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학연구소에 작은 꽃밭이 생겼다. 연구소의 한 귀퉁이에 황량하던 작은 공간이 형형색색의 꽃으로 채워지고 있다.  3주 전부터 연구소의 후원회원인 박순애 선생은 할미꽃부터 시작해 한련화, 꽃뱀무, 그리고 나런클러스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꽃모종을 조금씩 사서 손수 작은 꽃밭을 만들어가고 있다. 연구소는 이 꽃밭으로 인해 날씨만큼이나 화사한 봄을 선물 받았다. 처음엔 꽃모종만 가지고 오셨다면, 지난주엔 연구소의 밥상을 책임질 상추까지 심었다.

 

(사진) 할미꽃, 제라늄, 나런클러스, 한련화 등 총 10여종에 이르는 다양한 꽃들이 자라고 있는 연구소 작은 꽃밭.  

박순애 선생은 1970년대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전설로 불리는 원풍모방 노조의 부지부장으로 활동하며 핵심 간부였다. 원풍모방 노조는 1972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어떠한 단체행동도 허락되지 않던 살벌한 상황에서 어용노조를 청산하고 민주노조를 출범시켰다. 이에 원풍모방은 청계피복, 동일방직, YH무역 등과 함께 여성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펼친 한국 노동운동의 대표적인 민주노조였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원풍모방의 역사 한가운데 있었던 박순애 선생은 지난 2013년 김근태기념치유센터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며 본인이 사회 발전의 주인공이라는 긍지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진) 이 사진은 지난 2010년 원풍모방 여공이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룬 "민주노조의 전설-원풍모방 노동조합 운동사" 와 "못다 이룬 꿈도 아름답다" 를 펴내고함께 당시 지부장이던 방용석 전 노동부 장관과 찍은 사진이다.박순애 선생은 가장 중앙에 환한 미소와 함께 서 있다. (출처: 한겨레)

지난 3주 전부터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중요한 행위자로 현장에 있었던 박순애 선생은 연구소에서 호미를 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꽃모종 몇 개와 호미, 그리고 퇴비를 조용히 사서 오셨다. 그리고 황량하던 연구소의 귀퉁이에 가서 잡초를 뽑고, 공간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박순애 선생의 작은 텃밭은 다양한 꽃들로 채워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 월요일에는 연구소 직원들이 싱싱한 상추를 먹을 수 있도록 상추도 심었다.

 

(사진) 호미를 들고 꽃과 상추를 직접 심고 있는 박순애 선생

형형색색의 꽃들도 채워지고 있는 이 공간은 이제 연구소에 오시는 분들이 한 번씩 가봐야 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 김장호, 송기복, 최양준 선생 등 연구소에 오셨던 피해생존자 분들은 이곳에서 같이 사진도 찍고 담소를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박순애 선생의 보이지 않는 도움으로 가꿔지고 있는 이 작은 꽃밭으로 인해 연구소는 요즘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싱그러운 봄을 만끽하고 있다. 

(사진) 연구소에 오는 분들이 새롭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소가 되고 있는 꽃밭.  

며칠 전부터는 수녀원의 수녀들도 관심을 보이며 이 공간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앞으로 황량했던 이 공간에 심긴 꽃들과 상추들로 인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약속된 시간보다 항상 일찍 와서 조용히 호미를 들고 연구소의 꽃밭을 가꾸고 있는 박순애 선생의 시간과 노력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 연구소의 작은 꽃밭이 어떻게 바뀌어가는지 연구소의 페이스북을 통해 후원회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상처꽃-울릉도 1974> - 특별한 가족의 출연

 

<상처꽃- 울릉도 1974>는 다양한 분들의 카메오출연이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419일 토요일은 참 특별한 가족이 무대에 섰다.

 

70년대 노동운동사에 빛나는 <어느 돌멩이의 외침>을 쓴 노동운동가 유동우선생이 주심판사로, 그의 딸과 사위가 배석판사로 나란히 법복을 입었다.

 

 

[상처꽃-울릉도1974_4월 19일_유동우, 유현경(딸), 조명진(사위)]

 

몇 달 전 EBS <동행> 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화제를 낳은 바 있는 그의 가족사는 우리시대가 만든 또 하나의 비극이다.

 

이런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유동우선생도 남영동에서 받은 모진고문의 후유증으로 병들고 피폐해지면서 불행한 가족사가 만들어졌다. 딸은 처자를 버리고천지를 떠돌며 헤매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꽁꽁 한이 맺혔다.

 

그렇게 사람을 기피하고 떠돌던 유동우선생은 지난 해 인권의학연구소의 치유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의 창 하나가 가만히 열렸다고 했다. 주변의 응원을 통해 딸에게 손을 내밀어볼 용기도 얻었고, 그런 과정을 통해 딸도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함께 무대에 서는 잠깐의 동행을 위해 이날도 멀리 군산에서 남편과 아이들 함께 달려왔다. 그리고 아버지 옆에 앉아 연극을 보는 내내 흐느꼈다.

 

연극이 끝난 후 눈이 붉어진 사람들이 서로 따뜻한 포옹을 나누었다. 이 연극 중에서 특히 유동우선생의 딸 유현경씨를 더 울렸을 여자배우 정연심씨가 그들 부녀가 출연했던 프로그램 동행을 보았다며 유현경씨 손을 잡고 또 울먹였다.

 

 

[상처꽃-울릉도 1974-유동우, 유현경(딸), 조명진(사위), 손주들, 조화순 목사, 신인령 선생, 임진택 감독]

 

감자탕 집에 마련한 뒤풀이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유현경씨를 보는 순간 와락 부둥켜안았던 조화순목사, 크리스찬 아카데미 간사였던 신인령선생, 권영길선생, 임진택감독,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소장……

 

조화순목사는 기막힌 인연을 풀어놓았다.

1974년 대구의 교도소에서 울릉도간첩단사건으로 구속된 김용희선생과 옆방에서 징역을 살았다는 것이다. 조화순목사는 긴급조치위반이었지만 워낙이 빨갱이로 악명(?)높았던 터라, 여자간첩이 둘이나 들어왔다고 교도소가 떠들썩했다고 한다.

 

두 분은 각각 독방이었는데 고개를 내밀 수도 없는 배식구에 팔을 넣어 내 저으며 통방을 통해 우정을 쌓았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도 두 분이 가끔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고.

인연이 이렇게도 이어져있구나 싶어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은 새삼 놀라워했다.


 

[상처꽃-울릉도1974_ 울릉도 사건 고문생존자 김용희(연극의 송인숙)과의 감옥에서의 인연을 설명하시는 조화순 목사]

 

그러나 세월호침몰 사건으로 주로 검은색 옷차림을 하고 온 사람들은, 우울한 역사의 한 장면 앞에서 거듭 무겁고 침통해했다.

다행히 아직은 어른들의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유동우선생의 어린 손주들 해맑음에 잠시 미소를 머금을 수 있었다

 

 

[상처꽃-울릉도 1974-유동우, 유현경(딸), 조명진(사위), 해맑은 미소의 손주들]

 

 

글 : 장남수

(노동저술가, 『빼앗긴 일터』(창작과비평사, 1984) 저자, 前원풍모방노동자,

인권의학연구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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