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공'의 이름으로 짓밟은 그놈, 이름이라도 알고 죽고 싶다]

최근 '멸공'이라는 단어가 이슈였습니다.

어떤 CEO는 자신에게 멸공은 정치가 아닌 현실이라고 했죠.
이를 보며 참 많이 씁쓸했습니다.
'멸공'이라는 이유로 아무 죄도 없는 국민을 향해 국가가 저지른 범죄가 너무도 가혹했기 때문입니다.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 국민을 향해 고문을 가했던 국가와 고문 가해자에게 멸공은 과연 무엇인가?"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605250&plink=ORI&cooper=NAVER&fbclid=IwAR2a9LS5zbXQ9SCRgJRMeugSh5NlapwX-P-nyg946cfdfDqd-xqzFcWBU7E 

 

'멸공'의 이름으로 짓밟은 그놈, 이름이라도 알고 죽고 싶다

안녕하세요. SBS 탐사보도부 원종진 기자입니다. 누군가의 남편으로, 누군가의 아버지로 평화롭게 살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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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고문 피해자와 고문 가해자 사이의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간첩조작 피해자 유족, 국가와 이근안을 상대로 손배소 청구 관련- 

 

지난 6, 간첩조작 피해자 유족이 고문 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이 간첩조작 피해자는 1965년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나포되었다가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13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간첩 혐의로 불법 체포되었고, 당시 그에게 고문을 주도했던 자가 바로 이근안이다.

 

  <사진-1> 지난 1월 10일, 간첩조작 피해자 유족의 소송 관련 기사. (출처: 뉴시스)

피해자는 이근안에 의해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하루아침에 간첩이 되었고, 7년의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43년이 지난 2021 6월 그 피해자는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당시 이근안과 국가기관은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죄 없는 시민을 하루아침에 간첩으로 만들어 버렸음이 밝혀진 셈이다.

 

그럼에도 이근안은 지난 2013년 자서전을 통해 이 피해자에 대해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문가해자인 그는 반성과 사과는 온데간데없고 여전히 자신의 불법적이고 반인륜적인 범죄를 합리화하는데 급급하다.

 

<사진-2> 지난 2013년 출판된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자서전. 

이러한 배경에서 이 피해자 유족(이 피해자는 지난 2006년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은 이근안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번 소송은 근본적인 한계를 내재하고 있다. 하나는 수많은 피해자가 존재하지만 고문가해자는 언제나 이근안 한 사람이라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현행법상 고문가해자에 대한 법적 책임은 형사소송의 테두리가 아닌 민사소송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고문 피해자는 알면서도 고문 가해자는 알 수 없는 걸까. 그리고 우리 현행법은 왜 고문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고 있는 걸까. 이같이 잘못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해결돼야 한다.

 

고문 가해자를 알아야 한다

 

첫째, 고문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2021 10월 기준, 국가기관에 의해 간첩조작으로 사형, 무기징역,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수십 년이 흘러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사람만 449명에 이른다. 이는 재심이라는 과정을 통해 드러난 수치이며,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간첩조작 고문피해자들의 수는 사실상 추정조차 불가능하다.

 

이렇게 피해자는 존재하는데 여전히 가해자는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현실이다. 여전히 우리가 알고 있는 고문 가해자는 고문 기술자 이근안 밖에는 없다. 이근안도 수많은 고문 가해자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1970-80년대, 고문을 통해 간첩조작을 만들었던 대표적인 수사기관인 중정·안기부(현 국정원), 보안사(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치안본부(현 경찰청) 등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다행히 지난해 11, ()인권의학연구소가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제기한 부적절한 서훈 취소 관련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행정법원은 1970-80년대 고문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고문가해자가 누구인지 밝히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러나 이 판결을 통해 공개될 고문가해자는 50여 명에 그친다. 당시 수많은 고문피해자의 숫자를 생각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

 

둘째, 고문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간첩조작 피해자 유족이 이번에 이근안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현재 한국 현행법으로는 공소시효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 현재로서는 고문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공소시효로 인해 법적 근거가 없는 실정이다. 이에 고문피해자가 구제를 받으려면 국가에 내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통한 금전적 배상이 전부인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대 국회를 시작으로 20, 21대 국회에서 고문피해자 지원과 고문가해자 처벌을 위한 '고문방지 4법안'을 제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이 고문방지 4법안은 고문방지 및 고문피해자 구제·지원에 관한 법률안(제정) 고문피해의 회복을 위한 청구권의 소멸시효에 관한 특례법안(제정) 형법 일부개정법률안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으로 구성됐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고문피해자에 대한 의료지원과 함께 고문가해자에 대한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10년 동안 이 법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당시 새누리당의 김진태 의원이 법사위에서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131명의 국회의원이 관련 법안을 공동 발의하면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으나, 여전히 계류 중이다.

 

며칠 전, 고문기술자 이근안과 국가를 상대로 간첩조작 피해자 유족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 청구소송에 내재된 구조적 결함을 인지하고 이제는 이를 해결해야 한다

[고문피해자에게 가혹한 대한민국]
고문피해자였던 故 김근태 의원의 10주기 추모미사에 같은 고문피해자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추모미사가 끝나고 아무 말 없이 피켓을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10년이 지나도록 19대, 20대, 21대 인재근 의원의 1호 법안인 '고문피해자 지원법안'이 잠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를 기다리듯이
한국 정부와 국회는 고문피해자분들이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리는지.
이분들에게 시간이 없습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590011&plink=NEWLIST&cooper=SBSNEWSSPECIAL 

 

김근태를 계승하겠다는 정치인들이 우선 챙겨야 할 법안

김양기/전두환 군사정권 고문 피해자 우리들 입장에서는 국가가 너무..차라리 우리가 뭐 촛불 들고 그렇게 할 때만 해도 뭔가 좀 변해지겠다 하는 그런 희망, 그런 거기서 기대를 가지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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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미사] 김근태 의원도 고문피해자였습니다.

-고문피해자 지원법안이 필요하다-

 

 12 29,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생 10주기 추모행사가 있었다. 오전 10시 마석 모란공원에서의 묘역 참배를 시작으로 오후 2시 명동대성당에서 추모 미사와 ()향린교회에서 추모 문화제까지 추모행사는 이어졌다. 이날 행사에는 김근태 전 의원의 부인인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유은혜 사회부총리, 우상호 의원 등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계인사들보다 더욱 중요한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은 바로 명동대성당에서의 추모미사에 참석했던 김근태 전 의원과 같은 고문피해자들이었다.

 

<사진 -1>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생 10주기  추모미사에 참여한 고문피해자들.

 故 김근태 선생 10주기 추모행사에 참여한 약 10여 명의 고문피해자 분들에게 김근태라는 개인은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그 이유는 1980년대 김근태라는 청년도 이들과 같은 고문피해자였기 때문이다. 1985 9 4, 김근태는 서울대 민추위(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의 배후로 조작되어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되어 불법 구금되었다. 이후 22일 동안 김근태는 사람이라면 견디기 힘든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후 1985 12 19일 김근태는 첫 공판에서 우리나라 법정 사상 최초로 모두진술 제도를 활용해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의 살인적인 고문사실을 폭로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이 같은 살인적인 고문은 1970-80년대 이미 조작간첩을 만들면서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 특히 남영동 대공분실뿐만 아니라 남산의 중앙정보부, 서빙고의 보안사 등 곳곳에서 고문피해자들은 양산되었다. 이날 10주기 추모미사에 참여했던 고문피해자들은 김근태 이전의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이었다.

 

<사진 -2>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생 10주기  추모미사의 강론을 맡은  함세웅 신부.

 이날 추모미사의 강론을 담당했던 함세웅 신부는 당시 남영동에서 살인적인 고문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김근태 의원을 보고 너무 몸이 초췌하고 망가져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함세웅 신부는 김근태 의원이 고문 이전의 삶을 회복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함세웅 신부는 일반인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고문의 트라우마에 대해 몇 가지 전해주었다. 예를 들어 김근태 의원은 살아생전 치과 진료를 받을 때, 치료를 위해 얼굴에 녹색 천을 얹는 순간 몸이 남영동에서의 물고문을 기억해 숨이 멎을 정도였다. 이는 고문을 당한 지 2-30년이 지나도 고문의 상처와 후유증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증거다.

 

 이런 내용을 비추어 볼 때, 일반인이라면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문을 경험했던 피해자들을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국가기관이 자행한 고문이라는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것은 물론 이들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이 지난 10년 동안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재근 의원은 지난 2012 19대 국회를 시작으로 20, 21대 국회에서도 고문방지 4법안을 제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특히, 이번 21대에서는 131명의 국회의원이 공동발의(20대 국회에서는 51명 공동발의)하면서 통과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여전히 계류 중이다.

<사진 -3>  명동성당 앞에서  ‘ 고문피해자 지원법 제정하라 !’ 는 피켓을 들고 있는 고문피해자들 .

 이에 같은 고문피해자였던 김근태 의원의 10주기 추모미사를 참여한 고문피해자들은 추모미사를 마치고 명동성당 앞에서 추운 날씨에 조용히 피켓(고문피해자 지원법 제정하라!)을 들었다.

 

 만약 김근태 의원이 지금 살아있었다면, 이분들을 위한 고문피해자 지원법을 제정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지지 않았을까. 우리는 2022 12 29일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생 11주기 추모미사에서는 고문피해자들이 직접 피켓을 드는 장면은 일어나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

[김근태 의원 10주기 추모미사에서]

 
12월 29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10주기 추모미사에 김근태 의원과 같은 고문피해자 선생님들이 참석하셨습니다.
 
 
추모미사를 인도한 함세웅 신부님은 김근태 의원 또한 고문피해자였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고문피해자로서 김근태 의원이 겪었던 아픔들을 전해주었습니다.
먼저 떠난 김근태 의원의 10주기 미사에서 여전히 고문의 아픔을 가진 피해자 선생님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고문의 아픔을 여전히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선생님들을 위해
과연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 진행형의 문제입니다.

[SBS] "고문 가해자 공개하라" 법원 판결에도 정부는 '감감'  

 

 김양기, 김철, 이사영, 최양준 선생은 SBS와 인터뷰를 통해 훈포상이 취소된 고문가해자의 이름을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는 행정안전부에 대한 심경을 밝혔습니다.

 

 지난 11월, (사)인권의학연구소는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훈포상이 취소된 고문가해자의 이름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에서 승소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이 판결이 있은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행정안전부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위 사진을 클릭하시면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국가의 사과] 고문피해자를 향한 국방부의 오싹한 사과

-날 고문했던 그들이 39년만에 우리집 초인종 눌렀다-

 

 지난 24() 오전 8 30분경,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이하 안지사) 소속 신모 직원은 과거 보안사령부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한 피해 생존자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그 이유는 과거 보안사의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한다면 받을 의향이 있는지 묻기 위함이었다. 이 고문 피해 생존자는 얼떨결에 문을 열어주고 신모 직원과 약 5분 정도 대화를 나누었고, 안지사 소속 이 직원은 오늘의 대화는 부대로 복귀해 상관에게 보고하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고 한다. 과거 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 의해 불법구금과 고문을 당하고 간첩으로 조작되어 9년을 감옥에서 살아야 했던 이 피해 생존자는 이 일로 인해 하루 종일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사진 -1> 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부대원의 정치적 중립과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모든 행위 금지, 직무 범위를 벗어난 민간인에 대한 정보수집 및 수사 금지를 골자로 한 사령부령에 따라 기무사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 (출처: 오마이뉴스)

 

고문 트라우마를 재발시킨 군사안보지원사령부

 

 하루 종일 불안감에 휩싸였던 이 고문 피해자는 1982년 부산 보안대로 끌려가 약 30일 동안 불법 구금과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 건장한 남자들에 의해 잡혀갔던 당시 부산 보안대는 삼일공사라는 나무 간판이 있었으며, 이 피해자는 그 지하에서 성기와 양쪽 손가락에 전기를 흘리는 전기고문, 손톱 밑을 이불 꿰매는 긴 바늘로 찌르는 고문 등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고문들을 당하며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이 고문 피해자는 그 허위자백으로 간첩이 되어 징역 15년형을 받고, 이후 9년을 감옥에서 살고 1991 5월 가석방됐다. 그리고 지난 2011 28년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과거 보안사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되어 여전히 고문 트라우마 속에 살고 있는 이 고문 피해자는 갑자기 오전 8 30분경에 찾아온 안지사 직원 때문에 하루 종일 불안감에 휩싸였다. 안지사 소속 직원은 이 고문 피해자의 집을 찾아와 자신이 속한 안지사의 전신인 보안사령부의 잘못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고, 피해자에게 고생 많이 하셨다라는 언급만 했다고 한다. 또한, 피해자에게 만약 우리(안지사)가 선생님에게 사과를 한다면 사과를 받을 의향이 있는지 등을 물어보고 5~6분 정도 있다가 일어났다고 한다. 현관문을 나서며 이 직원은 자신은 부하직원이어서 힘이 없고, 오늘 대화는 부대로 돌아가 상관에게 보고하겠다며 떠났다고 한다.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

 

 안지사 소속 신모 직원이 떠나고 이 고문 피해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그 직원이 자신의 집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금 피해자가 거주하고 있는 집은 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집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금 이 피해자는 보안사령부 후신인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아직도 자신의 개인정보를 사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안지사 신모 직원과 통화를 했으나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이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담당 부처인 행정안전부 과거사 업무지원단에 확인해보았다. 확인 결과, 이번 국가기관의 사과는 지난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의 진실규명 결과에 기반해 지난 2010년부터 행정안전부 과거사 업무지원단이 지속적으로 각 부처(대표적으로 국정원, 국방부, 경찰청)에 공문을 보낸 결과라고 한다. 그 결과 최근 국정원과 경찰청을 비롯해 담당 부처에서 조금씩 나서서 사과를 하고 있다. 국가기관의 이 같은 변화와 노력은 고무적이지만, 이 사과의 방법에 많은 문제점들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해자의 사과, 무엇이 문제인가?

 

 1970-80년대 아무런 죄 없는 국민들을 불법 구금하고 고문해 간첩으로 조작했던 대표적인 국가기관인 국정원(과거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국방부(과거 보안사령부), 경찰청(과거 치안본부) 등이 고문 피해자들을 찾아 사과를 하고 있다. (관련기사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에게 전달된 경찰의 사과문, 아쉽다”) 그러나 이 같은 사과의 사례들을 보면 몇 가지 중대한 결함이 내재되어 있다.

 

 첫째, 반인륜적 범죄와 대비되는 지나치게 소극적 형태의 사과라는 점이다. 불법구금, 고문으로 대변되는 범죄는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반인륜적 범죄다. 그럼에도 이들의 사과는 상부에서 시키기 때문에 마지못해 하는 사과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날 안지사 신모 직원도 이 고문피해자를 만난 자리에서 본인은 부하직원이며, 현재 이 지역(그 고문 피해자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을 관할하고 있기 때문에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와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둘째, 피해자를 고려하지 못한 사과 형식이다. 불법 구금, 고문 등의 반인륜적 범죄로 피해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의 일생을 망가트린 장본인인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그들의 고통과 피해를 조금이라고 헤아릴 수 있는 기본적인 사고체계가 전제되었다면 이 같은 형식의 사과는 있을 수 없다. 어떤 공식적인 사전 요청 또는 공식문서도 없이 어떻게 아침 8 30분에 불쑥 초인종을 누르고 찾아올 수가 있는가. 그리고 단지 5~6분 정도 이야기하고는 상부에게 보고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떠날 수 있는지 도무지 피해자를 고려한다면 이 같은 사과의 형식은 있을 수 없다.

 

 마지막은 구체성이 결여된 사과 내용에 있다.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은 간첩조작 피해자들의 판결문을 보면 그들이 국가기관에 의해 어떻게 불법으로 연행했는지, 며칠 동안 구금했는지, 그 기간 동안 어떤 고문을 자행했는지, 법정에서 수사관들이 어떻게 사법부를 농락했는지 등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 같은 공적 문서를 기반으로 먼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사과의 시작일 텐데, 갑자기 찾아와서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다는 한 마디로 자신들의 잘못을 희석시키려는 것은 사과라고 할 수 없다.

 

 이 같은 일이 지난 금요일(26) 전남 여수에 거주하고 있는 고문 피해 생존자에게도 있었다. 이에 인권의학연구소는 국방부의 이 같은 미숙한 대처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향후 고문 피해 생존자들의 일상에 트라우마가 재발하지 않도록 미리 연락을 하는 등 방법을 강구하도록 하겠다. 피해 생존자 분들이 과거와 달리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아래 링크는 이번 사안에 대해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뉴스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90225

 

[전두환의 고문공화국]

전두환의 죽음을 두고 보도하면서
뉴욕타임스는 전두환을 ‘전 군부 독재자’로
AP통신은 ‘학살자’라고 명명했습니다.
 
▲   1979년 11월 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발표하는 전두환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그 표현 이면에 내재된 사실은 단순히 전두환이 5.18 민주항쟁을 무참하게 학살한 사실만을 두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가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손에 쥔 약 7년의 시간 동안 한국 사회는 ‘고문공화국’이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시기 국민들을 향해 자행한 고문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인권탄압 과정에서 자행됐다. 일제는 수많은 고문기법을 개발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친일 경찰들이 독재 정권에서도 그대로 활동하게 됐고 이들의 잔혹한 속성과 각종 고문기술 등은 민주화 운동가들을 탄압하는 데 그대로 활용”된 것입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일제가 조선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다르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문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집권 시기 내내 어떠한 거리낌도 없이 자행할 수 있었던 것이죠.
아직도 우리는 당시 고문 피해자라고 하면 유명한 몇몇의 정치인만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지만, 전두환 정권 아래 안기부, 보안사, 치안본부에 의한 고문 피해자는 숫자를 셀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전두환의 죽음을 보며 당시 전두환 정권은 고문공화국이었다는 사실과 그 시절 하에 희생당한 고문 피해자들을 과연 우리는 지금 어떻게 대우할 것인지 숙고해야 합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90198&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 

 

전두환 정권의 또다른 이름, '고문공화국'

[전두환 사망] 5공화국 시절에 고문이 그토록 많았던 이유

www.ohmynews.com

 

[이 사진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1985년 설립된 이래 고문 생존자들의 치료와 그들을 지원하고 있는 Freedom from Torture는 32년 전 오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음을 보여주는 사진을 게시했습니다.

 

<사진> 11월 9일, 고문피해자들을 위한 영국의 자선 단체 Freedom from Torture가 페이스북에 올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의 사진.

여전히 분단되어 있는 한반도에서 이 사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국제정치적 혹은 종전선언의 관점이 아니라 분단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픈 피해를 봐야 했던 고문 피해자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싶다.

 

분단이라는 구조 하에서, 대한민국의 역대 권력들은 국가보안법이라는 제도를 악용해 수많은 간첩들을 양산했습니다. 가장 힘없는 국민들을 불법 구금하고, 고문해 간첩을 잡은 것이 아니라 양산했습니다.

 

국정원, 경찰청, 국방부라는 엄청난 국가기관들은 의해 인간이라면 차마 상상하지 못한 고문으로 무고한 시민이었던 사람을 하루아침에 간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간첩이 된 분들은 지금도 자신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사법부라는 국가권력을 향해 스스로 법정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Freedom from Torture는 이 사진을 게재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동독과 서독을 가르는 벽이 아니라 다리를 만드는 것을 기념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분열시키는 요소보다 우리 안에 더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When we celebrate our shared humanity and build bridges instead of walls, we realise that we have far more in common than that which divides us.)

 

하루빨리 한반도에도 이같이 두 사회를 가로막고 있는 철조망이 아니라 다리가 연결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상호 이해의 폭이 넓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그전에 한반도 분단이 낳은 그리고 그 비극의 일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고문피해자들의 아픔을 국가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깊이 돌아보길 바랍니다.

 

32년 전, 서독과 동독을 가로막던 벽이 무너지고 서로의 차이보다 공통점을 발견한 날.

 

분단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고문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아픔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80년대 고문피해자는 아직도 가해자 이름조차 알 수 없다

- 출처: 오마이뉴스

- 게재일: 21.08.21.

 

 지난 13일, 서울행정법원 지하2층 B220호에서 '고문가해자 서훈취소 정보공개 청구 소송'(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 행정소송, 재판부 : 서울행정법원 제1부) 변론기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이 재판의 원고는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 피고는 대한민국 행정안전부입니다. 

 

이 재판과정에서 피고 행정안전부는 '대한민국의 안전과 재난에 관한 정책의 수립·총괄·조정'한다는 본래 취지에 걸맞지 않은 변론 수준을 보였는데요. 고문피해자의 이름은 공개하면서 고문가해자의 이름은 끝까지 공개를 거부하면서 빚어진 이번 재판에서 행정안전부는 재판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68231

 

80년대 고문피해자는 아직도 가해자 이름조차 알 수 없다

[참관기]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한 '고문가해자 서훈취소 정보공개 청구 소송'

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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