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47년 만에 열린 재심 재판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 유정식 선생의 재심이 시작되다-

 

 1 20() 오전 11 20, 서울 고등법원 서관 302호에서는 47년 만에 재심 재판이 진행되었다. 재심 재판의 주인공은 지난 1975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가 된 유정식 선생이다. 이날 재판은 재심이 개시되고 처음 열린 공판이다. 오늘은 유정식 선생을 비롯해 같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함께 재판에 참여해 유정식 선생을 응원했다.

 

  <사진-1> 재판이 끝나고 장경욱 변호사(왼쪽)는 유정식 선생(중간)에게 재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1 20분 시작된 재심 첫 재판은 재판부(재판장 윤승은)의 몇 가지 안내와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유정식 선생의 변호를 담당한 장경욱 변호사(법무법인 상록)와 신윤경 변호사(법무법인 동아)는 재판부에 항소 이유 보충서를 비롯해 다양한 자료를 제출했다. 이 자료들은 1975년 당시 유정식 피고의 진술서와 재판에서의 내용의 신빙성을 탄핵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변호인에게 자료 내용에 대한 질의를 이어나갔고, 변호인은 하나하나 답변했다. 이후 재판부는 검찰 측에 오늘 새롭게 변호인 측이 제시한 자료에 대한 의견을 묻자 검사는 의견 없음으로 일관했다.

 

 그렇게 20여분이 지나고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유정식 선생은 재판부를 향해 최후진술을 할 수 있는지 물었고, 재판부는 기회를 주었다. 준비된 원고를 꺼내 유정식 선생은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다. 유정식 선생은 1975년 갑자기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된 상황부터 설명했다. 45일간 중앙정보부에 불법 구금되어 수사관들에 의해 어떻게 고문을 당했는지 설명하면서 유정식 선생은 중간중간 울먹였다.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유정식 선생에게 진술서를 강요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즉각 옆방으로 데려가 고문을 하고 다시 진술서를 작성하게 했다고 밝혔다.

<사진-2> 재판이 끝나자마자 삼척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인 김순자 선생(왼쪽)은 최후진술을 하고 힘들어하는 유정식 선생(오른쪽)을 위로했다.

 또한, 재판 당시에도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재판에서 유정식 선생이 고문에 의해 작성된 진술서와 조금이라도 다르게 답변할 경우 엄청난 고문이 기다릴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협박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정식 선생은 어떠한 대처도 할 수가 없었으며, 속수무책으로 재판은 끝나버렸다. 결국 1심 재판의 결과는 사형이었다. 유정식 선생에 따르면, 1심 재판에서 사형이라는 재판부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고 한다. 그렇게 억울한 재판이 이어지고, 결국 유정식 선생은 23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이러한 내용을 재판부에 호소하면서 유정식 선생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밝혔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제 저는 올해로 나이가 83세입니다.
이제는 삶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부디 공정한 재판을 통해 저의 이 억울함을 풀어주시길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

 

 재심을 신청하고 4년여의 시간 만에 개시가 결정된 이 재판은 유정식 선생 개인은 물론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상당하다. 1970-80년대 독재정권 하에 국가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개인의 삶을 통제하고 말살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 정당성이 결여된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무고한 개인들의 삶에 개입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재판 과정을 면밀하게 파악하여 알리는 것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이 같은 국가폭력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노력일 것이다. 

 

 앞으로 ()인권의학연구소는 유정식 선생의 재판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여 재판 과정과 내용을 소상히 알리고자 한다. 다음 재판기일은 오는 3 17일 오후 4 40, 서울 고등법원 서관 302호에서 열릴 예정이다.

[검찰의 민낯]    

 

연구소에서 법정 동행을 자주 합니다. 방청석에 앉아 검찰의 행태를 보면 분노가 올라옵니다.      

 

이러한 일은 통일운동가 故 박기래 선생의 재심 재판에서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박기래 선생님은 1974년 통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을 받고 17년을 감옥에서 지내셨습니다.     

 

이런 사건을 만든 공범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검찰인데, 잘못을 시인하기는커녕 재심에서도 검찰은 무기징역이라는 구형을 유지했습니다. 그것도 서면으로.     

 

재심은 법원이 엄격한 판단을 거쳐 내린 결정인데도 불구하고, 검찰은 기계적으로 무기징역을 구형합니다.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도 없이 말입니다.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짓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한 기사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16067.html

 

보안사 고문에도…“재심조차 무기징역 구형, 박정희 검찰인가”

통일운동가 박기래 선생 ‘통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검찰 중형 구형…유족 “국가폭력 피해자 두번 죽여”

www.hani.co.kr

 

36년 만에 무죄...유학생 간첩단 사건 피해자 "인생의 족쇄 풀렸다"

- 출처: 한국일보

- 게재일: 21.08.13.

 

 "인생의 대부분을 간첩이라는 굴레 속에 살았는데, 모든 족쇄가 풀려나가는구나,
이제는 풀리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7 29일 대법원에서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인 김성만, 양동화 씨에게 무죄판결을 확정했다. 무려 36년 만의 기다림 끝에, 두 사람은 '간첩'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박정희 독재정부가 물러나고 들어선 전두환 정부는 당시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발표한다.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정치적 술수를 만들었던 국가권력. 36년이 흘러서야 그 정치적 술수가 잘못되었음을 사법부가 인정함 셈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81307080005225?did=NA 

 

36년 만에 무죄...유학생 간첩단 사건 피해자 "인생의 족쇄 풀렸다"

"상고를 기각합니다." 지난 7월 29일 대법원 2호 법정. '구미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김성만, 양동화씨에게 대법원은 무죄판정을 확정했다. 무려 36년 만의 기다림 끝에, 두 사람은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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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걸린 '무죄' 확정... 드러난 검찰의 시대착오]

- 보도일자: 2021년 08월 12일 

 

 지난 7월 29일 목요일, 대법원에서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사형수였던 김성만, 양동화 선생에
대한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2016년 재심을 신청해 지방법원, 고등법원, 그리고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약 5년에 걸친 재심과정이 끝나는 날이었습니다. 

 

 이 기사는 단순히 이날 있었던 대법원의 무죄 판결 내용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지난 5년에 걸친 간첩조작
재심과정에서 발견된 국가기관의 시대착오적 접근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2심 재판 과정에서 검찰 측이 보여준 행태는

과연 2021년의 검찰과 1985년 당시 검찰은 시대를 인식하는 관점이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64458

 

36년 걸린 '무죄' 확정... 드러난 검찰의 시대착오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대법원 무죄확정... 그리고 검찰이 보여준 또다른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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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 검찰이 상고를 했다고 합니다.

 

지난 10월 19일, 서울 고등법원에서 간첩조작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고 재일동포 손유형 선생님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사진) 1998년 가석방되어 아내 분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고 손유형 선생님입니다.

무죄의 이유는 크게 2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당시 간첩죄를 성립시켰던 유일한 증거는 피고인의 '자백'이었는데, 이 자백을 얻는 과정이 불법 구금, 고문, 회유로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하여 "임의성이 없는 자백"으로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유일한 증거가 임의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유죄를 내릴 근거가 사라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재심 과정에서 검찰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와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이번 재심 과정에서도 20년 구형을 했지만, 그 구형이 마땅한 이유와 증거를 전혀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판결문에서도 명확하게 검사가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법정에서 증거로 다투지도 않았으면서, 다시금 상고를 하며 재판을 지연시키는 전략만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40년을 기다린 유족에게 또 다시 심장에 비수를 꽃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재판을 계속해서 참석하면서 저는 검찰이 법정에서 증거로 다투는 장면을 보지 못했습니다. 판사의 질문에는 AI처럼 "서면으로 답변하겠습니다"라고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검찰이 상고를 했습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납니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을 때까지 유족과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손유형 선생의 무죄를 축하드립니다

  -39년만에 밝혀진 진실-

 

 무죄를 선고한다는 판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청석에 앉아있던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39년 만에 밝혀진 진실이 그동안 가슴속 깊은 곳에 억누르던 감정을 나오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늦었지만 하늘에 계신 재일동포  손유형 선생의 무죄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 10 19() 오후 2 10, 서울 고등법원 서관 403호에서 진행된  손유형 선생의 선고재판에서 재판부(서울고법 형사 12-1) 1981년의 원심을 파기하고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재판은 지난 2017  손유형 선생의 유족이 재심을 신청하고, 4년이 흘러 2021 1월 재판부가 재심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개시되었다. 2021 3 23일을 시작으로 총 6번의 재판을 거쳐 이번 무죄에 이르게 되었다.

 

 

  손유형 선생 재심 재판 일정

- 03 23 : 1차 공판

- 04 20 : 2차 공판

- 05 25 : 3차 공판

- 07 13: 4차 공판 (공범 손종규, 손유승, 손유배 무죄 판결)

- 09 14: 결심 (변호인 측 증인 진술)

- 10 19 : 선고 ( 손유형 무죄 판결)

<사진-1> 지난 10월 19일, 무죄 판결 이후 재판에 참석했던 유족들과 인권의학연구소 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 12-1부의 최봉희 재판장은 명쾌한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 따르면,  손유형 선생은 1981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 의해 영장 없이 불법 구금되었으며, 이후 46일 동안 고문과 회유 등 불법적인 수사를 받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특히, 이 불법적인 수사과정에서 국가기관이 피고인들에게 받은 자백은 임의성이 없는 진술로 인정했다.

 

 이에 원심에서 피고에게 사형을 선고한 증거는 유일하게 피고인들의 자백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재심 과정을 통해 살펴본 바에 따르면 재판부는 당시 피고인들의 자백이 임의성이 없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지난 9 14일 결심재판에서 징역 20년을 구형한 검찰은 자신들의 구형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으므로 재판부는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사진-2> 이번 재판 관련기사로 재판과정에서의 핵심 쟁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지적한 기사다.

 이번 재판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러한 판결을 반길만한 결과다. 이번 재판에서 법리적 다툼의 핵심 쟁점은 간첩죄 또는 국가보안법이 아니었다. 핵심은 이 재판이 재심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고인이 된 피고인이 군부독재 하의 당시 원심 법정에서 했던 진술이 법적 효력이 있는지를 다투고 있는 부분이다.(이와 관련한 상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62419)

 

 결국 피고가 국가기관(안기부와 검찰)에서의 진술은 고문과 회유 등으로 거짓으로 할 수 있지만, 왜 법정에서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는지를 두고 계속 다투었다. 그러나 당시 피고를 고문 수사했던 수사관들이 방청석에 앉아 감시하고 있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같은 법리다툼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또한, 1981년 법정에서 거짓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던 피고가 이미 고인이 된 상황에서 진실을 말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번 재판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사진-3> 지난 9월 14일, 3시간이 넘는 결심 재판을 마치고 다같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 남자가 故 손유형 선생의 차남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재판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번 무죄 판결은  손유형 선생과 같이 재일동포이면서 이미 고인이 된 피해자들의 향후 재심 재판에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번 재판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판결문을 읽었던 재판장의 태도였다. 이번 재심 재판 내내 아주 꼼꼼하게 재판에 임했던 최봉희 재판장은 판결문을 읽으면서 감정이 북받쳐 중간중간 감정을 추슬렀다. 그리고 마지막 자신의 무죄 선고를 들은 유족을 향해 다시 한번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품격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이러한 판사들이 사법부에 많아지길 기대한다.

 [김성만 선생님 인터뷰-①] 36년 만에 대법원 무죄를 받기까지

 

 김성만 선생님은 지난 7 29일 대법원에서 재심 무죄를 확정받았습니다.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성만 선생님은 36년 만에 간첩의 굴레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상고를 기각합니다라는 대법원의 짧은 답변을 듣기 위해 감내해야 했을 아픔은 가히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김성만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무죄를 선고받고 그동안의 어려움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습니다. 조금은 편안해 보이는 선생님의 얼굴을 뵙고 저도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지난 8 11일 잠실 모처에서 김성만 선생님을 뵙고 직접 소회를 들어보았습니다.

 

<사진-1> 지난 8월 11일 잠실의 한 카페에서 김성만 선생님과 인터뷰를 가졌다. (출처: 한겨레)

축하드립니다!

Q. 선생님, 얼마 전에 대법원에서 좋은 결과가 있었는데요.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김성만) 고맙습니다.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감사인사를 전하면서 정신이 없네요. 제 사건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제가 힘들 때 도움을 주셨던 분들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축하도 받는 그런 일정이 요즘 매일 있네요.

 

Q. 선생님, 저는 사실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받을 때 솔직히 너무 허무더라고요.
(김성만) 선고가 너무 짧아서요?

 

Q. , 딱 여덟 글자를 듣기 위해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가 싶어서요. 그럼 선생님은 그때 오전 10 20분경 대법원의 상고를 기각합니다라는 판결을 들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김성만) , 초긴장 상태에서 들었는데 대법원에서는 원심을 파기한다든지 아니면 상고를 기각한다라든지 그 둘 중에 하나잖아요. 근데 원심을 파기한다는 판결들은 조금 앞부분에 있더라고요.(웃음) 그리고 뒷부분은 대부분 상고를 기각한다는 판결들이고요. 그래서 우리 사건은 뒷부분에 있어서 기각이 되는가 보다 예상을 했죠.(웃음)

 

Q. (웃음) 그렇게 예측은 했지만, 막상 그 판결을 들었을 때는 어떠셨어요?
(김성만) 내 인생을 송두리째 짓눌렀던 것들이 다 벗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근데 원래 피고인들은 대법원 판결 참석을 잘 안 하잖아요. 제가 과거에 잡혔을 때도 저의 대법원 판결을 부모님이 가셔서 들으셨어요. 저는 그날 면회 온 부모님한테 들었어요. 대법원에서 제 사건 판결이 1초 만에 사형으로 확정되었다고요.

<사진-2> 지난 7월 29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후 재판에 참석한 분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김성만 선생(왼쪽에서 두 번째) 혼자 'V'를 하고 있다.

 

Q. 그럼 선생님은 대법원 판결을 오늘까지 2번을 받으신 거네요. 그때 면회 온 부모님께 대법원의 사형 확정 판결을 들었을 때 기분은 기억나세요?
(김성만) 그때 변호사가 1심과 2심 모두 사형이 나오면 더 이상 기대할 것은 없다고 했었어요. 그래서 저는 기각을 예상하면서도 혹시라도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죠. 그러나 역시 사형 확정이었죠.

 

Q. 처음 대법원 판결도 그렇고, 이번 경우도 일정 부분 예측을 하고 계셨던 거네요.
(김성만) 그렇죠. 근데 우리 사건은 아무리 군사정권이지만 사건 내용을 보면 사형을 판결할 이유가 전혀 없잖아요. 조작한 내용을 보더라도 저희가 무슨 국가기밀에 접근했다라든지, 사회를 위태롭게 했다든지, 그런 게 없잖아요. 그리고 그때 저희 사건의 1심 주심판사가 박만호 판사였고, 제 사건의 변호사는 고영구 변호사예요. 고영구 변호사님은 당시 인권변호사로 유명하셨던 분이었어요. 고 변호사님이 판사 출신이었는데, 이분이 부장판사 시절에 박만호 판사가 배석판사였다는 거예요.

 

Q. , 또 그런 인연이 있네요.
(김성만) , 서로 잘 알아요. 그래서 1심 판결 며칠 전에 서로 만났다고 하더라고요. 당연히 판결 전에 선고 형량이나 내용은 가르쳐줄 순 없게 되어 있으니까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는데, 고영구 변호사님이 식당에서 서로 밥을 먹으면서 제 걱정을 하니까 그 박만호 판사가 중형을 선고하지는 않을 겁니다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때 중형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의미하기 때문에 고영구 변호사나 저희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며칠 후에 1심 판결에서 사형 선고가 나온 거예요.

 

Q. 그때 고영구 변호사도 그렇고 모두들 충격이 상당했겠어요?
(김성만) 아무래도 그렇죠. 아무래도 저는 당시 안기부에서 사형 이외의 다른 판결은 할 수 없도록 했다고 생각해요. 판사는 안기부의 조작된 내용을 가지고도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판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겠지만, 안기부는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었던 거죠.

 

Q. 그 당시는 중앙정보부, 안기부가 다 쥐고 있었을 시기니까요. 그럴 수도 있었겠네요.
(김성만) 그렇죠.

 

<사진-3> 1985년 9월 9일 국가안전기획부 (안기부)는 미국 웨스턴 일리노이대학에서 만난 양동화, 김성만, 황대권 등이 재미 북한 공작원 서정균에게 포섭돼 간첩이 된 후 국내에 들어와 학생운동권에 공작금을 주는 등 간첩 활동을 했다는 게 당시 안기부 발표 내용이다. 사진은 1985년 9월 9일자 < 경향신문 >( 석간 ) 1 면 . ( 출처 :  한겨레 )

공범들을 위해 시작한 재심

 

Q. 선생님 사건이 1985년 당시 전두환이 자신의 정치적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표적으로 활용했던 사례였던 거죠. 돌이켜보면 1985년부터 2021년까지 법정싸움이 지속되었다고 할 수도 있는데요. 특히, 선생님이 재심을 2016년도에 신청하시고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있기까지 약 5년의 재심 시간이 선생님께는 어떤 시간이었어요?
(김성만) 재심하기 전까지 저는 제가 (유럽에서) 북한대사관을 간 적이 있기 때문에 죄가 안 바뀌는 줄 알았어요. 무죄라는 건 상상을 못 해봤어요. 그래서 재심을 신청하겠다는 생각은 안 하고 있었는데, 우리 사건의 공범 중 한 친구가 찾아와서 간첩 방조죄를 벗게 해달라고 저한테 요청을 했어요. 그래서 재심 신청을 결심했거든요. 처음 재심을 시작한 이유는 저 때문에 간첩 방조죄로 고생한 공범들을 위해서였어요.

 

Q. , 재심을 시작한 이유가 공범들의 누명을 벗게 하기 위해서 시작하신 거예요?
(김성만) , 그렇죠.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나는 원래 활동한 건 민주화운동 밖에 없는데, 우리 사건의 공범들은 간첩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그 공범들이 하루아침에 간첩 방조죄로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공범들의 누명을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재심을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재심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니까 판사가 관심을 가지는 건 내가 북한대사관에 가서 토론을 했다는 부분이 아니라 북한대사관의 직원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나눴다면 그 과정에서 어떤 지시가 있었는지가 핵심이더라고요.

 

Q. 선생님은 그때까지만 해도 북한대사관에 갔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죄가 된다고 생각하고 계셨던 거네요?
(김성만) 그렇죠. 그래서 재심 담당 변호사와 이야기를 해봤더니 북한 사람들을 단순히 접촉한 것이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했을 수는 있지만 국가보안법상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근데 제 경우는 북한 사람을 만나서 (주체사상의 허구성에 대해) 토론을 하면서 서로 얼굴을 붉히고 그랬어요. 그래서 저는 전혀 북한에 동조하거나 지시받은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무죄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때서야 법률적으로 확신을 하게 된 거죠. 이전에 사실상의 내용으로는 무죄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법률적으로 무죄라는 건 이번 재심을 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Q. , 그러면 선생님은 처음 재심을 시작할 때는 공범들의 재심을 위해서 시작한 거고, 스스로도 북한대사관 직원들을 만났다는 점 때문에 법률적으로도 무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계셨는데 이번 재심 과정에서 무죄라는 걸 알게 되신 거네요?
(김성만) 그렇죠. 간첩죄가 적용이 안 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제가 (유럽에서) 북한대사관 직원들을 만나고 토론하고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유죄인 줄 알았죠. 그런데 이번에 공범들을 위해 시작한 재심을 통해서 북한대사관에서 그 직원들과 토론한 것 자체는 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거죠.

 

Q. 그때서야 이제 이 재심을 하면 나도 무죄를 받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시게 된 거네요?
(김성만) 그렇죠. 그리고 1심 재판에서도 무죄 선고가 나왔죠. 

 

Q. 그럼 선생님 1심에서 무죄를 받으셨을 때, 그때가 정말 좋으셨을 것 같아요. 오히려 그때가.
(김성만) 그랬던 것 같아요.

<사진-4> 지난 7월 29일, 대법원 무죄를 선고 받고 연구소에서 작은 케익을 준비했다. 그 케익 위에는 "꽃길만 걷자"라는 초가 올려져 있다.    

재심, 또 다른 고통의 시작

Q. 그러나 1심에서 무죄(2020 2)를 받았지만 그 이후 과정이 쉽지는 않았잖아요. 특히 재심이라는 과정이 과거의 아픈 기억과 트라우마를 다 끄집어내야 하잖아요. 선생님의 경우는 1985년도 사형을 받았던 그 재판정에 다시 가서 내가 무죄라는 걸 스스로 입증해야 했는데, 재심을 하는 4-5년의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김성만) 재심 신청을 하고 개시가 되면서 제가 저의 과거 사건기록을 봐야 하잖아요. 그걸 몇십 년동안 제 머릿속에서 의도적으로 꽁꽁 싸매 두고 혹시 그 기억이 튀어나오면 바로 억누르고 기억을 안 하고 그렇게 힘들게 몇십 년을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걸 풀어헤쳐야 하는 거잖아요. 처음에 제가 재심 준비를 매일 했어요. 그 이유는 하루에 15분 이상 그 기록을 보거나 그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너무 힘들어서. 사건기록 한 두 페이지만 보면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일어나서 막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앉아서 한 2-3분 보다가 다시 덮는 거예요. 그러니 하루에 진도가 나갈 수가 없죠. 재심 준비는 해야 하는데 너무 괴로워서 생각을 할 수가 없으니까.

 

Q. 재심의 시작이 어떻게 보면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네요.
(김성만) 밤마다 악몽을 꾸기 시작했어요. 옛날 기억들이 떠오르니까요. 그래서 재심을 하면서 어렵게 단절했던 과거를 다시 사는 것 같았어요. 꿈에서는 내가 다시 사형수로 나오고..날이면 날마다..낮에는 15분 정도만 사건기록을 살펴보고. 그리고 또 한 번은 내가 과거 법정에서 했던 진술을 보면서 울음이 터져 나오는데 3일 동안 울기만 했어요. 왜냐하면 재판을 받을 때 안기부 직원들이 뒤에 앉아 있고, 자기들이 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하니까. 그러면서 안기부에서 조사받았던 내용을 부인하면 그냥 죽는다고 수도 없이 교육을 받은 상태에서 검찰을 거치고 법정으로 왔기 때문에 어떻게 제가 법정에서 부인을 하겠어요. 그래서 저는 전혀 그런 적이 없는데 안 한 걸 했다고 이야기를 하는 나의 과거 법정진술을 내가 지금 다시 읽으면서 눈물이 막 쏟아지는 거예요. 살려고 어떻게든 발버둥 치던 나의 젊은 날의 모습이 계속 스쳐 지나가는 거예요.

 

Q. 우리 사회와 사법부가 이렇게 재심을 하는 과거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어려움을 알아야 하는데요.
(김성만) 그리고 1심 재심 재판에서 재심을 받아준 판사가 검사한테 과거 법정기록 중에서 피고인들이 부인한 내용들만 법정에서 다시 가지고 오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부인한 내용을 가지고 이 사건을 다시 보겠다는 거였어요. 근데 검사가 여기서 나쁜 짓을 하더라고요. 검사들은 여전히 우리들을 죄인으로 만드는 게 자신들의 직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진짜로 부인한 내용 90%와 엉터리로 시인한 내용 10%를 중간중간에 끼워서 제출한 거예요. 그러니까 재심 과정에서 과거 고문 때문에 진술했던 모든 내용들을 법정에서 사실인 것처럼 호도해버리니까 이때 내가 또다시 군사법정에 앉아서 재판을 받는 기분이더라고요.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김성만 선생님께 축하를 전해드렸지만, 그 무죄를 얻기까지 감내하셔야 했던 아픔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국가가 저지른 이 야만적인 폭력과 그로 인한 아픔을 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하는가?” 국가는 재심이라는 과정을 통해 또다시 피해자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두 번째 인터뷰에서는 김성만 선생님의 앞으로의 계획을 포함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인터뷰 진행: 박민중 활동가)

[42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

 

무죄를 받기까지 42년이 걸렸지만,

당시 유죄를 받은 이유를 보면 기가 막힌다.

 

지난 8월 12일 연합뉴스 기사.

이번에 무죄를 받은 이씨는 "1979년 10월 27일 정훈장교(소령)로 복무하던 중 이발소에서 동료들과 박 전 대통령 저격사건 관련 보도 내용에 관해 얘기했다가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혐의(계엄법 위반)로 계엄군법회의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얼마나 옹졸한 국가였는가.

 

아래 링크를 통해 관련 기사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812121800064?input=1195m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언급' 징역형, 42년만 재심서 무죄 | 연합뉴스

(청주=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군에 근무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 저격사건'과 관련한 신문 기사를 언급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받고 전역한 이...

www.yna.co.kr

 

[36년 걸린 '무죄' 확정... 드러난 검찰의 시대착오]

 

 지난 7월 29일 목요일, 대법원에서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사형수였던 김성만, 양동화 선생에
대한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2016년 재심을 신청해 지방법원, 고등법원, 그리고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약 5년에 걸친 재심과정이 끝나는 날이었습니다. 

 

 이 기사는 단순히 이날 있었던 대법원의 무죄 판결 내용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지난 5년에 걸친 간첩조작
재심과정에서 발견된 국가기관의 시대착오적 접근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2심 재판 과정에서 검찰 측이 보여준 행태는

과연 2021년의 검찰과 1985년 당시 검찰은 시대를 인식하는 관점이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했습니다.

 

▲ 무죄 판결 후, 대법원 앞에서 다같이 찍은 사진  지난 7월 29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후 재판에 참석한 분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정금택, 김성만, 양동화, 이동석씨,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64458 

 

36년 걸린 '무죄' 확정... 드러난 검찰의 시대착오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대법원 무죄확정... 그리고 검찰이 보여준 또다른 가해

www.ohmynews.com

 

[이런 판사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사법부가 인권의 보루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법부 성원(일원)으로서
깊이 사과드립니다.

이번 재심 판결이 피고인들에게 위로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납북어부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하면서

서울고법 형사12-3부 김형진 판사가 사과의 말.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입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62918540002562?did=NA 

 

"깊이 사과드린다" 납북어부 재심 무죄 선고한 재판장의 사과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고문을 받고 7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고(故) 박남선씨에 대한 재심에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고 진심 어린 사과의 뜻을 전했다. 박씨는 이날 무죄로 43년 만에 누명을

ww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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