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손유형 선생의 무죄를 축하드립니다

  -39년만에 밝혀진 진실-

 

 무죄를 선고한다는 판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청석에 앉아있던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39년 만에 밝혀진 진실이 그동안 가슴속 깊은 곳에 억누르던 감정을 나오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늦었지만 하늘에 계신 재일동포  손유형 선생의 무죄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 10 19() 오후 2 10, 서울 고등법원 서관 403호에서 진행된  손유형 선생의 선고재판에서 재판부(서울고법 형사 12-1) 1981년의 원심을 파기하고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재판은 지난 2017  손유형 선생의 유족이 재심을 신청하고, 4년이 흘러 2021 1월 재판부가 재심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개시되었다. 2021 3 23일을 시작으로 총 6번의 재판을 거쳐 이번 무죄에 이르게 되었다.

 

 

  손유형 선생 재심 재판 일정

- 03 23 : 1차 공판

- 04 20 : 2차 공판

- 05 25 : 3차 공판

- 07 13: 4차 공판 (공범 손종규, 손유승, 손유배 무죄 판결)

- 09 14: 결심 (변호인 측 증인 진술)

- 10 19 : 선고 ( 손유형 무죄 판결)

<사진-1> 지난 10월 19일, 무죄 판결 이후 재판에 참석했던 유족들과 인권의학연구소 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 12-1부의 최봉희 재판장은 명쾌한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 따르면,  손유형 선생은 1981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 의해 영장 없이 불법 구금되었으며, 이후 46일 동안 고문과 회유 등 불법적인 수사를 받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특히, 이 불법적인 수사과정에서 국가기관이 피고인들에게 받은 자백은 임의성이 없는 진술로 인정했다.

 

 이에 원심에서 피고에게 사형을 선고한 증거는 유일하게 피고인들의 자백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재심 과정을 통해 살펴본 바에 따르면 재판부는 당시 피고인들의 자백이 임의성이 없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지난 9 14일 결심재판에서 징역 20년을 구형한 검찰은 자신들의 구형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으므로 재판부는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사진-2> 이번 재판 관련기사로 재판과정에서의 핵심 쟁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지적한 기사다.

 이번 재판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러한 판결을 반길만한 결과다. 이번 재판에서 법리적 다툼의 핵심 쟁점은 간첩죄 또는 국가보안법이 아니었다. 핵심은 이 재판이 재심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인이 된 피고인이 군부독재 하의 당시 원심 법정에서 했던 진술이 법적 효력이 있는지를 다투고 있는 부분이다.(이와 관련한 상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62419)

 

 결국 피고가 국가기관(안기부와 검찰)에서의 진술은 고문과 회유 등으로 거짓으로 할 수 있지만, 왜 법정에서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는지를 두고 계속 다투었다. 그러나 당시 피고를 고문 수사했던 수사관들이 방청석에 앉아 감시하고 있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같은 법리다툼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또한, 1981년 법정에서 거짓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던 피고가 이미 고인이 된 상황에서 진실을 말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번 재판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사진-3> 지난 9월 14일, 3시간이 넘는 결심 재판을 마치고 다같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 남자가 故 손유형 선생의 차남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재판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번 무죄 판결은  손유형 선생과 같이 재일동포이면서 이미 고인이 된 피해자들의 향후 재심 재판에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번 재판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판결문을 읽었던 재판장의 태도였다. 이번 재심 재판 내내 아주 꼼꼼하게 재판에 임했던 최봉희 재판장은 판결문을 읽으면서 감정이 북받쳐 중간중간 감정을 추슬렀다. 그리고 마지막 자신의 무죄 선고를 들은 유족을 향해 다시 한번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품격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이러한 판사들이 사법부에 많아지길 기대한다.

[김장호 선생님, 아프지 마세요]

 

지난 주 토요일, 김장호 선생님이 퇴원하셨습니다.

 

얼마 전부터 조금 걷고 나면 가슴 쪽에 통증을 호소하셔서 김장호 선생님을 모시고 녹색병원과 아주대병원을 다녀왔습니다. 혈관 쪽에 문제가 생겨 지난 금요일 아주대병원에서 긴급히 시술을 하고 토요일 퇴원하셨습니다.

 

급한 불을 다행히 잡았지만, 앞으로 선생님의 건강을 더 유심히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을 모셔다 드리고 오는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 국가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하고 오랜 시간 고생만 하셨던 선생님들이

이제는 나이가 들고 병원에 갈 일이 점점 많아지는데..

 

특히 혼자 계시는 선생님들이 갑자기 아프시면 누가, 어떻게 도와드려야 하는건지..

나아가 선생님들의 일상이 행복하시기만 해도 짧은 시간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 생각으로 마음과 머리가 무거워지는 주말이었습니다.

 

김장호 선생님, 아프지 마세요.

 

p.s. 아주대병원 유투브 채널을 홍보하고 있네요^^;;

[행정소송] 고문 피해자들이 행정재판에 대거 참석하다

 

 지난 금요일(10/8), 서울 행정법원 B220호에서 훈포상이 취소된 고문 가해자 정보공개 청구 행정소송의 결심공판이 열렸다. 인권의학연구소가 행정안전부를 대상으로 지난 2018년부터 시작된 이 기나긴 법정 공방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특히, 이날 재판에는 인권의학연구소 함세웅 이사장을 비롯해 고문 피해자와 그 가족 등 8명이 함께 법정에 참석했다. 

<사진-1> 행정재판에 참석한 고문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함께 행정법원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재판에서 피고 측은 재판부에 제출할 자료가 방대하다며 USB 제출로 자료제출을 대체했다. 이에 재판은 재판부가 피고 측이 제출한 자료 목록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정회됐다. 자료 확인 후, 재판부는 원고(인권의학연구소) 측과 피고(행정안전부) 측에 각각 마무리 발언 기회를 주었다.

 

 먼저, 원고 측 변호를 담당하고 있는 김성주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과거 간첩조작 공무원들이 누구이며, 이들이 사건을 어떻게 조작했는지 등에 관한 정보들은 피고 측이 주장하고 있는 정보공개법과 국정원법에 해당하지 않는 사안이며, “피고 측은 지난 2018년 행정안전부에 의해 서훈이 취소된 고문 가해자들의 정보와 국가안보가 어떤 실질적인 상관관계가 있는지 구체적인 진술을 제공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덧붙여, 김성주 변호인은 고문 가해자의 정보보다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국민의 알 권리가 더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사진-2> 오랜 시간, 고문 가해자는 고문 피해자 위에서 군림했다. 이제는 고문 피해자의 인권의 고문 가해자의 이름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재판부가 판결을 통해 알려주어야 한다.

 반면 피고인 행정안전부를 대표해 재판에 참석하고 있는 조*훈 사무관에 따르면, “원고 측이 제기한 (고문 가해자들의) 정보는 대부분 국가 안보를 담당하는 국가기관들의 정보라고 주장했다. 이에 조 사무관은 행정안전부는 지난 2018년 고문 가해자 서훈 취소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서 국가 안전보장을 담당하는 기관들과 심도 있는 회의를 통해 내린 결론임을 재차 강조했다. 특히, 행정안전부의 입장은 원고 측이 요구하는 고문 가해자의 이름과 직책 등은 과거 판례를 비추어 볼 때, 국정원의 직원 이름을 공개할 수 없다라고 다시 한번 밝혔다.

 

 통상적인 행정재판이라면 원고와 피고의 마무리 발언으로 재판이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재판부는 특별한 모습을 보였다. 재판부는 이날 방청석에 있는 분들이 누구인지 확인했으며, 함세웅 신부에게 이번 행정소송을 제기한 인권의학연구소를 대표해 발언할 기회를 주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이었다. 재판에 참여한 모두가 다소 어리둥절한 상황이었지만, 함세웅 이사장은 마이크를 들고 이번 사건의 배경을 피해자 관점에서 재판부에게 소상히 전했다.

 

 함세웅 이사장은 오랫동안 고문 피해자와 그 가족들 만나면서 그들의 아픔을 알게 되었고, 우리 사회가 정작 고문 피해자의 이름은 공개하면서 고문 가해자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는 현실을 보며 받아들일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 특히, 함 이사장은 국가가 고문 가해자의 정보를 공권력을 활용해 보호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고문 피해자를 향한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라며 재판부를 향해 국민의 자유와 권익, 인권을 고려해 올바른 판결을 간곡히 요청했다.

 <사진-3> 행정재판이 끝나고 행정재판에 참여한 고문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김성주 변호인에게 여러 사안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다.

 함세웅 이사장의 발언으로 마무리된 재판은 다음 달 5일 오후 2시 선고가 예정되었다. 안타깝게도 지난 2018년부터 약 3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이 재판에 많은 언론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이 판결이 고문 피해자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상당히 크다. 국가기관의 사과가 이분들에게는 하나의 치유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날 재판에 참여한 8명의 고문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피고 측인 행정안전부 직원들과 달리 쉽사리 법원을 떠나지 못했다. 재판이 끝나고도 담당 변호사와 오랜 시간 재판에 대해 상세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그리고 행정법원 앞에서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상황에서도 큰 소리로 다 함께 외쳤다.

 

행정안전부와 국정원은 훈포상을 취소한 고문 가해자 실명을 속히 공개하라!”

[특별한 교육] 영어 수업에 이어 일본어 수업까지!!

 

"곤니치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요즘 연구소에서 영어뿐만 아니라 일본어 수업도 한창입니다!

여느 일본어 학원보다도 열의가 뜨겁고 특별한 수업입니다.

 이유는 강사와 수강생 모두 (2차 백신 접종까지 완료하신 ) 국가폭력으로 피해를 입으신 선생님들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어 강사 선생님은 젊은 시절 일본에서 오랫동안 일하시면서 혼자서 일본어를 마스터하신 김장호 선생님입니다. 그리고 김장호 선생님은 한국에서 일본어 학원을 운영하신 경험도 있으셔서 우리 수강생들(국가폭력 피해 생존자)을 위한 교안도 직접  만들어 오십니다. 일주일에  번씩 진행되는  수업에 열정적으로 해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선생님들도 히라가나를 써 내려가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일본어 수업이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1970-80년대 간첩조작 사건으로 옥고를 치러야 했던 재일동포 분들을 위한 일본 구원회 모임이 있습니다. 그 구원회 분들을 당시 한국말을 전혀 못해도 꼭 필요한 한국말을 배워서 김포공항에서 서대문 형무소까지 어렵게 어렵게 찾아오셨던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4-50년이 지난 재심에도 항상 오셨습니다. 한국 법정에서의 내용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그 자리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우리 피해자 선생님들은 그분들과 아주 짧게라도 일본말로 인사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일본어 수업을 배우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서로 왕래할  없지만,  기간 동안 우리 선생님들이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일본어 수업을 하셔서  다음에 일본 재일동포 분들 그리고 구원회 분들을 만나셔서 짧게라도 일본어로 대화할  있다면 너무 감동적이지 않을까요?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장호 선생님, 

그리고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선생님들 모두 응원합니다!^^ 

[법률] 고문가해자 서훈취소 정보공개 청구 관련 재판에서

 

 지난 13(), 서울 행정법원 B 220호에서 행정재판이 있었다. 이 재판에서 피고 행정안전부는 대한민국의 안전과 재난에 관한 정책의 수립·총괄·조정하는 중앙행정기관의 참혹한 수준을 드러내고 말았다. 행정안전부의 법리적 수준은 궤변에 가까웠고,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의 수준은 무능 그 자체였다.

 

<사진-1> 지난 2018년 7월,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보도자료.

 이 재판은 2018년 행정안전부가 스스로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비롯된다. 2018년 행정안전부는 “80년대 간첩조작사건 관련자 등 서훈 대대적 취소를 발표한다. 이 보도자료에 따르면, 80년대 대한민국 정부는 범죄 혐의가 없는 일반 시민을 불법 구금하고 고문해 사형까지 조작해 낸 국가 공무원에게 대통령 표창 17, 국무총리 표창 14점을 비롯해 총 56개의 서훈을 수여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힘없는 시민을 하루아침에 간첩으로 만들었던 고문 가해자들은 특진 등 수많은 혜택을 누렸는데, 행정안전부는 이를 시인한 셈이다.

 

 그러나 이를 발표하면서 행정안전부는 고문 피해자들의 이름은 버젓이 공개했지만 정작 서훈이 취소된 고문 가해자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는 지난 2019 3월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2019 7월 승소했다. 이 같은 재판 결과에도 불구하고 행정안전부는 고문 가해자의 이름이 국가안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공개를 거부하자 인권의학연구소는 지난 10 2차 행정소송을 제기해 진행 중인 상황이다.

 

고문가해자 이름을 국가안보로 인식하는 행정안전부

 

 행정안전부가 지속적으로 고문 가해자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고(인권의학연구소) 측 변호를 담당하고 있는 법무법인 덕수의 김성주 변호사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하나는 현재 행정안전부는 유관 정부부처인 국정원이 고문 가해자의 이름 공개를 반대하고 있는 점, 다른 하나는 정보공개법에 근거하여 사생활에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고문 가해자의 이름과 서훈 취소 사유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피고 측 행정안전부를 대표해 이날 재판에 참석한 조철훈 담당 사무관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지난 2018년 서훈을 취소하는 과정에서 관련 부처인 경찰청, 국정원, 국방부, 보건복지부와 지속적인 논의를 거쳤으나 이 부처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고문 가해자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경찰청과 국정원의 주장은 당시 대공수사를 담당했던 국가기관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은 국가기밀인 동시에 국가안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또한, 재판 후 인터뷰에서 조 사무관은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을 피해자의 권익보호와 국가안보가 부딪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타 부처의 상황과 논리가 존재하는 한 행정안전부도 어려운 형국이라고 토로했다. 결국, 행정안전부는 7-80년대 국가기관의 고문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고문피해자의 권익보호보다는 고문가해자의 사생활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과 법리적 주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고문피해자들의 경우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재심을 통해 모두 무죄를 받은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재판 준비조차 부실했던 행정안전부

 

 이 같은 인식, 법리적 수준과 함께 이날 행정안전부는 2021년도 기준 57 4,451억 원의 예산규모를 가진 중앙행정기관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을 재판 과정에서 보여주었다. 이날 재판은 원래 지난 7 2일 선고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피고 측인 행정안전부가 변론재개를 요청하였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선고가 연기된 것이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재판부에 추가 자료를 제출하였고, 이 자료를 기반으로 재판부는 이날 재판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날 재판에서 재판부는 제출한 자료의 내용에 대해 행정안전부에 질의하는 것이 아니라 제출한 자료가 잘못되었음을 알려주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행정안전부가 제출한 자료 목록 중에서 자료 제목과 실제 제출된 자료의 이름이 다르거나 아예 누락된 부분들이 있어 재판부는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행정안전부는 원고 측이 요청한 세부 품목에 대해서는 제출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재판부가 계속해서 자료에 대해 질의하자 행정안전부 측은 오늘 재판에 제출하기 위해 USB에 담아왔다고 답변했다.

 

방청석에 앉아 하늘만 쳐다본 고문피해자들

<사진-2> 지난 13일. 서울 행정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참여한 피해자 선생들과 이화영 소장, 김성주 변호사.

 결국 재판부는 피고에게 다음 기일 전까지 재차 자료 목록을 확인해서 정확하게 제출할 것을 요청하였고, 재판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이날 재판 방청석에는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의 고문피해자들이 있었다. 선고를 기대하고 왔던 고문피해자들은 행정안전부의 말을 들으며 하늘만 쳐다보았다. 재판 후 만난 한 피해자는 너무 괴로웠다고 토로하였다. 정부가 바뀌고,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나를 고문했던 가해자의 이름 하나도 밝히지 못하는 행정안전부를 보면서 또다시 나는 힘이 없는 민초라는 점만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는 그냥 이것이 내 팔자인가 보다 하고 스스로 위로하기로 다짐했다고 밝혔다.

 

 과연 고문가해자의 사생활보다 고문피해자의 인권이 우선시 되는 판결이 나올지 지켜보아야 한다. 다음 선고는 10 8일 오후 2 30분 예정이다.

 

 

[36년 걸린 '무죄' 확정... 드러난 검찰의 시대착오]

 

 지난 7월 29일 목요일, 대법원에서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사형수였던 김성만, 양동화 선생에
대한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2016년 재심을 신청해 지방법원, 고등법원, 그리고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약 5년에 걸친 재심과정이 끝나는 날이었습니다. 

 

 이 기사는 단순히 이날 있었던 대법원의 무죄 판결 내용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지난 5년에 걸친 간첩조작
재심과정에서 발견된 국가기관의 시대착오적 접근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2심 재판 과정에서 검찰 측이 보여준 행태는

과연 2021년의 검찰과 1985년 당시 검찰은 시대를 인식하는 관점이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했습니다.

 

▲ 무죄 판결 후, 대법원 앞에서 다같이 찍은 사진  지난 7월 29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후 재판에 참석한 분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정금택, 김성만, 양동화, 이동석씨,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64458 

 

36년 걸린 '무죄' 확정... 드러난 검찰의 시대착오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대법원 무죄확정... 그리고 검찰이 보여준 또다른 가해

www.ohmynews.com

 

상고를 기각합니다

 

 지난 7 29일 목요일 10 25분경, 대법원 2호 법정에서 4명의 대법관 중 한 사람이 무미건조하게 선고합니다. ‘상고를 기각합니다.’ 이 여덟 글자를 들은 두 분의 고문피해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 재판에 참여했던 고문피해자와 인권의학연구소 직원들은 조용히 법정을 나와 로비에서 서로 웃으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재판에 함께 참석했던 피해자 선생의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먼저 그 자리를 떠났다. 축하의 말을 건넬 틈도 없이 대법원 무죄라는 기쁜 소식을 듣자마자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나는 그분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간의 서러움과 억울함, 어려움이 얼마나 컸을지 조심스럽게 예상하게 되었다. 그렇게 7 29일 오전 10 25분경, 구미유학생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양동화, 김성만 선생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사진-1) 지난 7월 29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후 재판에 참석한 분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정금택 선생, 김성만 선생, 양동화 선생, 이동석 선생, 이화영 소장이다.

 1985 9 9, 전두환 독재정부는 또 하나의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발표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고자 했다. 당시는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규명과 학생중심의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고, 1985 2 12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대중과 김영삼의 신한민주당이 득표율 29%를 넘기며 총 의석수 67석을 차지했다. 당시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이 148석을 차지했지만 득표율은 35%에 불과했기 때문에 신한민주당의 선전은 전두환 독재정부에 큰 충격을 안겨줄만한 결과였다. 특히, 김대중과 김영삼의 존재는 전두환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사진 -2) 1985년 9월 9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북괴의 지령을 받고 학원가에 침투해 반미 투쟁을선동한 구미 유학생 간첩단 22명을 검거해 이 중 19명을 구속했다”라고 발표했다 . 당시 9월 9일자 경향신문 보도사진 . (출처: 한겨레)

 이러한 정치적 역학 속에서 전두환의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외부의 적을 상정해 내부의 단결을 도모하려는 전통적인 정치적 술수를 쓰고자 했다. 그게 바로 1985 9 9일 발표된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이다. 당시 안기부의 발표에 따르면, 양동화, 김성만, 황대권 등이 미국 유학 중 북한 공작원에 포섭된 뒤 국내에 잠입해 학생들의 반정부 폭력시위를 주도하면서 간첩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건에 연루된 양동화, 김성만, 황대권 등은 길게는 65일 동안 남산 안기부 지하실에서 불법 구금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허위자백을 해야 했다. 그 결과 양동화와 김성만은 사형 선고를, 그리고 황대권과 강용주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등 15명의 사람들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1986 12월 대법원에서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양동화와 김성만에게 사형을 확정하였다. 이후, 민가협과 국제 앰네스티는 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구명 활동을 펼쳤고, 양동화, 김성만, 황대권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 8, 수감된 지 13년 만에 광복절 사면으로 석방되었다.

 

 석방되고 약 20년이 지난 2017 9월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들은 용기를 내어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당시 안기부의 강제연행과 구금이 불법체포와 불법감금에 해당한다고 인정해 2018 5월 재심을 개시했다. 구미유학생의 재심 과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년의 재판 과정이 흘러 2020 2 14일 재심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손동화 재판장은 "이 사건 기록을 살피면서 여러분의 고초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매우 안타까웠다. 이번 무죄판결로 절망과 좌절이 작은 희망과 소망이 바뀌기를 바란다."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검사는 양동화, 김성만 선생에 대해서만 항소했다. 항소의 이유는 1985년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 이 두 사람의 당시 행동은 국가의 존립과 안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당시 불법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민주적 정통성이 없는 독재정부가 자신의 정치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국가기관(안기부)을 동원해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날조하여 국민의 삶을 망가트린 것이 이 사건의 본질임에도 불구하고 검사는 오히려 시대적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항소했다.

 

(사진-3) 2020년 2월 14일, 서울중앙지법 재심 1심에서 무죄선고 후 단체로 찍은 사진.

 검사의 항소로 2심 재판이 진행되었지만, 다행히 서울고등법원에서도 1심 결론을 유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2020 8 21(), 서울고법 형사 6부 오석준 재판장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 가운데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들을 제외한 나머지만으로 이들(김성만, 양동화)의 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이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1심 결론을 유지한다라고 밝혔다. 다시 한번, 재판부는 1985년 당시의 재판은 물론 2020년 검사의 판단 또한 잘못되었음을 결론지은 것이다. 그러나 검사는 이 결과에 대해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상고를 했고, 결국 양동화, 김성만 선생은 대법원까지 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 7 29일 대법원의 상고를 기각합니다라는 이 여덟 글자를 듣게 된 것이다. 참 길고, 그리고 어려운 과정이었다.

  

 이번 재심 재판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재심 과정에서 검찰은 미국에 거주하던 관련자를 포함하여 총 21명의 증인을 신청했다. 검찰은 이 증인들을 재판정에 앉혀 당시 고문에 의해 날조된 안기부의 진술조서 내용을 재차 추궁당했다. 이는 재심을 청구한 4명과 21명의 증인에게 35년 전 잊고 싶은 고통과 극심한 트라우마를 안겨주는 행위다. 명백한 국가기관의 2차피해다. 이 같은 2차피해는 고문의 경험을 가진 피해자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안겨주기 때문에 재심 과정에서 인권의학연구소는 변호인에게 재판부 기피 신청을 요청할 것을 주장했고, 변호인이 2018 11월 재판부 기피신청을 하면서 재판이 약 1년 가까이 중단되기도 했다.

 

 검찰은 과거 선배들의 잘못으로 시작된 재심 재판의 의미를 망각한 채, 다시 한번 고문피해자들을 피고인으로 대한다. 1985년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날조된 조서를 가지고 고문피해자들을 죄인 취급하는 것은 참기 어려운 장면이다. 특히, 이들은 이미 억울한 형을 다 살고 나왔는데도 말이다. 구미유학생의 고문피해자인 양동화, 김성만 선생은 2017년 재심을 청구하고 지난 2021 7월 대법원 판결을 받았으니, 이들에게 약 4년의 시간은 또 다른 감옥과도 같은 일상이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보상과 치유는 누가 할 것인가. 재심 재판 과정에서 일어나는 국가기관에 의한 2차피해 또한 면밀하게 검토해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인권의학연구소는 지속적으로 고문피해자의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8글자를 듣기 위해 ‘36 동안 온갖 어려움을 견뎌야 했던 양동화, 김성만 선생에게 위로와 축하의 말을 전합니다.

 [법률] 최근 재일동포 조작간첩사건 재심의 심각한 문제점 

 

 군부독재 시절, 수많은 조작간첩 사건들이 날조되었다. 당시 대서특필되었던 간첩단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을 조작했던 국가 공무원들은 특진과 함께 대통령 표창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그렇게 4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조금씩 당시 수사와 재판이 얼마나 엉터리이었는지 재심을 하나씩 통해 밝혀지고 있다. 그 시절 자행된 수많은 조작 사건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를 지난 2010 7 15일 재일동포 이종수 간첩사건의 재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이강원 부장판사가 판결문에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사건은 재일동포 유학생을 간첩으로 조작하기 위하여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보안사(국군기무사 전신)
안기부
(국정원 전신) 명의로 피고인을 불법 연행하여 39일간 강제구금한 상태에서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내고, 
그로 인하여 피고인이 5 8개월간 아까운 청춘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된 사건이다. 재외국민을 보호하고 내국인과
차별대우를 해서는 안 될 책무를 가진 국가가 반정부세력을 억누르기 위한 
정권안보 차원에서,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피고인이 한국어를 잘못하여 충분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을 악용하여
, 재일동포라는 특수성을 무시하고
오히려 
공작정치의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이 판결문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국가기관들은 모국을 찾은 재일동포들의 약점(특수성)을 파고들어 국민을 보호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를 저버린 채 재외국민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공작정치의 희생양으로 활용했다. 또한 그 행위가 정당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불법 연행과 강제구금, 그리고 모진 고문으로 조작된 증거들을 가지고 그들의 손아귀에 있는 사법부에서 하나의 통과의례로 치른 것이 재판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불법이었다는 점을 전제로 40여 년이 지난 지금 재심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재일동포 故 김병주 선생과 故 손유형 선생의 재심 과정에서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목도되고 있다. 1980년대 모국을 찾은 두 명의 재일동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간첩누명이었다. 불법구금, 강제구금, 그리고 모진 고문의 결과 각각 14 6개월과 17년을 모국의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이후 이들은 출소하고 모국이 아닌 일본으로 돌아가 고문 후유증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 정신적 및 경제적 고통을 함께 보고 겪어야 했던 유가족이 재심을 청구해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이다.

 

 <사진-1> 5월 13일 고 김병주 선생 재심 후, 조영선 변호사와 생존자 모임 회원들이 질의 응답하다.

  故 김병주 선생의 경우, 지난 1 29일 서울 중앙지방법원 재판부는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40건에 대해서는 무죄를 내렸지만, 특수탈출 혐의에 대해서 유죄를 선고하였다. 이에 변호인은 즉각 항소를 제기하여 5 1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재판이 개시되었다.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던 재판은 지난 7 6일 검찰 측에서 2명의 증인을 추가로 요청하였고, 이를 재판부가 받아들이면서 재판이 지연된 상태다.

 

<사진-2> 7월 6일, 고 김병주 선생 재판에서 검찰의 증인신청이 재판부에서 받아들여지고 향후 재판에 대해 변호사와 생존자 모임 회원들이 대화를 나누다.  

   손유형 선생의 경우 지난 5 25일 서울 고등법원에서 재심을 신청한 유족들이 모두 최후진술을 마쳤고, 당시 재판부는 재판의 재심 개시 결정이 늦어진 점에 대해 사과하며 7 13일 선고를 예정했다. 그러나 지난 7 13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손유형 선생에게 20년을 구형했으며, 재판부는 이 재판의 주범인 손유형 선생에 대한 선고는 8 31일로 연기하고, 종범인 손종규, 손유승, 손유배 선생에게만 무죄를 선고했다.  손유형 선생의 선고는 오는 8 31일 오후 2 20분에 있을 예정이다. 일본에 있는 유가족들은 또다시 피가 마르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사진-3> 5월 25일 고 손유형 선생 재판 후 김중민 변호사에게 유가족, 생존자 모임 회원들이 설명을 듣다.   
<사진-4> 7월 13일 고 손유형 선생 재판 후 김중민 변호사와 유가족, 생존자모임 회원들이 선고연기에 대한 우려를 나누다.

 아이러니하게 과거 간첩사건이었던 두 재판에서의 핵심 쟁점은 국가보안법이나 간첩죄가 아니었다. 핵심은 이 재판이 재심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인이 된 피고인이 군부독재 하의 당시 원심 법정에서 했던 진술이 법적 효력이 있는지를 다투고 있는 부분이다. , 당시 안기부, 보안사, 치안본부 등과 같은 국가기관에 의해 불법 구금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조작된 증거를 가지고 피고인들이 법정에 나와 자신들의 범행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 2021년 재심 재판에서도 법정 증거로서 효력이 있는지를 다투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 심각한 문제점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어떤 부분이 이 재판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야 하는가? 첫째, 사회적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재판부의 접근방식이다. 앞서 이강원 부장판사가 판결문에서 지적했듯이, 과거 재일동포 조작간첩 사건은 국가가 재일동포라는 약점을 이용해 불법 연행하여 강제 구금하고, 거기에 모자라 모진 고문으로 조작해낸 사건이다. 이 일을 했던 기관들이 국가기관들인데, 그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피고인이었던  김병주 선생과  손유형 선생은 법정에서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과 다른 진실을 말할 수 있었을까. 당시 재판정에는 피고인들을  고문했던 수사관들이 방청석에 앉아있었고, 법정에서 공소장 내용과 다른 말을 하면 다시 고문 수사하겠다고 협박하였음을 앞서 진행되었던 재심  피고인들의 진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1975년 서울의대 간첩단 사건의 한 피해자는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허위 자백을 했지만, 원심 재판 법정에서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했다. 그리고 용기 내어 진술한 진실의 대가는 더 가혹한 고문이었다. 그 피해자는 다음부터 법정에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진술하지 않고, 철저히 수사관들이 원하는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지금 2021년 재판부는 1970-80년대 재판부의 현실이 지금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대적 맥락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피고인 두 명은 이미 고인이 되어 방어권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두 분 모두 재일동포이면서 동시에 이미 고인이 되어버려 당시 재판 과정에서 자신들이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말할 수가 없다. 만약 이분들이 재일동포가 아니었다면, 당시 재판에 가족들 또는 친구들이 참석했을 개연성이 높으며, 그들이 지금 재심에 증인으로 나와 당시 재판 상황을 증언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이 현재 살아계시다면 재심 법정에서 왜 당시 법정에서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모두 고인이 되어 이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국, 법정 증거주의와 같은 법리를 내세워 당시의 시대적 맥락 그리고 고인이 되어버린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주어진 80년대 법정 증언을 가지고 이것이 2021년 현재 재심 과정에서도 법정 효력이 있는지를 열심히 다루고 있는 것이 현 실태다. 모국을 찾은 재일동포를 아무런 영장도 없이 불법 구금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40일 이상씩 고문하면서 만들어낸 간첩죄. 그리고 고문수사를 받으면서 했던 자백과 다른 진실을 법정에서 말하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전보다 더한 고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피고인이 과연 무슨 용기로 진실을 내뱉을 수 있을까. 그리고 연행부터 불법으로 점철된 이 같은 사건들의 진상을 밝히고자 2021년 재심을 시작한 것인데, 여전히 재판부는 시대적 맥락과 고인이 되어버려 방어권을 상실한 피고인의 상황을 묵인한 채, 단순히 교과서에 쓰인대로 재심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7 14 () 오후 5, 인권의학연구소는 제3차 정기이사회를 온라인 줌회의로 개최하였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 상황에서 지난 제2차 이사회에 이어 현장 회의 대신 온라인 회의방식을 결정하였다. 이날 이사회에는 함세웅 이사장, 이화영 상임이사, 박재영 이사, 백재중 이사, 손창호 이사, 유충희 이사, 이상희 이사, 주영수 이사, 최창남 이사와 염형국 감사가 참석하였다.

< 사진 1.  줌회의로 개최한 인권의학연구소 제 3 차 이사회  (7.14)>

이화영 상임이사의 지난 2차 이사회 회의록 보고에 이어 사무국에서 2021년도 2분기 사업과 재정에 대해 보고하였다. 사업 보고 후 교육팀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의료인 대상 인권교육사업 교재의 단행본 출간 여부에 대한 박재영 이사의 질문과 후원 중지 회원의 중지 이유에 대한 유충희 이사의 질문이 있었다.

 

<사진 2.   온라인 줌회의로 개최한 교육사업 기획회의>  
< 사진 3.   온라인 줌회의로 개최한 교육사업 자문회의 >  

이어진 ”2021년 국제고문피해자 지원의 날과 김근태기념치유센터 개소8주년 기념행사 안건에 대해 코로나-19 확산으로 행사 개최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대신 수녀원 마당에서 고문피해자들의 고문피해자 지원법을 제정을 촉구하는 피케팅 퍼포먼스로 대체했음을 보고했다. 또한 현재 준비 중인 자료집 디자인 작업을 마치면 8월 중 자료집을 출간하여 후원회원에게 발송하기로 하였다.

< 사진 4.  2021  국제고문피해자지원의 날에  ” 고문피해자 지원법안 제정 “ 을 촉구하는 고문피해 생존자들

세 번째 안건 토의를 위해 이화영 상임이사가 국가폭력 피해생존자를 위한 평생교육안에 대한 제인 설명을 하였다. 참석이사들은 교육 내용, 장소, 명칭, 시간대 등을 당사자 요구도에 맞춰 계획할 것과 피해생존자 대상 특정교육으로 운영할 것을 주문하였다.

 

네 번째 안건은 2020-21년 신규회원 및 10년 이상 장기후원자에 대한 비대면 웰컴,감사 파티안이다. 온라인 만남의 장을 통해 회원들의 기부효능감을 증대하고, 연구소 활동에 회원들의 적극 참여를 독려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비대면 웰컴파티와 감사파티 및 릴레이 인터뷰 사업을 제안했고 참석이사들은 이 제안을 전폭 지지하였다.

 

다섯 번째 안건은 고문가해자 정보공개 안건이었다. 인권의학연구소는 2018년부터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훈포상 취소 고문수사관 명단공개를 촉구하는 행정소송을 진행하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인권의학연구소는 고문수사관의 명단을 취합 작성하여 보도자료와 SNS를 통해 고문수사관의 실명을 공개하고자 하는 안건을 이사회에 제안하였다. 참석이사들은 실명을 공개할 경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등 고문수사관의 역공이 예상되더라도 공익을 위한 실명공개이므로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훈·포상 취소 고문수사관들의 실명을 공개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하였다.

 

다음 이사회(4) 2021 10 13 () 6, 인권의학연구소 1층 소강당에서 개최하기로 하고 제3차 이사회를 마무리 하였다.

 

(끝)

[남편의 간첩활동 방조범으로 몰린 아내…49년 만에 무죄]

 

이번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70대 여성분에게 적용됐었던 혐의는 '간첩 방조죄'였다.

 

이 기사를 다룬 연합뉴스 화면. (출처: 연합뉴스)

1968년 서해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던 남편이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되었다가 다시 돌아왔다.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당시 국가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돌아온 이들을 간첩으로 몰아 모진 고문과 옥살이를 시켰다.

 

그 과정에서 이 남편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여성분에게는 '간첩 방조죄' 혐의를 씌웠다.

 

그리고 49년 만에 그 억울함이 재심을 통해 조금이나마 풀린 것이다.

 

단순히 기사의 내용이 아니라 잠시나마 내가 이 피해자가 되어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미칠 노릇이다.

 

한평생 억울함은 물론 이로 인해 경제적 불이익을 평생 안고 살아야 했던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과연 우리 사회와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입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705112500065?input=1195m 

 

남편의 간첩활동 방조범으로 몰린 아내…49년 만에 무죄 | 연합뉴스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군사정권 시절인 1970년대 납북어부 출신인 남편의 간첩 활동을 방조한 혐의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70대 ...

www.yna.co.kr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