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삶을 짓밟고 얻은 부와 명예]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 서성 전 대법관, 임채진 전 검찰총장.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한국 근현대사에서 부와 명예를 얻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며, 동시에 이들의 부와 명예는 누군가의 삶을 짓밟고 얻은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지난 2018년 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가 1차로 밝힌 115명 명단 가운데 조작간첩을 만들었던 당시의 수사관, 검사, 판사들의 이름 가운데 이 네 명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뿐 아니라 당시 수사관과 공무원들은 조작간첩을 만들면 특진뿐 아니라 대통령 훈포상을 받았습니다. 이에 그들은 가장 약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무자비하게 그들의 인생을 짓밟고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쌓았습니다.

 

이제는 이런 잘못된 과거를 제대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당시 간첩조작으로 인해 삶이 뒤틀린 피해자가 그들의 사과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news.kbs.co.kr/news/view.do?ncd=4534275&ref=A&fbclid=IwAR2EYz3_aY56tCsM9m7BFdHtq1hcpYh7GUs6A2zrBqL2zoH3XaGsTQRys7E

[이런 기사를 보면 2가지 이유에서 화가 납니다]

 

지난 10월, 간첩 조작을 목적으로 고문을 가했던 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 수사관에 대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 선고가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당시 안기부 수사관이었던 구모 씨가 2012년 재심 과정에서 고문은 없었다고 위증을 근거로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두 가지 지점에서 불편했습니다.

 

하나는 여전히 뻔뻔한 고문 가해자의 행태입니다. 고문피해자가 버젓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3-40년이 지나도 끝까지 자신의 고문 가해행위에 대해 부인합니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이 저지른 가혹행위 등 반인륜 범죄에 대해 이미 공소시효 완성으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은 바 있기 때문에 형사처벌에 두려움 없이 진실을 밝히고 속죄를 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버렸고, 심 씨가 2014년 11월 사망해 속죄를 받을 길이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하나는 고문피해자의 이름은 버젓이 공개하면서 고문 가해자의 이름은 가려주는 언론의 행태입니다. 지난 2019년 행정안전부는 과거 간첩조작 등으로 훈포상을 받은 고문 가해자의 서훈 취소를 하면서 여전히 서훈 취소 이유와 그들의 이름은 공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고문으로 간첩이 되어 지난 4-50년을 숨어 살아야 했던 고문 피해자보다 죄 없는 이들에게 반인륜적인 고문을 가했던 가해자들의 이름과 신변을 더 중요시 여기는 언론과 행정부의 행태를 보면 화가 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www.news1.kr/articles/?4094027&fbclid=IwAR0F4Iy6UNUKoBtIlE79YX844u0QNf2Gmu2CN0RlIyDrTVC0n5PpHJvju_A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화가 납니다]

 

피해자의 이름과 얼굴은 버젓이 공개하면서

왜 가해자의 얼굴은커녕 이름도 ‘A’씨와 ‘B’씨로 가려주나요?

 

8년 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 씨는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6개월 동안 폭행과 협박에 시달렸습니다. 그 기간 동안 유가려 씨를 협박하고 폭행한 국정원 조사관에 대한 공판이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들에 대한 이름은 그냥 조사관 A, B 씨입니까?

 

피해자의 인권은 온데간데없고, 이들의 이름은 국가안보라며 여전히 공개를 거부하는 국정원, 행안부, 그리고 그걸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언론을 볼 때마다 화가 납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news.tf.co.kr/read/life/1849139.htm?fbclid=IwAR3Y4SMDx54it9jGKXoFtShBW7tT9xL_DjC0bR2Vwz9MBg7HmV6t0JUr7E0

[오마이뉴스] 내일 이 재판, 눈 크게 뜨고 지켜보겠다

(보도일자: 2021.01.21)

 

지난 1월 22일(금) 오후 3시 30분, (사)인권의학연구소가 행정안전부장관을 상대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를 요구한 재판(사건번호: 2020 구합 60734)이 서울행정법원 지하 2층 B220호 법정에서 열렸습니다.


이 재판이 열리게 된 경위는 지난 2018년 7월 10일 제30차 국무회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국무회의에서 1980년대 간첩조작사건을 비롯해 부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관련자들에게 수여했던 정부 표창을 모두 취소하는 내용을 담은 '부적절한 서훈 취소안'을 심의·의결하였다. 이에 해당하는 사례는 모두 53명과 2개 단체에 수여된 56점의 훈포장과 대통령·국무총리 표창입니다.

 

그러나 확인 결과, 행정안전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고문 피해자의 이름과 사건은 공개하면서 고문 가해자의 이름은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해당기사 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13357

여보 미안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신한테 사과할게.

 

지난 시간 송기복 선생님께서 어떻게 기적처럼 황인철 변호사를 만났는지 첫 번째 인터뷰를 전해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송기복 선생님의 두 번째 인터뷰입니다.

 

Q. 서로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에서 오히려 황인철 변호사가 선생님께 했던 말이?
(송기복) 황인철 변호사가 저한테 했던 말이 미안해요, 늦게 와서 미안해요. 선생님 잘못 아니에요.”였어요. 그리고 저보고 선생님은 비록 여기에 계셔도 행복하세요.” 이러는 거에요.

  

Q. 황인철 변호사가 왜 그렇게 이야기 하셨죠?
(송기복) 선생님 남편 같은 남편이 없다고. 그러면서 저를 위로해주셨어요. 선생님 남편 때문에 자기가 많이 배운다고 하면서요.

 

(사진) 인터뷰 중인 송기복 선생

Q. 선생님 남편을 보면서요? 선생님 남편분께서 원래 군인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송기복) 공군이었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 헬기 조종사였어요. 그런데 제 사건이 터지고 바로 제대를 했죠. 그리고 제가 서울구치소에 있을 때는 매일 면회를 왔어요. 저를 조금이라도 운동시키기 위해서 매일 왔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광주로 이감하고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에서 광주까지 면회를 왔었구요.

 

Q. 정말 로맨티스트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남편분께서 선생님께 사과를 하신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송기복) 우리 남편이 나한테 무릎을 꿇은 적이 있어요. 제가 집행유예로 출소했거든요. 원래 집행유예로 나올 때는 그 날 저녁에 나온대요. 그러니까 12 24일날 저희 남편이 저를 기다렸을 거 아니에요. 근데 그때 교도소 안에 제 제자가 있었어요. 제가 이제 나가려고 짐을 싸놓고 신약성서를 읽으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 아이가 오더니 선생님, 오늘 못 나가신데요.’ 하는 거에요. 뭐가 내려와야 하는데 안 내려왔다는 거에요. 저는 그러려니 했는데, 바깥에서 우리 남편은 기다리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남편한테 들었는데, 그때 남편이 밖에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해요.

 

Q. 나와야 하는데, 안 나오니까.
(송기복) 이유도 없이 그렇게 되니까. 그때 저희 남편이 제가 고문을 받고 교도소에서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제가 나오면 저를 입원시키려고 병원 예약을 했었대요. 그게 12 24일이었어요. 근데 제가 안 나오니까 우리 올케 말에 따르면 우리 남편 얼굴이 창백해지더라는 거에요. 아마 저희 남편인 이게 안되는가보다, 다 쇼였나보다라고 생각을 했겠죠. 그런데 제가 크리스마스 날 오전 11시경인가 출소하게 된 거에요. 그런 전례가 없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된 거에요. 그래서 크리스마스 날 나와서 다행이 남편이랑 예약한 그 병원으로 갔어요. 그때 우리 남편이 병원에다 저를 데려다 놓고는 저한테 큰 절을 하면서 여보 미안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신한테 사과할께. 우리 남편이 저한테 그러는 거에요. 저는 그걸 보고 놀라면서 남편의 그 말을 받아들이질 못했어요. 근데 나는 왜 그걸 진심으로 못 받아들였는지. 지금 내가 미안해요. 그때 저는 남편의 그 모습조차도 위선자 같은 거에요.

 

Q. 오히려 의심이 들고?
(송기복) , 제가 남자들은 이중인격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왜냐하면, 안기부에서 저를 그렇게 때리고 한 그 사람이 자기 자식이 아프다고 하니까 전화로 자기 와이프한테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안기부에서 그렇게 사람들을 때리고 고문하는 저 손으로 어떻게 자기 자식들은 저렇게 사랑해줄까하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러니까 남자들은 다 저런가?’하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그런 남자를 안기부에서 처음 만났으니까.

 

Q. 안기부에서 선생님을 때리고 고문하던 남자들이 자기 자식들한테 하는 걸 보면서요?
(송기복) 그럼요. 자기 자식들한테는 아니 세상에 없는 천사처럼 하는거에요. 자상한 아버지. 너무 훌륭한 남편인 거에요. 누가 자기 남편이 안기부 같은 곳에 가서 사람을 두드려패고 강제로 그런다는 걸 그 사람들은 믿을까? 그래서 제가 남편이 병원에서 저한테 큰 절을 하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제가 의심을 하고 믿지를 못했던 거에요. 그래서 그게 지금도 너무 미안해요.

 

Q. 그런 일이 있으셨구나. 근데 남편분이 정말 멋지신 분이네요.
(송기복) 그리고 저희 남편이 저에게 종종 비록 우리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이런 사건을 당하게 되었지만, 얼마나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느냐면서 그랬거든요. 그럼 그때 저는 나는 싫어, 나는 좋은 분들 안 만나도 되니까 그냥 그런 일들이 없었으면 좋겠어!’라고 하면, 저희 남편이 나를 끌어안아주면서 토닥토닥 두드려 주면서 위로해주고 그랬어요.

 

(사진)  화창한 봄날 연구소에 피어오른 예쁜 할미꽃을 찍고 있는 송기복 선생 

Q. 맞네요. 황인철 변호사님도 뵙고. 그리고 선생님께 또 빼놓을 수 없는 분이 함세웅 신부님이시죠? 함세웅 신부님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송기복) 제가 함 신부님을 한강성당에 계실 때 처음 만났거든요. 그때 함 신부님이 오라고 하셔서 제가 갔거든요. 그때 제가 신부님을 처음 본거에요. 인사를 하러 갔는데 내가, 아이고 정말 내가 미안해. 신부님한테 신부님 감사합니다 이래야 하는데, 제가 첫 만남에 신부님 왜 이렇게 조그만하세요?’ 그런 거에요. (웃음) 그래서 제가 그 말 하고 나서 저희 남편한테 혼났었어요. (웃음)

 

Q. 함 신부님을 처음 보자마자 선생님이 하신 말이 에게 이렇게 작으세요?’였어요? (웃음)
(송기복) , 나는 신부는 엄청 크게 봤거든.

 

Q. 이렇게 솔직하신 게 선생님의 매력시인 것 같아요. 그럼 저희 연구소는 어떻게 알게 되신 거에요?
(송기복) 함 신부님 때문에 알았지 또. 함 신부님이 오라 그러면 오고, 가라 그러면 가야 되고 그런거지. (웃음)

 

Q. 연구소에 큰 금액을 후원하셨던데요. 어떤 생각을 가지고 후원하셨던 거에요? 쉽지 않은 결정이잖아요.
(송기복) 아니, 내가 한 게 아니야. 우리 송기홍 남동생이 했어. 멋쟁이야.

 

Q. 그때 동생이 후원을 결정했을 때, 선생님은 어떤 마음으로 동참하신 거에요?
(송기복) 동생이 멋지다고 생각했지. 제가 나중에 함 신부님한테 (동생) 5천만원만 해도 되는데 쟤 왜 저러는지 몰라 그랬죠. (웃음) 신부님은 그때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근데 나는 미안해, 더 잘하고 싶고 한데. 아마 다 똑 같은 마음일꺼야. 이렇게 우리처럼 당하고 무죄를 받으면, 해주고 싶은 마음은 똑같으리라고 생각해. 정말로.

 

Q. 그럼 선생님 혹시 연구소에 바라는 점은 없으세요? 예를 들어 이런 일을 조금 더 했으면 좋겠다든지.
(송기복) 크게 내가 바라지 않아도 잘할 거라고 나는 생각을 해. 우리처럼 이렇게 당한 사람들은 바라는 것도 생각을 못 할 거에요. 그냥 다 잘되기만을 바라지.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리고 나는 고마운 게 나는 아마 함 신부님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꺼야. 우리 이화영 소장 너무 고마운게 누가 우리같은 사람 돌아보고 하려고 하겠어요. 밥그릇 차려줘도 안하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사진) 연구소에 봄을 알려주는 라일락 앞에서 송기복 선생과 박민중 활동가

Q. 연구소가 더 잘 되도록 앞으로 더 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선생님, 이제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꿈이 뭘까요? 저는 선생님이 더 행복하고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의 꿈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송기복) , 로또를 살까말까 고민중이야! (한바탕 웃음)

 

Q. 선생님 만약에 로또를 사서 10억이 생겼어요. 뭐하고 싶으세요?
(송기복) 나는 가끔가다 로또에 당첨되면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에게 커피 한 잔이고, 밥 한 그릇이고 다 사드리고 싶어요. 첫째는 우리 남편 형제분들. 그리고 우리 형제들. 그리고 우리 사건 때문에 마음 아파했던 분들. 그 분들. 그래서 나는 그분들에게 밥 한끼라도 사드리고 싶어.

 

Q. 그럼 송기복 선생님의 꿈은 선생님 주변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혹시라도 선생님 때문에 조금이라도 어려웠던 분들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 따뜻한 밥 한끼 대접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게 선생님의 꿈이세요?
(송기복) 아이고 그럼요!

 

송기복 선생님과 한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습니다. 기적같이 황인철 변호사를 만났던 이야기, 항상 그 자리에서 선생님 곁을 지켜주셨던 남편 이야기, 그리고 선생님의 꿈까지. 인터뷰하는 동안 오히려 제가 행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도 꼭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송기복 선생님, 꼭 로또 당첨되세요^^ 매일매일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연구소는 선생님의 일상을 응원합니다

(인터뷰 진행: 박민중)

지난 3월 12일(금), 서울 행정법원 B 220호에서 고문 가해자 훈포상 관련 행정소송 4차 변론이 있었다. 이 소송은 인권의학연구소가 행정안전부를 대상으로 고문 가해자의 훈포상 취소에 따른 고문 가해자의 이름과 취소사유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이다. 이날 재판은 오후 2시 30분에 시작되어 약 15분간 진행되었고, 재판부에 따르면 오는 4월 9일(금) 선고가 진행될 예정이다. 재판에는 고문피해생존자인 김장호, 김철, 김순자, 유정식, 최양준, 박순애 선생과 인권의학연구소에서 이화영, 박은성, 박민중, 김태형 심리상담사가 참석했다.  

 

(사진) 4차 변론에 동행한 피해생존자들과 함께 서울 행정법원 앞에서 가해자 처벌을 외치다

짧은 재판이 끝나고 재판에 참석했던 고문피해생존자들은 이 재판의 담당 변호사인 김성주 변호사(법무법인 덕수)와 간담회를 행정법원 지하 2층에서 가졌다. 김성주 변호사는 오늘 재판에서의 쟁점은 무엇이었으며, 향후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소상히 설명하였다. 동시에 참석자들의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고, 이화영 소장은 고문피해자들이 직접 재판부에 진술서를 제출하는 것을 건의하였다. 이에 김성주 변호사는 재판부가 법적 판단을 내리는데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였다. 2주 후, 연구소에서는 3명의 고문피해자들의 진술서를 취합하여 법무법인 김성주 변호사에게 전달했다. 

(사진) 재판 후, 행정법원 지하 2층에서 고문피해생존자들과 김성주 변호사가 간담회를 갖다

또한, 이날은 JTBC에서 이 재판을 직접 현장 취재했다. JTBC의 기자에 따르면, 선고심이 있는 4월 9일 방송을 목표로 재판의 내용과 고문피해자 분들의 인터뷰를 수일 전부터 요청해왔다. 이에 재판이 끝나고 JTBC 측에서 마련한 장소로 옮겨 김장호, 김순자, 김철 선생은 약 2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서 고문피해생존자들은 이 재판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들에게 훈포상이 취소된 고문 가해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소상하게 밝혔다. 인터뷰 중 한 피해생존자는"이제는 좀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라고 나지막이 그러나 또렷하게 전달했다. 

(사진) JTBC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김순자, 김장호 선생

세 명의 인터뷰를 보면서 고문으로 날조되어 하루아침에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살아야 했던 그들의 지난 삶들을 보게 되었다. 또한, 3-40년이 지나 어렵게 무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에게 고문을 가했던 자들의 이름조차 국가안보라며 밝혀지고 있지 않아 피해자들이 나서서 직접 잘못을 시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권의학연구소는 이제는 노인이 된 피해생존자들이 일상을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끝까지 고문 가해자의 책임을 묻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인권의학연구소는 지난 10여 년 동안 트라우마 피해생존자 삶의 원상회복을 위해 개인상담과 집단상담 등  치유지원활동을 지속해 왔다. 특히 개인상담 또는 집단치유 프로그램을 마친 국가폭력 생존자들의 후속 집단문화치유 프로그램으로서 2015년부터 시작한 길음판소리 모임은  6년 동안 아래 연혁과 같이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길음 판소리 활동 연혁>

 

     2015 : (1) 2015 국제고문피해자 지원의날 행사 공연 (성재덕관)

                   (2) 2015 재일한국인 11.22사건 40주년 행사 공연 (오사카)

2016 : (3) 2016 국제고문피해자 지원의날 행사 공연 (국회)

2017 : (4) 2017 국제고문피해자 지원의날 행사 공연 (국회)

2018 : (5) 2018 국제고문피해자 지원의날 행사 공연 (국회)

2019 : (6) 2019 국제고문피해자 지원의날 행사 공연 (국회)

      2019 “우리 함께” 행사 공연 (성재덕관)

2020 : (7) 활동 못 함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상황으로 길음판소리 문화치유프로그램은 큰 변화에 직면했다. 매주 판소리를 떼창으로 연습하는 방식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말 확산의 가능성으로 인해 모임을 전면 중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생존자들과 회원들은 매주 인권의학연구소에 모여 판소리 연습을 할 수 없었으며, 연습의 기량을 드러낼 각종 행사 공연도 모두 취소되었다. 1년이 다 되도록 연습이나 행사 공연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생존자들에게 2020년은 각자의 현장에서 고립된 한 해가 된 것이다. 인권의학연구소는 그동안 연습에 사용했던 길음판소리 악보들을 모아 악보집으로 편집하여 생존자들과 회원들에게 배부하여 각자 집에서 연습할 수 있도록 제공하기도 하였다.

 

새해가 되어도 코로나19 상황이 종식되지 않고 지속되면서, 인권의학연구소는 길음판소리 국가폭력 생존자들과 온라인으로 만나는 것을 시도하였다. 처음에는 길음판소리 생존자들 대부분이 온라인 방식의 모임에 접속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사무국의 기술적 지원이 필요했다. 2 1일. 1시!  드디어 모임 초청 링크를 통해 한 명 두 명 접속해서 화면에 모습과 목소리가 나오자, 모두들 동시에 반가움을 나누느라 소리가 엉켜 잘 들리지 않았으나 환하게 웃는 표정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후 매주 길음판소리 국가폭력 피해생존자들의 줌회의를 통한 4차례의 온라인 만남이 가능하게 되었다. 

 

첫 만남 (2 1, 1)에서는 화상을 통하여 그동안 못 만났던 생존자들간 인사와 근황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참여자들은 예년의 길음판소리 공연 실황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그 시간들을 회상하기도 했다.

 

(사진) 첫번째 온라인 집단치유모임  

두 번째 모임 (2 8, 1)에서는 구명우 회원의 판소리 독창으로 '사랑가'를 듣는 것으로 모임을 시작하였다. 이화영 소장이 건강하고 주체적인 삶의 연장선에서 웰다잉은 각자의 존엄한 삶을 주체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임을 말하면서 회원들 각자가 준비하는 삶의 마무리 작업들을 서로 나누기도 하였다. 유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장묘 준비 등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만약 내 삶이 1개월정도 남았다고 가정할 때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다음 모임에 서로 나누기로 하였다.

(사진) 두번째 온라인 집단치유모임

세 번째 모임 (2 15, 1)에서 이화영 소장의 월다잉에 대한 슬라이드 프리젠테이션이 있었다. 강의 후,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작성을 어디에서 어떻게 하는가?'를 두고 4월~6월 경에 ()호스피스 코리아 실무자의 연구소 방문을 통해 함께 설명을 듣고 작성하는 기회를 갖기로 하였다. '웰다잉'에 이어 다움 모임부터는 '웰빙'을 모임의 주제로 삼기로 하였고, 참여자 중에서 수면장애 건망증을 제안하여 이 주제로 네 번째 모임을 갖기로 하였다. 

 

(사진) 세 번째 온라인 집단치유모임 슬라이드 자료  

마침내 네 번째 모임을 위해 2 24 () 1시에 손창호 정신과 전문의를 줌회의로 초청하였고, 수면장애 건망증‘ ’치매에 대한 주제로 집담회를 가졌다. 기조 강의를 통해 수면장애 증세에 대처하는 일상적 팁(tip)으로부터 약물 사용에 이르기까지의 전반적 내용을 들었으며, 질의응답을 통해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도 알 수 있었다. 인권의학연구소는 희망하는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치매 예방을 위해 향후 치매 검사를 녹색병원에서 정신건강검진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을 제안, 공지하였다.

 

(사진) 네 번째 온라인 집단치유모임에 초청된 손창호 정신과 전문의

생존자들은 평균연령이 60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이나 노트븍으로 줌회의 링크를 통해 온라인 회의에 참석하였는데, 이 과정은 피해생존자들의 효능감 증진에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온라인 회의에서 후속 집단모임의 주제를 정하면서 참여하는 생존자들이 주도적으로 관심있는 주제를 제시하고 정하도록 하였다. 인권의학연구소는 그 주제에 맞는 전문가를 섭외하여 초청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과정은 생존자의 역량이 강화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故 김승효 선생의 국가배상판결에 대한 장경욱 변호사와의 인터뷰"

 

지난 1 28,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김승효 선생에 대한 국가배상 사건 1심 선고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재판부는 고문과 건강에 미친 피해의 연관성을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재판이 열리기 한달 전 지난해 12 26일 김승효 선생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에 인권의학연구소는  김승효 선생 재판의 변호를 맡은 장경욱 변호사와 이번 재판 과정과 의미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사진) 간첩 조작 사건 전문 변호사로 불리는 장경욱 변호사

Q. 지난 목요일의  김승효 선생님 국가배상재판 결과를 요약해서 말씀해 주세요.

 

(장경욱 변호사) 2021 1 28일 오후 1 5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358호 법정에서 고 김승효 선생님에 대한 국가배상 사건 1심 선고가 있었습니다.

 

2020 10 22일 변론종결 후 1심 선고를 앞둔 지난해 12 26, 고 김승효 선생님께서 끝내 고문후유증으로 갑작스럽게 별세하셨습니다. 이번 1심 선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심 선고결과가 고인을 떠나보낸 유족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졌습니다. 고문후유증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돌아가신 고인과 유족들에게 누가 되지나 않을까 봐 그 어느 때 보다도 걱정도 커졌습니다.

 

다행히 1심 선고 국가배상판결에 의하면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의 불법체포, 구금 및 고문 가혹 행위에 의한 허위자백을 받아낸 불법행위 및 이를 간과한 채 허위자백에 기초하여 구속 기소한 검사의 불법행위를 인정하였습니다. 나아가 한국에 유학 와서 한국어도 서툰 고인이 일본어 통역인 없이는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재판을 받고 더욱이 불법증거들을 그대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아 중형을 선고하고 확정한 1심부터 상고심에 이르는 재판부의 모든 재판관들의 위법한 재판행위로 인한 불법행위를 인정하였습니다.

 

1심 판결은 또한 수감 기간 중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인 고인의 가족들이 정신과 치료를 요청하였음에도 이를 방치한 교도소 당국의 불법행위도 인정하였습니다.

 

1심 판결은 결론적으로 고인의 정신분열증과 위와 같은 공무원들의 일련의 불법행위 사이의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하여 국가가 고인과 그 유족들에게 일실손해, 기왕 치료비, 기왕 개호비 및 향후 개호비(생존 조건), 위자료의 손해배상을 지급할 것을 선고하였습니다.

 

Q. 지난 국가배상 재판에서의 핵심 쟁점은 무엇이었나요?

 

(장경욱 변호사) 고인에 대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의 불법 체포, 감금, 가혹행위, 이로 인한 허위자백에 기초한 위법한 기소와 위법한 재판, 그리고 교도소 공무원들의 치료 방치에 이르는 일련의 공무원들의 불법행위와 고인의 정신분열증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1심 국가배상 재판에서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사진) 영화 '자백'에 등장했던 故 김승효 선생

Q. 재판부가 김승효 선생님의 조현병 발생과 악화를 고문과 투옥에 따른 결과임을 인정하였나요?
또한, 이 부분이 재판 결과에 정당하게 반영이 되었나요?

 

(장경욱 변호사) 1심 판결문에 의하면 원고 김승효는 대학생으로서 평온한 일상을 살다가 갑자기 불법으로 체포, 감금되어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극도의 신체적 고통에 시달렸고, 정신적으로도 극한의 두려움과 절망에 빠졌으며, 이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조현병이 발병하였음에도 구금되어 있던 2,662일 동안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됨에 따라 그 증세가 악화되어 영구적인 장해를 입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출소 후에도 20여 년간이나 정신병원에 입원하였으며, 불법 구금일로부터 46년 이상이 지난 현재까지도 심적 고통과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피해망상, 정서적 불안정성, 충돌조절능력의 저하, 현실 판단력의 저하 등의 증상을 보이고 있는 점 원고 김승효가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하여 간첩의 누명을 쓰고 징역 12년 및 자격정지 12년이라는 무거운 형을 선고받고 조현병까지 앓게 되면서 그 부모와 가족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극심한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겪었을 것이고, 조현병을 앓고 있는 원고 김승효를 수십 년간 돌보면서 겪었을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고통도 상당할 것임이 경험칙상 분명한 점을 인정하였습니다. 고문후유증으로 청춘과 인생 전체가 망가진 채 그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인과 유족 분들게 손해배상액은 턱없이 미흡할지라도 고인과 유족 분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린 점에서 고인을 여읜 슬픔에 빠져 있는 유족 분들께 작은 위로가 되는 긍정적 의미가 있는 판결로 평가합니다.

 

Q.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으로서 어려움이 있었다면 말씀해주세요.

 

(장경욱 변호사) 재판의 핵심 쟁점인 고인의 정신분열증과 불법행위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고인께서 나쁜 나라로 각인된 한국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한국 방문을 꺼려하시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그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감정신청이 불가능하였습니다.

(사진) 2019년 손창호 전문의가 직접 일본에서 故 김승효 선생을 만나 면담 진행

다행히 인권의학연구소의 도움으로 정신과 전문의 손창호 선생님께서 바쁘신 중에도 귀중한 시간을 내셔서 1 2(2019 8 30, 31) 일정으로 일본 교토를 방문하여 고인과 주변 지인들, 가족들을 면담하고 고인에 대한 과거 여러 자료들(앨범, 입원치료 기록 등)과 뉴스타파 영상 자료들을 검토한 후 소견서(정신의학과적 평가보고서)를 작성해 주셨습니다. 또한, 재판의 증인으로 법정에 나오셔서 고인의 정신분열증 증상과 고문 가혹행위 등 사이의 인과관계 및 고인의 정신분열증 증세가 최고 중증 등급으로 아주 간단한 단순 작업도 수행할 수가 없는 상태여서 노동능력상실률이 100%’임을 증언해 주셨고 1심 판결에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인권의학연구소 관계자 분들과 손창호 선생님의 고인과 유족 분들을 위한 정성 어린 지원과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삼가 고인의 영생을 기원하며 하늘나라에서나마 꼭 고국을 굽어 살펴주시기를 앙망합니다.

 

(사진) 재심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일본 교토를 직접 방문하여 지인과 고인의 형 김승홍씨와 함께 찍은 사진

지금까지인권의학연구소 장경욱 변호사와 함께  김승효 선생 국가배상소송 1심 판결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장경욱 변호사는 지난 2018 10월 김승효 선생의 교토 자택을 직접 방문하여 형사재심 무죄 판결문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이번 재판에서 김승효 선생과 그 가족의 억울함을 해소해드리기 위해 노력하신 장경욱, 신윤경 변호사에게 감사드립니다. 인권의학연구소는 앞으로도 고문과 같은 가혹행위가 개인의 건강에 미치는 피해 관련성을 입증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아래 본 재판과 관련된 기사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1281901001&code=940100 

1 29() 오전 10 30, 서울 중앙지방법원 서관 519호에서 재일동포 김병주 선생에 대한 재심1심 선고가 열렸다. 이 재판에는 재심을 요청한 일본 거주 가족을 대리해 서중희 변호사와 재일동포 김덕환 선생을 비롯해 인권의학연구소 활동가들이 동행했다.  

 

이날 재심 재판부는 1984년 당시 검찰이 기소한 42건 중 국가보안법에 해당하는 40건은 무죄를 선고하였으나, 1980년 비엔나 방문과 81년 북한 방문의 2건은 특수탈출에 해당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재판부는 국가보안법 관련 40건의 무죄 이유를 증거 부족으로 밝힌 반면, 유죄에 해당하는 2가지 경우 84 4 3차 공판 당시 김병주 피고인과 피고인의 변호인이 재판 과정에서 심문 내용을 증거로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지난 1984년 당시 재판이 흠이 있다고 판단하여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진 2021년 재심 재판에서, 과거 잘못된 84년 재판의 법정 증언을 근거로 이미 고인이 된 피고인이 소명할 기회조차 없는 상황에서 징역 4년형을 내린 것으로 이는 국가보안법 관련 재심 선고에서 매우 이례적 사례라고 하겠다.

(사진) 인권의학연구소는 재판에 동행하여 서중희 변호사와 인터뷰 진행

재일동포였던 피고 김병주 선생은 1984년 불법구금과 고문에 의해 국가보안법을 어긴 간첩으로 조작되었다. 1984년 김병주 선생에 대한 사형 선고는 대법원에서 상고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었다이후 4년여 기간을 사형수로 수감하던 중 1988년에 사형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같은 해 8월에 20년형으로 감형되었다. 재일동포였던 피고인은 고국에 돌아와 고문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되어 1998년 3월 형 집행정지로 출소할 때까지 총 14년 6개월을 감옥에서 살았다그리고 살아생전 재심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2009년 일본에서 사망하였다.

 

이번 재판의 재심 청구인은 일본에 살고 있는 김병주 선생의 아들이다. 2016년 재심을 청구해 지난해 재심 개시가 결정되었다. 이번 사건의 변호를 맡은 서중희 변호사(법무법인 혜인)는 사법부에서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기까지 약 4년의 시간이 소요되어 그 기간이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심의 의미가 ‘과거 확정된 원심판결에 흠이 있는 경우 판결의 취소와 사건의 재심판을 구하는 것이기에 이날 재판부가 1984년 재판의 법정 증언을 증거로 채택해 내린 징역 4년형에 대해 큰 유감을 표했다.

 

특히, 서중희 변호사는 당시 법정 판결이 국가기관의 불법구금과 고문에 의한 진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법적 효력이 상실되어 무죄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서 변호사는 이번 재판 결과가 재심 사건의 증거를 어떻게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제기할 필요성을 상시 시켰다라고 밝히면서 항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인권의학연구소는 김병주 선생의 재심 재판선고심에서 확인된 문제점과 향후 대응책에 대해 2월1일(월) 4시에 줌회의를 통해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양심수 동우회의 이철, 김원중, 이동석 선생과 집담회를 갖기로 했다. 또한 국가폭력 생존자 자조모임인 '정의를 구하는 국가폭력생존자 모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이 선고심이 보여준 모순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자 한다. 

지난 3월 12일(금), 서울 행정법원에서 인권의학연구소가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진행 중인 고문 가해자 훈포상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관련 네 번째 재판이 열렸습니다.

 

이 재판에는 7-80년대 고문 피해자셨던 선생님들이 직접 참여해주셨고, 재판이 끝나고 몇몇 선생님께서 JTBC와 언론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에서 고문 피해자 선생님 중 한 분은 이 재판의 의미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제는 좀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고문으로 날조되어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살아야 했던 지난 삶,

그리고 무죄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가해자들의 이름은 국가안보라며 피해자들이 나서서 잘못된 부분을 시정해야 상황.

 

그 과정에서 이제는 팔십 노인이 되신 피해자의

이제는 조금 일상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외침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사진) jtbc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순자, 김장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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