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미사] 김근태 의원도 고문피해자였습니다.

-고문피해자 지원법안이 필요하다-

 

 12 29,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생 10주기 추모행사가 있었다. 오전 10시 마석 모란공원에서의 묘역 참배를 시작으로 오후 2시 명동대성당에서 추모 미사와 ()향린교회에서 추모 문화제까지 추모행사는 이어졌다. 이날 행사에는 김근태 전 의원의 부인인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유은혜 사회부총리, 우상호 의원 등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계인사들보다 더욱 중요한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은 바로 명동대성당에서의 추모미사에 참석했던 김근태 전 의원과 같은 고문피해자들이었다.

 

<사진 -1>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생 10주기  추모미사에 참여한 고문피해자들.

 故 김근태 선생 10주기 추모행사에 참여한 약 10여 명의 고문피해자 분들에게 김근태라는 개인은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그 이유는 1980년대 김근태라는 청년도 이들과 같은 고문피해자였기 때문이다. 1985 9 4, 김근태는 서울대 민추위(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의 배후로 조작되어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되어 불법 구금되었다. 이후 22일 동안 김근태는 사람이라면 견디기 힘든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후 1985 12 19일 김근태는 첫 공판에서 우리나라 법정 사상 최초로 모두진술 제도를 활용해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의 살인적인 고문사실을 폭로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이 같은 살인적인 고문은 1970-80년대 이미 조작간첩을 만들면서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다. 특히 남영동 대공분실뿐만 아니라 남산의 중앙정보부, 서빙고의 보안사 등 곳곳에서 고문피해자들은 양산되었다. 이날 10주기 추모미사에 참여했던 고문피해자들은 김근태 이전의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이었다.

 

<사진 -2>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생 10주기  추모미사의 강론을 맡은  함세웅 신부.

 이날 추모미사의 강론을 담당했던 함세웅 신부는 당시 남영동에서 살인적인 고문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김근태 의원을 보고 너무 몸이 초췌하고 망가져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함세웅 신부는 김근태 의원이 고문 이전의 삶을 회복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함세웅 신부는 일반인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고문의 트라우마에 대해 몇 가지 전해주었다. 예를 들어 김근태 의원은 살아생전 치과 진료를 받을 때, 치료를 위해 얼굴에 녹색 천을 얹는 순간 몸이 남영동에서의 물고문을 기억해 숨이 멎을 정도였다. 이는 고문을 당한 지 2-30년이 지나도 고문의 상처와 후유증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증거다.

 

 이런 내용을 비추어 볼 때, 일반인이라면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문을 경험했던 피해자들을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국가기관이 자행한 고문이라는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것은 물론 이들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이 지난 10년 동안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재근 의원은 지난 2012 19대 국회를 시작으로 20, 21대 국회에서도 고문방지 4법안을 제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특히, 이번 21대에서는 131명의 국회의원이 공동발의(20대 국회에서는 51명 공동발의)하면서 통과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여전히 계류 중이다.

<사진 -3>  명동성당 앞에서  ‘ 고문피해자 지원법 제정하라 !’ 는 피켓을 들고 있는 고문피해자들 .

 이에 같은 고문피해자였던 김근태 의원의 10주기 추모미사를 참여한 고문피해자들은 추모미사를 마치고 명동성당 앞에서 추운 날씨에 조용히 피켓(고문피해자 지원법 제정하라!)을 들었다.

 

 만약 김근태 의원이 지금 살아있었다면, 이분들을 위한 고문피해자 지원법을 제정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지지 않았을까. 우리는 2022 12 29일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생 11주기 추모미사에서는 고문피해자들이 직접 피켓을 드는 장면은 일어나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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