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47년 만에 열린 재심 재판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 유정식 선생의 재심이 시작되다-

 

 1 20() 오전 11 20, 서울 고등법원 서관 302호에서는 47년 만에 재심 재판이 진행되었다. 재심 재판의 주인공은 지난 1975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가 된 유정식 선생이다. 이날 재판은 재심이 개시되고 처음 열린 공판이다. 오늘은 유정식 선생을 비롯해 같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함께 재판에 참여해 유정식 선생을 응원했다.

 

  <사진-1> 재판이 끝나고 장경욱 변호사(왼쪽)는 유정식 선생(중간)에게 재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1 20분 시작된 재심 첫 재판은 재판부(재판장 윤승은)의 몇 가지 안내와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유정식 선생의 변호를 담당한 장경욱 변호사(법무법인 상록)와 신윤경 변호사(법무법인 동아)는 재판부에 항소 이유 보충서를 비롯해 다양한 자료를 제출했다. 이 자료들은 1975년 당시 유정식 피고의 진술서와 재판에서의 내용의 신빙성을 탄핵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변호인에게 자료 내용에 대한 질의를 이어나갔고, 변호인은 하나하나 답변했다. 이후 재판부는 검찰 측에 오늘 새롭게 변호인 측이 제시한 자료에 대한 의견을 묻자 검사는 의견 없음으로 일관했다.

 

 그렇게 20여분이 지나고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유정식 선생은 재판부를 향해 최후진술을 할 수 있는지 물었고, 재판부는 기회를 주었다. 준비된 원고를 꺼내 유정식 선생은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다. 유정식 선생은 1975년 갑자기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된 상황부터 설명했다. 45일간 중앙정보부에 불법 구금되어 수사관들에 의해 어떻게 고문을 당했는지 설명하면서 유정식 선생은 중간중간 울먹였다.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유정식 선생에게 진술서를 강요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즉각 옆방으로 데려가 고문을 하고 다시 진술서를 작성하게 했다고 밝혔다.

<사진-2> 재판이 끝나자마자 삼척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인 김순자 선생(왼쪽)은 최후진술을 하고 힘들어하는 유정식 선생(오른쪽)을 위로했다.

 또한, 재판 당시에도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재판에서 유정식 선생이 고문에 의해 작성된 진술서와 조금이라도 다르게 답변할 경우 엄청난 고문이 기다릴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협박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정식 선생은 어떠한 대처도 할 수가 없었으며, 속수무책으로 재판은 끝나버렸다. 결국 1심 재판의 결과는 사형이었다. 유정식 선생에 따르면, 1심 재판에서 사형이라는 재판부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고 한다. 그렇게 억울한 재판이 이어지고, 결국 유정식 선생은 23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이러한 내용을 재판부에 호소하면서 유정식 선생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밝혔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제 저는 올해로 나이가 83세입니다.
이제는 삶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부디 공정한 재판을 통해 저의 이 억울함을 풀어주시길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

 

 재심을 신청하고 4년여의 시간 만에 개시가 결정된 이 재판은 유정식 선생 개인은 물론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상당하다. 1970-80년대 독재정권 하에 국가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개인의 삶을 통제하고 말살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 정당성이 결여된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무고한 개인들의 삶에 개입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재판 과정을 면밀하게 파악하여 알리는 것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이 같은 국가폭력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노력일 것이다. 

 

 앞으로 ()인권의학연구소는 유정식 선생의 재판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여 재판 과정과 내용을 소상히 알리고자 한다. 다음 재판기일은 오는 3 17일 오후 4 40, 서울 고등법원 서관 302호에서 열릴 예정이다.

[법률] 고문 피해자와 고문 가해자 사이의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간첩조작 피해자 유족, 국가와 이근안을 상대로 손배소 청구 관련- 

 

지난 6, 간첩조작 피해자 유족이 고문 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이 간첩조작 피해자는 1965년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나포되었다가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13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간첩 혐의로 불법 체포되었고, 당시 그에게 고문을 주도했던 자가 바로 이근안이다.

 

  <사진-1> 지난 1월 10일, 간첩조작 피해자 유족의 소송 관련 기사. (출처: 뉴시스)

피해자는 이근안에 의해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하루아침에 간첩이 되었고, 7년의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43년이 지난 2021 6월 그 피해자는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당시 이근안과 국가기관은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죄 없는 시민을 하루아침에 간첩으로 만들어 버렸음이 밝혀진 셈이다.

 

그럼에도 이근안은 지난 2013년 자서전을 통해 이 피해자에 대해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문가해자인 그는 반성과 사과는 온데간데없고 여전히 자신의 불법적이고 반인륜적인 범죄를 합리화하는데 급급하다.

 

<사진-2> 지난 2013년 출판된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자서전. 

이러한 배경에서 이 피해자 유족(이 피해자는 지난 2006년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은 이근안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번 소송은 근본적인 한계를 내재하고 있다. 하나는 수많은 피해자가 존재하지만 고문가해자는 언제나 이근안 한 사람이라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현행법상 고문가해자에 대한 법적 책임은 형사소송의 테두리가 아닌 민사소송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고문 피해자는 알면서도 고문 가해자는 알 수 없는 걸까. 그리고 우리 현행법은 왜 고문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고 있는 걸까. 이같이 잘못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해결돼야 한다.

 

고문 가해자를 알아야 한다

 

첫째, 고문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2021 10월 기준, 국가기관에 의해 간첩조작으로 사형, 무기징역,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수십 년이 흘러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사람만 449명에 이른다. 이는 재심이라는 과정을 통해 드러난 수치이며,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간첩조작 고문피해자들의 수는 사실상 추정조차 불가능하다.

 

이렇게 피해자는 존재하는데 여전히 가해자는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현실이다. 여전히 우리가 알고 있는 고문 가해자는 고문 기술자 이근안 밖에는 없다. 이근안도 수많은 고문 가해자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1970-80년대, 고문을 통해 간첩조작을 만들었던 대표적인 수사기관인 중정·안기부(현 국정원), 보안사(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치안본부(현 경찰청) 등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다행히 지난해 11, ()인권의학연구소가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제기한 부적절한 서훈 취소 관련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행정법원은 1970-80년대 고문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고문가해자가 누구인지 밝히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러나 이 판결을 통해 공개될 고문가해자는 50여 명에 그친다. 당시 수많은 고문피해자의 숫자를 생각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

 

둘째, 고문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간첩조작 피해자 유족이 이번에 이근안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현재 한국 현행법으로는 공소시효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 현재로서는 고문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공소시효로 인해 법적 근거가 없는 실정이다. 이에 고문피해자가 구제를 받으려면 국가에 내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통한 금전적 배상이 전부인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대 국회를 시작으로 20, 21대 국회에서 고문피해자 지원과 고문가해자 처벌을 위한 '고문방지 4법안'을 제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이 고문방지 4법안은 고문방지 및 고문피해자 구제·지원에 관한 법률안(제정) 고문피해의 회복을 위한 청구권의 소멸시효에 관한 특례법안(제정) 형법 일부개정법률안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으로 구성됐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고문피해자에 대한 의료지원과 함께 고문가해자에 대한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10년 동안 이 법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당시 새누리당의 김진태 의원이 법사위에서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131명의 국회의원이 관련 법안을 공동 발의하면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으나, 여전히 계류 중이다.

 

며칠 전, 고문기술자 이근안과 국가를 상대로 간첩조작 피해자 유족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 청구소송에 내재된 구조적 결함을 인지하고 이제는 이를 해결해야 한다

[1억 6712만 원]

 

지난 11일 제주지방법원 제2민사부에서 35년 전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7년의 세월을 억울하게 옥살이했던 故 오재선 선생에게 국가배상의 책임이 있다며 “1억 6712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1986년 오재선 선생님은 경찰(당시 치안본부)에 연행되어 한 달 동안 불법 구금과 모진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하고 간첩이 되었습니다. 그 거짓 자백으로 기소된 법정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한 당시 1심 주심판사가 바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입니다.

그 이후의 삶을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고문과 옥살이, 그리고 30여 년을 간첩의 딱지로 한국사회에서 살아야 했을 故 오재선 선생과 그 유족들. 반면, 그런 판결을 내리고도 법조인으로 가장 높은 자리라고 할 수 있는 대법원장까지 역임한 양승태.

과연 “1억 6712만 원”이 故 오재선 선생과 유족들의 망가진 삶을 대변하는 돈인가.

그런 판결을 내리고도 양승태가 지난 30여 년 동안 누린 잘못된 부와 명예는 얼마일 것인가.

터무니없는 금액도 화가 나지만, 마치 이 돈으로 피해자와 그 유족들의 아픔에 국가는 모든 의무를 다한듯한 기사를 보면 이건 정말 아닙니다.

(아래 사진이 살아계실 때 오재선 선생님의 사진입니다.)

[아버지는 보도연맹 사건으로, 아들은 간첩조작 사건으로]

 

우리 근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한 가족에게 고스란히 남겨져 있습니다.

 

아버지는 6·25 발발 직후인 1950715일 여수경찰서의 호출을 받고 집을 나섰다가 다음날 다른 희생자 120여명과 함께 여수 애기섬(현 남해군 소치도) 앞바다에서 총살당한 후 수장됐다.

 

그리고 그 아들은 19862월 간첩 누명을 쓰고 광주 505보안대의 모진 고문수사를 받고 간첩이 되어 7년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우리는 과연 이 이야기를 억울한 한 가족의 서사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이 가족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며,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와 같다.

 

아래는 이 사건의 피해자인 김양기 선생의 인터뷰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area/honam/1015686.html

 

여순사건·간첩조작…‘국가폭력 대물림 희생’ 묻히지 않길

[여순사건 73주기] 김용현·양기씨 부자의 비극

www.hani.co.kr

 

[우리는 이 억울한 죽음에 책임져야 합니다]    

 

지난 9월 15일, 80대 노인이 돌아가셨습니다.     

 

이 노인은 1970년대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얼마 전 지속적으로 재심을 청구했지만 끝내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1971년, 보안사에 의해 불법구금,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 노인은 재판에서 판사들을 향해 끊임없이 공소사실을 부인했지만, 돌아온 것은 징역 12년이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12년이라는 감옥생활만을 생각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간첩의 멍에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쇠창살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습니다. 평범한 시민의 인생 전체를 망가트린 이 국가의 범죄. 그러나 이 죽음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돌아가셨고, 가실 피해자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 국가의 잘못을 가해자인 국가가 먼저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어렵게 어렵게 증명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이 현실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으며, 이러한 죽음에 관심 갖지 않는 우리 사회와 언론, 정치권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9161627001

 

"불법체포 됐다" 간첩단 사건 재심 청구하던 80대 노인 지병으로 숨져

1970년대 일본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옥살이를 했다 재심 청구 절차를 밟던 80대 노인이 사망했...

www.khan.co.kr

 

[‘통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서 또다시 ‘무기징역’ 구형한 검찰]

 

검찰은 변하지 않는다.

검찰은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도 알지도 못한다.

검찰은 과거 독재권력의 앞잡이 역할을 했던 그때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

 

박기래 선생에 대한 재심개시결정문 (출처: 민중의소리)

수사와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검찰은 과거 독재정권 하에 벌어진 수많은 간첩조작 사건에서 수사하지 않았다.
수사권한이 없는 보안사, 안기부, 치안본부에서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일반 시민을 간첩으로 만들어 오면 으스대며
기소를 했을 뿐이다.

 

그 수사가 법리적 토대 위에서 제대로 이루어진 것인지 따지지도 않고 자신들의 승진과 권력욕에
빠져 기소를 남발하고 사형 구형을 남발했다.

 

그런 검찰은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았다.

 

지난 6월 30일, 박정희 정권 시절 수사권한이 없던 보안사가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 조작한
'통혁당 재건위 사건'의 재심에서 어떠한 근거도 없이 또다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이미 지난 2018년 동일한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인 이동현 선생은 "당시 민간인을 수사할 수 없는 군 보안사가 이 씨 등을 영장 없이 체포하는 등 불법 수사한 점과 구타, 물고문, 전기 고문 등 가혹행위를 통해 허위진술을 받은 점 등을 인정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동일한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았던 고 박기래 선생의 이번 재심에서 검찰은 달랑 2장짜리 서면을
통해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검찰이 주장하는 무기징역의 근거는 당시 재판정에서 피고인이 했던 진술이 전부다.

 

몇 번을 더 이야기해야 하는가.

당시 그 법정에는 자신을 고문했던 수사관들이 지켜보고 있고,

검찰은 그들과 한통속이었는데.

만약 진실을 말하면 또 데리고 나가 무자비한 고문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걸 진두지휘했던 검찰이 3-40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그 유족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고 있다. 그것도 법의 이름으로.

 

검찰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그리고 검찰은 역사공부가 전제된 양심이 필요한 집단이다.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입니다.

https://www.vop.co.kr/A00001589131.html

 

‘통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서 또다시 ‘무기징역’ 구형한 검찰

‘고문 인한 허위자백’ 인정됐는데...재판부도 “이례적” 지적

www.vop.co.kr

 

[맥락이 부족한 이런 기사는 화가 납니다]

 

고 김병주 선생님의 재심 재판을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아시아경제의 이 같은 보도와 논조는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기사입니다.

 

기사 원문 페이지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간첩혐의 재일교포 재심서 ‘사형→4년’ 감형… 42개 혐의 중 40개 무죄"

 

그리고 기사의 첫 문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간첩으로 몰려 사형 선고를 받고 10년 넘게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재일교포가 37년 만의 재심에서
징역 4년형으로 감형받았다."

 

이 기사를 보면, 고 김병주 선생님 재심 재판부가 김병주 선생님에게 

큰 호의라도 베푼 것처럼 보입니다.

형은 사형에서 4년으로 줄었고, 82년 당시 김병주 선생에게 씌워진 42개의 혐의 가운데
무려 40개가 무죄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기사의 기자는 그냥 재판부의 판결만 듣고 기사를 작성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 맥락, 그리고 재판부, 검찰, 그리고 변호인 측의 주장들을 살펴보고 기사를 작성해야 합니다.

 

이 재판은 82년 당시 국가기관의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인한 사건이며, 

당시 재판의 하자가 있음을 현 사법부가 일정 부분 인정했기에 시작된 '재심' 재판입니다.

 

그리고 이날 서울 중앙지법 형사합의 29부 김창영 부장판사가 유죄로 인정하 2개의 혐의의 근거와 증거는

82년 당시 법정에서 있었던 고 김병주 선생의 증언만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황 증거, 물적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불법구금과 고문에 의해 날조된 기소, 그리고 당시 재판정에는 고 김병주 선생을 고문했던

고문수사관들이 방청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려움에 내뱉을 수밖에 없는 허위자백만을 증거로 삼고 있습니다.

1982년이 아닌 2021년 재심 재판에서 말입니다.

 

기자는 단순히 2021년 재판부의 선고만을 기계적으로 받아 적지 말고

당시의 역사적 맥락, 재심 재판의 의미, 그리고 재판부 선고의 합리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요?

 

8월 24일 오후  4시에 있는 고 김병주 선생의 항소심 재판에 참석해서

혹시 이 같은 기사가 또 나오는지 감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입니다.

https://view.asiae.co.kr/article/2021020309134390843

 

간첩혐의 재일교포 재심서 ‘사형→4년’ 감형… 42개 혐의 중 40개 무죄

간첩으로 몰려 사형 선고를 받고 10년 넘게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재일교포가 37년 만의 재심에서 징역 4년형으로 감형 받았다. 법원은 당시 검찰이 낸 증거 대부분이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작성돼

www.asiae.co.kr

 

 

[국가공무원은 범죄를 해도 왜 처벌받지 않나요?]

 

7월 21일 수요일, 범죄를 저지른 국가공무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 있었습니다.

 

그 공무원들은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을 만들고, 국정원이 당시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조작하기 위해 출입국 관련 증거를 조작한 정황이 드러나자 재판의 비공개 증언을 언론에 일부러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국정원의 서천호 전 2 차장, 이태희 전 대공수사국장, 그리고 하경준 전 대변인입니다.

 

우리는 이럴 때 단순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왜 범죄를 저지른 국가공무원은 처벌받지 않나요?"

 

아무런 혐의가 없는 일반국민에게 '간첩'이라는 누명을 씌어 그 개인의 인생은 망가뜨리고,

본인은 그 희생을 거름 삼아 승진하며 이 사회에서 큰소리치며 사는 이게 정당한가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도구삼아 자신의 이속을 챙기는 국가공무원은

처벌받아야 합니다.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입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721117000004?input=1195m 

 

'유우성 간첩조작' 증언 유출 국정원 前간부들 2심 무죄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기자 =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재판의 비공개 증언을 언론에 유출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된 국가정보원 전직 ...

www.yna.co.kr

 

[미법도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48년 만에 무죄]

 

지난 6월 29일, 서울고등법원 김형진, 최봉희, 진현민 재판부는 미법도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의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29일 미법도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인 고(故) 박남선씨의 변호인 장경욱 변호사(왼쪽)와 신윤경 변호사(가운데), 박씨의 아들 박영래씨가 선고 이후 기자들과 만나 사건기록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출처: 뉴스1)

이날 무죄를 받은 故 박남선 씨는 대표적인 고문기술자인 이근안에게 고문을 당하고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허위자백을 하고 7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비롯한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맡아 '고문기술자'로 이름을 날린 이근안 전 경감 (출처: 뉴스1)

그리고 2005년에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이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아픔과 상처는 도대체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거 군부독재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간첩조작 사건을 만들었기에...

 

끝까지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관심을 가지고 피해 당사자와 그 유가족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입니다.

https://www.news1.kr/articles/?4355084&fbclid=IwAR00-VtD55lmZPzoodLYYfHPhN64PEXExKlVvbVIq0Wm7nNTTK07BsDdGPI 

 

'미법도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재심으로 48년만에 무죄…법원 '깊이 사과'

사실 앞에 겸손한 민영 종합 뉴스통신사 뉴스1

www.news1.kr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기사의 제목은 

 

"이근안 고문에 간첩 누명 쓴 피해자, 42년 만에 재심 무죄"

 

기사는  건조하게 적혀 있습니다. 

 

기사 본문 사진 캡쳐 (출처: YTN)

그러나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잠시나마 

 

 피해자가 겪었던 고문의 신체적 아픔,

 피해자가 겪었던 억울한 정신적 고통,

출소 후에 경험했을 사회적 냉대와 경제적 고통,

그리고  피해자의 가족이 겪었을 아픔까지.

 

말로 표현할  없는 아픔이었을 텐데.

더군다나 이 피해자는 무죄를 받지도 못하고 

지난 2005년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먹먹한 가슴으로 이러한 질문을 던져봅니다.

 

"수많은 국가폭력 피해생존자들에게 과연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 원문입니다.

https://www.ytn.co.kr/_ln/0103_202106292215362421

 

이근안 고문에 간첩 누명 쓴 피해자, 42년 만에 재심 무죄

고문 기술자 이근안 씨에게 간첩으로 몰려 유죄 판결을 받...

www.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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