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 할 또 다른 이름, 김병진]

 

김병진 선생님은 1955년 고베에서 태어난 재일동포입니다.

당시 일본에서의 어린 시절은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그러나 김병진 선생님은 조선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에 김병진 선생님은 "재일동포들을 위한 모국어 교육을 위해 국문학자가 되겠다는 꿈으로 최현배 선생의 학맥을 이어온 연세대 국문과에 입학"했습니다.​

 

오랫동안 그리던 모국에서의 유학생활.

 

​그러나 모국은 그를 환영해주기는커녕, 고문으로 간첩으로 만들었습니다. 1983년 갑자기 나타난 보안사, 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수사관들에 의해 그는 강제로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연행되었습니다. 그리고 모국에서 그는 하루아침에 간첩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일본.

​청년 시절, 모국을 찾은 청년을 간첩으로 만들었던 한국.

 

​더 늦기 전에 기억해야 할 이름, 김병진 선생님.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06365&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fbclid=IwAR1lZfoey5umbc3nhz2OsAf0Y3YZqPfMvKjh4wnsLeFLK9UkPv-F0_ZZwrM

[2013년에도 국정원의 간첩 조작은 존재했다]

 

간첩 조작과 같은 공작은 과거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작은 2013년에도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12월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으로 내몰려 7년 동안 재판을 받아 왔던 홍강철 씨(47)가 마침내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홍강철 씨는 2013년 8월 탈북해 2013년 9월부터 2014년 1월까지 국가정보원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에서 감금돼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검찰 수사를 거쳐 2014년 3월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다시는 이런 국가에 의한 폭력과 공작은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늦었지만 7년 동안 재판을 받으며 고생했던 홍강철 씨의 무죄를 축하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2251701001&code=940301&fbclid=IwAR1manSKn21uedg1G1Q7yjoByThn5loypPNpdhWuQZbaUNR_nSGslGTFm5c

[오마이뉴스] 내일 이 재판, 눈 크게 뜨고 지켜보겠다

(보도일자: 2021.01.21)

 

지난 1월 22일(금) 오후 3시 30분, (사)인권의학연구소가 행정안전부장관을 상대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를 요구한 재판(사건번호: 2020 구합 60734)이 서울행정법원 지하 2층 B220호 법정에서 열렸습니다.


이 재판이 열리게 된 경위는 지난 2018년 7월 10일 제30차 국무회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국무회의에서 1980년대 간첩조작사건을 비롯해 부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관련자들에게 수여했던 정부 표창을 모두 취소하는 내용을 담은 '부적절한 서훈 취소안'을 심의·의결하였다. 이에 해당하는 사례는 모두 53명과 2개 단체에 수여된 56점의 훈포장과 대통령·국무총리 표창입니다.

 

그러나 확인 결과, 행정안전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고문 피해자의 이름과 사건은 공개하면서 고문 가해자의 이름은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해당기사 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13357

지난 3월 12일(금), 서울 행정법원 B 220호에서 고문 가해자 훈포상 관련 행정소송 4차 변론이 있었다. 이 소송은 인권의학연구소가 행정안전부를 대상으로 고문 가해자의 훈포상 취소에 따른 고문 가해자의 이름과 취소사유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이다. 이날 재판은 오후 2시 30분에 시작되어 약 15분간 진행되었고, 재판부에 따르면 오는 4월 9일(금) 선고가 진행될 예정이다. 재판에는 고문피해생존자인 김장호, 김철, 김순자, 유정식, 최양준, 박순애 선생과 인권의학연구소에서 이화영, 박은성, 박민중, 김태형 심리상담사가 참석했다.  

 

(사진) 4차 변론에 동행한 피해생존자들과 함께 서울 행정법원 앞에서 가해자 처벌을 외치다

짧은 재판이 끝나고 재판에 참석했던 고문피해생존자들은 이 재판의 담당 변호사인 김성주 변호사(법무법인 덕수)와 간담회를 행정법원 지하 2층에서 가졌다. 김성주 변호사는 오늘 재판에서의 쟁점은 무엇이었으며, 향후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소상히 설명하였다. 동시에 참석자들의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고, 이화영 소장은 고문피해자들이 직접 재판부에 진술서를 제출하는 것을 건의하였다. 이에 김성주 변호사는 재판부가 법적 판단을 내리는데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였다. 2주 후, 연구소에서는 3명의 고문피해자들의 진술서를 취합하여 법무법인 김성주 변호사에게 전달했다. 

(사진) 재판 후, 행정법원 지하 2층에서 고문피해생존자들과 김성주 변호사가 간담회를 갖다

또한, 이날은 JTBC에서 이 재판을 직접 현장 취재했다. JTBC의 기자에 따르면, 선고심이 있는 4월 9일 방송을 목표로 재판의 내용과 고문피해자 분들의 인터뷰를 수일 전부터 요청해왔다. 이에 재판이 끝나고 JTBC 측에서 마련한 장소로 옮겨 김장호, 김순자, 김철 선생은 약 2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서 고문피해생존자들은 이 재판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들에게 훈포상이 취소된 고문 가해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소상하게 밝혔다. 인터뷰 중 한 피해생존자는"이제는 좀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라고 나지막이 그러나 또렷하게 전달했다. 

(사진) JTBC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김순자, 김장호 선생

세 명의 인터뷰를 보면서 고문으로 날조되어 하루아침에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살아야 했던 그들의 지난 삶들을 보게 되었다. 또한, 3-40년이 지나 어렵게 무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에게 고문을 가했던 자들의 이름조차 국가안보라며 밝혀지고 있지 않아 피해자들이 나서서 직접 잘못을 시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권의학연구소는 이제는 노인이 된 피해생존자들이 일상을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끝까지 고문 가해자의 책임을 묻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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