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센터2017.05.30 10:35

2017년 UN 국제고문피해자 지원의 날과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숨" 개소 4주년 기념행사


일시: 6월 23일(금) 늦은 3시
장소: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2층)

고문·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삶과 회복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공감과 위로 그리고 연대와 희망을 나누는 자리에 함께 해 주시길 바랍니다.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숨' 공동대표 
함세웅, 인재근, 김상근, 이창복, 이석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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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2014.09.2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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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꽃-울릉도 1974> - 특별한 가족의 출연

 

<상처꽃- 울릉도 1974>는 다양한 분들의 카메오출연이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419일 토요일은 참 특별한 가족이 무대에 섰다.

 

70년대 노동운동사에 빛나는 <어느 돌멩이의 외침>을 쓴 노동운동가 유동우선생이 주심판사로, 그의 딸과 사위가 배석판사로 나란히 법복을 입었다.

 

 

[상처꽃-울릉도1974_4월 19일_유동우, 유현경(딸), 조명진(사위)]

 

몇 달 전 EBS <동행> 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화제를 낳은 바 있는 그의 가족사는 우리시대가 만든 또 하나의 비극이다.

 

이런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유동우선생도 남영동에서 받은 모진고문의 후유증으로 병들고 피폐해지면서 불행한 가족사가 만들어졌다. 딸은 처자를 버리고천지를 떠돌며 헤매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꽁꽁 한이 맺혔다.

 

그렇게 사람을 기피하고 떠돌던 유동우선생은 지난 해 인권의학연구소의 치유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의 창 하나가 가만히 열렸다고 했다. 주변의 응원을 통해 딸에게 손을 내밀어볼 용기도 얻었고, 그런 과정을 통해 딸도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함께 무대에 서는 잠깐의 동행을 위해 이날도 멀리 군산에서 남편과 아이들 함께 달려왔다. 그리고 아버지 옆에 앉아 연극을 보는 내내 흐느꼈다.

 

연극이 끝난 후 눈이 붉어진 사람들이 서로 따뜻한 포옹을 나누었다. 이 연극 중에서 특히 유동우선생의 딸 유현경씨를 더 울렸을 여자배우 정연심씨가 그들 부녀가 출연했던 프로그램 동행을 보았다며 유현경씨 손을 잡고 또 울먹였다.

 

 

[상처꽃-울릉도 1974-유동우, 유현경(딸), 조명진(사위), 손주들, 조화순 목사, 신인령 선생, 임진택 감독]

 

감자탕 집에 마련한 뒤풀이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유현경씨를 보는 순간 와락 부둥켜안았던 조화순목사, 크리스찬 아카데미 간사였던 신인령선생, 권영길선생, 임진택감독,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소장……

 

조화순목사는 기막힌 인연을 풀어놓았다.

1974년 대구의 교도소에서 울릉도간첩단사건으로 구속된 김용희선생과 옆방에서 징역을 살았다는 것이다. 조화순목사는 긴급조치위반이었지만 워낙이 빨갱이로 악명(?)높았던 터라, 여자간첩이 둘이나 들어왔다고 교도소가 떠들썩했다고 한다.

 

두 분은 각각 독방이었는데 고개를 내밀 수도 없는 배식구에 팔을 넣어 내 저으며 통방을 통해 우정을 쌓았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도 두 분이 가끔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고.

인연이 이렇게도 이어져있구나 싶어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은 새삼 놀라워했다.


 

[상처꽃-울릉도1974_ 울릉도 사건 고문생존자 김용희(연극의 송인숙)과의 감옥에서의 인연을 설명하시는 조화순 목사]

 

그러나 세월호침몰 사건으로 주로 검은색 옷차림을 하고 온 사람들은, 우울한 역사의 한 장면 앞에서 거듭 무겁고 침통해했다.

다행히 아직은 어른들의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유동우선생의 어린 손주들 해맑음에 잠시 미소를 머금을 수 있었다

 

 

[상처꽃-울릉도 1974-유동우, 유현경(딸), 조명진(사위), 해맑은 미소의 손주들]

 

 

글 : 장남수

(노동저술가, 『빼앗긴 일터』(창작과비평사, 1984) 저자, 前원풍모방노동자,

인권의학연구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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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꽃으로 피기까지

김봉준(화가, 상처꽃미술감독)과의 만남

 

 

정리 : 장남수

(노동저술가, 『빼앗긴 일터』(창작과비평사, 1984) 저자, 前원풍모방노동자,

인권의학연구소 운영위원)

  

 

 

 

 

그림 같은 글자, 글자 같은 그림

울릉도간첩단 사건의 생존자들을 상처 꽃이라는 세 글자에 형상화 한 김봉준화백의 그림은 절묘했다. “날카로운 칼부림에 찢어진 상처가 처절한데 그 상처들이 승화해서 으로 부활하는 듯, 받침이 촛불 꽃처럼 피어나는 그림이다. 김봉준표 캘리그라피다.

 

대학로 눈빛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상처꽃 울릉도-1974]에서는 눈을 사로잡는 치유미술영상들이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따뜻하면서 안온한 그림들이다.

농부들의 소박한 일상도 보이고, 탈을 쓴 마당극의 한 장면 같은 풍경도 있고, 걸어 들어가고 싶은 숲도 있고, 펄쩍 튀어 나올듯한 울릉도의 오징어잡이 어부 그림도 있다. 연극의 장면 장면들을 배경으로 가만히 받쳐주는 김봉준화백의 30여점 그림들은 연극과 잘 어울린다.

1974년도에 스무 살 무렵이었던 청년 김봉준은 울릉도사건을 듣도 보도 못했을진대.

 

극장 앞 작은 찻집에서 김봉준화백과 마주 앉았다.

나는 다섯 가지 폭력의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어요.”

 

어릴 때 가정폭력을 겪었고, 학교폭력, 군대폭력도 겪었다. 또한 투옥과 수배 등의 과정에서 국가폭력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대학 2학년 때 동일방직노동자들과 함께하며 동일방직사건을 극으로 만드는 연출을 했는데 이때 연행되어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26세 되던 때 광주사건이 터졌고 이때는 포고령위반으로 고달픈 피신생활을 1년이나 해야 했다. 당시 착검한 계엄군들이 요소요소에서 검문하던 때였다. 이때의 뿌리 뽑히고 끈 떨어진 삶으로 인해 도망자의 트라우마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다 포고령이 해제된 후 자수하여 이실직고하고 한 달 만에 풀려났다.

 

포고령위반으로 도망 다니면서 가진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 창작과비평에서 3개월여 일한 것이 전부였다. 그 후 대학까지 나온 놈이 그러고 있느냐는 눈총을 받던 중 농민회에서 불러 기독교농민회 문화간사로 들어가서 첫 만화를 그린 것이 농사꾼 타령이었다. 이것은 최초의 민중만화라고 꼽혔는데 그것 때문에 또 수배가 되었다. 그때 농민회 배종렬회장이 김봉준을 보호하고 대신 징역을 살았다. 긴 감옥살이 할 뻔 했는데 그렇게 넘고 넘었다.

 

그 다음엔 민중문화 협의회 활동을 하다가 끌려 들어가서 두들겨 맞고 그림도 빼앗겼다. 그 그림이 상처꽃극중에 등장한다. 목에 칼을 찬 사람을 가운데 두고 아낙네들이 둘러앉아 있는데 옆으로 총칼이 들어오는 그림이다. 당시 그 그림을 찾으러 종로경찰서에 갔는데 없다고 오리발 내미는 경찰들 탓에 찾지 못했다. 결국 구류를 살고 나온 후 화가 치밀어서 다시 그린 그림이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별따세(1985, 걸개그림)]

 

내 트라우마는 여러 종류이지만 그 중 가장 힘든 것은 내부자 폭력이었어요. 폭력의 강도는 그리 크지 않지만 믿고 따랐던 선배가 나를 모함하고 억압하는 폭력, 뺨때기를 여러 대 맞았는데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나를 모멸하며 작살을 내는 것이 너무 억울했고 그 억울함이 진짜 오래갑디다.

그런데 그이도 그런 종류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폭력이 습관화된 사람이었고 그렇게 습관화 된 사람 옆에 있으면 맞는 사람이 많이 생겨요. 나만 겪은 게 아니라 그 사람 주변에서 겪은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상처가 되는 일들을 겪으며 몸이 몹시 피폐해졌다. 결혼한지 9년 쯤 되었는데 도시를 떠나야겠다고 작정했다. 당시 부천에서 복사골 마당이라는 문화공간을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한참 풍물강습을 하던 때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래가 시골생활이 맞는 체질이지만 워낙 도시여자를 아내로 맞이한터라 부천에 자리를 잡았던 것인데 몸이 피폐해지니 버틸 수가 없었다. 이후 몸 안에서 암이 3기말까지 간 것도 알게 되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산골에 있으면서도 환자 몸으로 계속 생활비는 벌어서 송금하고 가족들이 보고 싶어 한 달에 한번정도는 왕래하며 어느 새 20여년 세월을 훌쩍 지나왔다.

 

1993년 그렇게 떠난 원주 문막 화실터에다 신화미술관을 차렸다. ‘신화는 신성한 힘의 발견’(죠셉 캠벨) 이다. 문화치유는 치유자가 단서를 제공하면 내담자 스스로 치유의 길을 찾아서 부활과 재생의 빛을 만드는 과정이다. 죽음의 문화에서 살림의 문화로 부활하는 것이므로 문화치유는 그 자체가 신화창조이다.

 

문화치유는 크게 자연치유, 예술치유, 영성치유로 구분할 수 있다.

자연치유는 나와 밖의 관계를 자연처럼 순환의 관계로 만드는 것이다. 내 몸 안에 스스로 지닌 자연의 치유력으로 심신의 안정을 구하는 것이다. 당연히 자연치유력의 으뜸은 숲이다. 예술치유는 앞에서도 언급된 것이지만 詩書畵歌舞樂으로 도에 이르는 것이다. 書道 武道 畵道란 말처럼 예도로 치유하는 것이다. 그에 더해 근대 장르주의 예술개념을 넘어 놀이치유, 영상치유, 문학치유, 드라마치유 등 다양한 예술치유가 있다. 영성치유는 영성, 요가 등을 포함하여 이 또한 다양하고 융합적인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난장(1982)]

 

트라우마를 겪은 자가 그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면 대개 네 가지 단계를 밟는다.

처음에는 숨어드는 것이다.

상처받은 동물이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숲으로 들어가 자기 상처를 핥는다. 사람도 동물이다. 그가 산골로 들어갔던 것도 바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울컥울컥 분노가 치민다.

분노를 폭발하느라 주변사람이 다치기 쉽다. 그러니 시골로 들어갔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다치게 될까 두려웠던 때문이기도 하다.

 

문막에 살면서 산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그래서 그는 자연의 치유능력을 믿는다.

 

그 다음은 하소연하고 싶어진다. 위로와 지지가 필요해지는 단계인 것이다.

이 단계가 어느 정도 지나면 용서할 마음이 생긴다.

 

그렇다면 혼자는 치유하기 어려운가?

김봉준 화백은 그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예술은 혼자서도 치유 가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만이 사람을 치유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게 그것이다. 예술치유는 자기안의 상처를 꺼내서 치유하는 기제로서 역할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린 그림들이라 이번 치유연극에 잘 어울리는 그림들이 되었던 것이다. 울릉도 사건 당사자들을 만난 적은 없지만 동시대를 겪었고 오늘날이 트라우마의 시대이니까. 그동안 트라우마를 예술로 승화하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고 임진택감독과 김수진 연출이 김봉준미술의 치유성을 간파했다.

 

용서와 화해의 그림을 그리면서 좋은 나라에 대한 꿈을 꿔왔다. ‘상처 꽃이라는 제목도 김근태치유센터에서 발제한 <치유문화론>을 양정순 작가와 임진택 감독이 보고 이번 연극 제목으로 쓰자고 한 것이다. 울릉도 사건에 맞춘 것은 아니었지만 잘 맞게 된 것이다.

 

좋은 나라라고 하는 것은 거대한 권력의 나라가 아니라 그의 그림에서 그려진 것처럼 작은 나라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그런 꿈(세계관)이 있어야 치유의 힘이 분명하게 생긴다. 자기 정체성과 정당성이 획득된다. 예술은 스스로 꿈을 가지고 스스로를 지지하기에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림 그려놓고 보면서 혼자도 좋아서 춤을 추기도 한다. 내가 걸어온 길이 옳았다고 확신하며 자기를 지지한다. 스스로에게 하소연하고 거리를 두기도 하고 지지받기도 하는 자기 소통의 방식이 치유예술이라고 말한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그리운고장(1991, 붓그림)] 

 

이 연극 큰일 내는 연극이군요.” 이 연극의 대본과 리허설을 본 후 극본을 쓴 양정순님과 밥을 먹으러 가며 한마디 던졌다. 연극의 본질은 사람들의 삶을 정면으로 이야기하는 예술이다. 국가정체성을 묻고 국가폭력과 맞장을 뜨니 한국 연극계에 큰 일 낸 것이 맞다.

 

재작년에 김근태 치유센터에서 문화치유론 발제하면서 한국근현대문화의 특징이 트라우마 시대이며 이를 치유하는 문화치유가 지금 절실하다고 말했다.

문화치유에는 자연치유와 예술치유, 영성치유가 있다고 문화치유론에서 말했지만 상처꽃은 이 세 가지가 모두 합쳐져 있다. 그렇다. 사람자체가 본래 하나다. 예술치유란 무엇인가. 상처를 드러내고 정면으로 응시하며 더러운 트라우마의 늪을 아름다움의 힘으로 스스로 빠져 나오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스스로를 살리고 서로를 살리고 세상을 살린다. 숲은 인류문화의 근원적 성지다. 싱그러운 아름다움이야 말로 상처를 상처꽃으로 부활시킬 것이다.

- 김봉준 <상처 꽃> 팜플렛에서

 

김봉준 화백의 새로운 살림의 정원에는 재생의 상처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1995년도에 그린 김순덕 할머니의 상처도, 위로와 지지가 필요한 우리 모두의 상처들도 그러하듯 김봉준 화백은 22년 간 숲으로 들어갔던 예술치유 경험에서 그 모든 상처들을 꽃송이로 이미 피워냈음을 볼 수 있었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 상처꽃 그림 모음]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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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극장에 모인 수많은 눈빛들에 반짝반짝 물빛이 어립니다.

 

때로는 끝내 참지 못해 흐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그 얼얼해진 눈빛들에 자글자글 웃음기가 모이면서 폭소들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웃고 울고, 그렇게 두 시간여 동안 극장 안에는 공감과 감동이 차오릅니다.

 

 

 

<상처꽃- 울릉도 1974> 43일 공연이 시작된 후로 연일 좌석이 꽉 차고 있습니다.

그중엔 까메오 출연하시는 분들의 지인들도 계시고 김근태기념치유센터의 회원들도 계시고 소문을 듣고 인터넷으로 표를 구매한 분들도 계시지만 아무튼 빈 좌석이 없는 지경입니다.

 

극장문이 막 닫힐 지경이 되어 헐레벌떡 달려오신 분이 공연 끝나고 나올 땐 눈이 벌개져 서 울먹울먹하시며 안내 석에 서 있던 제 손을 잡고 고맙다너무 감동받았다고 한 일없이 졸지에 제가 인사까지 받는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상처꽃-울릉도 1974-첫공연(4월 3일) 특별출연_함세웅 신부, 이철 전 의원, 이사영 님(울릉도사건 당사자)] 

 

 

첫날 까메오로 출연하신 함세웅신부님은 사제복과는 어쩐지 비슷하면서도 다른 판사복을 입고 많은 생각이 담긴 표정으로 담담하게 법관배역을 잘 수행하셨고요, 울릉도사건 당사자이신 이사영선생님도 배석판사역활을 하셨는데 그 자리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뵙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더라고요.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전력을 지닌 이철 전의원은 또 어떠셨을지....

 

 

[상처꽃-울릉도 1974-4월 4일 특별출연_인재근 의원, 유은혜 의원, 최상명 김근태 민주주의 연구소 소장] 

 

 

 

둘째 날 주심판사역을 하신 인재근의원은 역할 잘 하셨는데 객석에 앉아 관람하시는 동안 얼마나 눈물을 흘리시는지... 배석판사 유은혜 의원, 최상명 선생님도 마찬가지였지만요.

인재근의원은 고문장면을 보는 게 힘드셨다고, 죄수복 입은 배우들이 힘겹게 고비를 넘던 장면, 아이들을 떼놓고 하루아침에 간첩이 되어 10년 이상을 복역한 여성배우의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팠다, 하시더군요.

 

[상처꽃-울릉도 1974-4월 5일 오후 3시 특별출연_장영달 전 의원, 조형국 님, 유형준 님] 

 

 

 

셋째 날, 박문숙선생의 영결식을 치른 후 장지로 가던 길에 시간에 쫓겨 차를 돌려 오신 장영달의원은 눈빛이 형형하여 카리스마 넘치는 법관 같으셨고요.

이부영 의원님, 홍세화선생님, 한회에 세 분씩 벌써 10여분 이상이 까메오 출연으로 무대를 빛내 주시고요.

 

 

[상처꽃-울릉도 1974-4월 5일 오후 7시 특별출연_이부영 전 의원, 소설가 윤정모 님, 서울시극단 예술감독 김혜련 님]

 

 

 

[상처꽃-울릉도 1974-4월 6일 특별출연_홍세화 님, 학습공동체 '가장자리' 협동조합 조합원 김경미 님, 장성환 님]

 

마치 울릉도 사건의 당사자였던 듯, 잘 표현되어 배경화면을 채우는 김봉준화백의 그림과, ‘아름다운 사람’ ‘타박네야’ ‘세노야등 음악들도 무대를 채웁니다.

 

그렇게 뛰어난 연출, 열정이 넘치는 배우들과, 사연 있는 까메오들, 깊게 공감하는 관객들이 어우러지면서 <상처꽃>4월의 대학로에서 영롱한 빛깔로 만개하고 있습니다.

이 연극 못 보시면 후회합니다.

좋은 님들 만나 마로니에 공원 산책도 하시고, 손 잡고 눈빛극장으로 오세요.

좋은 기억 한 장면, 지니게 되실 겁니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김봉준 님, 「난장」(1982)]

 

글: 장남수[ 노동저술가,  前 원풍모방 노동자, 『빼앗긴 일터』(창작과비평사, 1984) 저자, 

                인권의학연구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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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센터2014.03.21 18:27

 

 

인권의학연구소 /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이

서사치유연극 "상처꽃-울릉도 1974"에 초대합니다.  

 

서사치유연극 “상처꽃-울릉도 1974”는 1974년 3월 중정이 발표한 ‘울릉도 간첩단사건’을 소재로 하여, 국가의 폭력에 의한 상처와 치유를 그린 연극입니다.

 

울릉도 사건은 2010년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을 통해, 중앙정보부의 고문수사에 의한 조작사건으로 밝혀졌습니다. 이후 2012년부터 현재까지 서울고등법원과 서울형사지방법원이 재심을 통해, 사건 관련자들의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울릉도 사건을 비롯하여, 우리 현대사에서 국가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을 기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간첩조작사건의 진실과, 인권의 소중함을 여러 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연극의 총감독, 예술감독은 임진택 선생,

연출은 재일 연출가 김수진 선생(극단 신주쿠 양산박 대표), 극본은 양정순 선생입니다.

오는 4월 3일 개막하여 5월 31일까지 대학로 <눈빛극장>에서 공연합니다. 

(평일 오후 8시 / 토요일 3시, 7시 / 일요일 3시 / 월요일 쉼)  

 

 

볕 좋은 봄날, 소중한 분들과 함께 찾아주세요.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imrhc@naver.com, 02-711-7588)

 

 

예매

인터파크    1544-1555  www.ticketpark.com

대학로닷컴 1599-7838  www.대학로티켓.com

 

문의

극단 길라잡이 070-8158-3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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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센터2014.03.06 17:22

인권의학연구소,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숨'에서 울릉도 사건 40주년을 맞이하여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긴급조치 1,2호가 발동되고, 인혁당과 민청학련사건이 발표되기 전인 1974년 3월 15일,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울릉도 간첩단 사건'이 신문지상으로 발표되었습니다. 각 신문은 1면에 47명의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까지 밝히며, 대대적으로 보고했습니다.

 

  인혁당 관련자 8명이 사형당한 1975년 4월 8일 울릉도 사건 관련자 3명이 사형에 처해졌고, 29명은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고 수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무고하게 '간첩'으로 조작되었던 분들은 10년, 20년도 아닌 40년을 기다려, 2014년 1월 10일, 2월 12일에 연이어 재심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거짓이 제대로 밝혀지기까지 40년이나 걸렸다는 것이 부끄럽고 마음 아픈 일이지만, 그동안 견디어내신 생존자들과 그 가족들께 위로와 사과를 올리기 위해 기념행사를 열고자 합니다.

 

 

울릉도 사건이 언론에 대서특필된 지 딱 40년이 되는,

2014년 3월 15일 (토) 늦은 3시

인권의학연구소가 자리잡고 있는 성가소비녀회 성재덕관 대강당에서

<울릉도 사건 40주년과 무죄판결 기념행사>를 엽니다.

 

이날 행사의 순서로는

▶ 인권의학연구소 이사장이신 함세웅 신부님의 "여는 말씀"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일하셨고,

    울릉도사건 재심을 진행하신 이명춘 변호사의 강연 "재심무죄의 의미",

▶ 울릉도 사건을 견디어 내신 '생존자'분들과 그 가족분들의 말씀 "1974년 울릉도 사건과 내 삶"

▶ 울릉도 사건을 소재로 한 서사치유연극 "상처꽃" 시연

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셔서 위로와 격려에 함께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인권의학연구소,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숨' 드림(02-711-7588)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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