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2014. 9. 2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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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10월 문화치유강좌에 초대합니다.  (0) 2014.09.25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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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꽃으로 피기까지

김봉준(화가, 상처꽃미술감독)과의 만남

 

 

정리 : 장남수

(노동저술가, 『빼앗긴 일터』(창작과비평사, 1984) 저자, 前원풍모방노동자,

인권의학연구소 운영위원)

  

 

 

 

 

그림 같은 글자, 글자 같은 그림

울릉도간첩단 사건의 생존자들을 상처 꽃이라는 세 글자에 형상화 한 김봉준화백의 그림은 절묘했다. “날카로운 칼부림에 찢어진 상처가 처절한데 그 상처들이 승화해서 으로 부활하는 듯, 받침이 촛불 꽃처럼 피어나는 그림이다. 김봉준표 캘리그라피다.

 

대학로 눈빛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상처꽃 울릉도-1974]에서는 눈을 사로잡는 치유미술영상들이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따뜻하면서 안온한 그림들이다.

농부들의 소박한 일상도 보이고, 탈을 쓴 마당극의 한 장면 같은 풍경도 있고, 걸어 들어가고 싶은 숲도 있고, 펄쩍 튀어 나올듯한 울릉도의 오징어잡이 어부 그림도 있다. 연극의 장면 장면들을 배경으로 가만히 받쳐주는 김봉준화백의 30여점 그림들은 연극과 잘 어울린다.

1974년도에 스무 살 무렵이었던 청년 김봉준은 울릉도사건을 듣도 보도 못했을진대.

 

극장 앞 작은 찻집에서 김봉준화백과 마주 앉았다.

나는 다섯 가지 폭력의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어요.”

 

어릴 때 가정폭력을 겪었고, 학교폭력, 군대폭력도 겪었다. 또한 투옥과 수배 등의 과정에서 국가폭력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대학 2학년 때 동일방직노동자들과 함께하며 동일방직사건을 극으로 만드는 연출을 했는데 이때 연행되어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26세 되던 때 광주사건이 터졌고 이때는 포고령위반으로 고달픈 피신생활을 1년이나 해야 했다. 당시 착검한 계엄군들이 요소요소에서 검문하던 때였다. 이때의 뿌리 뽑히고 끈 떨어진 삶으로 인해 도망자의 트라우마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다 포고령이 해제된 후 자수하여 이실직고하고 한 달 만에 풀려났다.

 

포고령위반으로 도망 다니면서 가진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 창작과비평에서 3개월여 일한 것이 전부였다. 그 후 대학까지 나온 놈이 그러고 있느냐는 눈총을 받던 중 농민회에서 불러 기독교농민회 문화간사로 들어가서 첫 만화를 그린 것이 농사꾼 타령이었다. 이것은 최초의 민중만화라고 꼽혔는데 그것 때문에 또 수배가 되었다. 그때 농민회 배종렬회장이 김봉준을 보호하고 대신 징역을 살았다. 긴 감옥살이 할 뻔 했는데 그렇게 넘고 넘었다.

 

그 다음엔 민중문화 협의회 활동을 하다가 끌려 들어가서 두들겨 맞고 그림도 빼앗겼다. 그 그림이 상처꽃극중에 등장한다. 목에 칼을 찬 사람을 가운데 두고 아낙네들이 둘러앉아 있는데 옆으로 총칼이 들어오는 그림이다. 당시 그 그림을 찾으러 종로경찰서에 갔는데 없다고 오리발 내미는 경찰들 탓에 찾지 못했다. 결국 구류를 살고 나온 후 화가 치밀어서 다시 그린 그림이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별따세(1985, 걸개그림)]

 

내 트라우마는 여러 종류이지만 그 중 가장 힘든 것은 내부자 폭력이었어요. 폭력의 강도는 그리 크지 않지만 믿고 따랐던 선배가 나를 모함하고 억압하는 폭력, 뺨때기를 여러 대 맞았는데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나를 모멸하며 작살을 내는 것이 너무 억울했고 그 억울함이 진짜 오래갑디다.

그런데 그이도 그런 종류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폭력이 습관화된 사람이었고 그렇게 습관화 된 사람 옆에 있으면 맞는 사람이 많이 생겨요. 나만 겪은 게 아니라 그 사람 주변에서 겪은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상처가 되는 일들을 겪으며 몸이 몹시 피폐해졌다. 결혼한지 9년 쯤 되었는데 도시를 떠나야겠다고 작정했다. 당시 부천에서 복사골 마당이라는 문화공간을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한참 풍물강습을 하던 때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래가 시골생활이 맞는 체질이지만 워낙 도시여자를 아내로 맞이한터라 부천에 자리를 잡았던 것인데 몸이 피폐해지니 버틸 수가 없었다. 이후 몸 안에서 암이 3기말까지 간 것도 알게 되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산골에 있으면서도 환자 몸으로 계속 생활비는 벌어서 송금하고 가족들이 보고 싶어 한 달에 한번정도는 왕래하며 어느 새 20여년 세월을 훌쩍 지나왔다.

 

1993년 그렇게 떠난 원주 문막 화실터에다 신화미술관을 차렸다. ‘신화는 신성한 힘의 발견’(죠셉 캠벨) 이다. 문화치유는 치유자가 단서를 제공하면 내담자 스스로 치유의 길을 찾아서 부활과 재생의 빛을 만드는 과정이다. 죽음의 문화에서 살림의 문화로 부활하는 것이므로 문화치유는 그 자체가 신화창조이다.

 

문화치유는 크게 자연치유, 예술치유, 영성치유로 구분할 수 있다.

자연치유는 나와 밖의 관계를 자연처럼 순환의 관계로 만드는 것이다. 내 몸 안에 스스로 지닌 자연의 치유력으로 심신의 안정을 구하는 것이다. 당연히 자연치유력의 으뜸은 숲이다. 예술치유는 앞에서도 언급된 것이지만 詩書畵歌舞樂으로 도에 이르는 것이다. 書道 武道 畵道란 말처럼 예도로 치유하는 것이다. 그에 더해 근대 장르주의 예술개념을 넘어 놀이치유, 영상치유, 문학치유, 드라마치유 등 다양한 예술치유가 있다. 영성치유는 영성, 요가 등을 포함하여 이 또한 다양하고 융합적인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난장(1982)]

 

트라우마를 겪은 자가 그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면 대개 네 가지 단계를 밟는다.

처음에는 숨어드는 것이다.

상처받은 동물이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숲으로 들어가 자기 상처를 핥는다. 사람도 동물이다. 그가 산골로 들어갔던 것도 바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울컥울컥 분노가 치민다.

분노를 폭발하느라 주변사람이 다치기 쉽다. 그러니 시골로 들어갔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다치게 될까 두려웠던 때문이기도 하다.

 

문막에 살면서 산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그래서 그는 자연의 치유능력을 믿는다.

 

그 다음은 하소연하고 싶어진다. 위로와 지지가 필요해지는 단계인 것이다.

이 단계가 어느 정도 지나면 용서할 마음이 생긴다.

 

그렇다면 혼자는 치유하기 어려운가?

김봉준 화백은 그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예술은 혼자서도 치유 가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만이 사람을 치유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게 그것이다. 예술치유는 자기안의 상처를 꺼내서 치유하는 기제로서 역할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린 그림들이라 이번 치유연극에 잘 어울리는 그림들이 되었던 것이다. 울릉도 사건 당사자들을 만난 적은 없지만 동시대를 겪었고 오늘날이 트라우마의 시대이니까. 그동안 트라우마를 예술로 승화하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고 임진택감독과 김수진 연출이 김봉준미술의 치유성을 간파했다.

 

용서와 화해의 그림을 그리면서 좋은 나라에 대한 꿈을 꿔왔다. ‘상처 꽃이라는 제목도 김근태치유센터에서 발제한 <치유문화론>을 양정순 작가와 임진택 감독이 보고 이번 연극 제목으로 쓰자고 한 것이다. 울릉도 사건에 맞춘 것은 아니었지만 잘 맞게 된 것이다.

 

좋은 나라라고 하는 것은 거대한 권력의 나라가 아니라 그의 그림에서 그려진 것처럼 작은 나라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그런 꿈(세계관)이 있어야 치유의 힘이 분명하게 생긴다. 자기 정체성과 정당성이 획득된다. 예술은 스스로 꿈을 가지고 스스로를 지지하기에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림 그려놓고 보면서 혼자도 좋아서 춤을 추기도 한다. 내가 걸어온 길이 옳았다고 확신하며 자기를 지지한다. 스스로에게 하소연하고 거리를 두기도 하고 지지받기도 하는 자기 소통의 방식이 치유예술이라고 말한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그리운고장(1991, 붓그림)] 

 

이 연극 큰일 내는 연극이군요.” 이 연극의 대본과 리허설을 본 후 극본을 쓴 양정순님과 밥을 먹으러 가며 한마디 던졌다. 연극의 본질은 사람들의 삶을 정면으로 이야기하는 예술이다. 국가정체성을 묻고 국가폭력과 맞장을 뜨니 한국 연극계에 큰 일 낸 것이 맞다.

 

재작년에 김근태 치유센터에서 문화치유론 발제하면서 한국근현대문화의 특징이 트라우마 시대이며 이를 치유하는 문화치유가 지금 절실하다고 말했다.

문화치유에는 자연치유와 예술치유, 영성치유가 있다고 문화치유론에서 말했지만 상처꽃은 이 세 가지가 모두 합쳐져 있다. 그렇다. 사람자체가 본래 하나다. 예술치유란 무엇인가. 상처를 드러내고 정면으로 응시하며 더러운 트라우마의 늪을 아름다움의 힘으로 스스로 빠져 나오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스스로를 살리고 서로를 살리고 세상을 살린다. 숲은 인류문화의 근원적 성지다. 싱그러운 아름다움이야 말로 상처를 상처꽃으로 부활시킬 것이다.

- 김봉준 <상처 꽃> 팜플렛에서

 

김봉준 화백의 새로운 살림의 정원에는 재생의 상처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1995년도에 그린 김순덕 할머니의 상처도, 위로와 지지가 필요한 우리 모두의 상처들도 그러하듯 김봉준 화백은 22년 간 숲으로 들어갔던 예술치유 경험에서 그 모든 상처들을 꽃송이로 이미 피워냈음을 볼 수 있었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 상처꽃 그림 모음]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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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센터2013. 8. 5. 19:09

지난 1년 6개월 동안의 치유센터 건립기금 모금과 설립추진과정을 거처 마침내 지난 6월 25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 성가소비녀회(수녀원)내 성재덕관에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숨'(이하 치유센터)이 문을 열었습니다.

  

 

개소식 날 축하 손님들은 낮부터 미리 오셔서 치유센터 내부와 뜰, 잔디마당을 둘러보셨습니다. 따가운 6월의 햇살도 구름 속에 숨었고 산들바람이 간간이 수녀원 나무 그늘로 불어 행사 준비를 하는 일꾼들은 한결 일이 수월해졌습니다. 전철 길음역에서 내린 손님들은 길가에 나붙은 행사 포스터와 오렌지색 풍선길을 따라 쉬이 치유센터를 찾아오셨습니다. 

  

 

치유센터 3층 대강당에서는 사전행사로 오후 4시부터 장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가 상영되었습니다. "남영동 1985"는 김근태 민청령 의장이 1985년 악명놓은 경찰청(당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이근안 등 고문경관들로부터 가혹한 고문을 당한 사건을 그린 영화입니다. 여러 수녀님들을 포함한 200여 명의 관람객들은 고문의 참상과 이를 저항하는 고문피해자의 사투를 참담하게 또 뜨겁게 지켜보았습니다.

  

 

영화 상영이 마칠 즈음 도착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3층 대강당에서 '고문 근절'과 '피해자 치유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인사말을 드렸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인권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국가보안법의 폐해와 고문이라는 국가폭력을 책("야만시대의 기록-1,2,3)으로 출판했던 고문조사와 기록의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이어 박원순 시장은 고문피해자들을 비롯한 내빈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치유센터 내부를 함께 둘러보았고, 집단치유 진행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6시부터 성가소비녀회 수녀원에서 마련한 '소박한 밥상' 나눔이 피정의 집에서 있었습니다. 수녀님들이 준비한 150명분의 식기는 금방 동이 났습니다. 급히 식기를 더 준비하였고 조금 늦게 식당을 찾은 분들은 작은 접시에 식사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모두 맛나게 저녁식사를 마쳤습니다.

 

 

한편 그즈음 치유센터 건물 앞 중간 잔디마당에서는 강원도 원주에서 오신 김봉준 화백의 작품 전시와 "소망 글쓰기"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손님들은 치유센터에 바라는 희망의 말씀을 메모지에 남기고, 줄을 서서 김봉준 화백의 희망 손글귀를 받았습니다. 김봉준 화백은 신화와 민속의 원형 세계에서 인간본유의 치유 가능성을 회화와 조형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한일간 문화교류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계십니다. 

 

 

 

식사를 마친 후 치유센터와 잔디마당은 삼삼오오 김근태 의장과 인권의학연구소의 활동 사진을 둘러보고 치유공간을 산책하는 분들로 살짝 붐비는 느낌마저 주었습니다.

 

 

행사장 곳곳에서 함세웅 설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와 차 클레멘스 총장수녀님, 70여 명의 설립추진위원들,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이 함께 손님을 맞았습니다.

 

 

참석하신 손님들 중에는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과정에서 국가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각자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거나 정부나 의회,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 분들도 많지만, 지난 시기 국가폭력의 상흔과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한 동변상련의 감정은 모두를 예전의 하나 된 모습으로 되돌려 놓고 있습니다.

 

 

개소식 본행사는 "마당음악회"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서울 성북구에서 청소년 대상 봉사활동을 해오고 계시는 센트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5중주의 따듯한 음악이 파릇한 잔디마당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사회자 권해효 님은 축하객들에게 반가운 인사말을 드렸습니다. 함세웅 신부님, 성가소비녀회 총장 차 클레멘스 수녀님, 인재근 국회의원께서 차례로 뜻깊은 개소식을 맞은 소회를 담담하게 말씀하였습니다. 2012년 1월 김근태 의장 영결미사에서 고문피해자 치유센터를 처음 약속했던 함세웅 신부님은 남다른 감회를 들려주셨습니다. 인재근 의원님은 하늘에 계신 김근태 의장을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특히, 클레멘스 총장수녀님은 이 모든 것이 있기까지 수고하신 모든 이들에게 평화의 축복을 기원하셨습니다.

 

 

특히 재일동포 모국유학생 조작간첩 사건의 대표적 피해자인 이철 선생님은 오사카의 생업까지 잠시 미루고 멀리 일본에서 오셔서 치유센터 개소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일본에 거주하는 많은 고문피해자들을 대신하여 치유센터의 발전과 조국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말씀을 드려습니다.

 

마당음악회의 클라이맥스는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의 독창, 합창이었습니다. 참석하신 분들의 후문에 따르자면, "아베 마리아"를 들으며 영혼이 맑아지는 큰 감동을 받았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학생수녀님들의 합창도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치유센터 소식을 듣고 꼭 참석하고 싶다는 연락을 먼저 해 오신 남성중창단 "별 헤는 밤"의 씩씩한 남성중창 소리에 인근 주민들도 하나둘 씩 행사장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행사 중간에 짙어진 구름이 비가 되어 잠시 내렸습니다. 먼저 가신 고문피해자들의 얼어붙은 한이 조금씩 녹아 흐르는 것이었을까요. 참석자들은 내리는 비를 다같이 맞고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름없는 고문피해자들이 혼자 비를 맞도록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녁이 이슥하면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개소식은 막을 내렸습니다.

6월25일, 이 날은 고문과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치유 지원하기 위한 작은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만남을 통해 한 분 한 분의 치유가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마음에 전해진 깊은 울림과 감동으로 모두들 위로받는 밤이기도 했습니다.

 

 

(개소식 날 마당음악회를 "라이브 서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을 클릭하세요.)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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