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4월 발생한 사북민주항쟁의 33주년 기념식이 4월 20일(토) 오후 2시 옛 동원탄좌 구내에 건립된 “뿌리관”에서 개최되었다.
<사진출처. 인권의학연구소>
기념식은 ‘지역살리기공동추진위원회’와 ‘사북민주항쟁동지회’가 공동 주최하였다. 이날 행사에는 정선군수, 군의회 의장, 강원랜드 사장 등 지역 각계 인사들과 주민 200여 명이 참석했다. 눈비가 흩날리는 가운데 행사는 주최 측의 인사말과 내빈 기념사, 기념시 낭송 순으로 진행되었다. 정선군수, 강원랜드 사장 등 내빈들은 지역의 아픈 상처를 잊지 말고 후대들이 기억하도록 하자고 발언했다. 행사 후 이원갑 사북민주항쟁동지회장과 신경, 강윤호, 윤병천, 안원순 등 사북항쟁 동지회 참석자들은 인근 식당에서 향후 기념사업의 방향에 대해 토론하고 조직의 안정화와 기념사업의 확대를 결의하였다.
사북민주항쟁에 대해 「진실화해위원회」는 “1980년 4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주)동원탄좌 사북광업소 광부와 주민들이 노조지부장 사퇴 등을 요구하며 사북읍 일대를 점거하고 경찰과 충돌하였으나 노·사·정 대표간의 협상을 통해 사태 해결에 합의하였는데, 같은 해 5월 6일부터 6월 17일 동안 1군 계엄사 ‘사북사건 합동수사단’이 200여명의 주민들을 재차 정선경찰서에 연행, 구금하고 고문과 가혹행위 등 중대한 인권침해를 가한 사건”으로 규정한바 있다.
<사진출처. 사북항쟁동지회>
이 사건은 1960,70년대 우리나라 탄광노동의 열악한 현실을 배경으로 '어용노조 지부장의 퇴진',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던 노동자들이 정보경찰의 노조활동 감시에 분격하여 회사와 강원도 정선군 사북면 일대를 완전 장악하고 경찰, 군인과 대치한 끝에 11개항의 타협안에 합의한 후 평화적으로 사태를 마무리 한 탄광노동쟁의사건이었다. 그러나 평화적 타결 이후 당시 전두환 신군부는 노동쟁의를 주도한 광부와 가족들 수백 명을 야밤을 틈타 정선경찰서에 설치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로 무차별 불법연행하여 물고문, 고문호스 구타, 성고문 등 말할 수 없는 집단 고문을 자행한 후 31명을 구속하는 등 80명을 군법회의에 회부, 처벌하였다.
<사진출처. 사북항쟁동지회>
당시 고문 피해자들은 지금도 그 때의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국가는 적어도 과거의 고문가해에 대해 책임있는 사과와 원상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아픈 기억의 상처는 33번의 딱지를 떼고도 아물지 않았다. 어떠한 보상이나 훈장보다 피해자들에게는 가족와 이웃들의 인정과 존경이 큰 힘이 된다. 사북항쟁이 지금까지 멍에를 지고 싸웠던 것도 가족와 이웃들의 믿음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안식을 주어야 할 때다. 사북항쟁의 역사적 재조명과 기념사업에 더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사진출처. 사북항쟁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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