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화영 소장, 올해는 행복추구 사업이 가능해지길 바랍니다!”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 소장의 신년 인터뷰-

 

 2022년 임인년을 맞이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후원회원님들은 잘 지내고 계시나요? 새로운 한 해를 여는 시점에서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 소장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신년 인터뷰를 통해 소장님의 이야기와 2022년 인권의학연구소의 목표들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Q. 소장님, 안녕하세요! 벌써 2022년의 1월도 지나가고 있는데요. 소장님은 주말이나 시간이 있을 때, 주로 어떤 걸 하면서 시간을 보내시나요?

(이화영 소장) 질문하는 박민중 선생님이 궁금한 점이죠? (웃음) 요즘 저는 시간이 나면 무언가를 계속 치우고 정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결벽증도 좀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문득 오늘이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현실적 생각이 들면서 시작되었어요. 남은 누군가가 나 대신 치울 것을 생각하니 그 생각이 들 때마다 바로바로 치우곤 하는 거죠. 제가 생각해도 어이없이 다리 골절을 두어 번 경험한 이후로는 약해지는 체력을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집 근처 산에서 둘레길 걷기를 합니다. , 그리고 맛있는 제철 음식을 한 가지라도 꼭 만들려고 해요. 예전보다는 분명 느리고 특별하지 않게 여가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진-1> 지난 1월 19일, 눈이 내리자 이화영 소장님이 수녀원 마당을 청소하고 있는 모습이다.

Q. 지난 한 해 인권의학연구소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순간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겠어요?

(이화영 소장) 2021년 역시 인권피해자와의 만남에서 늘 걱정되는 것은 코로나 상황이었습니다. 노령의 피해자에게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생존하는 일이 급선무이기 때문이죠. 코로나19 상황에서 필요한 일상의 기능을 확보하도록 백신 접종 신청하기’ ‘QR체크인’ ‘택시 예약하기’ ‘온라인 생필품 주문하기 등 스마트폰 사용법을 익혀드렸는데요. 그랬더니 70~80대 노령의 선생님들이 공동체 영화 상영에서 젊은 관객처럼 자연스레 잘 입장하셨어요.^^

<사진-2>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인권의학연구소 소강당에서 열심히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12월 초에 제법 쌀쌀한 날씨였는데, 고문생존자 10여 분이 김근태기념도서관 개관식에 온 여러 관객 앞에서 타악기 공연을 했어요. 생존자 선생님들은 10개월 동안 매주 연습을 하면서 기량을 쌓으셨지만, 공연 직전까지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개관식의 모든 식순 중 가장 의미 있고 감동을 주는 공연이었다고 김근태기념도서관 주최 측의 후기를 전해 들었어요. 저 역시 쾅쾅 울려 퍼지는 타악기 소리를 듣는 내내 마음이 울컥하며 뜨거워졌었거든요. 감동이었죠.

  <사진-3> 지난 12월 4일, 국가폭력 피해생존자들이 김근태기념도서관 개관식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일은 인권의학연구소가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3년 동안 진행해온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일이에요. 결과, 행정안전부로부터 훈·포상이 취소된 고문가해자들의 실명과 소속, 계급 등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았습니다. 행정안전부 직원이 직접 인권의학연구소를 방문해서 피해자와 수녀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전달하였습니다. 

<사진-4> 지난 12월 30일, 행정안전부 상훈담당관실에서 인권의학연구소를 방문해 고문가해자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이날 인권의학연구소 자문위원으로 김장호 선생님과 수녀원의 마리 비안네 수녀님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 이것도 빼놓을 수 없네요. 10년 전 인권의학연구소 집단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인연으로 만난 신순애 청계피복 노동활동가가 국가로부터 받은 민사 배상금 전액을 장학기금으로 기부하셨는데요. 지난주에 신순애 선생님이 출연한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을 보았습니다. 영화에서 당시 어린 노동자들은 우리의 소원은 배움, 꿈에도 소원은 배움이라고 노래합니다.  10시 넘어 작업이 끝나도 조금이라도 공부하려고 그 시간에 노동교실로 달려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배움에 목마른 노동자에게 국가는 폭력으로 대응했으니, 신순애 선생님이 국가폭력 피해자 자손의 장학 사업에 사용하도록 당부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장학 사업이 민주화 과정에서 조부모 또는 부모의 저항과 희생의 숭고한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도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돌아보니 많은 일들이 기억에 남는 한 해였습니다.

 

<사진-5> 지난 1월 20일 개봉한 [미싱타는 여자들] 영화 포스터로 왼쪽부터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 주연배우의 어린 시절의 초상화다.

Q. 2022년 인권의학연구소와 김근태기념치유센터의 목표 또는 바람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화영 소장) 2022년에는 인권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행복추구 사업이 가능해지기를 바랍니다. 조작간첩사건의 피해자이신 김장호 선생님이 피해 생존자의 행복추구 사업에 사용하라는 지향으로 기부를 하셨어요.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면 생존자들과 함께 여행을 가는 것도 그 사업에 속합니다. 지난해에 조작간첩사건 피해자셨던 하원차랑 선생님이 타계하셨어요. 갑자기 준비 없이 보내드려 참 마음이 아팠는데요. 지난해 사전연명의향서를 함께 작성했던 것처럼 노령의 선생님들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자 해요. 선생님들과 함께 결혼식 영상처럼 장례식 영상을 만들면 어떨까 하고 논의한 적이 있어요. 기억에 남기고 싶은 모습들을 사진 영상으로 엮어 남기는 작업이죠. 많은 분이 좋아하셨어요. 제 것도 함께 만들어야죠. (웃음)

  <사진-6> 지난 11월, 인권의학연구소에서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다같이 화보를 찍고 있다.

 또한, 올해는 국가폭력 피해자와 가족을 위한 공적 의료지원이 가능해지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지난 10년 동안 국회 본회의 통과를 위해 노력해 왔던 고문방지 4의 통과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피해자 지원뿐만 아니라 가해자 처벌도 가능해지기 때문이죠.

  

Q. 마지막으로 인권의학연구소의 후원회원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이화영 소장) 인권의학연구소는 민간 비영리단체로 후원회원님들의 기부로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권의학연구소의 피해자 지원활동이나 의료인 인권 교육 등 모든 활동은 후원회원님들이 계시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 점에서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최근에 공동체 영화 상영 등 문화프로그램을 통해 회원님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좀 더 자주 만나는 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모든 회원님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화영 소장님의 인터뷰 글을 읽으며 지난 한 해 인권의학연구소가 많은 일들을 했다는 자부심(?)이 생기는데요!^^ 올해는 2021년보다 더욱 국가폭력 피해 생존자분들을 비롯한 인권피해자들의 행복추구에 인권의학연구소의 역할을 기대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이화영 소장님께서 빼놓으신 2022년 목표가 있는 것 같은데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연구소 후원회원으로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후원회원이라면, 주변에 있는 지인분들에게 추천해주세요!^^ 늘어나는 후원회원만큼 이화영 소장님의 기쁨도 배가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박민중 활동가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행사] ‘2의 전태일을 만나는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인권의학연구소, 공동체 상영회를 가지다-

 

 지난 토요일(22) 오후 3 30, 인권의학연구소는 종로 3가에 위치한 CGV피카디리 극장에서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공동 상영회를 가졌다. 이번 상영회는 코로나 방역지침으로 인해 최대 100명을 모집하였는데, 모집 3일 만에 신청 마감되었다. 인권의학연구소의 후원회원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진 이번 상영회는 영화 관람 후 감독 및 출연진과의 대화시간을 마련해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사진-1> 영화 『 미싱타는 여자들 』 공동 상영회 장면(오른쪽 아래)과 상영이 끝나고 출연진과 국가폭력 피해자들이함께 찍은 사진(오른쪽 위)이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은 지난 20()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봉준호, 박찬욱 감독을 비롯한 수많은 인사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특히,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근래 본 가장 아름다운 다큐라는 평을 남겼다. 미싱타는 여자들 1970년대 평화시장에서 노동인권에 눈을 뜨며 성장하고 연대했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를 다닐 12-14세의 나이에 평화시장에 취업해 하루에 13-4시간씩 일해야 하는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이들은 어떻게 견디고 승리했는지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1970년대 노동과 인권이라면 우리 사회는 전태일 열사만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전태일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당시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바로 제2의 전태일이었다. 특히 청계피복의 여성노동자들은 노동교실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배우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용감하게 맞섰다. 노동인권 신장을 위해 그렇게 용감하게 맞섰을 당시 그들의 나이는 20세가 채 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2의 전태일 그리고 여자 전태일이었다.

<사진-2> 출연진의 어린 시절 초상화를 활용한  『 미싱타는 여자들 』의 영화 포스터.

 이 영화의 주인공은 3(신순애, 이숙희, 임미경)인데, 그중에 2명은 인권의학연구소와 깊은 인연이 있다. 이숙희 선생은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인권의학연구소를 후원하고 있는 후원회원이며, 신순애 선생은 얼마 전 인권의학연구소에 국가로부터 받은 민사 배상금 전액을 기부했다. 이 기부를 통해 올해부터 인권의학연구소는 장학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진-3> 영화의 주인공인 신순애 선생(왼쪽)과 이숙희 선생(오른쪽). 

 108분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끝나고 두 명의 감독(이혁래, 김정영), 세 명의 출연진(신순애, 이숙희, 임미경)과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관객과 출연진 모두 영화의 감동이 가시지 않는 듯 대화를 나누면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특히, 같은 시절 같은 여성노동자였던 몇몇의 관객은 출연진들을 향해 그 어려운 시절을 잘 견뎌줘서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영화로 전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흐르는 눈물을 참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건네는 그 말속에서 지난날의 아픔과 애환을 가늠할 수 있었다.

<사진-4>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고 있는 장면(왼쪽)과 영화의 주인공인 신순애 선생이 자신의 저서인"열 세살 여공의 삶"에 사인하고 있는 장면(오른쪽)이다.   

 이날의 행사는 인권의학연구소의 함세웅 이사장의 발언으로 마무리되었다. 토요일 오후 시간임에도 함께 해주신 후원회원을 비롯한 약 100여 명의 참여자들에게 함세웅 이사장은 이 영화에 대한 소감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하나는 신학적·역사적 맥락에서의 안타까움이었다. 이 여성노동자들은 잘못된 역사를 바꾸는데 가장 앞장섰고, 이들의 희생에 의해 역사는 진전되었으나 그 열매는 오롯이 이들이 아닌 다른 자들이 취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여성노동자들이 바로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산업화의 주인공이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외면하고 잊고 있었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다고 함세웅 이사장은 강조했다.

 

어제의 청춘이 오늘의 청춘에게 보내는 안부라는 부제의 이 영화는 이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미화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 담백한 안부 속에서 이날 상영회에 참여한 관객들은 각자 자신만의 또 다른 숙제를 안고 이날의 상영회는 마무리되었다.

다른 시대를 살았던 청춘이

오늘의 청춘에게 보내온 편지

2022.01 / Sewing Sisters, 2020

 

감독이혁래김정영

출연이숙희(본인), 신순애(본인), 임미경(본인)

 

1970년대 평화시장에는

가난해서 혹은 여자라서 공부 대신 미싱을 타며

시다 또는 공순이로 불린 소녀들이 있었다.

 

저마다 가슴에 부푼 꿈을 품고 향했던 노동교실

그곳에서 소녀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노래를 하고, 희망을 키웠다.

 

 위 사진을 클릭하시면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법률] 47년 만에 열린 재심 재판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 유정식 선생의 재심이 시작되다-

 

 1 20() 오전 11 20, 서울 고등법원 서관 302호에서는 47년 만에 재심 재판이 진행되었다. 재심 재판의 주인공은 지난 1975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가 된 유정식 선생이다. 이날 재판은 재심이 개시되고 처음 열린 공판이다. 오늘은 유정식 선생을 비롯해 같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함께 재판에 참여해 유정식 선생을 응원했다.

 

  <사진-1> 재판이 끝나고 장경욱 변호사(왼쪽)는 유정식 선생(중간)에게 재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1 20분 시작된 재심 첫 재판은 재판부(재판장 윤승은)의 몇 가지 안내와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유정식 선생의 변호를 담당한 장경욱 변호사(법무법인 상록)와 신윤경 변호사(법무법인 동아)는 재판부에 항소 이유 보충서를 비롯해 다양한 자료를 제출했다. 이 자료들은 1975년 당시 유정식 피고의 진술서와 재판에서의 내용의 신빙성을 탄핵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변호인에게 자료 내용에 대한 질의를 이어나갔고, 변호인은 하나하나 답변했다. 이후 재판부는 검찰 측에 오늘 새롭게 변호인 측이 제시한 자료에 대한 의견을 묻자 검사는 의견 없음으로 일관했다.

 

 그렇게 20여분이 지나고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유정식 선생은 재판부를 향해 최후진술을 할 수 있는지 물었고, 재판부는 기회를 주었다. 준비된 원고를 꺼내 유정식 선생은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다. 유정식 선생은 1975년 갑자기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된 상황부터 설명했다. 45일간 중앙정보부에 불법 구금되어 수사관들에 의해 어떻게 고문을 당했는지 설명하면서 유정식 선생은 중간중간 울먹였다.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유정식 선생에게 진술서를 강요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즉각 옆방으로 데려가 고문을 하고 다시 진술서를 작성하게 했다고 밝혔다.

<사진-2> 재판이 끝나자마자 삼척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인 김순자 선생(왼쪽)은 최후진술을 하고 힘들어하는 유정식 선생(오른쪽)을 위로했다.

 또한, 재판 당시에도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재판에서 유정식 선생이 고문에 의해 작성된 진술서와 조금이라도 다르게 답변할 경우 엄청난 고문이 기다릴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협박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정식 선생은 어떠한 대처도 할 수가 없었으며, 속수무책으로 재판은 끝나버렸다. 결국 1심 재판의 결과는 사형이었다. 유정식 선생에 따르면, 1심 재판에서 사형이라는 재판부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고 한다. 그렇게 억울한 재판이 이어지고, 결국 유정식 선생은 23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이러한 내용을 재판부에 호소하면서 유정식 선생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밝혔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제 저는 올해로 나이가 83세입니다.
이제는 삶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부디 공정한 재판을 통해 저의 이 억울함을 풀어주시길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

 

 재심을 신청하고 4년여의 시간 만에 개시가 결정된 이 재판은 유정식 선생 개인은 물론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상당하다. 1970-80년대 독재정권 하에 국가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개인의 삶을 통제하고 말살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 정당성이 결여된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무고한 개인들의 삶에 개입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재판 과정을 면밀하게 파악하여 알리는 것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이 같은 국가폭력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노력일 것이다. 

 

 앞으로 ()인권의학연구소는 유정식 선생의 재판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여 재판 과정과 내용을 소상히 알리고자 한다. 다음 재판기일은 오는 3 17일 오후 4 40, 서울 고등법원 서관 302호에서 열릴 예정이다.

[초대] 봉준호 감독이 극찬한 영화, 함께 보실래요?

-()인권의학연구소와 함께 하는 공동체상영회-

 

봉준호 감독은 오는 20일 개봉을 앞둔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근래 본 가장 아름다운 다큐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극찬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미싱타는 여자들입니다
이 영화는 1970년대 평화시장에서 노동인권에 눈을 뜨며 성장하고 연대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여성들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투쟁하며 노동인권 개선에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기억하거나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단지 노동인권이라면 전태일만을 기억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여자 전태일이자 2의 전태일입니다. 
특히, 3명의 주인공 가운데 신순애, 이숙희 선생님은 특히 저희 연구소와 깊은 인연이 있는 분들입니다.

 

이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를 미화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담백한 전개 속에서 뜨거운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영화를 놓칠 수 없어 후원회원분들과 함께 감동을 느끼고자 연구소에서 공동체 상영회를 마련했습니다.

 

2022년의 첫 달의 시작을 후원회원님들과 좋은 영화로 시작하길 바랍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일시: 1 22() 오후 3 30

- 장소: CGV 피카디리1958 (종로3가역 2-1번 출구)
- 티켓 수령 장소: 지하 2층 매표소 앞

- 신청 링크: https://url.kr/j6asxk

- 문의 : 인권의학연구소(02-711-7588 / imhrc@naver.com)

 

영화 상영 후에는 감독 및 출연진과의 대화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번 공동체 상영회는 코로나로 인해 100명 선착순으로 진행되며,

현 방역지침에 따라 백신 접종 완료자만 참여가 가능합니다.

(입장 전, QR코드를 통해 백신 접종 완료 여부를 확인합니다.)

[공지]  2021년 연말정산용 기부금 영수증발급 안내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었던 지난 해에도 변함없이 지지해주시고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새해에도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 은 인권피해자를 돕고 사람을 진정 존중하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법률] 고문 피해자와 고문 가해자 사이의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간첩조작 피해자 유족, 국가와 이근안을 상대로 손배소 청구 관련- 

 

지난 6, 간첩조작 피해자 유족이 고문 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이 간첩조작 피해자는 1965년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나포되었다가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13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간첩 혐의로 불법 체포되었고, 당시 그에게 고문을 주도했던 자가 바로 이근안이다.

 

  <사진-1> 지난 1월 10일, 간첩조작 피해자 유족의 소송 관련 기사. (출처: 뉴시스)

피해자는 이근안에 의해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하루아침에 간첩이 되었고, 7년의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43년이 지난 2021 6월 그 피해자는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당시 이근안과 국가기관은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죄 없는 시민을 하루아침에 간첩으로 만들어 버렸음이 밝혀진 셈이다.

 

그럼에도 이근안은 지난 2013년 자서전을 통해 이 피해자에 대해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문가해자인 그는 반성과 사과는 온데간데없고 여전히 자신의 불법적이고 반인륜적인 범죄를 합리화하는데 급급하다.

 

<사진-2> 지난 2013년 출판된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자서전. 

이러한 배경에서 이 피해자 유족(이 피해자는 지난 2006년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은 이근안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번 소송은 근본적인 한계를 내재하고 있다. 하나는 수많은 피해자가 존재하지만 고문가해자는 언제나 이근안 한 사람이라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현행법상 고문가해자에 대한 법적 책임은 형사소송의 테두리가 아닌 민사소송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고문 피해자는 알면서도 고문 가해자는 알 수 없는 걸까. 그리고 우리 현행법은 왜 고문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고 있는 걸까. 이같이 잘못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해결돼야 한다.

 

고문 가해자를 알아야 한다

 

첫째, 고문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2021 10월 기준, 국가기관에 의해 간첩조작으로 사형, 무기징역,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수십 년이 흘러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사람만 449명에 이른다. 이는 재심이라는 과정을 통해 드러난 수치이며,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간첩조작 고문피해자들의 수는 사실상 추정조차 불가능하다.

 

이렇게 피해자는 존재하는데 여전히 가해자는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현실이다. 여전히 우리가 알고 있는 고문 가해자는 고문 기술자 이근안 밖에는 없다. 이근안도 수많은 고문 가해자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1970-80년대, 고문을 통해 간첩조작을 만들었던 대표적인 수사기관인 중정·안기부(현 국정원), 보안사(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치안본부(현 경찰청) 등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다행히 지난해 11, ()인권의학연구소가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제기한 부적절한 서훈 취소 관련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행정법원은 1970-80년대 고문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고문가해자가 누구인지 밝히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러나 이 판결을 통해 공개될 고문가해자는 50여 명에 그친다. 당시 수많은 고문피해자의 숫자를 생각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

 

둘째, 고문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간첩조작 피해자 유족이 이번에 이근안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현재 한국 현행법으로는 공소시효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 현재로서는 고문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공소시효로 인해 법적 근거가 없는 실정이다. 이에 고문피해자가 구제를 받으려면 국가에 내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통한 금전적 배상이 전부인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대 국회를 시작으로 20, 21대 국회에서 고문피해자 지원과 고문가해자 처벌을 위한 '고문방지 4법안'을 제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이 고문방지 4법안은 고문방지 및 고문피해자 구제·지원에 관한 법률안(제정) 고문피해의 회복을 위한 청구권의 소멸시효에 관한 특례법안(제정) 형법 일부개정법률안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으로 구성됐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고문피해자에 대한 의료지원과 함께 고문가해자에 대한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10년 동안 이 법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당시 새누리당의 김진태 의원이 법사위에서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131명의 국회의원이 관련 법안을 공동 발의하면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으나, 여전히 계류 중이다.

 

며칠 전, 고문기술자 이근안과 국가를 상대로 간첩조작 피해자 유족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 청구소송에 내재된 구조적 결함을 인지하고 이제는 이를 해결해야 한다

[신현봉 신부님 감사했습니다]

 

202213일 오후 342,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원로인 신현봉(안토니오) 신부님께서 선종하셨습니다.

 

<사진-1> 신현봉 신부님

신현봉 신부님은 1970-80년대 독재정권 하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결성하는데 앞장섰고, 이로 인해 수많은 고초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저희 연구소에서 발간한 ‘1970-80년대 불의한 국가폭력에 저항한 수도·성직자들의 증언집의 제목이었던 신부가 그런 일을 안 하려면 뭐하러 사제가 돼?”라고 말씀해주셨던 분이 바로 신현봉 신부님입니다.

<사진-2> 지난 11월 (사)인권의학연구소에서 발간한 ‘1970-80년대 불의한 국가폭력에 저항한 수도·성직자들의 증언집’의 표지. 중간에 군인들에 의해 끌려가고 있는 사제가 바로 신현봉 신부다.

 

201899, 강원도 원주시 용소막 성당에서 만난 신현봉 신부님은 신부님은 그 활동, 고초도 당하시고 이런 게 신부님한테는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요? 교회가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을 해주세요.”라는 마지막 질문에 힘주어 답하셨습니다.

 

<사진-3> 2018 년  9월  9일, 질문자의 마지막 질문에 답하고 있는 신현봉 신부.

 

“나는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신부가 그런 일을 안 하려면 뭐하러 사제가 돼?
오히려 사제가 되어 가지고 그런 운동에 가담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있으면 적극 앞장서서 해야지요!”

 

90세가 된 신현봉 신부님은 여전히 앞으로도 그런 일(불의한 일)이 있으면 적극 앞장서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비록 신현봉 신부님은 떠나셨지만,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는 것이 남아있는 자들이 신현봉 신부님을 기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현봉 신부님, 그동안 우리 사회의 어른이 되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추모미사] 김근태 의원도 고문피해자였습니다.

-고문피해자 지원법안이 필요하다-

 

 12 29,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생 10주기 추모행사가 있었다. 오전 10시 마석 모란공원에서의 묘역 참배를 시작으로 오후 2시 명동대성당에서 추모 미사와 ()향린교회에서 추모 문화제까지 추모행사는 이어졌다. 이날 행사에는 김근태 전 의원의 부인인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유은혜 사회부총리, 우상호 의원 등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계인사들보다 더욱 중요한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은 바로 명동대성당에서의 추모미사에 참석했던 김근태 전 의원과 같은 고문피해자들이었다.

 

<사진 -1>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생 10주기  추모미사에 참여한 고문피해자들.

 故 김근태 선생 10주기 추모행사에 참여한 약 10여 명의 고문피해자 분들에게 김근태라는 개인은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그 이유는 1980년대 김근태라는 청년도 이들과 같은 고문피해자였기 때문이다. 1985 9 4, 김근태는 서울대 민추위(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의 배후로 조작되어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되어 불법 구금되었다. 이후 22일 동안 김근태는 사람이라면 견디기 힘든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후 1985 12 19일 김근태는 첫 공판에서 우리나라 법정 사상 최초로 모두진술 제도를 활용해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의 살인적인 고문사실을 폭로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이 같은 살인적인 고문은 1970-80년대 이미 조작간첩을 만들면서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 특히 남영동 대공분실뿐만 아니라 남산의 중앙정보부, 서빙고의 보안사 등 곳곳에서 고문피해자들은 양산되었다. 이날 10주기 추모미사에 참여했던 고문피해자들은 김근태 이전의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이었다.

 

<사진 -2>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생 10주기  추모미사의 강론을 맡은  함세웅 신부.

 이날 추모미사의 강론을 담당했던 함세웅 신부는 당시 남영동에서 살인적인 고문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김근태 의원을 보고 너무 몸이 초췌하고 망가져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함세웅 신부는 김근태 의원이 고문 이전의 삶을 회복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함세웅 신부는 일반인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고문의 트라우마에 대해 몇 가지 전해주었다. 예를 들어 김근태 의원은 살아생전 치과 진료를 받을 때, 치료를 위해 얼굴에 녹색 천을 얹는 순간 몸이 남영동에서의 물고문을 기억해 숨이 멎을 정도였다. 이는 고문을 당한 지 2-30년이 지나도 고문의 상처와 후유증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증거다.

 

 이런 내용을 비추어 볼 때, 일반인이라면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문을 경험했던 피해자들을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국가기관이 자행한 고문이라는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것은 물론 이들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이 지난 10년 동안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재근 의원은 지난 2012 19대 국회를 시작으로 20, 21대 국회에서도 고문방지 4법안을 제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특히, 이번 21대에서는 131명의 국회의원이 공동발의(20대 국회에서는 51명 공동발의)하면서 통과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여전히 계류 중이다.

<사진 -3>  명동성당 앞에서  ‘ 고문피해자 지원법 제정하라 !’ 는 피켓을 들고 있는 고문피해자들 .

 이에 같은 고문피해자였던 김근태 의원의 10주기 추모미사를 참여한 고문피해자들은 추모미사를 마치고 명동성당 앞에서 추운 날씨에 조용히 피켓(고문피해자 지원법 제정하라!)을 들었다.

 

 만약 김근태 의원이 지금 살아있었다면, 이분들을 위한 고문피해자 지원법을 제정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지지 않았을까. 우리는 2022 12 29일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생 11주기 추모미사에서는 고문피해자들이 직접 피켓을 드는 장면은 일어나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

[김근태 의원 10주기 추모미사에서]

 
12월 29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10주기 추모미사에 김근태 의원과 같은 고문피해자 선생님들이 참석하셨습니다.
 
 
추모미사를 인도한 함세웅 신부님은 김근태 의원 또한 고문피해자였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고문피해자로서 김근태 의원이 겪었던 아픔들을 전해주었습니다.
먼저 떠난 김근태 의원의 10주기 미사에서 여전히 고문의 아픔을 가진 피해자 선생님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고문의 아픔을 여전히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선생님들을 위해
과연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 진행형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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