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 보이시죠?]

 

수요일마다 연구소 소강당에서 경쾌한 타악기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지난 3월 24일부터 집단 음악치유를 조심스럽게 시작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판소리 모임은 할 수 없어 마스크를 쓰고 손으로 참여할 수 있는 '타악기 집단 음악치유'를 시작했습니다.

북, 잼배, 봉고, 카혼 등 이름도 다 외우기 어려운 타악기들로 구성되었는데요. 처음에는 선생님들이 하시기 괜찮을까 걱정도 조금 했지만, 옆에서 선생님들의 연주를 보면 코로나가 사라지고 홍대로 나가서 버스킹을 하셔도 되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상상도 하게 됩니다.

 

그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서로 상대의 연주 소리에 맞춰 음을 맞추는 모습, 연주를 하면서 타악기와 하나가 되어 즐겁게 그 순강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분들의 아픈 과거가 조금이라도 그 순간 사라지는 것 같아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기회가 된다면 선생님들의 아름다운 공연을 보여드리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랍니다^^

인권의학연구소에 작은 꽃밭이 생겼다. 연구소의 한 귀퉁이에 황량하던 작은 공간이 형형색색의 꽃으로 채워지고 있다.  3주 전부터 연구소의 후원회원인 박순애 선생은 할미꽃부터 시작해 한련화, 꽃뱀무, 그리고 나런클러스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꽃모종을 조금씩 사서 손수 작은 꽃밭을 만들어가고 있다. 연구소는 이 꽃밭으로 인해 날씨만큼이나 화사한 봄을 선물 받았다. 처음엔 꽃모종만 가지고 오셨다면, 지난주엔 연구소의 밥상을 책임질 상추까지 심었다.

 

(사진) 할미꽃, 제라늄, 나런클러스, 한련화 등 총 10여종에 이르는 다양한 꽃들이 자라고 있는 연구소 작은 꽃밭.  

박순애 선생은 1970년대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전설로 불리는 원풍모방 노조의 부지부장으로 활동하며 핵심 간부였다. 원풍모방 노조는 1972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어떠한 단체행동도 허락되지 않던 살벌한 상황에서 어용노조를 청산하고 민주노조를 출범시켰다. 이에 원풍모방은 청계피복, 동일방직, YH무역 등과 함께 여성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펼친 한국 노동운동의 대표적인 민주노조였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원풍모방의 역사 한가운데 있었던 박순애 선생은 지난 2013년 김근태기념치유센터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며 본인이 사회 발전의 주인공이라는 긍지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진) 이 사진은 지난 2010년 원풍모방 여공이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룬 "민주노조의 전설-원풍모방 노동조합 운동사" 와 "못다 이룬 꿈도 아름답다" 를 펴내고함께 당시 지부장이던 방용석 전 노동부 장관과 찍은 사진이다.박순애 선생은 가장 중앙에 환한 미소와 함께 서 있다. (출처: 한겨레)

지난 3주 전부터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중요한 행위자로 현장에 있었던 박순애 선생은 연구소에서 호미를 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꽃모종 몇 개와 호미, 그리고 퇴비를 조용히 사서 오셨다. 그리고 황량하던 연구소의 귀퉁이에 가서 잡초를 뽑고, 공간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박순애 선생의 작은 텃밭은 다양한 꽃들로 채워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 월요일에는 연구소 직원들이 싱싱한 상추를 먹을 수 있도록 상추도 심었다.

 

(사진) 호미를 들고 꽃과 상추를 직접 심고 있는 박순애 선생

형형색색의 꽃들도 채워지고 있는 이 공간은 이제 연구소에 오시는 분들이 한 번씩 가봐야 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 김장호, 송기복, 최양준 선생 등 연구소에 오셨던 피해생존자 분들은 이곳에서 같이 사진도 찍고 담소를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박순애 선생의 보이지 않는 도움으로 가꿔지고 있는 이 작은 꽃밭으로 인해 연구소는 요즘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싱그러운 봄을 만끽하고 있다. 

(사진) 연구소에 오는 분들이 새롭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소가 되고 있는 꽃밭.  

며칠 전부터는 수녀원의 수녀들도 관심을 보이며 이 공간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앞으로 황량했던 이 공간에 심긴 꽃들과 상추들로 인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약속된 시간보다 항상 일찍 와서 조용히 호미를 들고 연구소의 꽃밭을 가꾸고 있는 박순애 선생의 시간과 노력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 연구소의 작은 꽃밭이 어떻게 바뀌어가는지 연구소의 페이스북을 통해 후원회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지난 3월 12일(금), 서울 행정법원 B 220호에서 고문 가해자 훈포상 관련 행정소송 4차 변론이 있었다. 이 소송은 인권의학연구소가 행정안전부를 대상으로 고문 가해자의 훈포상 취소에 따른 고문 가해자의 이름과 취소사유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이다. 이날 재판은 오후 2시 30분에 시작되어 약 15분간 진행되었고, 재판부에 따르면 오는 4월 9일(금) 선고가 진행될 예정이다. 재판에는 고문피해생존자인 김장호, 김철, 김순자, 유정식, 최양준, 박순애 선생과 인권의학연구소에서 이화영, 박은성, 박민중, 김태형 심리상담사가 참석했다.  

 

(사진) 4차 변론에 동행한 피해생존자들과 함께 서울 행정법원 앞에서 가해자 처벌을 외치다

짧은 재판이 끝나고 재판에 참석했던 고문피해생존자들은 이 재판의 담당 변호사인 김성주 변호사(법무법인 덕수)와 간담회를 행정법원 지하 2층에서 가졌다. 김성주 변호사는 오늘 재판에서의 쟁점은 무엇이었으며, 향후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소상히 설명하였다. 동시에 참석자들의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고, 이화영 소장은 고문피해자들이 직접 재판부에 진술서를 제출하는 것을 건의하였다. 이에 김성주 변호사는 재판부가 법적 판단을 내리는데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였다. 2주 후, 연구소에서는 3명의 고문피해자들의 진술서를 취합하여 법무법인 김성주 변호사에게 전달했다. 

(사진) 재판 후, 행정법원 지하 2층에서 고문피해생존자들과 김성주 변호사가 간담회를 갖다

또한, 이날은 JTBC에서 이 재판을 직접 현장 취재했다. JTBC의 기자에 따르면, 선고심이 있는 4월 9일 방송을 목표로 재판의 내용과 고문피해자 분들의 인터뷰를 수일 전부터 요청해왔다. 이에 재판이 끝나고 JTBC 측에서 마련한 장소로 옮겨 김장호, 김순자, 김철 선생은 약 2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서 고문피해생존자들은 이 재판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들에게 훈포상이 취소된 고문 가해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소상하게 밝혔다. 인터뷰 중 한 피해생존자는"이제는 좀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라고 나지막이 그러나 또렷하게 전달했다. 

(사진) JTBC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김순자, 김장호 선생

세 명의 인터뷰를 보면서 고문으로 날조되어 하루아침에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살아야 했던 그들의 지난 삶들을 보게 되었다. 또한, 3-40년이 지나 어렵게 무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에게 고문을 가했던 자들의 이름조차 국가안보라며 밝혀지고 있지 않아 피해자들이 나서서 직접 잘못을 시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권의학연구소는 이제는 노인이 된 피해생존자들이 일상을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끝까지 고문 가해자의 책임을 묻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지난 2 1() 오후 4, 인권의학연구소는 1 29() 오전 10 30분 서울 중앙지방법원 서관 519호에서 열린  김병주 선생 판결에 대한 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는 코로나와 일본에 계신 재일동포의 상황을 고려하여 온라인 줌(ZOOM) 회의로 열렸다. 참석자는 연구소에서 3(함세웅 이사장, 이화영 소장, 김장호 회원)과 일본에서 3(김원중 선생, 이철 선생, 이동석 선생) 그리고 이번 사건의 담당 변호사인 서중희 변호사가 참석하여 총 7명이었다.

 

(사진)  서울-일본 (도쿄, 오사카)간 줌 (ZOOM) 온라인 간담회 (2월 1일)

 김병주 선생의 재심 재판부는 1984년 당시 검찰이 기소한 42건 가운데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40건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였지만, 1980년 비엔나 방문과 1981년 북한 방문은 특수탈출에 해당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특히, 재판부는 지난 1984년 재판에서  김병주 선생이 자신의 변호사와의 나눈 법정 심문 내용을 유죄의 근거로 삼았다. 과거 잘못된 재판의 법정 증언을 근거로 이미 고인이 된 피고인이 소명할 기회조차 없는 상황에서 징역 4년형을 내린 것은 국가보안법 관련 재심 사건에서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사진) 간담회에 참석한 일본의 이동석 선생(좌)과 김원중 선생(우)

이 같은 판결에 대해 간담회의 참석자들은 다양한 평가와 함께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먼저, 재일동포 김원중 선생은 이번에 완벽한 판결은 못 받았지만, 그래도 간첩죄라든지 국가보안법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얻어냈으니까 큰 성과라고 하면서도 문제는 유죄로 판결한 2건의 특수탈출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일동포 이동석 선생은 이미 이전 재심들에서 북한에 다녀왔지만 무죄를 받은 사례들이 있음에도 이번 재판은 피고가 북한에 가서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단순히 북한을 다녀왔다는 사실만 가지고 유죄를 선고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담당 변호사인 서중희 변호사를 비롯해 모든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부분은 이번 재판이 재심임에도 불구하고 1984년 피고의 원심 재판에서 변호사와 주고받았던 심문 내용을 증거로 삼았다는 점이다.

 

재일동포 이철 선생은 제가 크게 걱정하는 것은 이번 판결이 이걸로 인해서 앞으로 있을 여러 재일동포나 아니면 국내 동포들의 재심 재판에 나쁜 사례로 하나의 법례로 인정될까 봐 그것이 상당히 걱정이라며 우려했습니다. 이화영 소장은 이에 동의하면서  김병주 선생의 재심이 다른 재심과 달리 피고인의 사망으로 인한 자기변호의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재판은 지난번 구미유학생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은데, 당시 구미유학생 사건의 연루자들은 원심 재판에서 왜 그렇게 진술했는지를 본인들이 다 해명을 할 수 있었다. 재판 당시 뒤에 수사관이 와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든가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자기변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김병주 선생의 경우는 본인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본인에 대한 해명을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다. 이 소장은 재판부가 이러한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피고가 어떤 변호도 할 수 없는 것을 증거로 삼아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은 허점이 상당히 많은 재판이라고 보았다.

 

(사진) 간담회에 참석한서울의  김장호 선생(좌)과 일본의 이철 선생(우)

이에 참석자들은 이번 재판으로 인해 재판부에 대한 불신이 생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철 선생은 지금까지 재일동포 사건은 계속 무죄가 나왔는데 거기에 대한 하나의 그 흐름을 한 번 끊으려고 하는 무슨 의도가 있지 않나 하는 느낌도 좀 들었다라고 말했다. 김장호 선생은 이번 사건이 법리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아 이 재판부가 앞으로 우리(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들) 재판에 대해서 브레이크를 걸자 하는 식으로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김원중 선생은 이러한 아쉬운 판결이 촛불 혁명으로 출범된 문재인 정권 하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과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구소의 이화영 소장과 함세웅 이사장은 향후 재판을 위해서 구체적인 노력들이 요구된다고 피력했다. 이화영 소장은 이번 간담회와 같이 항소심에서도 지속적으로 다양한 채널을 통해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담당 변호사와의 직접적인 소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함세웅 이사장은 구체적은 방안으로 이번 간담회에서 국가폭력 피해 당사자들의 생각을 요약 및 종합해서 재판부에 직접 전달하는 방안과 그동안 재일동포 중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경우, 재심 신청 현황 그리고 무죄받은 경우에 대한 종합 사례집을 만들어 재판부에 전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함 이사장은 재일동포라는 특별한 상황, 오랫동안 우리나라를 떠나 계셨고 또 일본이라는 특수한 영역 속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지닌 그 부분을 간과하고 국내 사람들을 1차적 대상으로 만든 국가보안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점을 지적한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비록  김병주 선생의 재판 결과는 아쉬움과 우려를 낳았지만, 이번 간담회를 통해 담당 변호사와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계기가 되는 긍정적인 부분도 발견했다. 이에 인권의학연구소는 앞으로 항소심은 물론 다른 국가폭력 피해 관련 재판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대응하도록 하겠다.

지난 3월 12일(금), 서울 행정법원에서 인권의학연구소가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진행 중인 고문 가해자 훈포상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관련 네 번째 재판이 열렸습니다.

 

이 재판에는 7-80년대 고문 피해자셨던 선생님들이 직접 참여해주셨고, 재판이 끝나고 몇몇 선생님께서 JTBC와 언론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에서 고문 피해자 선생님 중 한 분은 이 재판의 의미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제는 좀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고문으로 날조되어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살아야 했던 지난 삶,

그리고 무죄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가해자들의 이름은 국가안보라며 피해자들이 나서서 잘못된 부분을 시정해야 상황.

 

그 과정에서 이제는 팔십 노인이 되신 피해자의

이제는 조금 일상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외침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사진) jtbc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순자, 김장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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