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무죄

[이런 판사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이런 판사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사법부가 인권의 보루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법부 성원(일원)으로서 깊이 사과드립니다. 이번 재심 판결이 피고인들에게 위로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납북어부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하면서 서울고법 형사12-3부 김형진 판사가 사과의 말.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입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62918540002562?did=NA "깊이 사과드린다" 납북어부 재심 무죄 선고한 재판장의 사과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고문을 받고 7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고(故) 박남선씨에 대한 재심에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고 진심 어린 사과의 뜻을 전했다. 박씨는 이날 무죄로 43년.. 더보기
[31살에 사형된 언론사 사장] 민족일보와 조용수. 대부분이 기억하지 못하는 언론사와 그 언론사 사장의 이름입니다. 민족일보는 1961년 2월 13일 창간이 되었습니다. 창간 당시, 민족일보는 4가지 경영방침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1. 민족의 진로를 가리키는 신문 2. 부정과 부패를 고발하는 신문 3. 노동대중의 권익을 옹호하는 신문 4. 양단된 조국의 비원을 호소하는 신문 이 같은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있던 민족일보는 창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매일 4만 여부를 발행하는 신문이 되었고, 당시 가판 판매 부수는 1위였다고 합니다. 이런 민족일보를 박정희 군부독재는 가만 놔둘 리 만무했습니다. 결국,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직후인 1961년 12월 2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서른한 살 언론인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바른 소.. 더보기
[남편의 간첩활동 방조범으로 몰린 아내…49년 만에 무죄] [남편의 간첩활동 방조범으로 몰린 아내…49년 만에 무죄] 이번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70대 여성분에게 적용됐었던 혐의는 '간첩 방조죄'였다. 1968년 서해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던 남편이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되었다가 다시 돌아왔다.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당시 국가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돌아온 이들을 간첩으로 몰아 모진 고문과 옥살이를 시켰다. 그 과정에서 이 남편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여성분에게는 '간첩 방조죄' 혐의를 씌웠다. 그리고 49년 만에 그 억울함이 재심을 통해 조금이나마 풀린 것이다. 단순히 기사의 내용이 아니라 잠시나마 내가 이 피해자가 되어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미칠 노릇이다. 한평생 억울함은 물론 이로 인해 경제적 불이익을 평.. 더보기
[미법도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48년 만에 무죄] [미법도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48년 만에 무죄] 지난 6월 29일, 서울고등법원 김형진, 최봉희, 진현민 재판부는 미법도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의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무죄를 받은 故 박남선 씨는 대표적인 고문기술자인 이근안에게 고문을 당하고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허위자백을 하고 7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리고 2005년에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이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아픔과 상처는 도대체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거 군부독재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간첩조작 사건을 만들었기에... 끝까지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관심을 가지고 피해 당사자와 그 유가족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입니다. https://www.news1.kr/articles.. 더보기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기사의 제목은 "이근안 고문에 간첩 누명 쓴 피해자, 42년 만에 재심 무죄" 기사는 참 건조하게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잠시나마 이 피해자가 겪었던 고문의 신체적 아픔, 이 피해자가 겪었던 억울한 정신적 고통, 출소 후에 경험했을 사회적 냉대와 경제적 고통, 그리고 이 피해자의 가족이 겪었을 아픔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었을 텐데. 더군다나 이 피해자는 무죄를 받지도 못하고 지난 2005년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먹먹한 가슴으로 이러한 질문을 던져봅니다. "수많은 국가폭력 피해생존자들에게 과연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래 링크는 관련 기사 원문입니다. https://www.ytn.co.kr/_ln/0103_20.. 더보기
납북됐다 간첩으로 몰려…49년 만에 누명 벗었지만 이미 고인 [49년 동안 따라다닌 누명의 굴레, 그리고 죽음] 얼마 전, 서울고등법원 형사 10부는 간첩 혐의 등으로 1972년 재판에 넘겨져 유죄로 확정된 故 김 모 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로써 조업 중 납북됐다가 풀려난 뒤 간첩으로 몰려 수감생활을 한 어민이 재심을 통해 49년 만에 누명을 벗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2019년 11월 세상을 떠났고, 간첩의 굴레를 벗지 못한 채 눈을 감아야 했습니다. 49년 동안 따라다는 간첩이라는 누명의 굴레 속에서 살아야 했던 한 개인의 삶을 생각해보면 그는 물론 그의 가족까지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리고 눈을 감기 전까지 국가로부터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그분은 과연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197-80년대 국가안보를 내세우며 수많.. 더보기
[이제야 그분들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이제야 그분들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지난 3월 16일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기억해야 할 재판이 있었습니다. 그 재판은 제주 4.3사건 당시 불법 군법회의를 통해 투옥돼 옥살이를 하던 중 생사 소식이 끊긴 4.3 행방불명 수형인 333명과 일반재판 수형인 2명에 대한 재심이었습니다. 이는 73년 만의 재판이자 선고날이었습니다. 이날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결했습니다. "피고인의 변호인은 4.3 당시 군법회의에서 판결한 범죄사실은 범하지 않은 사실이라고 주장하였고, 검사 역시 공소사실에 대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였으므로 이는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 335명의 집단 선고. 그리고 법정 가득 메운 유족들은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 더보기
울릉도사건 타임라인 영상 울릉도 사건 Timeline 1972년 유신헌법 공포, 1974년 1월 8일 긴급조치 1,2호 선포.. 1974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울릉도 사건'의 배경, 시작, 진행과정, 그리고 사건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을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중앙정보부가 당사자들에 대한 고문을 통해 사건을 조작했음을 규명했습니다. 이후 2012년 11월과 2014년 1월에 법원은 재심판결을 통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인권의학연구소,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은 2010년부터 '울릉도 사건'에 연루되어 피해를 당하신 분들의 치유모임을 시작으로 사건 당사자와 가족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영상제작: 박은성(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 기획팀장), 허철녕(창작공간 환) 출처: 인권의학연구소.. 더보기
[언론보도: 뉴스1] '울릉도 간첩단', 40년만에 간첩누명 벗었다. [뉴스1]'울릉도 간첩단', 40년만에 간첩누명 벗었다 고법 "고문 등 사정으로 임의성 결여…증거능력 없어 무죄" 고 최규식씨 등 3명, '입북 혐의'는 유죄 판단...시효 지나 (서울=뉴스1) 김수완 기자 = '울릉도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 징역형 등을 선고받았던 피해자들이 40년만에 간첩누명을 벗게 됐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문용선)는 10일 '울릉도 간첩단 사건'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낸 국가보안법 위반 등 재심사건에서 손두익씨, 전국술씨 등 10명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들이 제출한 증거는 고문 등 사정으로 인해 임의성이 없어 증거능력이 없다"며 "이 증거만으로는 범죄가 증명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미 고인이 된 최규식씨에 대해서는 간첩 혐의를 무죄로 .. 더보기
[언론보도: 뉴시스]'고문 못이겨 허위자백' 납북어부 29년만에 무죄 [뉴시스] '고문 못이겨 허위자백' 납북어부 29년만에 무죄 【서울=뉴시스】천정인 기자 = 1971년 울릉도 북쪽 해역에서 어로작업을 하던 중 납북된 어부가 간첩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가 29년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황병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4년이 확정돼 옥살이를 한 김모(57)씨에 대한 재심 사건에서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재심 재판부가 적법하게 채택해 조사한 증거들에 따르면 김씨는 1984년 4월 보안사 소속 수사관들에게 연행돼 34일 동안 보안사 분실에서 영장 없이 구금된 상태로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수사관들은 김씨에게 간첩 혐의를 인정하는 취지의 진술을 하거나 진술서를 쓰도록 강요하면서 몸 전체를 각목으로 구타하거나 얼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