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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충희신부의성당이야기

안토니오 가우디의 성가정성당

안토니오 가우디의 성가정성당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

 

 

유충희 (신부, 천주교 원주교구)

 

 

 

<안토니오 가우디의 성가정성당>

 

 

<안토니오 가우디의 성가정성당>

 

 

 

가우디
는 마드리드에 이어 스페인 제2의 도시인 까딸류나 지방의 바르셀로나에서 금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나 1878년 건축학교를 졸업했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만든 모든 건축물들은 바르셀로나를 찾는 사람들의 중요한 관광코스이다. 당시 대부호였던 ‘돈 에우세비오 구엘’이라는 사람이 가우디의 능력을 인정하여 자신의 저택과 공원 그리고 다른 건축물의 설계를 가우디에게 위임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처럼 구엘은 가우디라는 천재가 세상에 그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후원자였다.
두 사람의 만남은 1918년 구엘이 죽기 전까지 40년간 지속되었다. 이 기간에 가우디가 구엘의 의뢰로 만든 뛰어난 건축물들이 지금도 바르셀로나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가우디가 설계한 대표적인 작품은 1883년에 짓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짓고 있지만 완공되려면 앞으로도 100년은 더 걸릴 것이라는 그 유명한 성가정 성당(Sagrada Familia)이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성가정성당>

 

그리스도의 탄생을 주제로 한 이 성당은 옥수수 모양의 탑이 중심을 이루는데 높이가 무려 170m에 이르는 중앙 돔과 높이 130m의 네 개의 돔들은 그 높이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성당을 지으면서 신앙심이 깊어진 가우디는 말년에 거의 성당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소박한 생활을 했다. 얼마나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았던지 1927년 가우디가 이 건물 앞에서 전차사고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는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이 성당이 지어진다고 굳게 믿었고 그런 신념은 착공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사가 진행되는 성가정 성당의 모습에서도 보인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성가정성당> 

<안토니오 가우디의 성가정성당>

 

이 성당의 동쪽 문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서쪽은 <수난>을 그리고 남쪽은 <영광>을 뜻하며 이 세 개의 문은 4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열두 사도를 상징한다. “돌에 쓰인 성서”라는 말에 걸맞게 가우디와 조각가 그리고 장인들은 성서의 여러 주제들을 많은 장식과 상징으로 형상해 놓았다. .
가우디의 또 다른 작품들은 1880년대 말에 지은 ‘구엘저택’과 ‘구엘 공원’ 그리고 1895년에 지어진 ‘카사밀라’로 이 세 가지 건축물은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성가정성당

 

 

 

 


프로필
유충희 (신부, 천주교 원주교구)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서강대학교에서 철학 석사와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상트 게오르겐 대학에서 부제서품을 받고 현재 천주교 원주교구에서 가톨릭 사제로 사목 중이다.
다석학회 회장이며 종교다원주의를 지향하는 정양모 신부와 함께 여러 해 동안 유럽과 중동지역의 여러 건축물들과 미술관들을 답사하고 집필하였다. 저서로 예수의 최후만찬과 성만찬, 종교간의 대화(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만남) 등이 있다.

 

이글은 (사)인권의학연구소 뉴스레터 8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