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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센터 소식

[법률] 행정재판에서 드러난 행정안전부의 궤변과 무능

[법률] 고문가해자 서훈취소 정보공개 청구 관련 재판에서

 

 지난 13(), 서울 행정법원 B 220호에서 행정재판이 있었다. 이 재판에서 피고 행정안전부는 대한민국의 안전과 재난에 관한 정책의 수립·총괄·조정하는 중앙행정기관의 참혹한 수준을 드러내고 말았다. 행정안전부의 법리적 수준은 궤변에 가까웠고,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의 수준은 무능 그 자체였다.

 

<사진-1> 지난 2018년 7월,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보도자료.

 이 재판은 2018년 행정안전부가 스스로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비롯된다. 2018년 행정안전부는 “80년대 간첩조작사건 관련자 등 서훈 대대적 취소를 발표한다. 이 보도자료에 따르면, 80년대 대한민국 정부는 범죄 혐의가 없는 일반 시민을 불법 구금하고 고문해 사형까지 조작해 낸 국가 공무원에게 대통령 표창 17, 국무총리 표창 14점을 비롯해 총 56개의 서훈을 수여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힘없는 시민을 하루아침에 간첩으로 만들었던 고문 가해자들은 특진 등 수많은 혜택을 누렸는데, 행정안전부는 이를 시인한 셈이다.

 

 그러나 이를 발표하면서 행정안전부는 고문 피해자들의 이름은 버젓이 공개했지만 정작 서훈이 취소된 고문 가해자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는 지난 2019 3월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2019 7월 승소했다. 이 같은 재판 결과에도 불구하고 행정안전부는 고문 가해자의 이름이 국가안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공개를 거부하자 인권의학연구소는 지난 10 2차 행정소송을 제기해 진행 중인 상황이다.

 

고문가해자 이름을 국가안보로 인식하는 행정안전부

 

 행정안전부가 지속적으로 고문 가해자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고(인권의학연구소) 측 변호를 담당하고 있는 법무법인 덕수의 김성주 변호사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하나는 현재 행정안전부는 유관 정부부처인 국정원이 고문 가해자의 이름 공개를 반대하고 있는 점, 다른 하나는 정보공개법에 근거하여 사생활에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고문 가해자의 이름과 서훈 취소 사유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피고 측 행정안전부를 대표해 이날 재판에 참석한 조철훈 담당 사무관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지난 2018년 서훈을 취소하는 과정에서 관련 부처인 경찰청, 국정원, 국방부, 보건복지부와 지속적인 논의를 거쳤으나 이 부처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고문 가해자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경찰청과 국정원의 주장은 당시 대공수사를 담당했던 국가기관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은 국가기밀인 동시에 국가안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또한, 재판 후 인터뷰에서 조 사무관은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을 피해자의 권익보호와 국가안보가 부딪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타 부처의 상황과 논리가 존재하는 한 행정안전부도 어려운 형국이라고 토로했다. 결국, 행정안전부는 7-80년대 국가기관의 고문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고문피해자의 권익보호보다는 고문가해자의 사생활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과 법리적 주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고문피해자들의 경우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재심을 통해 모두 무죄를 받은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재판 준비조차 부실했던 행정안전부

 

 이 같은 인식, 법리적 수준과 함께 이날 행정안전부는 2021년도 기준 57 4,451억 원의 예산규모를 가진 중앙행정기관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을 재판 과정에서 보여주었다. 이날 재판은 원래 지난 7 2일 선고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피고 측인 행정안전부가 변론재개를 요청하였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선고가 연기된 것이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재판부에 추가 자료를 제출하였고, 이 자료를 기반으로 재판부는 이날 재판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날 재판에서 재판부는 제출한 자료의 내용에 대해 행정안전부에 질의하는 것이 아니라 제출한 자료가 잘못되었음을 알려주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행정안전부가 제출한 자료 목록 중에서 자료 제목과 실제 제출된 자료의 이름이 다르거나 아예 누락된 부분들이 있어 재판부는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행정안전부는 원고 측이 요청한 세부 품목에 대해서는 제출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재판부가 계속해서 자료에 대해 질의하자 행정안전부 측은 오늘 재판에 제출하기 위해 USB에 담아왔다고 답변했다.

 

방청석에 앉아 하늘만 쳐다본 고문피해자들

<사진-2> 지난 13일. 서울 행정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참여한 피해자 선생들과 이화영 소장, 김성주 변호사.

 결국 재판부는 피고에게 다음 기일 전까지 재차 자료 목록을 확인해서 정확하게 제출할 것을 요청하였고, 재판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이날 재판 방청석에는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의 고문피해자들이 있었다. 선고를 기대하고 왔던 고문피해자들은 행정안전부의 말을 들으며 하늘만 쳐다보았다. 재판 후 만난 한 피해자는 너무 괴로웠다고 토로하였다. 정부가 바뀌고,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나를 고문했던 가해자의 이름 하나도 밝히지 못하는 행정안전부를 보면서 또다시 나는 힘이 없는 민초라는 점만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는 그냥 이것이 내 팔자인가 보다 하고 스스로 위로하기로 다짐했다고 밝혔다.

 

 과연 고문가해자의 사생활보다 고문피해자의 인권이 우선시 되는 판결이 나올지 지켜보아야 한다. 다음 선고는 10 8일 오후 2 30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