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센터2017.04.27 16:45
 
고문가해자 면책 막는 ‘DB 구축’ 워크숍 네팔서 처음 열려
-EU 지원으로 6개 권역 중 첫발, 국내선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참가
 
일시: 2017. 4. 26 (수)~ 4.29(토)
장소: 네팔 카트만두
주최: 국제고문피해자재활협회(IRCT)
참가: 아시아 10개국 20개 고문피해자지원단체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은 2017년 4월 26일(수)부터 4월 29일(토)까지 네팔 카트만두에서 열리는 국제고문피해자재활협회(IRCT) 주최 ‘고문가해자 면책 방지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프로젝트’ [The Data in the Fight Against Impunity(DFI) Project] 아시아 워크숍에 참석한다.

 



 

‘DFI 프로젝트’는 고문생존자의 관련 자료를 모아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고문 사실을 부인하지 못하게 하는 등 고문 방지와 고문생존자의 재활을 지원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의 지원을 받아 2014년부터 3년 동안 진행 중인 프로그램이다. IRCT(본부 덴마크 코펜하겐)는 1985년 전 세계의 고문생존자의 재활을 지원하며 ‘고문 없는 세상’을 위해 설립된 국제적이고 독립적인 고문피해자재활협회로 약 70개국 150 여개 고문피해자지원단체로 구성되어있다. IRCT는 이번 아시아 지역 워크숍을 시작으로 6월까지 6개 권역별(아프리카, 중동과 북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유럽, 북아메리카)로 ‘DFI 프로젝트’ 구축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한다. 이번 행사에는 “김근태기념치유센터”를 포함하여 아시아 10개국 20개 고문피해자지원단체가 참석한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 개의 고문피해자지원단체가 수천 명의 고문 생존자에게 지원을 하고 있지만 고문생존자들의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정리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고문행위와 고문가해자들의 면책이 국내외적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DFI 프로젝트’의 배경이 됐다. ‘DFI 프로젝트’에는 고문피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고문가해자와 그들의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 그리고 고문피해자들의 치유와 재활에 대한 기록들이 체계적으로 담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워크숍을 통해 전 세계 고문생존자들의 회복과 고문 방지를 위한 운동의 증거 기반을 마련하고 이를 위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은 고문 등 국가폭력 피해자 전문 민간 치유센터로서 인권 피해자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치유와 재활을 통해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2014년 6월 25일 출범했다. 2016년 7월 국제고문피해자재활협회(IRCT)에 회원단체로 가입하였고, 2016년 12월 5일부터 7일까지 멕시코 시티에서 열린 제10차 국제고문피해자재활협회(IRCT)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국내 고문생존자를 위해 실시한 판소리 그룹 치유 프로그램의 성과를 발표했다.
 “김근태기념치유센터”는 이번 아시아 지역 워크숍에 참석하여 국내의 고문생존자들의 치유와 재활 그리고 고문가해자들의 면책을 밝히기 위한 고문가해자 면책 방지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 고문피해자지원단체과의 국제연대를 강화할 예정이다.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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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힘이 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글-이수빈 

 

지난 4월 8일 대학로 눈빛 극장에서 연극 상처꽃 – 울릉도 1974를 보았다. 공연을 보기 전에 극의 탄생 배경에 대해 들었다. 1974년에 국가에 의해 조작된 울릉도 간첩단 사건 이야기였다. 공연을 보는 동안, 보고 난 뒤에 나는 1970년대와 자신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상처꽃-울릉도 1974] 1974년 박정희 긴급조치(유신)

 

1974년이면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다. 1970년대, 한국사회에 대한 내 생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성인이 되어서 습득한 지식으로, 책이나 지면 영상 등을 통한 것이다. 이것은 암울하고 폭력적이며 상식이 말살된 야만의 시대였다는 것.

 

두 번째는 부모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와 가족 앨범, 그리고 내 유년의 기억에 의한 것이다. 부모님은 맨몸으로 서울로 상경해 고단하고 빈곤했지만, 기회가... 많았다고 했다. 산기슭에 허술하게 판자로 만든 집이었지만, 우리 집을 갖게 된 것도 이때였다. 그래서 이 시기는 젊은 부모님의 나이만큼이나 생동감이 넘치는 시대였다.

 

[상처꽃-울릉도 1974] 금지곡_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_양희은

 

그러나 이 두 번째 기억도 잘 들여다보면 중간 중간 걸리는 부분이 나온다. 반공 포스터 그리기, 반공 표어 짓기, 이승복 어린이의 절규, 똘이 장군 같은 반공 만화영화, 간첩 신고를 독려하는 광고, 민방위 훈련을 알리는 사이렌. 수상하면 무조건 신고하고, 자수하면 광명을 찾을 수 있다며 111을 눌러야 했던 시대. 당시 나는 하루에도 한 트럭씩 간첩들이 내려오는 줄 알았다. 내 주위를 둘러보면 어디에나 간첩이 있을 수 있다고 하니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상처꽃 장면4의 막간극인 간첩특강에서,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던 삼촌이 찾아오면 간첩인가를 먼저 의심하라고 했을 때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간첩신고 외에도 혼·분식 장려 운동, 쥐잡기 운동, 가족계획 운동, 새마을 운동 등 국가에 의해 온 국민이 동원되던 시대였다. 당시 내가 초등학생 때 제일 많이 한 것이 각종 표어 짓기,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상처꽃-울릉도 1974] '울릉도 사건' 고문생존자


 

국가가 국민의 일상생활은 물론 정신 상태까지 관리하던 시대가 1970년대였다.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분단 상황이라는 것이 가장 클 것이다. 표면상 사상의 차이로 분단된 이 땅에서 반공은 모든 국가폭력과 독재를 정당화시키는 황금 카드가 되었다. 1974년 울릉도 간첩단 사건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다. 이 사건은 1970년대가 평범한 어부를, 아이들과 자고 있던 엄마를, 부인과 함께 있던 대학교수를 다짜고짜 끌고 가 모진 고문에 의해 간첩으로 둔갑시키던 시대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의 생명과 삶을 송두리째 빼앗고도 멀쩡한 시대라고 말한다.

 

 

[상처꽃-울릉도 1974] '울릉도 사건' 고문생존자와 가족

 

공연 관람 내내, 나는 이 사실에 깊게 공감하면서 가슴 한쪽을 쓸어내렸다. 나와 가족에 대한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인생이란 것도 실은 타인과 함께 라는 사실을 자꾸 잊었다. ‘내 인생’이라고 할 때, ‘내’가 너무 강하게 인생 앞에 버티고 있어서 ‘나’만을 생각하게 되었다.

 

타인의 비극적 삶이나 상황을 접하게 되면 마음이 아프다가도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그렇게 안심하며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국가나 사회에 의해 부당하게 희생당한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피해자가 나와 가족이 아니란 사실에 감사했다.

 

 

[상처꽃-울릉도 1974] 마틴 니묄러 ‘그들이 왔다’


상처꽃에서는 장면2와 장면9에 ‘그들이 왔다.’라는 군무가 등장한다. 배우들이 나치시대 독일의 목회자인 마틴 니묄러의 ‘다음은 우리다’에서 따온 대사를 읊을 때, 나도 모르게 주변을 흘끔거렸다. 누군가 내게 너 이야기 아니냐며 손가락질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처꽃-울릉도 1974] 관객들의 감상

 

 

 

그동안 나는 타인의 상처를 보고 동정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개인의 아픔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뿐이었다. 그 단계에서 나의 안일함과 이기주의를 살피지는 않았다. 모든 것은 그들과 사회의 문제일 뿐, 정작 그 사회에 사는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여겼다.

 

<상처꽃 – 울릉도 1974>를 보며 타인의 아픔을 사회문제로 인식하는 단계를 지나 자신의 문제로 환원시킬 수 있는 계기를 삼기로 한다. 이 극의 양정순 작가의 말처럼 세상 착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서로에게 힘이 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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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꽃-울릉도 1974> - 특별한 가족의 출연

 

<상처꽃- 울릉도 1974>는 다양한 분들의 카메오출연이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419일 토요일은 참 특별한 가족이 무대에 섰다.

 

70년대 노동운동사에 빛나는 <어느 돌멩이의 외침>을 쓴 노동운동가 유동우선생이 주심판사로, 그의 딸과 사위가 배석판사로 나란히 법복을 입었다.

 

 

[상처꽃-울릉도1974_4월 19일_유동우, 유현경(딸), 조명진(사위)]

 

몇 달 전 EBS <동행> 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화제를 낳은 바 있는 그의 가족사는 우리시대가 만든 또 하나의 비극이다.

 

이런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유동우선생도 남영동에서 받은 모진고문의 후유증으로 병들고 피폐해지면서 불행한 가족사가 만들어졌다. 딸은 처자를 버리고천지를 떠돌며 헤매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꽁꽁 한이 맺혔다.

 

그렇게 사람을 기피하고 떠돌던 유동우선생은 지난 해 인권의학연구소의 치유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의 창 하나가 가만히 열렸다고 했다. 주변의 응원을 통해 딸에게 손을 내밀어볼 용기도 얻었고, 그런 과정을 통해 딸도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함께 무대에 서는 잠깐의 동행을 위해 이날도 멀리 군산에서 남편과 아이들 함께 달려왔다. 그리고 아버지 옆에 앉아 연극을 보는 내내 흐느꼈다.

 

연극이 끝난 후 눈이 붉어진 사람들이 서로 따뜻한 포옹을 나누었다. 이 연극 중에서 특히 유동우선생의 딸 유현경씨를 더 울렸을 여자배우 정연심씨가 그들 부녀가 출연했던 프로그램 동행을 보았다며 유현경씨 손을 잡고 또 울먹였다.

 

 

[상처꽃-울릉도 1974-유동우, 유현경(딸), 조명진(사위), 손주들, 조화순 목사, 신인령 선생, 임진택 감독]

 

감자탕 집에 마련한 뒤풀이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유현경씨를 보는 순간 와락 부둥켜안았던 조화순목사, 크리스찬 아카데미 간사였던 신인령선생, 권영길선생, 임진택감독,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소장……

 

조화순목사는 기막힌 인연을 풀어놓았다.

1974년 대구의 교도소에서 울릉도간첩단사건으로 구속된 김용희선생과 옆방에서 징역을 살았다는 것이다. 조화순목사는 긴급조치위반이었지만 워낙이 빨갱이로 악명(?)높았던 터라, 여자간첩이 둘이나 들어왔다고 교도소가 떠들썩했다고 한다.

 

두 분은 각각 독방이었는데 고개를 내밀 수도 없는 배식구에 팔을 넣어 내 저으며 통방을 통해 우정을 쌓았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도 두 분이 가끔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고.

인연이 이렇게도 이어져있구나 싶어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은 새삼 놀라워했다.


 

[상처꽃-울릉도1974_ 울릉도 사건 고문생존자 김용희(연극의 송인숙)과의 감옥에서의 인연을 설명하시는 조화순 목사]

 

그러나 세월호침몰 사건으로 주로 검은색 옷차림을 하고 온 사람들은, 우울한 역사의 한 장면 앞에서 거듭 무겁고 침통해했다.

다행히 아직은 어른들의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유동우선생의 어린 손주들 해맑음에 잠시 미소를 머금을 수 있었다

 

 

[상처꽃-울릉도 1974-유동우, 유현경(딸), 조명진(사위), 해맑은 미소의 손주들]

 

 

글 : 장남수

(노동저술가, 『빼앗긴 일터』(창작과비평사, 1984) 저자, 前원풍모방노동자,

인권의학연구소 운영위원)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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