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그분들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지난 3월 16일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기억해야 할 재판이 있었습니다. 그 재판은 제주 4.3사건 당시 불법 군법회의를 통해 투옥돼 옥살이를 하던 중 생사 소식이 끊긴 4.3 행방불명 수형인 333명과 일반재판 수형인 2명에 대한 재심이었습니다.

 

이는 73년 만의 재판이자 선고날이었습니다. 이날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결했습니다.

 

"피고인의 변호인은 4.3 당시 군법회의에서 판결한 범죄사실은 범하지 않은 사실이라고 주장하였고, 검사 역시 공소사실에 대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였으므로 이는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

 

335명의 집단 선고. 그리고 법정 가득 메운 유족들은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27531&fbclid=IwAR2hxk9pAUriHmv58nJx5AYMpE6xFH6MwKv6yzZaat1YFjNGzhHdduAfnOw

[2013년에도 국정원의 간첩 조작은 존재했다]

 

간첩 조작과 같은 공작은 과거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작은 2013년에도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12월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으로 내몰려 7년 동안 재판을 받아 왔던 홍강철 씨(47)가 마침내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홍강철 씨는 2013년 8월 탈북해 2013년 9월부터 2014년 1월까지 국가정보원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에서 감금돼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검찰 수사를 거쳐 2014년 3월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다시는 이런 국가에 의한 폭력과 공작은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늦었지만 7년 동안 재판을 받으며 고생했던 홍강철 씨의 무죄를 축하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2251701001&code=940301&fbclid=IwAR1manSKn21uedg1G1Q7yjoByThn5loypPNpdhWuQZbaUNR_nSGslGTFm5c

[故 한삼택 씨의 억울함이 풀리길 바랍니다]

 

제주는 4.3사건의 아픔이 있는 땅입니다.

4.3사건 이후 제주도는 이념의 멍에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이를 이용해 수많은 시민들을 간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1970년 당시 김녕중학교 서무과 직원인 고 한삼택 씨입니다.

비록 고인이 되셨지만, 그 자녀들이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 50년 만에 재심 청구를 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故 한삼택 씨와 그 가족의 억울함이 풀리길 바랍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jejumbc.com/article/S9UjOmq9qg1E?fbclid=IwAR2Bd6O1mD9i8pTp4h-CwjHWNX2dnW4j0jQDc8PJzmU8t9W8-bE5yuo8Qeo

[오마이뉴스] 존경하는 판사님들, 역사 공부 하셔야 합니다

(보도일자: 2021.01.29)

 

지난 1월 29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519호에서 재일동포 고 김병주 선생에 대한 1심 선고가 열렸습니다. 

이날 재판부는 국가보안법 관련 40건의 무죄 이유를 증거 부족으로 밝힌 반면, 유죄에 해당하는 2가지 경우는 84년 4월 3차 공판 당시 김병주 피고인과 피고인의 변호인이 재판 과정에서 심문 내용을 증거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재판부는 지난 1984년 당시 재판이 흠이 있다고 판단하여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진 2021년 재심 재판에서 다시 잘못된 84년 재판의 법정 증언을 근거로 이미 고인이 된 피고에게 징역 4년형을 내렸습니다.

 

 

해당기사 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15570

지난 2 1() 오후 4, 인권의학연구소는 1 29() 오전 10 30분 서울 중앙지방법원 서관 519호에서 열린  김병주 선생 판결에 대한 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는 코로나와 일본에 계신 재일동포의 상황을 고려하여 온라인 줌(ZOOM) 회의로 열렸다. 참석자는 연구소에서 3(함세웅 이사장, 이화영 소장, 김장호 회원)과 일본에서 3(김원중 선생, 이철 선생, 이동석 선생) 그리고 이번 사건의 담당 변호사인 서중희 변호사가 참석하여 총 7명이었다.

 

(사진)  서울-일본 (도쿄, 오사카)간 줌 (ZOOM) 온라인 간담회 (2월 1일)

 김병주 선생의 재심 재판부는 1984년 당시 검찰이 기소한 42건 가운데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40건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였지만, 1980년 비엔나 방문과 1981년 북한 방문은 특수탈출에 해당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특히, 재판부는 지난 1984년 재판에서  김병주 선생이 자신의 변호사와의 나눈 법정 심문 내용을 유죄의 근거로 삼았다. 과거 잘못된 재판의 법정 증언을 근거로 이미 고인이 된 피고인이 소명할 기회조차 없는 상황에서 징역 4년형을 내린 것은 국가보안법 관련 재심 사건에서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사진) 간담회에 참석한 일본의 이동석 선생(좌)과 김원중 선생(우)

이 같은 판결에 대해 간담회의 참석자들은 다양한 평가와 함께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먼저, 재일동포 김원중 선생은 이번에 완벽한 판결은 못 받았지만, 그래도 간첩죄라든지 국가보안법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얻어냈으니까 큰 성과라고 하면서도 문제는 유죄로 판결한 2건의 특수탈출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일동포 이동석 선생은 이미 이전 재심들에서 북한에 다녀왔지만 무죄를 받은 사례들이 있음에도 이번 재판은 피고가 북한에 가서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단순히 북한을 다녀왔다는 사실만 가지고 유죄를 선고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담당 변호사인 서중희 변호사를 비롯해 모든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부분은 이번 재판이 재심임에도 불구하고 1984년 피고의 원심 재판에서 변호사와 주고받았던 심문 내용을 증거로 삼았다는 점이다.

 

재일동포 이철 선생은 제가 크게 걱정하는 것은 이번 판결이 이걸로 인해서 앞으로 있을 여러 재일동포나 아니면 국내 동포들의 재심 재판에 나쁜 사례로 하나의 법례로 인정될까 봐 그것이 상당히 걱정이라며 우려했습니다. 이화영 소장은 이에 동의하면서  김병주 선생의 재심이 다른 재심과 달리 피고인의 사망으로 인한 자기변호의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재판은 지난번 구미유학생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은데, 당시 구미유학생 사건의 연루자들은 원심 재판에서 왜 그렇게 진술했는지를 본인들이 다 해명을 할 수 있었다. 재판 당시 뒤에 수사관이 와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든가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자기변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김병주 선생의 경우는 본인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본인에 대한 해명을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다. 이 소장은 재판부가 이러한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피고가 어떤 변호도 할 수 없는 것을 증거로 삼아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은 허점이 상당히 많은 재판이라고 보았다.

 

(사진) 간담회에 참석한서울의  김장호 선생(좌)과 일본의 이철 선생(우)

이에 참석자들은 이번 재판으로 인해 재판부에 대한 불신이 생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철 선생은 지금까지 재일동포 사건은 계속 무죄가 나왔는데 거기에 대한 하나의 그 흐름을 한 번 끊으려고 하는 무슨 의도가 있지 않나 하는 느낌도 좀 들었다라고 말했다. 김장호 선생은 이번 사건이 법리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아 이 재판부가 앞으로 우리(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들) 재판에 대해서 브레이크를 걸자 하는 식으로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김원중 선생은 이러한 아쉬운 판결이 촛불 혁명으로 출범된 문재인 정권 하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과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구소의 이화영 소장과 함세웅 이사장은 향후 재판을 위해서 구체적인 노력들이 요구된다고 피력했다. 이화영 소장은 이번 간담회와 같이 항소심에서도 지속적으로 다양한 채널을 통해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담당 변호사와의 직접적인 소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함세웅 이사장은 구체적은 방안으로 이번 간담회에서 국가폭력 피해 당사자들의 생각을 요약 및 종합해서 재판부에 직접 전달하는 방안과 그동안 재일동포 중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경우, 재심 신청 현황 그리고 무죄받은 경우에 대한 종합 사례집을 만들어 재판부에 전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함 이사장은 재일동포라는 특별한 상황, 오랫동안 우리나라를 떠나 계셨고 또 일본이라는 특수한 영역 속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지닌 그 부분을 간과하고 국내 사람들을 1차적 대상으로 만든 국가보안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점을 지적한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비록  김병주 선생의 재판 결과는 아쉬움과 우려를 낳았지만, 이번 간담회를 통해 담당 변호사와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계기가 되는 긍정적인 부분도 발견했다. 이에 인권의학연구소는 앞으로 항소심은 물론 다른 국가폭력 피해 관련 재판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대응하도록 하겠다.

"故 김승효 선생의 국가배상판결에 대한 장경욱 변호사와의 인터뷰"

 

지난 1 28,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김승효 선생에 대한 국가배상 사건 1심 선고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재판부는 고문과 건강에 미친 피해의 연관성을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재판이 열리기 한달 전 지난해 12 26일 김승효 선생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에 인권의학연구소는  김승효 선생 재판의 변호를 맡은 장경욱 변호사와 이번 재판 과정과 의미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사진) 간첩 조작 사건 전문 변호사로 불리는 장경욱 변호사

Q. 지난 목요일의  김승효 선생님 국가배상재판 결과를 요약해서 말씀해 주세요.

 

(장경욱 변호사) 2021 1 28일 오후 1 5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358호 법정에서 고 김승효 선생님에 대한 국가배상 사건 1심 선고가 있었습니다.

 

2020 10 22일 변론종결 후 1심 선고를 앞둔 지난해 12 26, 고 김승효 선생님께서 끝내 고문후유증으로 갑작스럽게 별세하셨습니다. 이번 1심 선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심 선고결과가 고인을 떠나보낸 유족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졌습니다. 고문후유증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돌아가신 고인과 유족들에게 누가 되지나 않을까 봐 그 어느 때 보다도 걱정도 커졌습니다.

 

다행히 1심 선고 국가배상판결에 의하면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의 불법체포, 구금 및 고문 가혹 행위에 의한 허위자백을 받아낸 불법행위 및 이를 간과한 채 허위자백에 기초하여 구속 기소한 검사의 불법행위를 인정하였습니다. 나아가 한국에 유학 와서 한국어도 서툰 고인이 일본어 통역인 없이는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재판을 받고 더욱이 불법증거들을 그대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아 중형을 선고하고 확정한 1심부터 상고심에 이르는 재판부의 모든 재판관들의 위법한 재판행위로 인한 불법행위를 인정하였습니다.

 

1심 판결은 또한 수감 기간 중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인 고인의 가족들이 정신과 치료를 요청하였음에도 이를 방치한 교도소 당국의 불법행위도 인정하였습니다.

 

1심 판결은 결론적으로 고인의 정신분열증과 위와 같은 공무원들의 일련의 불법행위 사이의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하여 국가가 고인과 그 유족들에게 일실손해, 기왕 치료비, 기왕 개호비 및 향후 개호비(생존 조건), 위자료의 손해배상을 지급할 것을 선고하였습니다.

 

Q. 지난 국가배상 재판에서의 핵심 쟁점은 무엇이었나요?

 

(장경욱 변호사) 고인에 대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의 불법 체포, 감금, 가혹행위, 이로 인한 허위자백에 기초한 위법한 기소와 위법한 재판, 그리고 교도소 공무원들의 치료 방치에 이르는 일련의 공무원들의 불법행위와 고인의 정신분열증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1심 국가배상 재판에서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사진) 영화 '자백'에 등장했던 故 김승효 선생

Q. 재판부가 김승효 선생님의 조현병 발생과 악화를 고문과 투옥에 따른 결과임을 인정하였나요?
또한, 이 부분이 재판 결과에 정당하게 반영이 되었나요?

 

(장경욱 변호사) 1심 판결문에 의하면 원고 김승효는 대학생으로서 평온한 일상을 살다가 갑자기 불법으로 체포, 감금되어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극도의 신체적 고통에 시달렸고, 정신적으로도 극한의 두려움과 절망에 빠졌으며, 이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조현병이 발병하였음에도 구금되어 있던 2,662일 동안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됨에 따라 그 증세가 악화되어 영구적인 장해를 입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출소 후에도 20여 년간이나 정신병원에 입원하였으며, 불법 구금일로부터 46년 이상이 지난 현재까지도 심적 고통과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피해망상, 정서적 불안정성, 충돌조절능력의 저하, 현실 판단력의 저하 등의 증상을 보이고 있는 점 원고 김승효가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하여 간첩의 누명을 쓰고 징역 12년 및 자격정지 12년이라는 무거운 형을 선고받고 조현병까지 앓게 되면서 그 부모와 가족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극심한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겪었을 것이고, 조현병을 앓고 있는 원고 김승효를 수십 년간 돌보면서 겪었을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고통도 상당할 것임이 경험칙상 분명한 점을 인정하였습니다. 고문후유증으로 청춘과 인생 전체가 망가진 채 그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인과 유족 분들게 손해배상액은 턱없이 미흡할지라도 고인과 유족 분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린 점에서 고인을 여읜 슬픔에 빠져 있는 유족 분들께 작은 위로가 되는 긍정적 의미가 있는 판결로 평가합니다.

 

Q.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으로서 어려움이 있었다면 말씀해주세요.

 

(장경욱 변호사) 재판의 핵심 쟁점인 고인의 정신분열증과 불법행위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고인께서 나쁜 나라로 각인된 한국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한국 방문을 꺼려하시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그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감정신청이 불가능하였습니다.

(사진) 2019년 손창호 전문의가 직접 일본에서 故 김승효 선생을 만나 면담 진행

다행히 인권의학연구소의 도움으로 정신과 전문의 손창호 선생님께서 바쁘신 중에도 귀중한 시간을 내셔서 1 2(2019 8 30, 31) 일정으로 일본 교토를 방문하여 고인과 주변 지인들, 가족들을 면담하고 고인에 대한 과거 여러 자료들(앨범, 입원치료 기록 등)과 뉴스타파 영상 자료들을 검토한 후 소견서(정신의학과적 평가보고서)를 작성해 주셨습니다. 또한, 재판의 증인으로 법정에 나오셔서 고인의 정신분열증 증상과 고문 가혹행위 등 사이의 인과관계 및 고인의 정신분열증 증세가 최고 중증 등급으로 아주 간단한 단순 작업도 수행할 수가 없는 상태여서 노동능력상실률이 100%’임을 증언해 주셨고 1심 판결에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인권의학연구소 관계자 분들과 손창호 선생님의 고인과 유족 분들을 위한 정성 어린 지원과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삼가 고인의 영생을 기원하며 하늘나라에서나마 꼭 고국을 굽어 살펴주시기를 앙망합니다.

 

(사진) 재심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일본 교토를 직접 방문하여 지인과 고인의 형 김승홍씨와 함께 찍은 사진

지금까지인권의학연구소 장경욱 변호사와 함께  김승효 선생 국가배상소송 1심 판결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장경욱 변호사는 지난 2018 10월 김승효 선생의 교토 자택을 직접 방문하여 형사재심 무죄 판결문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이번 재판에서 김승효 선생과 그 가족의 억울함을 해소해드리기 위해 노력하신 장경욱, 신윤경 변호사에게 감사드립니다. 인권의학연구소는 앞으로도 고문과 같은 가혹행위가 개인의 건강에 미치는 피해 관련성을 입증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아래 본 재판과 관련된 기사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1281901001&code=940100 

1 29() 오전 10 30, 서울 중앙지방법원 서관 519호에서 재일동포 김병주 선생에 대한 재심1심 선고가 열렸다. 이 재판에는 재심을 요청한 일본 거주 가족을 대리해 서중희 변호사와 재일동포 김덕환 선생을 비롯해 인권의학연구소 활동가들이 동행했다.  

 

이날 재심 재판부는 1984년 당시 검찰이 기소한 42건 중 국가보안법에 해당하는 40건은 무죄를 선고하였으나, 1980년 비엔나 방문과 81년 북한 방문의 2건은 특수탈출에 해당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재판부는 국가보안법 관련 40건의 무죄 이유를 증거 부족으로 밝힌 반면, 유죄에 해당하는 2가지 경우 84 4 3차 공판 당시 김병주 피고인과 피고인의 변호인이 재판 과정에서 심문 내용을 증거로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지난 1984년 당시 재판이 흠이 있다고 판단하여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진 2021년 재심 재판에서, 과거 잘못된 84년 재판의 법정 증언을 근거로 이미 고인이 된 피고인이 소명할 기회조차 없는 상황에서 징역 4년형을 내린 것으로 이는 국가보안법 관련 재심 선고에서 매우 이례적 사례라고 하겠다.

(사진) 인권의학연구소는 재판에 동행하여 서중희 변호사와 인터뷰 진행

재일동포였던 피고 김병주 선생은 1984년 불법구금과 고문에 의해 국가보안법을 어긴 간첩으로 조작되었다. 1984년 김병주 선생에 대한 사형 선고는 대법원에서 상고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었다이후 4년여 기간을 사형수로 수감하던 중 1988년에 사형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같은 해 8월에 20년형으로 감형되었다. 재일동포였던 피고인은 고국에 돌아와 고문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되어 1998년 3월 형 집행정지로 출소할 때까지 총 14년 6개월을 감옥에서 살았다그리고 살아생전 재심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2009년 일본에서 사망하였다.

 

이번 재판의 재심 청구인은 일본에 살고 있는 김병주 선생의 아들이다. 2016년 재심을 청구해 지난해 재심 개시가 결정되었다. 이번 사건의 변호를 맡은 서중희 변호사(법무법인 혜인)는 사법부에서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기까지 약 4년의 시간이 소요되어 그 기간이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심의 의미가 ‘과거 확정된 원심판결에 흠이 있는 경우 판결의 취소와 사건의 재심판을 구하는 것이기에 이날 재판부가 1984년 재판의 법정 증언을 증거로 채택해 내린 징역 4년형에 대해 큰 유감을 표했다.

 

특히, 서중희 변호사는 당시 법정 판결이 국가기관의 불법구금과 고문에 의한 진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법적 효력이 상실되어 무죄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서 변호사는 이번 재판 결과가 재심 사건의 증거를 어떻게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제기할 필요성을 상시 시켰다라고 밝히면서 항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인권의학연구소는 김병주 선생의 재심 재판선고심에서 확인된 문제점과 향후 대응책에 대해 2월1일(월) 4시에 줌회의를 통해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양심수 동우회의 이철, 김원중, 이동석 선생과 집담회를 갖기로 했다. 또한 국가폭력 생존자 자조모임인 '정의를 구하는 국가폭력생존자 모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이 선고심이 보여준 모순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자 한다.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김승효 선생이 극심한 고문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지난 12 26일 세상을 떠나 영면하였다. 고인은 재일동포 2세로 1950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다. 1969년 교토의 리츠메이칸 대학 철학과에 재학 중 민족적 정체성을 찾고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자 1973년 조국으로 유학 왔다. 김승효 선생은 1974년 서울대 교양과정부에 입학하자마자 같은해 5월 중앙정보부에 불법연행되어 잔혹한 고문을 받고 간첩으로 조작됐다.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유신선포 후 수많은 재일동포 유학생을 간첩으로 조작했다. 일본에서 민족적 차별로 인해 고통받는 와중에서도 민족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조국의 언어, 역사, 문학 등을 배우기 위해 조국으로 유학 온 강제연행·구금하고 고문하여 간첩으로 조작했다. 이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까지 이어졌다. 민단과 조총련이 함께 거주하는 일본 상황상 군사독재정권에게 재일동포는 간첩으로 조작하기 쉬운 대상일 뿐이었다.

 

 김승효 선생은 6년의 복역생활을 마치고 1981 8월 광복절 특사로 석방됐지만, 이미 감옥에서부터 고문에 의한 조현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교도소에서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하고 증세가 악화되어 석방 이후에도 20년 이상을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평생을 조현병으로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사진) 김승효 선생  (1950.4.16-2020.12.26). 강종헌 ( 재일동포 간첩조작 피해자 ) 제공

김승효 선생은 2018 8 31 44년 만에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고 간첩 누명을 벗고, 무죄 사실을 알고 기뻐했으나, 고문후유증과 조국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고인의 가족, 변호인인 장경욱 변호사, 신윤경 변호사는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에서 고인이 고문에 의해 조현병이 발생·악화하였다는 것을 밝히기 원했다. 이를 위해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가 함께 노력했다.

 

 2019 8 30일 ~ 9 1일에 인권의학연구소 치유지원팀장 손창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박은성 사무국장은 장경욱, 신윤경 변호사와 함께 김승효 선생 자택을 방문하여, 고인과 그의 가족, 그리고 친구들을 면담했다. 그리고 같은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인 강종헌과 유영수가 면담을 위해 통역했다. 그해 8 31일은 고인이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지 만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사진)  통역하는 강종헌 선생(좌)과  김승효 선생(우)  (2019.8.30, 인권의학연구소 손창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면담 중)

면담 중에 김승효 선생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가 계속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교우관계도 원만하고 리더십도 좋은 편이라고 증언했다. 1973년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을 말릴 수 없었다고했다. 고인의 통역을 맞은 강종헌은 아래와 같이 통역한 소회를 밝히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도 그런 가혹수사를 받은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본인의 고통스러워하는 진술, 가족들의 애타게 호소하시는 그런 내용, 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가족이나 어느 개인이나, 국가로부터 받은 엄청난 국가범죄인데. 거기에 대처하기에는 너무 무력하구나. 그 당시에 이제 겨우 재심을 통해서 무죄가 밝혀지고, 이제 민사배상소송 들어가 있는데, (슬픔을 억누르며) ‘받은 상처가 치유가 안 되는구나’, 특히 김승효 선생의 같은 경우 인간을 완전 파괴한 것 아닙니까? 그 책임을 누가 지겠냐는 거예요? 치유될 수 없는 거예요.”

  

고인과 교토의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같이 공부한, 같은 재일동포유학생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로서 고인의 가족과 친구의 통역을 맞은 유영수도 아래와 같이 소회를 밝혔다.

 

김승효같이 본인이 정신적으로 저런 상태이니까 (한국에) 못 가잖아요. 형제간이 없었으면 완전 매장된 거 아닙니까? 그리고 또 저와 같이 석방된 OOO라는 애는 히로시마 대학을 나왔는데 정신이상이 되었어요. 나와 같이 석방되어 나와서 공항까지 같이 갔는데. 근데 나와서 결국은 자살해 버렸잖아요. 정신병원에 다니다가. 그래서 과거에 억울하게 잡히고 고생한 비극이 있었던 것에 대해서 재심을 안 해도 구해주는 대책을, 앞으로 그런 비극이 안 생기도록 교훈 삼아 그 대책을 세워줬으면 좋겠어요.”

 

인권의학연구소 치유지원팀장 손창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3일 동안의 면담결과를 바탕으로 고문피해에 대한 정신건강의학과적 조사보고서를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했고, 2020 1 16일 국가손해배상소송 공판에서 증언했다. 그러나, 김승효 선생은 2021 1 13일 국가손해배상소송 선고를 보름 남짓 앞두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사진) 김승효 선생과 면담을 마치고 담소 (왼쪽부터 고인의 형 김승홍, 강종헌, 고 김승효, 이철, 손창호, 신윤경)

김승효 선생의 재심 민사재판을 위해 법원에 제출했던 ‘고문피해에 대한 정신건강의학과적 조사보고서’ 의 주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본다.

 

<고문과 수감생활이 조현병 발병에 미친 영향>

김승효씨의 경우 아래와 같은 근거로 고문과 수감생활중 스트레스가 조현병의 발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 부모와 형제 중 다른 조현병 환자는 없다는 점에서 유전적 소인은 크게 없다.

2) 20여 일간의 극심한 고문과 그 이후 이어진 수감생활은 그 고통의 강도 및 기간으로 보아 정신신경계에 상당한 후유증을 남길 정도로 극심하였다.

3) 고문을 겪고 난 이후에 발병하였다는 점에서 시간적 개연성이 분명하다.

4) 고문기간 중 잦은 구타를 받으면서 조현병의 유발요인이라고 알려진 두부외상을 많이 당하였다.

5) 발병시기가 20대 중반 이후로 보여지는 바, 일반적인 조현병 환자들에 비해 다소 늦은 발병연령도 내재된 조현병이 발현되는 경우라기보다는 외부 스트레스에 의해 발병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6) 현재에도 중앙정보부에 끌려갈 수 있다는 공포감에 시달리고 이와 관련된 피해망상적 사고가 보이는 등 증상 자체로 보아서도 고문의 영향이 발병에 지대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고문과 수감생활이 조현병의 악화에 미친 영향>

 

대부분의 신체적 정신적 질환과 마찬가지로 조현병도 조기에 적절한 치료적 개입을 한다면 이후 임상경과도 좋다. 김승효씨의 경우 1977 5월 교도소기록에도 이미 심각한 정신질환의 증상이 분명히 관찰되었으며 교도소에서도 이를 인지한 상태였다. 1980년초에는 완전히 폐인이 된 상태로 의사소통도 전혀 안 될 정도임에도 교도소측에서 의도적으로 방치하였다는 증언이 있다. 이러한 기록과 증언 그리고 그 이후의 경과를 살펴볼 때 수감생활중 의도적 방치와 학대가 조현병의 악화에 미친 영향은 명백하다.

 

<결론>

김승효씨는 현재 타인에게 완전 의존을 해야 하는 중증의 조현병 상태이다. 또한 이러한 조현병의 발병과 악화는 1974년에 겪은 고문 및 그 이후 1981년까지의 수감 중 이루어진 학대와 방치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판단된다.

 

(사진) 김승효 선생과 면담을 마치고 담소 (왼쪽부터 장경욱 변호사, 유영수, 고인의 일본인 친구)

재일양심수동우회 이철 선생은 고인은 국가폭력피해자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재일동포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뿐만 아니라 모든 고문 등 국가폭력피해자들은 고문후유증과 트라우마로 크고 작은 고통을 겪고 있다.”고 했다. 고인이 된 김승효 선생이 하늘에서는 평안을 누리도록 그의 명복을 기원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우리는 그의 삶과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최근까지도 정보기구의 민간인 사찰과 유우성과 같은 간첩조작 사건이 일어났다. 재발 방지와 수사정보기관에 대한 국회와 국민의 감시와 통제 등을 위한 법제도적 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국가는 고문 등 국가폭력피해자의 삶의 회복을 위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현재 국회에 고문방지 및 고문피해자 구제·지원을 위한 법률’(인재근 의원 대표 발의)이 계류 중이다. 하루빨리 통과되어 고문 등 국가폭력피해자에 대한 신체적·정신적 지원이 제공되어 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경감시키고 이들의 삶에 지지와 존경을 표해야 한다.

 

[관련기사]

한겨레(2020.12.29.) 장경욱, “하늘나라에서는 꼭 아름다운 조국 땅 만끽하시기를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6427.html#csidx4871c4fe2d8ca1a8ca5d7d774d1039b

 

 

뉴스타파(2020.12.31.) 최승호, 우리 시대의 어둠의 증언자 김승효, 스러지다 https://newstapa.org/article/EJtyC

 

2020 5 12,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국가폭력피해자 한일영의 삼청교육대 탈출(계엄법 위반)’ 재심(변호사 이상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부는 "계엄포고 13호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신체자유와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하는 내용이라 헌법에 위반되므로 한일영은 무죄"라고 선고하면서 과거 국가에 의해 헌법질서가 유린되던 암울한 시기에 억울하게 복역한 피고인께 깊은 사과를 드린다. 이 판결로 조금이라도 치유가 되시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1970 13살 소년 한일영은 어머니와 살던 경기도 가평에서 서울에 있는 작은아버지 댁에 혼자 찾아가던 길에 서울에서 경찰에게 영문도 모른 채 붙잡혀 경기도 선감도의 선감학원에 강제 수용됐다. 선감학원에 강제 수용된 아이들은 서 온갖 노역, 그리고 구타, 배고픔에 시달렸다. 많은 아이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시도했으나, 탈출 와중에 또는 탈출하다 잡혀 희생을 당했다. 한일영은 천신만고 끝에 5년 만에 선감도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1980년 뚝섬유원지에 놀러 갔다가 다시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그는 또 다른 지옥인 삼청교육대에서 다시 탈출을 감행했으나 헌병대에 붙잡혔다. 그는 계엄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3살에 선감학원에 강제 수용된 그는 20대 초반에 사회에 나왔으나, 망가진 몸, 범죄자라는 낙인, 빈곤으로 인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는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는 선감학원에 강제 수용되고, 전두환 군사정권에서는 삼청교육대에 강제 수용되어 극심한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당했지만 꿋꿋이 살아남아, 과거 국가폭력피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부당한 징역형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그는 재심을 청구한지 2년 여 만에, 계엄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지 40여년 만에 무죄를 받았다.

 

한일영과 같이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서산개척단에서 강제 수용되어 가혹한 국가폭력을 받은 피해자들은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여 줄기차게 진상규명 활동을 했고, 그 결실로 지난 5 20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과거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의 길이 다시 열렸다.

 

<참고 관련 기사>

 

"국가 폭력에 억울한 옥살이까지"…'40년 만의 무죄'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770076_32524.html

 

삼청교육대 이어 억울한 옥살이, 40년 만에 무죄

재판부 "계엄포고 13호는 위헌, 사과드린다", 피해자 한일영 "울컥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41431&CMPT_CD 

인권의학연구소는 국가인권위원회 용역사업으로 2011년 고문피해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수행한 이후 9년만인 지난 2019년에 후속 실태조사를 수행하였다. 그동안 고문피해자들이 형사재심과 민사배상소송 등 사법절차를 통해 얻어낸 무죄선고와 민사배상이 피해자의 삶의회복에 어떤 영향을 결과하였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고문피해자 인권상황에 대한 후속실태조사는 심층인터뷰와 설문조사의 2가지 형태로 각각 진행되었다.

 

심층인터뷰는 국가인권위 인권단체 공동협력사업으로 "고문피해자 인권증진에 대한 모니터링 사업"을 통해 수행되었으며 재심을 거쳐 무죄선고를 받은 고문피해자들의 심층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결과물을 영상과 인터뷰 기록물로 보고하였다. 심층인터뷰에 참여한 고문피해자는 총 22명이었다. 

고문 등 국가폭력으로 인한 신체적 후유증은 사라지지 않고 노년에 들어서면서 그 고통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고문의 체험은 정신적 후유증으로 남아 현재까지도 악몽으로 지속되면서 불면증을 유발하고, 관계의 단절과 소외를 가져오고 있었다. 고문피해자들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빨갱이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이로 인해 가족부터 해체되면서 다른 사회관계들과도 단절되고 고립되면서 일상이 파괴되었다. 한편, 피해자들의 고통은 자녀들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가족 관계 속에서 심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고, 자기비난을 거듭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진) 고문피해 신체적 후유증

 

고문피해자들은 재심 무죄판결을 통해 명예회복을 하고,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재심과정에서 과거의 잊어버리고 싶은 고통과 트라우마를 재경험하였다. 트라우마의 재경험은 때로 원래의 트라우마보다도 더 큰 고통을 피해자에게 가져다 줄 수도 있어서 재심과정을 진행하는 법조인들은 과거의 고통과 트라우마가 재발하지 않도록 세심히 관찰하고 배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재심 무죄판결을 받고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았어도 사회로부터 고통을 이해받지 못하고 더욱이 피해 당시와 같이 여전히 사회정의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은 다시 절망에 빠지게 된다. 특히 재심과 국가배상이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이고 국가의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근년에 이르러 국가가 이를 시혜적 조치로 오인하여 재심 기간을 지연시키고 있고, 손해배상액을 축소시키고 소멸시효를 단축시키면서 고문피해자들을 다시금 좌절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 피해자들은 2011년 대법원의 지연이자 산정시점 변경으로 손해배상액 반환과 국정원의 부당이익환수 소송으로 인해 과거보다 더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사진) 인권의학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손창호 정신과 전문의

 또한 인권재단 들꽃의 후원으로  "고문피해자 인권상황 후속실태조사"를 통해 재심 무죄선고 이후 고문피해자 삶의 회복 등 인권개선에 대한 설문조사를 수행하고 그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피해자는 총 72명이었다.

 

고문피해자들의 정신심리적 고통을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5.6%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었다, 재심 무죄와 국가배상소송으로 배보상을 받았으나 고문피해자의 정신심리적인 고통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폭력피해자들은 출소 이후 고문후유증 외에도 이혼, 이사, 친척과 거리감 등 가족 관계의 변화(58.6%)를 겪었고, 평균 8.5년의 오랜 기간 보안관찰(75.0%, 국외거주자를 제외하면 100%)로 인해 사회적 낙인, 고립으로 제한된 삶을 살아왔다. 특히 취업제한 (74.7%)으로 인해 심한 경제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간첩이라는 낙인과 출소 이후 보안관찰로 인한 고통의 심각성에 비해 피해자에 대한 사회 인식의 개선과 피해자의 지원이 미흡함을 시사한다.

 

현재 주관적 건강 상태가 건강하다고 응답한 고문피해자는 20%, 2018년 기준 60세 이상의 일반인구집단(27.2%)과 비교했을 때 낮은 수준이었다. 이들은 공황장애, 불안장애, 우울장애 등 정신질환뿐만 아니라, 골절, 요통 등 근골격계질환, 청각장애, 만성질환 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고문 관련 증상으로 의사의 진단을 받은 응답자는 35.7%에 지나지 않아 국가폭력피해자에 대한 신체적·정신적 의료지원이 시급하고 절실함을 보여준다.

 

고문피해자 중 형사재심소송을 신청한 98.4%(재심 진행 중 1명을 제외하면 100%)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재심 과정에서 무죄 확정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렸고(71.2%), 진술서 작성이나 자료 준비 등 재심 준비과정(60.6%)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응답자의 86.9%가 재심 과정에서 과거 고문 사건의 기억이 떠오르는 재트라우마 경험으로 고통을 받았다. 이는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으나, 재심 과정의 낮은 만족도(42.9%)에서도 잘 나타난다.

 

고문피해자들의 국가배상(민사)소송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낮았다. 국가배상소송에서 26.5%가 기각당한 경험이 있었다. 기각 사유는 소멸시효가 3년에서 6개월로 축소, 민주화운동보상법상 보상금 수령에 관한 화해조항, 긴급조치사건의 민사배상 불인정 결정이었다. 이런 조치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기의 사법 농단으로 밝혀지고, 일부 피해자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았다.

 

국가배상금을 받았어도, 그 결과에 대해 응답자의 75.4%가 예상보다 배상액이 적어서 실망스럽거나 아예 받지 않은 것이 나을 정도라고 했다. 그 이유는 판사의 재량에 따른 배상 금액의 차이, 정치적 상황에 배상 금액의 차이, 투옥 기간과 배상 금액이 비례 않다는 것이었다. 특히 응답자의 79.1%는 재심 무죄와 국가 배·보상을 받은 후에도 삶이 사건 발생 이전으로 회복되지 않았다고 응답하였다.

 

국가나 사회로부터 지원을 받은 경험이 있는 고문피해자는 43.7%로 나타났다. 그중 87.1%가 민간 고문피해자 지원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았고, 국가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피해자는 6.5%(1)에 불과했다. 피해자들은 국가가 신체 후유증 치료와 재활을 위한 의료 무상지원’(2.81, 매우 필요함 3), ‘명예회복과 사회적 인식증진’(2.81), ‘정신·심리적 후유증 치료를 위한 치유센터’(2.58), ‘경제적 지원과 적절한 보상’(2.56)을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사회적 치유를 위한 국가의 책임으로, ‘가해자에 대한 훈포상 취소’(2.91), ‘고문의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제도적 개선’(2.90)이 가장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국가, 가해 기관이 책임 있는 사과’(2.87), ‘고문 가해자에 대한 구상권 청구’(2.57), ‘국가의 고문 피해자 치유·지원’(2.81), ‘고문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기념사업’(2.71)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 일부 고문피해자들의 경우에서 고문피해의 극복 가능성을 볼 수 있었으나 이는 국가의 적극적 역할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가족과 동료 피해자, 인권단체와 시민사회의 연대활동에 기인한 것이었다. 2000년경부터 본격화된 고문피해자들에 대한 재심과 국가배상이 20년 가까이 진행되었음에도 피해자들의 후유증이 경감되지 않고, 국가의 신뢰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인권침해의 어두운 과거사가 여전히 온전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국가범죄의 진실을 은폐하고자 하는 과거 회귀적 시도가 계속되고 있음에 기인한다.

 

고문범죄와 피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은 고문피해의 당사자들이 이미 고령에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아울러 국가차원의 지속적이고 성의 있는 조치와 함께 사회 일반의 인권의식을 함양하고 사회정의를 확립하고자 하는 사회공동체의 노력도 매우 긴요하다. 고문피해는 고문피해 당사자의 신체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침습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고문피해를 극복하는 것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과제임을 알 수 있다. 국가와 사회공동체는 고문가해자이며 동시에 고문피해 극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