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화영 소장, 올해는 행복추구 사업이 가능해지길 바랍니다!”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 소장의 신년 인터뷰-

 

 2022년 임인년을 맞이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후원회원님들은 잘 지내고 계시나요? 새로운 한 해를 여는 시점에서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 소장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신년 인터뷰를 통해 소장님의 이야기와 2022년 인권의학연구소의 목표들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Q. 소장님, 안녕하세요! 벌써 2022년의 1월도 지나가고 있는데요. 소장님은 주말이나 시간이 있을 때, 주로 어떤 걸 하면서 시간을 보내시나요?

(이화영 소장) 질문하는 박민중 선생님이 궁금한 점이죠? (웃음) 요즘 저는 시간이 나면 무언가를 계속 치우고 정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결벽증도 좀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문득 오늘이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현실적 생각이 들면서 시작되었어요. 남은 누군가가 나 대신 치울 것을 생각하니 그 생각이 들 때마다 바로바로 치우곤 하는 거죠. 제가 생각해도 어이없이 다리 골절을 두어 번 경험한 이후로는 약해지는 체력을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집 근처 산에서 둘레길 걷기를 합니다. , 그리고 맛있는 제철 음식을 한 가지라도 꼭 만들려고 해요. 예전보다는 분명 느리고 특별하지 않게 여가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진-1> 지난 1월 19일, 눈이 내리자 이화영 소장님이 수녀원 마당을 청소하고 있는 모습이다.

Q. 지난 한 해 인권의학연구소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순간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겠어요?

(이화영 소장) 2021년 역시 인권피해자와의 만남에서 늘 걱정되는 것은 코로나 상황이었습니다. 노령의 피해자에게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생존하는 일이 급선무이기 때문이죠. 코로나19 상황에서 필요한 일상의 기능을 확보하도록 백신 접종 신청하기’ ‘QR체크인’ ‘택시 예약하기’ ‘온라인 생필품 주문하기 등 스마트폰 사용법을 익혀드렸는데요. 그랬더니 70~80대 노령의 선생님들이 공동체 영화 상영에서 젊은 관객처럼 자연스레 잘 입장하셨어요.^^

<사진-2>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인권의학연구소 소강당에서 열심히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12월 초에 제법 쌀쌀한 날씨였는데, 고문생존자 10여 분이 김근태기념도서관 개관식에 온 여러 관객 앞에서 타악기 공연을 했어요. 생존자 선생님들은 10개월 동안 매주 연습을 하면서 기량을 쌓으셨지만, 공연 직전까지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개관식의 모든 식순 중 가장 의미 있고 감동을 주는 공연이었다고 김근태기념도서관 주최 측의 후기를 전해 들었어요. 저 역시 쾅쾅 울려 퍼지는 타악기 소리를 듣는 내내 마음이 울컥하며 뜨거워졌었거든요. 감동이었죠.

  <사진-3> 지난 12월 4일, 국가폭력 피해생존자들이 김근태기념도서관 개관식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일은 인권의학연구소가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3년 동안 진행해온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일이에요. 결과, 행정안전부로부터 훈·포상이 취소된 고문가해자들의 실명과 소속, 계급 등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았습니다. 행정안전부 직원이 직접 인권의학연구소를 방문해서 피해자와 수녀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전달하였습니다. 

<사진-4> 지난 12월 30일, 행정안전부 상훈담당관실에서 인권의학연구소를 방문해 고문가해자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이날 인권의학연구소 자문위원으로 김장호 선생님과 수녀원의 마리 비안네 수녀님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 이것도 빼놓을 수 없네요. 10년 전 인권의학연구소 집단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인연으로 만난 신순애 청계피복 노동활동가가 국가로부터 받은 민사 배상금 전액을 장학기금으로 기부하셨는데요. 지난주에 신순애 선생님이 출연한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을 보았습니다. 영화에서 당시 어린 노동자들은 우리의 소원은 배움, 꿈에도 소원은 배움이라고 노래합니다.  10시 넘어 작업이 끝나도 조금이라도 공부하려고 그 시간에 노동교실로 달려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배움에 목마른 노동자에게 국가는 폭력으로 대응했으니, 신순애 선생님이 국가폭력 피해자 자손의 장학 사업에 사용하도록 당부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장학 사업이 민주화 과정에서 조부모 또는 부모의 저항과 희생의 숭고한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도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돌아보니 많은 일들이 기억에 남는 한 해였습니다.

 

<사진-5> 지난 1월 20일 개봉한 [미싱타는 여자들] 영화 포스터로 왼쪽부터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 주연배우의 어린 시절의 초상화다.

Q. 2022년 인권의학연구소와 김근태기념치유센터의 목표 또는 바람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화영 소장) 2022년에는 인권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행복추구 사업이 가능해지기를 바랍니다. 조작간첩사건의 피해자이신 김장호 선생님이 피해 생존자의 행복추구 사업에 사용하라는 지향으로 기부를 하셨어요.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면 생존자들과 함께 여행을 가는 것도 그 사업에 속합니다. 지난해에 조작간첩사건 피해자셨던 하원차랑 선생님이 타계하셨어요. 갑자기 준비 없이 보내드려 참 마음이 아팠는데요. 지난해 사전연명의향서를 함께 작성했던 것처럼 노령의 선생님들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자 해요. 선생님들과 함께 결혼식 영상처럼 장례식 영상을 만들면 어떨까 하고 논의한 적이 있어요. 기억에 남기고 싶은 모습들을 사진 영상으로 엮어 남기는 작업이죠. 많은 분이 좋아하셨어요. 제 것도 함께 만들어야죠. (웃음)

  <사진-6> 지난 11월, 인권의학연구소에서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다같이 화보를 찍고 있다.

 또한, 올해는 국가폭력 피해자와 가족을 위한 공적 의료지원이 가능해지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지난 10년 동안 국회 본회의 통과를 위해 노력해 왔던 고문방지 4의 통과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피해자 지원뿐만 아니라 가해자 처벌도 가능해지기 때문이죠.

  

Q. 마지막으로 인권의학연구소의 후원회원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이화영 소장) 인권의학연구소는 민간 비영리단체로 후원회원님들의 기부로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권의학연구소의 피해자 지원활동이나 의료인 인권 교육 등 모든 활동은 후원회원님들이 계시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 점에서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최근에 공동체 영화 상영 등 문화프로그램을 통해 회원님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좀 더 자주 만나는 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모든 회원님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화영 소장님의 인터뷰 글을 읽으며 지난 한 해 인권의학연구소가 많은 일들을 했다는 자부심(?)이 생기는데요!^^ 올해는 2021년보다 더욱 국가폭력 피해 생존자분들을 비롯한 인권피해자들의 행복추구에 인권의학연구소의 역할을 기대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이화영 소장님께서 빼놓으신 2022년 목표가 있는 것 같은데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연구소 후원회원으로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후원회원이라면, 주변에 있는 지인분들에게 추천해주세요!^^ 늘어나는 후원회원만큼 이화영 소장님의 기쁨도 배가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박민중 활동가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사업] 인권의학연구소, 장학사업을 시작하다 

-2022년 (사)인권의학연구소 장학사업 공지-

 

 ()인권의학연구소는 2022년부터 장학사업을 시작합니다연구소 후원회원이자 열세 살 여공의 삶의 저자인 신순애 선생의 기부로 장학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신순애 선생은 1970~80년대 청계 피복 노동자로 당시 노동 조건 개선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고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노동운동가입니다이 과정에서 구속합동수사본부에서의 수사투옥해직 등 가혹한 국가폭력을 경험했습니다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이 같은 노력과 희생에 대해 국가는 40여 년이 지난 2021년 7민사 배상을 했으며신순애 선생은 배상금 전액을 인권의학연구소의 장학사업을 위해 기부했습니다.

 

 ()인권의학연구소는 기부자의 지향에 따라 국가폭력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한 교육을 위해 소중하게 사용하고자 합니다또한신순애 선생의 기부가 이 장학사업의 귀한 마중물이 된 것처럼 이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분의 참여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민주화를 위한 국가폭력 피해자의 저항과 희생의 숭고한 의미를 되새기고자

2022년 ()인권의학연구소 장학사업을 다음과 같이 공지합니다.

■ 취지

첫째국가폭력 피해 생존자들과 그 2, 3세대에게 교육기회 제공

둘째장학사업을 통해 국가폭력 피해 생존자의 자손들이 부모와 조부모의 희생의 숭고한 의미를 되새기게 함

 

■ 접수기간

2021. 12. 24.() ~ 2022. 1. 14.()

※ 서류완성본 22. 1. 14.() 17시 도착분까지만 유효

 

■ 접수방법

제출서류 원본 우편접수 또는 스캔파일 E-Mail 제출

 

■ 선발일정 

공고 및 접수
심 사
발 표
장학금 수여식
우편 또는
E-mail 접수
인권의학연구소
장학운영위원회
심 사
장학금 수여자
발 표
장학금 수여
’21. 12. 24.()
’22. 1.14.()
’22. 1월 말(예정) ’22. 2월 (예정) ’22. 3월 초 (예정)

 ※ 상기일정은 장학사업 운영위원회 사정에 따라 변동 가능

 

■ 지급대상

① 국가폭력 피해 당사자

② 국가폭력 피해 가족 (2세대 및 3세대 자손)

 

■ 지급규모

① 5~10명 대상

② 1인당 총 100만원~200만원 (년 2회 분할 지급함)

 

■ 제출서류

① 지원서

② 추천서 (지원자 또는 지원자 가족의 국가폭력 피해사실 포함)

③ 개인정보수집 동의서

④ 가족관계 증명서

※ ①,,③ 양식은 인권의학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다운 받을 수 있음.

 

■ ()인권의학연구소 장학사업 계좌 안내

우리은행 1006-701-386745 (예금주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

 

■ 문의 및 접수처 인권의학연구소 사무국

주 소 : (02721) 서울시 성북구 길음로9길 46 (서울성가소비녀회 성재덕관 1()인권의학연구소

이메일 imhrc@naver.com

전 화 : 02-711-7588

팩 스 : 02-711-7589

홈페이지 http://www.imhr.or.kr 

  [이사회] 제4차 이사회, 장학사업의 기초를 마련하다.

 

 지난 10 13 () 오후 5, 인권의학연구소는 제4차 정기이사회를 온라인 줌회의로 개최하였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 상황이 지속되면서 지난 제3차 이사회에 이어 현장 회의 대신 온라인 회의방식을 결정하였다. 이날 이사회에는 함세웅 이사장, 이화영 상임이사, 박재영 이사, 백재중 이사, 손창호 이사, 유충희 이사, 신좌섭 이사, 주영수 이사, 최창남 이사가 참석하였다.

<사진. 줌회의로 개최한 인권의학연구소 제4차 이사회  (10.13)>

 이화영 상임이사의 지난 3차 이사회 회의록 보고에 이어 사무국에서 2021년도 3분기 사업과 재정에 대해 보고하였다. 참석이사는 연구소 보고사항을 이견없이 승인하였다.

 

 제4차 이사회의 주요안건으로 장학기금 운영에 대한 안건이 상정되었다. 장학기금은 1970~80년대 기본적 노동 조건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노동운동에 참여한 이유로 구속, 투옥, 해직의 고통을 겪은 청계피복 노동자 신순애, 박재익 선생의 기부로 조성되었다.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국가폭력 피해에 대한 민사배상금 전액 83.339,928 원을 기부한 것이다. 지난 8 19일 함세웅 이사장과 이화영 상임이사가 두 기부자를 만나 기부지향을 확인하였는데, 이들은 기부금을 열악한 삶의 조건으로 젊은 시절 교육기회를 박탈당한 당사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폭력 피해생존자들과 그 2세대, 3세대의 교육에 사용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장학기금을 통해 국가폭력 피해생존자 자손들이 부모 또는 조부모 희생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기를 기대한다.

 

   <표 . 제4차 이사회에 상정된 장학기금 운영규정(안)>

 이날 이사회에서는 기부자의 기부 지향을 함께 공유하였고 장학기금 사업을 위한 장학기금 운영규정을 검토하고 승인하였다. 이어서 장학기금 운영위원회 초대 운영위원으로 함세웅 이사장, 이화영 상임이사, 유충희 이사와 기부자인 신순애 선생, 우리공동체의 박민수 대표  5명을 위촉하였다. 향후 운영위원들은 장학기금 대상자 심사와 기금 전달 등 실질적 장학기금 활동을 2022년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다음 이사회는 2022 1 26 () 6, 2022년 정기총회는 2 23 () 6시에 인권의학연구소 1층 소강당에서 개최하기로 하고 제4차 이사회를 마무리 하였다.

[특별한 교육] 영어 수업에 이어 일본어 수업까지!!

 

"곤니치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요즘 연구소에서 영어뿐만 아니라 일본어 수업도 한창입니다!

여느 일본어 학원보다도 열의가 뜨겁고 특별한 수업입니다.

 이유는 강사와 수강생 모두 (2차 백신 접종까지 완료하신 ) 국가폭력으로 피해를 입으신 선생님들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어 강사 선생님은 젊은 시절 일본에서 오랫동안 일하시면서 혼자서 일본어를 마스터하신 김장호 선생님입니다. 그리고 김장호 선생님은 한국에서 일본어 학원을 운영하신 경험도 있으셔서 우리 수강생들(국가폭력 피해 생존자)을 위한 교안도 직접  만들어 오십니다. 일주일에  번씩 진행되는  수업에 열정적으로 해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선생님들도 히라가나를 써 내려가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일본어 수업이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1970-80년대 간첩조작 사건으로 옥고를 치러야 했던 재일동포 분들을 위한 일본 구원회 모임이 있습니다. 그 구원회 분들을 당시 한국말을 전혀 못해도 꼭 필요한 한국말을 배워서 김포공항에서 서대문 형무소까지 어렵게 어렵게 찾아오셨던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4-50년이 지난 재심에도 항상 오셨습니다. 한국 법정에서의 내용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그 자리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우리 피해자 선생님들은 그분들과 아주 짧게라도 일본말로 인사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일본어 수업을 배우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서로 왕래할  없지만,  기간 동안 우리 선생님들이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일본어 수업을 하셔서  다음에 일본 재일동포 분들 그리고 구원회 분들을 만나셔서 짧게라도 일본어로 대화할  있다면 너무 감동적이지 않을까요?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장호 선생님, 

그리고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선생님들 모두 응원합니다!^^ 

"치유프로그램" 후기 (2)

 

 

 

 1. 지난주(8월말)에 끝난 국가폭력피해자 6기 치유모임. 여기에 참여했던 지난 석 달 동안은 피정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던 과거의 일을 계속 되돌아보고 꺼내야 했던, 때로는 힘든 시간이었다.

 

 나의 주위에는 국가폭력 피해자가 많다. 고문 피해, 장기 수감, 80년대 강제징집/녹화사업 피해, 요즘의 장기파업 피해, 각종 경찰폭력과 벌금폭탄 피해자에 이르기까지.... 그 분들에 비하면 나는 피해를 입은 것이라 할 수도 없기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뭔가 유난을 떠는 것 같기도 하다. 치유모임은 비공개모임이라 진행한 내용을 공개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제한된 조건에서나마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본다. 그리고 이제는 뒤돌아봄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2. 나는 만 스무 살 무렵에 수감된 적 있고, 출감 후에는 다른 선후배들처럼 여러 기관에서 취조를 받은 적 있다. 그리고 그 뒤에도 경찰의 감시를 받았고, 동생이 고문을 당하고 세 차례 수감되었던 아픈 기억도 있다.

 

 나는 80년대 초반에 사건을 겪은 직후에는 악몽과 수면장애 때문에 많이 고생했다. 그때는 잠들기만 하면 악몽을 꾸었고 그 때문에 심한 공포감과 무력감을 느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악몽을 꾸는 횟수는 줄었지만, 일이 풀리지 않거나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그런 종류의 공포감과 무력감이 저절로 마음속에서 올라왔다. 특히 운동조직의 동지들에게 많이 의지했는데, 그 관계가 무너지면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신경이 예민했고 건강이 좋지 않았다.

 

 

 운동단체 상근을 그만 두고 생계를 위해 직장에 다니면서부터는, 새로운 감정 때문에 또 다시 힘들었다. 운동을 할 동안에는 내가 낮은 곳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이타적인 사람, 또는 변혁이념을 전파하는 교사와 같은 존재라는 자부심이나 우월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운동조직이라는 거대자아가 나를 부풀리고 들뜨게 만들기도 했다.(이 말은 운동을 할 당시에 내 행동이 거짓이었다는 말은 아니며, 변혁이념을 정립하고 전파하는 노력이 쓸모없다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한 명의 익명적 노동자가 되면서, 부풀려져 있던 거대자아가 깨지게 되자 나 자신의 초라함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또한 조직 속의 인간이 아닌 낱개의 인간이 되면서 근거지를 잃은 것 같은 마음도 들었다. 동시에 생활인이 되고 아이를 키우는 돌봄노동을 하면서, 운동할 때는 몰랐던 과거 인간관계에서의 오류들이 눈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자책감도 심하게 일었다.

 

 

 3. 나는 예전에는 이런 종류의 국가폭력과 그 후유증을 운동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당연하게 겪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도 많은데 그 와중에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많은 증상들이 나의 성격이나 기질 때문에 생긴 것이며 혼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치유모임을 하면서, 다른 분들도 비슷한 감정을 갖고 살아왔음을 알았다. 그래서 매번 모임을 할 때마다 참 많이 울었고 모임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늘 휘청거렸다.

 

 

 치유모임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인간이 느끼는 공포감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일으키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몸에 어떤 위험이 닥칠 때, 이를 피하기 위해 미리 감각적으로 느끼는 경계신호와 같다는 것이다. 무력감이나 자책감도, 폭력 앞에 뭉개진 자존감을 어떻게든 능동적으로 만회하려고 하다 보니 일어나는 무의식적 반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은 한번 학습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모르고 그런 상황을 겪다가 나중에는 사소한 경우라도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런 감정이 더 심하게 일어나고,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는 것이 습관이 되기도 한다.

 

 그들, 권력을 가진 자들은, 60여 년 전에는 우리와 같은 사람을 바로 죽였다. 그러나 지금은 쉽게 죽이지는 않는 대신 우리에게 죽음에 이를 정도의 고통을 주어 그런 공포감, 무력감, 자책감을 학습시킨다. 국가폭력의 본질은 우리에게 이런 부정적 감정을 학습시키고 습관화시켜, 결국 우리의 영혼을 분해하고 말살하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4. 그간 나는 이 모임에 참여하기 전에도 스스로를 치유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래서 10년 전부터는 악몽을 꾸지 않는다. 수면장애는 지금도 겪고 있지만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만성적 증상들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미 하나의 강을 건넜다고 생각하기에 주어진 나날의 노동 속에 머물며 살아가고자 하고 있다. 또한, 삶에는 때로는 인과론적 교훈이나 해석적 의미를 찾는 것이 불가능한 순간도 있으며, 그런 순간은 오로지 직관으로서 그 존재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두운 죽음의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면 겪지 않아도 될 순간들을 겪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숱한 악몽과 불면의 밤들, 무의식 속에 올라오는 부정적 감정과 반복되는 기억에 좌절했던 순간들. 그 속에 덧없이 흘려보낸 시간들이 아깝다.

 

 좀 더 밝은 환경 속에서 자아를 마음껏 펼치지 못한 채, 어느 새 한 세대의 시간이 지나가버렸다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슬픔으로, 상실감으로 남는다. 그런 상실감은 일종의 부질없는 욕망에 의한 것이지만, 삶에 대한 애착심이 있는 한 앞으로 반복하여 느낄 수도 있는 것이기에 착잡하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동지들, 그대들의 삶에 대해서도 그런 마음이 든다.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통을 겪고도 꿋꿋이 살아남은 동지들, 정말 건강하게, 낙천적으로 잘 살아온 분도 많지만..... 그런 분들을 존경하면서도, 그들의 폭력에 휘말려서 사는 우리들의 한평생이 너무 아깝기만 하다.

 

그러니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쉽진 않지만, 무엇을 하든 그들보다 우리가 더 행복해지고 끝까지 살아남는 것, 그것도 우리의 중요한 투쟁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5. 마포의 '인권의학연구소'에서 진행했던 5기까지의 모임과 달리 6기 모임은 성가소비녀회 수녀원에 자리 잡은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에서 진행된 첫 모임이었다. 여기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공간에서, 치유센터 식구들, 선생님들, 뒷바라지 해주신 수녀님들의 깊은 정성과 기도의 손길을 느꼈던 시간들.... 깊이 감사드린다. 치유센터가 앞으로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의 치유센터 건립기금 모금과 설립추진과정을 거처 마침내 지난 6월 25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 성가소비녀회(수녀원)내 성재덕관에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숨'(이하 치유센터)이 문을 열었습니다.

  

 

개소식 날 축하 손님들은 낮부터 미리 오셔서 치유센터 내부와 뜰, 잔디마당을 둘러보셨습니다. 따가운 6월의 햇살도 구름 속에 숨었고 산들바람이 간간이 수녀원 나무 그늘로 불어 행사 준비를 하는 일꾼들은 한결 일이 수월해졌습니다. 전철 길음역에서 내린 손님들은 길가에 나붙은 행사 포스터와 오렌지색 풍선길을 따라 쉬이 치유센터를 찾아오셨습니다. 

  

 

치유센터 3층 대강당에서는 사전행사로 오후 4시부터 장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가 상영되었습니다. "남영동 1985"는 김근태 민청령 의장이 1985년 악명놓은 경찰청(당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이근안 등 고문경관들로부터 가혹한 고문을 당한 사건을 그린 영화입니다. 여러 수녀님들을 포함한 200여 명의 관람객들은 고문의 참상과 이를 저항하는 고문피해자의 사투를 참담하게 또 뜨겁게 지켜보았습니다.

  

 

영화 상영이 마칠 즈음 도착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3층 대강당에서 '고문 근절'과 '피해자 치유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인사말을 드렸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인권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국가보안법의 폐해와 고문이라는 국가폭력을 책("야만시대의 기록-1,2,3)으로 출판했던 고문조사와 기록의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이어 박원순 시장은 고문피해자들을 비롯한 내빈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치유센터 내부를 함께 둘러보았고, 집단치유 진행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6시부터 성가소비녀회 수녀원에서 마련한 '소박한 밥상' 나눔이 피정의 집에서 있었습니다. 수녀님들이 준비한 150명분의 식기는 금방 동이 났습니다. 급히 식기를 더 준비하였고 조금 늦게 식당을 찾은 분들은 작은 접시에 식사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모두 맛나게 저녁식사를 마쳤습니다.

 

 

한편 그즈음 치유센터 건물 앞 중간 잔디마당에서는 강원도 원주에서 오신 김봉준 화백의 작품 전시와 "소망 글쓰기"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손님들은 치유센터에 바라는 희망의 말씀을 메모지에 남기고, 줄을 서서 김봉준 화백의 희망 손글귀를 받았습니다. 김봉준 화백은 신화와 민속의 원형 세계에서 인간본유의 치유 가능성을 회화와 조형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한일간 문화교류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계십니다. 

 

 

 

식사를 마친 후 치유센터와 잔디마당은 삼삼오오 김근태 의장과 인권의학연구소의 활동 사진을 둘러보고 치유공간을 산책하는 분들로 살짝 붐비는 느낌마저 주었습니다.

 

 

행사장 곳곳에서 함세웅 설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와 차 클레멘스 총장수녀님, 70여 명의 설립추진위원들,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이 함께 손님을 맞았습니다.

 

 

참석하신 손님들 중에는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과정에서 국가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각자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거나 정부나 의회,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 분들도 많지만, 지난 시기 국가폭력의 상흔과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한 동변상련의 감정은 모두를 예전의 하나 된 모습으로 되돌려 놓고 있습니다.

 

 

개소식 본행사는 "마당음악회"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서울 성북구에서 청소년 대상 봉사활동을 해오고 계시는 센트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5중주의 따듯한 음악이 파릇한 잔디마당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사회자 권해효 님은 축하객들에게 반가운 인사말을 드렸습니다. 함세웅 신부님, 성가소비녀회 총장 차 클레멘스 수녀님, 인재근 국회의원께서 차례로 뜻깊은 개소식을 맞은 소회를 담담하게 말씀하였습니다. 2012년 1월 김근태 의장 영결미사에서 고문피해자 치유센터를 처음 약속했던 함세웅 신부님은 남다른 감회를 들려주셨습니다. 인재근 의원님은 하늘에 계신 김근태 의장을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특히, 클레멘스 총장수녀님은 이 모든 것이 있기까지 수고하신 모든 이들에게 평화의 축복을 기원하셨습니다.

 

 

특히 재일동포 모국유학생 조작간첩 사건의 대표적 피해자인 이철 선생님은 오사카의 생업까지 잠시 미루고 멀리 일본에서 오셔서 치유센터 개소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일본에 거주하는 많은 고문피해자들을 대신하여 치유센터의 발전과 조국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말씀을 드려습니다.

 

마당음악회의 클라이맥스는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의 독창, 합창이었습니다. 참석하신 분들의 후문에 따르자면, "아베 마리아"를 들으며 영혼이 맑아지는 큰 감동을 받았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학생수녀님들의 합창도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치유센터 소식을 듣고 꼭 참석하고 싶다는 연락을 먼저 해 오신 남성중창단 "별 헤는 밤"의 씩씩한 남성중창 소리에 인근 주민들도 하나둘 씩 행사장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행사 중간에 짙어진 구름이 비가 되어 잠시 내렸습니다. 먼저 가신 고문피해자들의 얼어붙은 한이 조금씩 녹아 흐르는 것이었을까요. 참석자들은 내리는 비를 다같이 맞고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름없는 고문피해자들이 혼자 비를 맞도록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녁이 이슥하면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개소식은 막을 내렸습니다.

6월25일, 이 날은 고문과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치유 지원하기 위한 작은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만남을 통해 한 분 한 분의 치유가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마음에 전해진 깊은 울림과 감동으로 모두들 위로받는 밤이기도 했습니다.

 

 

(개소식 날 마당음악회를 "라이브 서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을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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