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사과] 국정원, 과거사 사건 피해자에게 ‘사과 서한’을 보내다.
- 사과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
국가정보원(국정원)이 과거 중앙정보부(중정),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시절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등 인권침해 지적을 받은 일부 과거사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국정원은 지난 7월 7일 보도자료를 통해 “1960~1980년대 중정, 안기부 수사에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와 유족에게 박지원 국정원장 이름으로 사과 서한을 보냈다”고 하였다. 서한 발송 대상은 1기 진화위가 국가의 사과를 권고했던 27개 사건 관련 피해자와 유족, 가족 등이었다.
국정원은 “생존과 주소가 확인된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직접 사과 서한을 보냈고, 이미 작고하신 분들과 주소가 파악되지 않는 분께는 서한을 발송하지 못해 부득이하게 이 자료를 통해 사과드린다.”고 했다. 발송 서한에는 “과거 수사과정에서 큰 피해를 당하신 것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그리고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충실하게 자료를 제공해 진실규명 및 명예회복에 적극 협조하는 것이 진정한 사과를 완성하는 길”이라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또 “다시는 이런 인권침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약속이 포함됐다.
2008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여 울산보도연맹 희생자 추모행사 영상메시지로 과거사에 대한 종합적 사과를 한 지 약 13년이 지난 국정원의 사과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한 그 당시 이미 설립되어 활동을 한 국무총리 소속 “과거사관련위원회 권고사항 처리기획단 (과거사처리기획단)”이 있었다. 이 과거사처리기획단은 피해자에 대한 사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법 제도 정비, 위령사업지원, 법원 재심 지원 등을 하겠다고 약속하였으나, 피해자 사과조차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국가의 사과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이후 사법부는 부당한 과거 판결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뒤 재심을 통해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2017년,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문무일 검찰총장이 검찰의 시국사건을 포함해 과거의 잘못된 사건 처리를 사과했다. 기자간담회에서 문 총장은 “검찰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 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인혁당 사건 등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돼 수사기관 잘못이 드러난 사건에 대해 피해당사자와 유족들에게 기회가 되는 대로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과를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말하고 싶다. 기자들 앞에서 먼저 사과함으로써 피해자들은 사과를 당한 셈이 되었다.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사과하는 것이 선행되었어야 했다. 또한, 검찰총장은 죄송하다는 표현 조차 하지 않았고 ”수사결과에 대한 의욕이 지나쳐 수사절차의 적법성과 적정성을 소홀히 했다“고 언급해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아니라는 비판이 나왔다.
2021년 국정원장의 사과도 하려면 제대로 했어야 했다. 울릉도사건의 피해자 이*희 선생은 지난 7월에 국정원장의 사과문을 받았다고 (사)인권의학연구소에 서한을 보내왔다. <사진 1>
1974년 3월, 당시 거센 유신 헌법 반대에 직면한 박정희 정권은 국민의 저항을 희석하고자 대규모 울릉도간첩단사건을 조작하여 발표하였다. 1974년 울릉도간첩단사건은 중앙정보부가 남산으로 불법연행하여 고문 수사한 47명 중 검찰이 32명을 기소하였고, 재판을 거쳐 3명을 사형에 처했던 대규모 조작간첩단 사건이다. 당시 언론은 이 사건을 정부에서 발표하는대로 신문 1면 전면에 크게 보도하였다. <사진 2>
그러나, 2014년 이후 울릉도 사건으로 투옥된 전원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실은 언론에서 작은 기사로 보도해왔다. 또한, 2021년 7월에 보내온 국정원장의 사과 편지는 울릉도사건으로 징역을 산 29명의 피해자 중 단 한 명, 이*희 선생에게만 전달된 것으로 확인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울릉도사건 피해자와 조작간첩사건으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수많은 피해생존자들은 "사과를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들의 극히 일부에게 사과 편지 한 장을 보내면서 생색내지 말고, 신문 전면에 사과문을 공식으로 게재하라는 것이다. 과거 조작간첩사건, 시국사건을 1면에 대문짝만 하게 내었던 그 기사와 같은 크기로 사과문을 보도하라는 것이다.
국가는 어떻게 피해생존자와 가족, 유족에게 사과하는 것이 맞을까?
1. 국가는 피해당사자와 가족 및 유족에게 직접 사과를 해야 한다.
해당 수사기관(검찰, 국정원, 국방부, 경찰) 수장은 기자간담회나 편지의 형식이 아닌 직접 피해자를 공식 초청해서, 사과하고 직접 사과 편지를 전달해야 한다. 또한, 사과문을 과거 사건 보도 기사 크기 이상으로 신문과 방송에 게재, 보도해야 한다.
2. 국가는 말로 사과를 하는 동시에, 가해자 책임을 물어야 한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과거사위원회에서 진실규명을 받았거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에 대하여 가해자가 훈포상을 받은 경우, 그 사건 관련 모든 가해자의 훈포상을 취소해야 한다. 또한, 해당 수사기관 수장은 훈포상이 취소된 가해자의 정보 공개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사진 3>은 2018년 7월에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서훈취소 고문수사관 명단이다. 자료를 잘 살펴보면, 피해자 이름이나 사건명을 확실히 명시하였으나, 반면 가해자 수사관의 이름을 허O, 안OO이라고 기입하여 발표하였다. 이는 피해자로 하여금 국가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게다가 울릉도간첩단사건의 훈포상취소자를 안OO, 장OO, 한OO 등 3명으로 발표하였으나, 모든 피해자들이 기억하고 지목하는 총책임 수사관이었던 차OO의 이름이 없다. 이것만 봐도 훈포상 취소와 국가의 사과가 지극히 표면적이고 형식적 겉치레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국가는 사과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것이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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