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마지막 달,

()인권의학연구소와 함께하는 공동체 상영회에 후원회원님을 초대합니다.

 

 

영화는 129일 극장 개봉을 앞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한반도 식민과 분단의 역사 속에서

차별받고 외면당한 재일조선인.

 

하지만 끊임없이 나를 찾아서

비로소 두 개의 조국을 가슴에 품고,

 

오롯한 조선사람으로 살기 위해

분노하되 증오를 선택하지 않는 삶.”

 

지난 76년 동안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지켜온 사람들의 숭고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에는 저희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와 깊은 인연이 있는

재일동포 강종헌, 유영수, 이동석, 이철 선생님 등이 출연합니다.

 

202112월 연말, 좋은 사람들과 좋은 영화로 좋은 시간을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다만, 코로나로 인해 선착순 신청자 100명 만 모십니다.

 

- 일시: 1217() 오후 2

- 장소: CGV 피카디리1958 (종로3가역 2-1번 출구)

- 신청 : 인권의학연구소(02-711-7588 / imhrc@naver.com)

 

궁금하신 부분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편하게 문의해주세요.

 

()인권의학연구소 사무국 드림

 

 

[두 귀를 의심하게 만든, 간첩사건 재심의 핵심 쟁점]

- 보도일자: 21.07.28

 

 

2021년 들어 재일동포 고 김병주 선생과 고 손유형 선생의 재심 재판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다른 조작간첩 사건의 재심 재판과 달리 이 두 재판에서 우려스러운 점들이 발견되고 있다.

 

과연 이 재판의 문제점과 핵심 쟁점은 무엇인지 아래 기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62419

 

두 귀를 의심하게 만든, 간첩사건 재심의 핵심 쟁점

시대적 맥락 고려하지 못한 고 김병주-손유형 선생 재심 재판, 안타깝다

www.ohmynews.com

 

어제저녁 검찰이 상고를 했다고 합니다.

 

지난 10월 19일, 서울 고등법원에서 간첩조작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고 재일동포 손유형 선생님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사진) 1998년 가석방되어 아내 분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고 손유형 선생님입니다.

무죄의 이유는 크게 2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당시 간첩죄를 성립시켰던 유일한 증거는 피고인의 '자백'이었는데, 이 자백을 얻는 과정이 불법 구금, 고문, 회유로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하여 "임의성이 없는 자백"으로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유일한 증거가 임의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유죄를 내릴 근거가 사라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재심 과정에서 검찰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와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이번 재심 과정에서도 20년 구형을 했지만, 그 구형이 마땅한 이유와 증거를 전혀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판결문에서도 명확하게 검사가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법정에서 증거로 다투지도 않았으면서, 다시금 상고를 하며 재판을 지연시키는 전략만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40년을 기다린 유족에게 또 다시 심장에 비수를 꽃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재판을 계속해서 참석하면서 저는 검찰이 법정에서 증거로 다투는 장면을 보지 못했습니다. 판사의 질문에는 AI처럼 "서면으로 답변하겠습니다"라고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검찰이 상고를 했습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납니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을 때까지 유족과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손유형 선생의 무죄를 축하드립니다

  -39년만에 밝혀진 진실-

 

 무죄를 선고한다는 판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청석에 앉아있던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39년 만에 밝혀진 진실이 그동안 가슴속 깊은 곳에 억누르던 감정을 나오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늦었지만 하늘에 계신 재일동포  손유형 선생의 무죄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 10 19() 오후 2 10, 서울 고등법원 서관 403호에서 진행된  손유형 선생의 선고재판에서 재판부(서울고법 형사 12-1) 1981년의 원심을 파기하고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재판은 지난 2017  손유형 선생의 유족이 재심을 신청하고, 4년이 흘러 2021 1월 재판부가 재심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개시되었다. 2021 3 23일을 시작으로 총 6번의 재판을 거쳐 이번 무죄에 이르게 되었다.

 

 

  손유형 선생 재심 재판 일정

- 03 23 : 1차 공판

- 04 20 : 2차 공판

- 05 25 : 3차 공판

- 07 13: 4차 공판 (공범 손종규, 손유승, 손유배 무죄 판결)

- 09 14: 결심 (변호인 측 증인 진술)

- 10 19 : 선고 ( 손유형 무죄 판결)

<사진-1> 지난 10월 19일, 무죄 판결 이후 재판에 참석했던 유족들과 인권의학연구소 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 12-1부의 최봉희 재판장은 명쾌한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 따르면,  손유형 선생은 1981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 의해 영장 없이 불법 구금되었으며, 이후 46일 동안 고문과 회유 등 불법적인 수사를 받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특히, 이 불법적인 수사과정에서 국가기관이 피고인들에게 받은 자백은 임의성이 없는 진술로 인정했다.

 

 이에 원심에서 피고에게 사형을 선고한 증거는 유일하게 피고인들의 자백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재심 과정을 통해 살펴본 바에 따르면 재판부는 당시 피고인들의 자백이 임의성이 없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지난 9 14일 결심재판에서 징역 20년을 구형한 검찰은 자신들의 구형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으므로 재판부는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사진-2> 이번 재판 관련기사로 재판과정에서의 핵심 쟁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지적한 기사다.

 이번 재판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러한 판결을 반길만한 결과다. 이번 재판에서 법리적 다툼의 핵심 쟁점은 간첩죄 또는 국가보안법이 아니었다. 핵심은 이 재판이 재심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인이 된 피고인이 군부독재 하의 당시 원심 법정에서 했던 진술이 법적 효력이 있는지를 다투고 있는 부분이다.(이와 관련한 상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62419)

 

 결국 피고가 국가기관(안기부와 검찰)에서의 진술은 고문과 회유 등으로 거짓으로 할 수 있지만, 왜 법정에서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는지를 두고 계속 다투었다. 그러나 당시 피고를 고문 수사했던 수사관들이 방청석에 앉아 감시하고 있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같은 법리다툼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또한, 1981년 법정에서 거짓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던 피고가 이미 고인이 된 상황에서 진실을 말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번 재판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사진-3> 지난 9월 14일, 3시간이 넘는 결심 재판을 마치고 다같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 남자가 故 손유형 선생의 차남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재판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번 무죄 판결은  손유형 선생과 같이 재일동포이면서 이미 고인이 된 피해자들의 향후 재심 재판에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번 재판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판결문을 읽었던 재판장의 태도였다. 이번 재심 재판 내내 아주 꼼꼼하게 재판에 임했던 최봉희 재판장은 판결문을 읽으면서 감정이 북받쳐 중간중간 감정을 추슬렀다. 그리고 마지막 자신의 무죄 선고를 들은 유족을 향해 다시 한번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품격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이러한 판사들이 사법부에 많아지길 기대한다.

[저녁 8시 30분에 끝난 재심 재판]

 

어제 저녁 8시 30분에 재판이 끝났습니다.

재일동포 고 손유형 선생님의 재심 재판이었습니다.

 

<사진> 해가 진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고 손유형 선생님 차남(오른쪽에서 세번째)과 함께 찍은 사진.

 

이번 재판은 일본에서 오신 손유형 선생님의 차남과

살아생전 손유형 선생님과 여러 번 인터뷰를 했던 한 연구자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5시 30분부터 휴식없이 약 3시간 동안 이어진 재판동안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제 앞 자리에 있었던 손유형 선생님의 차남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사형을 내린 법정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증언을 해야했을 아드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를 되내이게 되었습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 아드님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증언시간에 사법부를 향해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부디 현명한 판결로 돌아가신 저희 아버님과
저희 가족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특별한 교육] 영어 수업에 이어 일본어 수업까지!!

 

"곤니치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요즘 연구소에서 영어뿐만 아니라 일본어 수업도 한창입니다!

여느 일본어 학원보다도 열의가 뜨겁고 특별한 수업입니다.

 이유는 강사와 수강생 모두 (2차 백신 접종까지 완료하신 ) 국가폭력으로 피해를 입으신 선생님들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어 강사 선생님은 젊은 시절 일본에서 오랫동안 일하시면서 혼자서 일본어를 마스터하신 김장호 선생님입니다. 그리고 김장호 선생님은 한국에서 일본어 학원을 운영하신 경험도 있으셔서 우리 수강생들(국가폭력 피해 생존자)을 위한 교안도 직접  만들어 오십니다. 일주일에  번씩 진행되는  수업에 열정적으로 해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선생님들도 히라가나를 써 내려가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일본어 수업이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1970-80년대 간첩조작 사건으로 옥고를 치러야 했던 재일동포 분들을 위한 일본 구원회 모임이 있습니다. 그 구원회 분들을 당시 한국말을 전혀 못해도 꼭 필요한 한국말을 배워서 김포공항에서 서대문 형무소까지 어렵게 어렵게 찾아오셨던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4-50년이 지난 재심에도 항상 오셨습니다. 한국 법정에서의 내용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그 자리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우리 피해자 선생님들은 그분들과 아주 짧게라도 일본말로 인사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일본어 수업을 배우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서로 왕래할  없지만,  기간 동안 우리 선생님들이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일본어 수업을 하셔서  다음에 일본 재일동포 분들 그리고 구원회 분들을 만나셔서 짧게라도 일본어로 대화할  있다면 너무 감동적이지 않을까요?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장호 선생님, 

그리고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선생님들 모두 응원합니다!^^ 

재일양심수동우회, 2기 진화위에 진실규명 신청을 하다. 

 지난 30(), 재일양심수동우회는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2기 진화위)에 재일동포 간첩조작 진실규명 신청을 했다. 이날 신청은 특별히 인권의학연구소의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와 재일양심수동우회 대표로 이동석 선생이 직접 2기 진화위 정근식 위원장을 만나 신청서를 전달했다. 이 자리는 재일양심수동우회의 요청에 의해 인권의학연구소가 위임을 받아 마련되었다.

<사진-1> 2기 진화위 사무실에서 이화영 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정근식 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에게 진실규명 신청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20 6 9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개정되면서 약 10여 년만에 2기 진화위가 출범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 법에 근거하여 2기 진화위는 지난 12 10일 재출범하였다. 1기 진화위가 2005 12월 출범해 2010 12 31일까지 활동하면서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집단학살부터 독재 시기 간첩 조작 사건과 같은 다양한 과거사 진실규명을 위해 활동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밝혀져야 할 진실들이 산재해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재일양심수 사건이다.

 

 1970-80년대 군부 독재정부는 시민들에 의해 선출된 정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치적 정당성이 없었다. 이에 이들은 북한과 한반도 분단의 현실을 이용해 다양한 형태의 공포정치를 일삼았다. 예를 들면, 일반 시민들을 불법 구금하고 고문하여 수많은 간첩들을 만들어냈다. 그 가운데 가장 조작하기 쉬운 집단이 바로 재일동포들이었다. 당시 재일동포들이 거주하던 일본의 오사카 지역에서 민단과 조총련 사이에는 38선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그곳에서는 재일동포들이 민단과 조총련을 모두 알고 지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남북 분단의 현실을 이용해 군부 독재정부는 모국을 찾은 재일동포 유학생들을 무조건 잡아 조총련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조작간첩을 양산했다. 이 과정에서 재일동포들은 한국말이 서툴렀기 때문에 법적인 자기 방어권을 행사하는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진-2> 1975년 11월 22일, 김기춘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이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대대적으로 언론에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중앙정보부(안기부), 치안본부, 보안사령부로 대표되는 국가기관들이 만들어 낸 재일동포 조작간첩의 피해자는 150여 명(추산) 정도에 이른다. 이 가운데 1기 진화위 조사를 비롯해 2021년 기준으로 무죄를 선고받은 피해자는 38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 2기 진화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하는 재일양심수 명단은 37명에 불과하다. 이 숫자가 바로 국가기관인 2기 진화위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일단 이 과거사는 국가의 잘못이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명분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적으로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지내고 있는 피해자들을 찾아내는 것이 민간의 힘으로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국가기관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이분들을 찾아내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특히, 이분들의 나이가 고령인 점을 고려하면,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도 중요한 점이다.

<사진-3> 지난 2019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이 오사카에서 열린 재일동포와의 간담회에서 재일양심수동우회 대표인 이철 선생과 악수를 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9 6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오사카에서 열린 재일동포와의 간담회에서 재일동포 조작간첩 피해자분들에게 대통령으로서 사과를 하고, 동시에 정부 차원의 진실규명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군부 독재시절, 많은 재일동포 청년들이 공안통치를 위해 조작된 간첩사건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지난해(2018년) 12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피해자들이
모여 만든 ‘재일한국 양심수 동우회’가 제3회 ‘민주주의자 김근태상’을 수상했습니다.
올해(2019년) 초 서울고법에서 간첩단 조작사건의 피해자에게 34번째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재심으로 무죄판결이 이어지고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받기도 하지만, 마음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빼앗긴 시간을 되돌리기에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정부는 진실을 규명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갈 것입니다.
무엇보다 독재권력의 폭력에 깊이 상처 입은 재일동포 조작간첩 피해자분들과 가족들께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대표하여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통령이 직접 공개사과를 했기 때문에 과거의 진실을 밝히고 우리 사회의 화해를 위해 출범한 국가기관인 2기 진화위가 적극적으로 나서 과거 국가의 잘못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재일동포 조작간첩의 피해자분 중에는 아직도 대한민국인 모국에 오면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갈 것을 두려워해 한국에 오는 것을 꺼려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대한민국이 민주화되었고, 사회가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이번 2기 진화위 조사를 통해 알려드려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역할이고, 이번 2기 진화위의 역할일 것이다.

 

 다행히 이날 정근식 위원장은 이 사건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재일양심수동우회와 인권의학연구소의 요청사항에 대해 공감했다. 인권의학연구소는 지속적으로 재일양심수동우회와 긴밀히 협의하면서 이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신청과정에서 직접 정근식 위원장을 만나 진실규명의 필요성을 전달한 함세웅 이사장, 일본에서 어려운 환경임에도 신청 자료를 만들어 한국으로 보내준 이철 선생과 이종수 선생, 그리고 한국에서 직접 이 자료를 확인하고 소통창구의 역할을 담당한 이동석 선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사진-4> 2기 진화위에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하기 전, 이화영 소장(왼쪽)과 이동석 선생(오른쪽)이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 유투브 영상은 지난 8월 19일 KBS에서 방영된 영상입니다.

 

해방 후 60만 명의 동포가 일본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들이 태어났고 차별과 설움 속에서 성장했다.

성장한 아이들은 모국 유학을 선택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결정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1ww7ytaxco

 

조국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스파이의 올가미였다.

 

1970-80년대, 북에서 내려오는 간첩이 줄어들자

한국의 정보기관은 일본을 경유한 ‘우회 침투’에 주목했다.

재일동포 젊은이들은 언제든 잡을 수 있는 어항 속의 물고기였다.

불법 연행과 고문, 그리고 한국사회의 외면 속에서

재일동포 젊은이들은 스파이가 되었다.

 

스파이라는 낙인은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2010년부터 재일동포 간첩 조작사건의 재심이 시작되었고

피해자 130여 명 중에서 재심을 신청한 36명 전원이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아직도 많은 피해자가 스파이의 낙인을 안고 숨어 살고 있다.

 

김효순 전 [한겨레] 대기자가 스파이를 찾아 사죄와 위안의 여정에 나선다.

 

“프리젠터인 김효순 기자 역시 민청학련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은 국사범이었다.

같은 시기, 같은 감옥에서 같은 고통을 겪었고,

기자로서 재일동포 스파이들의 삶을 일찍부터 오랫동안 기록했다.

김효순 기자이기에 털어놓을 수 있었던 재일동포 정치범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영상화했다”

_이호경PD

[맥락이 부족한 이런 기사는 화가 납니다]

 

고 김병주 선생님의 재심 재판을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아시아경제의 이 같은 보도와 논조는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기사입니다.

 

기사 원문 페이지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간첩혐의 재일교포 재심서 ‘사형→4년’ 감형… 42개 혐의 중 40개 무죄"

 

그리고 기사의 첫 문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간첩으로 몰려 사형 선고를 받고 10년 넘게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재일교포가 37년 만의 재심에서
징역 4년형으로 감형받았다."

 

이 기사를 보면, 고 김병주 선생님 재심 재판부가 김병주 선생님에게 

큰 호의라도 베푼 것처럼 보입니다.

형은 사형에서 4년으로 줄었고, 82년 당시 김병주 선생에게 씌워진 42개의 혐의 가운데
무려 40개가 무죄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기사의 기자는 그냥 재판부의 판결만 듣고 기사를 작성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 맥락, 그리고 재판부, 검찰, 그리고 변호인 측의 주장들을 살펴보고 기사를 작성해야 합니다.

 

이 재판은 82년 당시 국가기관의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인한 사건이며, 

당시 재판의 하자가 있음을 현 사법부가 일정 부분 인정했기에 시작된 '재심' 재판입니다.

 

그리고 이날 서울 중앙지법 형사합의 29부 김창영 부장판사가 유죄로 인정하 2개의 혐의의 근거와 증거는

82년 당시 법정에서 있었던 고 김병주 선생의 증언만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황 증거, 물적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불법구금과 고문에 의해 날조된 기소, 그리고 당시 재판정에는 고 김병주 선생을 고문했던

고문수사관들이 방청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려움에 내뱉을 수밖에 없는 허위자백만을 증거로 삼고 있습니다.

1982년이 아닌 2021년 재심 재판에서 말입니다.

 

기자는 단순히 2021년 재판부의 선고만을 기계적으로 받아 적지 말고

당시의 역사적 맥락, 재심 재판의 의미, 그리고 재판부 선고의 합리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요?

 

8월 24일 오후  4시에 있는 고 김병주 선생의 항소심 재판에 참석해서

혹시 이 같은 기사가 또 나오는지 감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입니다.

https://view.asiae.co.kr/article/2021020309134390843

 

간첩혐의 재일교포 재심서 ‘사형→4년’ 감형… 42개 혐의 중 40개 무죄

간첩으로 몰려 사형 선고를 받고 10년 넘게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재일교포가 37년 만의 재심에서 징역 4년형으로 감형 받았다. 법원은 당시 검찰이 낸 증거 대부분이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작성돼

www.asiae.co.kr

 

 

 [법률] 최근 재일동포 조작간첩사건 재심의 심각한 문제점 

 

 군부독재 시절, 수많은 조작간첩 사건들이 날조되었다. 당시 대서특필되었던 간첩단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을 조작했던 국가 공무원들은 특진과 함께 대통령 표창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그렇게 4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조금씩 당시 수사와 재판이 얼마나 엉터리이었는지 재심을 하나씩 통해 밝혀지고 있다. 그 시절 자행된 수많은 조작 사건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를 지난 2010 7 15일 재일동포 이종수 간첩사건의 재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이강원 부장판사가 판결문에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사건은 재일동포 유학생을 간첩으로 조작하기 위하여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보안사(국군기무사 전신)
안기부
(국정원 전신) 명의로 피고인을 불법 연행하여 39일간 강제구금한 상태에서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내고, 
그로 인하여 피고인이 5 8개월간 아까운 청춘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된 사건이다. 재외국민을 보호하고 내국인과
차별대우를 해서는 안 될 책무를 가진 국가가 반정부세력을 억누르기 위한 
정권안보 차원에서,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피고인이 한국어를 잘못하여 충분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을 악용하여
, 재일동포라는 특수성을 무시하고
오히려 
공작정치의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이 판결문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국가기관들은 모국을 찾은 재일동포들의 약점(특수성)을 파고들어 국민을 보호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를 저버린 채 재외국민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공작정치의 희생양으로 활용했다. 또한 그 행위가 정당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불법 연행과 강제구금, 그리고 모진 고문으로 조작된 증거들을 가지고 그들의 손아귀에 있는 사법부에서 하나의 통과의례로 치른 것이 재판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불법이었다는 점을 전제로 40여 년이 지난 지금 재심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재일동포 故 김병주 선생과 故 손유형 선생의 재심 과정에서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목도되고 있다. 1980년대 모국을 찾은 두 명의 재일동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간첩누명이었다. 불법구금, 강제구금, 그리고 모진 고문의 결과 각각 14 6개월과 17년을 모국의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이후 이들은 출소하고 모국이 아닌 일본으로 돌아가 고문 후유증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 정신적 및 경제적 고통을 함께 보고 겪어야 했던 유가족이 재심을 청구해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이다.

 

 <사진-1> 5월 13일 고 김병주 선생 재심 후, 조영선 변호사와 생존자 모임 회원들이 질의 응답하다.

  故 김병주 선생의 경우, 지난 1 29일 서울 중앙지방법원 재판부는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40건에 대해서는 무죄를 내렸지만, 특수탈출 혐의에 대해서 유죄를 선고하였다. 이에 변호인은 즉각 항소를 제기하여 5 1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재판이 개시되었다.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던 재판은 지난 7 6일 검찰 측에서 2명의 증인을 추가로 요청하였고, 이를 재판부가 받아들이면서 재판이 지연된 상태다.

 

<사진-2> 7월 6일, 고 김병주 선생 재판에서 검찰의 증인신청이 재판부에서 받아들여지고 향후 재판에 대해 변호사와 생존자 모임 회원들이 대화를 나누다.  

   손유형 선생의 경우 지난 5 25일 서울 고등법원에서 재심을 신청한 유족들이 모두 최후진술을 마쳤고, 당시 재판부는 재판의 재심 개시 결정이 늦어진 점에 대해 사과하며 7 13일 선고를 예정했다. 그러나 지난 7 13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손유형 선생에게 20년을 구형했으며, 재판부는 이 재판의 주범인 손유형 선생에 대한 선고는 8 31일로 연기하고, 종범인 손종규, 손유승, 손유배 선생에게만 무죄를 선고했다.  손유형 선생의 선고는 오는 8 31일 오후 2 20분에 있을 예정이다. 일본에 있는 유가족들은 또다시 피가 마르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사진-3> 5월 25일 고 손유형 선생 재판 후 김중민 변호사에게 유가족, 생존자 모임 회원들이 설명을 듣다.   
<사진-4> 7월 13일 고 손유형 선생 재판 후 김중민 변호사와 유가족, 생존자모임 회원들이 선고연기에 대한 우려를 나누다.

 아이러니하게 과거 간첩사건이었던 두 재판에서의 핵심 쟁점은 국가보안법이나 간첩죄가 아니었다. 핵심은 이 재판이 재심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인이 된 피고인이 군부독재 하의 당시 원심 법정에서 했던 진술이 법적 효력이 있는지를 다투고 있는 부분이다. , 당시 안기부, 보안사, 치안본부 등과 같은 국가기관에 의해 불법 구금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조작된 증거를 가지고 피고인들이 법정에 나와 자신들의 범행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 2021년 재심 재판에서도 법정 증거로서 효력이 있는지를 다투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 심각한 문제점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어떤 부분이 이 재판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야 하는가? 첫째, 사회적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재판부의 접근방식이다. 앞서 이강원 부장판사가 판결문에서 지적했듯이, 과거 재일동포 조작간첩 사건은 국가가 재일동포라는 약점을 이용해 불법 연행하여 강제 구금하고, 거기에 모자라 모진 고문으로 조작해낸 사건이다. 이 일을 했던 기관들이 국가기관들인데, 그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피고인이었던  김병주 선생과  손유형 선생은 법정에서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과 다른 진실을 말할 수 있었을까. 당시 재판정에는 피고인들을  고문했던 수사관들이 방청석에 앉아있었고, 법정에서 공소장 내용과 다른 말을 하면 다시 고문 수사하겠다고 협박하였음을 앞서 진행되었던 재심  피고인들의 진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1975년 서울의대 간첩단 사건의 한 피해자는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허위 자백을 했지만, 원심 재판 법정에서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했다. 그리고 용기 내어 진술한 진실의 대가는 더 가혹한 고문이었다. 그 피해자는 다음부터 법정에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진술하지 않고, 철저히 수사관들이 원하는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지금 2021년 재판부는 1970-80년대 재판부의 현실이 지금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대적 맥락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피고인 두 명은 이미 고인이 되어 방어권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두 분 모두 재일동포이면서 동시에 이미 고인이 되어버려 당시 재판 과정에서 자신들이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말할 수가 없다. 만약 이분들이 재일동포가 아니었다면, 당시 재판에 가족들 또는 친구들이 참석했을 개연성이 높으며, 그들이 지금 재심에 증인으로 나와 당시 재판 상황을 증언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이 현재 살아계시다면 재심 법정에서 왜 당시 법정에서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모두 고인이 되어 이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국, 법정 증거주의와 같은 법리를 내세워 당시의 시대적 맥락 그리고 고인이 되어버린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주어진 80년대 법정 증언을 가지고 이것이 2021년 현재 재심 과정에서도 법정 효력이 있는지를 열심히 다루고 있는 것이 현 실태다. 모국을 찾은 재일동포를 아무런 영장도 없이 불법 구금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40일 이상씩 고문하면서 만들어낸 간첩죄. 그리고 고문수사를 받으면서 했던 자백과 다른 진실을 법정에서 말하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전보다 더한 고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피고인이 과연 무슨 용기로 진실을 내뱉을 수 있을까. 그리고 연행부터 불법으로 점철된 이 같은 사건들의 진상을 밝히고자 2021년 재심을 시작한 것인데, 여전히 재판부는 시대적 맥락과 고인이 되어버려 방어권을 상실한 피고인의 상황을 묵인한 채, 단순히 교과서에 쓰인대로 재심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