 구속될 때 한국외대 불어과 3학년 2학기 기말고사 기간이었거든요. 그래서 2018년도에 4학년으로 재입학하고 지난달에 졸업했습니다. 4학년부터는 등록금 전액을 내지 않아도 신청과목 수에 따라 등록금을 낼 수 있다고 해서 한국에 오래 있고 싶어서 일부러 학점을 많이 신청 안 하고 1년 더 학교를 다니고 이번에 졸업했습니다.

 

< 사진  2>  지난  2018 년  10 월 ,  한국외대 신문사에 실린 이동석 선생 사진 . ( 출처 :  한국외대 홈페이지 )

Q. 선생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럼 졸업하신 지 얼마 안 되셨네요?


(이동석) 그렇죠. 얼마 안 지났어요. 근데 이번에는 코로나 때문에 졸업식이 없었잖아요. 그래서 얼마 전에 졸업장만 받으러 학교에 갔거든요. 그런데 저를 알고 있던 학생지원센터의 여자 직원이 이번에 제가 졸업했다고 연락을 안 했는데 미리 알았나 봐요. 학교에 오시면 말해달라고 연락이 왔었어요, 그래서 제가 졸업장 받으러 가는 날 아침에 연락을 했거든요. 그랬더니 그 학생지원센터에서 일하는 그 직원이 꽃다발 준비해서 제가 졸업하는 걸 축하해준다고 사진 찍고 그랬어요. 코로나 때문에 졸업식은 없었지만은 그래도 학교 앞에서 사진도 찍고 그랬어요.

 

Q. 선생님이 한국외대에서는 이미 유명인사였네요! (웃음) 그럼 선생님, 2018년도에 다시 한국에 오셔서 다시 입학해서 학교 다니실 때, 기분은 어떠셨어요?


(이동석) 제가요, 사실은 공부하는 걸 아주 싫어하거든요. (웃음)

 

Q. 정말요? (웃음) 그럼 선생님 왜 다시 학교에 가셨어요?


(이동석) 제가 왜 재입학을 결심했냐면요, 재심으로 무죄를 받고 민사까지 다 끝나고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았잖아요. 근데 그 보상금이라는 게 저에게 어떤 의미일까 하고 생각을 했어요. 국가가 과거의 잘못된 일에 대해 무죄를 통해 사과는 했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국가는 돈으로밖에 계산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국가로서는 이제 더 이상 국가의 책임을 묻지 마. 이 사건은 없었던 걸로 하는 거다.’ 그런 거잖아요? 그러면 그 돈을 제가 받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이제 제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그 재심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을 다니면서 , 내가 다시 학교에 복학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시간이 있었을 때, 학교에 가서 문의를 해봤어요. 만약 학교에서 안된다고 하면 제가 항의하려고 했어요. 내가 이제 무죄까지 받고 아무 잘못이 없는데 왜 재입학이 안 되는 것인지 항의하려고 했는데, 아주 쉽게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들으니까 제가 안 한다고 이야기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웃음) 그냥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국외대 불어과로 재입학했어요.

  

65세에 떠난 프랑스 어학연수, 그리고 만난 김치식당.

<사진 3> 2018년 한국외대 불어과에 재입학하고 한겨레와의 인터뷰 당시 찍은 사진.  이동석 선생은 자신의 대학시절 가운데 가장 즐겁게 보냈던 순간으로 ‘연극회’ 시절을 꼽았다. (출처: 한겨레)

Q. 그런데 선생님 기사를 찾아보니까 외대에 재입학하시기 전에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다녀오셨던데, 어떻게 프랑스까지 가게 되신 거예요?


(이동석) 제가 한국외대에 처음 불어과로 입학을 했는데, 제가 영어를 아주 싫어했어요. 그렇다고 불어를 잘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때 한국 학생들은 불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고 입학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는 우리말로 서툰데 불어를 아무것도 모르면서 입학을 했어요. 그런데 몇십 년이 지나서 재입학한다고 제가 쉽게 따라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나이가 20대라면 몰라도 이제 70 가까이 되는데요. 그때 제 나이가 65세였거든요. 저는 일본에서 일을 65세까지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때 재판 후에 보상금이 나오고 퇴직을 하게 되면서 모든 게 정리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불어를 해야 되는데 안 되겠다 싶어서 한국외대에 재입학하기 전에 프랑스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Q. 그래서 파리와 니스로 6개월 정도 다녀오신 거예요?


(이동석) 그렇죠. 근데 원래 불어를 배우려고 간 거였거든요. 제가 프랑스 갈 때는 옛날에 한국에 와서 우리말을 배웠던 생각을 하고, 프랑스에 6개월 정도 있으면 일상회화 정도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하고 간 건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웃음)

 

Q. (웃음) 프랑스에는 선생님 혼자 가셨던 거예요?


(이동석) , 혼자 갔어요. 언어가 잘 안 되더라고요. 니스에 2달 정도 있다가 파리로 갔거든요. 파리에 있으면서 보니까 불어가 아예 안 되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스스로 에이 여기까지 왔는데 목적을 바꾸고 관광을 하자하고 마음을 먹었어요. (웃음) 그래서 그림을 좋아하니까 파리에서 미술관에 많이 다녔어요.

 

Q. 선생님 대단하시네요! (웃음) 65세에 어렵게 어학연수를 떠났지만, 생각보다 언어가 늘지 않아 빨리 마음을 바꾸고 즐겁게 프랑스에서 여행을 하시다 온 거네요. (웃음) 근데 선생님은 과거에 국가로부터 엄청난 아픔을 경험하셨음에도 이렇게 활기차게 일상을 살아가시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인데요. 혹시 프랑스에서 재밌었던 일화나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이동석)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뭐냐면요. 처음 니스에 2달 정도 있을 때는 일본음식이나 한국음식이 별로 먹고 싶지 않았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특히 한국음식이 먹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파리에 갔을 때, 오전에는 수업을 듣고 오후에 파리를 돌아다녔거든요. 돌아다니면서 파리에 있는 한국 음식점을 찾았어요. 저녁 6시쯤 되었는데, 골목에 한글 간판이 하나 보이더라고요. 그 간판 이름이 항아리였어요. 그래서 가서 들어가려고 했더니 7시부터 영업을 한다고 잠겨 있었어요. 근데 안에 일하던 사람이 저를 보고 나와서 저한테 한국말이 아니라 일본말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일본말로 대답을 했는데, 돌아와서 생각을 해보니까 파리에서 한국 음식점 주인이 저를 보자마자 한국말이 아니라 일본말로 하는게 이상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후에 몇 번 그 식당에 가서 자연스럽게 주인이랑 이야기를 하게 된 거예요. 특히 왜 파리에서 일본 사람이 한국 식당을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 나누게 된 거죠.

 

Q. ! 그 한국식당 주인이 한국 사람이 아니라 일본 사람이었나요?

 
(이동석) 네 일본 사람이었어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그 주인이 동베를린간첩단 사건의 이응노 화백과 관련이 있는 거예요. 그 식당이 원래 이응노 화백의 조카인 이희세 씨가 경영했던 식당이었어요. 그때 이응노 화백이 화가였던 조카 이희세 씨를 프랑스로 불러서 공부를 시켜줬던 거죠. 근데 1967년도에 동베를린간첩단사건(동백림사건)으로 이응노 화백이 윤이상 씨 같은 분들이랑 같이 구속이 됐잖아요. 그래서 이희세 씨가 파리에서 구명운동을 하신 거예요. 프랑스와 독일에서 구명운동도 많이 하고 해서 그분들이 70년대 후반에 다 다시 프랑스와 독일로 돌아오셨어요. 그렇게 돌아오신 분들이 한반도의 통일과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서 유럽에 거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무심코 갔던 그 식당이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었던 거죠. 7-80년대 유럽에서 한국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통일운동과 민주화 운동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곳이었던 거예요.

 

Q. 선생님은 어학연수로 갔다가 우연히 그런 역사가 있는 식당을 알게 되신 거네요. 근데 그 이희세 씨랑 지금 그 식당의 주인인 일본 사람과는 어떤 관계가 있었나요?


(이동석) 그 시대에 이응노 화백, 윤이상 씨, 이희세 씨 모두 일본에서 유학을 했기 때문에 일본말을 잘했던 거예요. 그래서 이희세 씨가 식당을 하는데 그 일본 사람은 프랑스에 와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있었어요. 근데 그때 그 일본 사람이 여권을 분실했던가 해서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희세 씨가 도와준 거예요. 그래서 프랑스 요리를 배우고 있지만, 한국식당에서 같이 일하겠냐고 이희세 씨가 제안한거죠. 그런 인연이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 식당은 이희세 씨가 은퇴를 하면서 지금의 주인이 물려받은 거예요.

 

 <사진 4>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두 개의 한국식당.  이동석 선생은 우연히 항아리라는 한글간판을 보고 들어갔는데, 그 식당은 항아리 식당이 아니라 김치식당이었다.  김치식당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Q. 정말 신기한 인연이네요. 그럼 아직까지 그 식당은 한글 이름 항아리 예요?


(이동석) 이것도 재미있는데요. 나중에 알아보니까 항아리라는 식당은 옆집이예요. (웃음) 한국식당이 두 개가 있는데 가운데 항아리라는 간판이 붙어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저는 위에 붙어 있는 간판만 보고 거기가 항아리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몇 번 가보니까 그 식당은 항아리가 아니라 김치식당이었던 거예요. (웃음) 김치식당!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운명인가 싶더라고요. 걷다가 우연히 만난 한국식당의 간판을 잘못 알고 다른 식당에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까 그 식당이 1967년 동베를린간첩단사건의 이응노 화백의 조카가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위해 유럽의 거점으로 만들었던 식당이었다는 게. 정말 신기해요.

  

 재일동포 2세로 고등학생이 되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다 1971년 모국 유학생 제도를 통해 스스로 한국행을 선택했던 이동석 선생. 그리고 모국을 찾은 재일동포에게 한국이라는 모국은 그를 간첩으로 만들어 그의 청춘을 빼앗아 갔다. 그렇게 흘러가버린 40년의 세월. 그러나 이동석 선생은 국가가 되돌려주지 못하는 자신의 청춘을 스스로 되찾기 위해 한국외대에 재입학하고 지난 2월 졸업했다. 이 이야기도 한 편의 영화 같지만, 어학연수를 떠난 65세의 이동석 선생은 그곳에서 197-80년대 유럽에서 한국의 통일과 민주화를 위한 거점 역할을 했던 김치식당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동백림사건의 이응노 화백, 그 조카 이희세 작가, 그리고 그 식당을 이어받은 일본인 주인과의 인연까지... 또 한 편의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 시간에는 이동석 선생의 두 번째 인터뷰를 전하고자 한다.

 

 (인터뷰 진행: 박민중)

[의료] 국가폭력 피해생존자들, 녹색병원에서 치매 검진을 시작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2021년 국가폭력 생존자 집단치유 모임은 줌회의를 통해 온라인으로 진행되어왔다. 지난 2월에 가진 네 번째 집단치유 모임에서는 생존자들의 의견을 모아 손창호 정신과 전문의 (인권의학연구소 이사)를 줌회의로 초청하여, “수면장애‘’ 에 대해 건강 정보를 들었다. 손창호 이사는 수면장애 증세에 대처하는 일상적 팁으로부터 약물 사용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알려주었고, 생존자들은 질의응답을 통해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집단치유 모임을 마치면서 인권의학연구소는 희망하는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향후 정신건겅검진 차원에서 녹색병원에서 치매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진행할 것을 공지하였다.

 

< 사진  1.  네 번째 온라인 집단치유모임에 손창호 정신과 전문의를 초청하다  (2.24) >

 

 마침내, 4 6 () 오전 10, 국가폭력 피해생존자 2명의 검진을 시작으로 생존자와 가족 16명은 향후 2개월 동안 녹색병원에서 치매 검진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치매 검진의 시작은 녹색병원 1층 사회복지과에서 시작한다. 양주희 사회복지사의 검진 일정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송유호 신경과 전문의의 문진 등 진찰을 받게 된다

 

   < 사진 2 . 녹색병원 치매검진은 사회복지사의 오리엔테이션으로 시작한다 (4.6)  >

 신경과 진찰을 마치면 노령을 감안하여 심전도와 흉부방사선 등 기초 검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뇌CT 촬영과 치매기능검사(K-MMSE)를 받는다. 전 과정은 약 1시간 반 정도 소요되었다. 예정된 순서대로 검사를 하고 신경과 진료실 앞에서 결과를 기다리면 일단 치매 검사는 마치게 된다. 최종적으로 신경과 진료실에서 2차 치매기능검사(CDR)와 전체 결과를 종합하여 판정을 받는다.

 

< 사진 3 ,4 . 녹색병원 산경과, 신경외과 진료실에서 (4.6)  >  

 

< 사진 5 . 녹색병원 산경과 진료실에서 (4.13)  >  

 녹색병원에서의 치매 검진 모든 과정에 인권의학연구소의 박민중 사업운영팀장이 동행하며 일일이 사소한 부분까지도 챙긴다. 검진 과정 중의 생존자들의 얼굴에서 병원에 온 환자로서 보일 수 있는 다소의 불안이나 걱정의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음 검사를 기다리는 중에 서로 작은 목소리로 담소하며 웃음소리가 마스크 밖으로 새어나오기도 하였다.

 

  < 사진 6 .  순서에 따라 치매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4.13)  > 

 송현석 신경과 전문의로부터 치매 없음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오는 생존자들의 표정은 더욱 밝아졌다. 오랫동안 치매에 대한 걱정으로 수면까지 방해받을 정도로 걱정이 많았으나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검진 결과가 좋아 정말 홀가분하다고 하였다, 내친김에 병원 앞에서 기념촬영까지 한다. 늘 오늘처럼 밝은 표정을 간직하시기를 바라며 바라보는 이의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 사진 7,8 . 검진을 모두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병원 앞에서 기념촬영하다 (4.13/4.20)  >  

 인권의학연구소는 2015년부터 국가폭력 피해생존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2년마다 신체적 건강검진을 해왔다. 건강검진에 필요한 비용은 녹색병원의 이말년기금과 인권의학연구소의 울릉도1974기금으로 충당된다. 인권의학연구소의 울릉도1974기금 은 울릉도사건 생존자들이 재심무죄 후 기부하신 후원금을 시작으로 조성된 기금이다. 이후 국가폭력 생존자들이 재심무죄 보상금의 일부를 연구소에 후원하는 경우, 인권의학연구소는 생존자들의 후원금을 이 기금에 적립하여 지금까지 여타 국가폭력 생존자들과 가족들에 대한 생활지원과 의료지원을 계속해 왔다.

[집단치유] 국가폭력 피해생존자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지난 2월부터 국가폭력 피해생존자 집단치유 모임을 줌회의를 통해 온라인으로 진행해 왔다. 세 번째 모임 (2 15, 1)에서 이화영 소장의 월다잉에 대한 슬라이드 프리젠테이션이 있었다. 강의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하 사전의향서)‘에 대한 내용을 공유했으며, 사전의향서 작성을 어디에서 어떻게 하는가를 두고 4~6월 경에 ()호스피스 코리아 실무자의 연구소 방문을 통해 함께 설명을 듣고 작성하는 기회를 갖기로 하였다

 

< 사진  - 지난 2월,  세 번째 온라인 집단치유모임 슬라이드 자료 (2.15)   >

 사전의향서 작성이 법제화하게 된 것은 2016 1월에 연명의료결정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2018 2월부터 본격 시행되었다. 이 법에 의해 임종을 앞둔 환자가 원치 않는 연명치료를 거부할 길이 열린 것이다. 사전의향서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회복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을 때 인공호흡기 장착이나 심폐소생술 등 치료 효과없이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서류다.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고 신분증을 지참하여 보건복지부 지정을 받은 사전의향서 등록기관을 방문하면 작성할 수 있다.

 

 사전의향서 작성을 위하여 먼저 상담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 연명의료정보처리시스템에 등록되어야 법적으로 효력을 가질 수 있다. 작성 후 15일이 지나면 연명의료정보포털(http://www.LST.go.kr)을 통해 본인의 사전의향서를 조회할 수도 있다. 또한 사전의향서 작성 후 등록증 발급을 원하면 등록된 주소로 등록증을 우편발송해 준다고 한다. 추후 언제라도 작성자가 원하면 등록기관을 방문하여 그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 사진  - 사전의향서의 내용과 신청 및 해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작성 여부를 결정한다 (4.7)  >

 마침내, 4 7 () 오후 2, 국가폭력 피해생존자와 가족 13명 (남7명, 여6명)은 사전의향서 작성을 위해 오랜만에 인권의학연구소 소강당에 모였다. 보건복지부로부터 사전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받은 ()호스피스 코리아 실무진은 이날 모인 국가폭력 피해생존자들과 가족에게 1:1 설명을 상세하게 하였고, 이를 들은 후 사전의향서 작성에 서명을 하였다.

< 사진  - 상담사로부터 상세한 설명을 듣고 사전의향서를 작성하고 있다.(4.7)  >

 이번 연구소를 방문한 ()호스피스 코리아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사전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된 비영리민간단

체이다. 경기도 성남시에 소재하고 있으며 인권의학연구소의 요청으로 고연령층인 국가폭력 피해생존자와 가족을 위해 특별히 방문하여 사전의향서 작성과 등록을 지원하였다.

 

 < 사진 -  사전의향서 작성을 마치고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앞에서 기념촬영 (4.7)    >

[연합뉴스] 인권위 "故김병상 신부에 위암 판정 미고지는 인권침해"

(보도일자: 2021.03.23)

 

지난해 선종한 '민주화 운동의 대부' 고(故) 김병상 필립보 신부가 위암 판정을 받고도 이를 고지받지 못하고 수술 가능 여부에 관한 설명도 듣지 못한 것은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이 나왔습니다.

 

 

해당기사 보기: https://www.yna.co.kr/view/AKR20210322148200004?input=1195m

[오마이뉴스] 내일 이 재판, 눈 크게 뜨고 지켜보겠다

(보도일자: 2021.01.21)

 

지난 1월 22일(금) 오후 3시 30분, (사)인권의학연구소가 행정안전부장관을 상대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를 요구한 재판(사건번호: 2020 구합 60734)이 서울행정법원 지하 2층 B220호 법정에서 열렸습니다.


이 재판이 열리게 된 경위는 지난 2018년 7월 10일 제30차 국무회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국무회의에서 1980년대 간첩조작사건을 비롯해 부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관련자들에게 수여했던 정부 표창을 모두 취소하는 내용을 담은 '부적절한 서훈 취소안'을 심의·의결하였다. 이에 해당하는 사례는 모두 53명과 2개 단체에 수여된 56점의 훈포장과 대통령·국무총리 표창입니다.

 

그러나 확인 결과, 행정안전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고문 피해자의 이름과 사건은 공개하면서 고문 가해자의 이름은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해당기사 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13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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