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공'의 이름으로 짓밟은 그놈, 이름이라도 알고 죽고 싶다]

최근 '멸공'이라는 단어가 이슈였습니다.

어떤 CEO는 자신에게 멸공은 정치가 아닌 현실이라고 했죠.
이를 보며 참 많이 씁쓸했습니다.
'멸공'이라는 이유로 아무 죄도 없는 국민을 향해 국가가 저지른 범죄가 너무도 가혹했기 때문입니다.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 국민을 향해 고문을 가했던 국가와 고문 가해자에게 멸공은 과연 무엇인가?"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605250&plink=ORI&cooper=NAVER&fbclid=IwAR2a9LS5zbXQ9SCRgJRMeugSh5NlapwX-P-nyg946cfdfDqd-xqzFcWBU7E 

 

'멸공'의 이름으로 짓밟은 그놈, 이름이라도 알고 죽고 싶다

안녕하세요. SBS 탐사보도부 원종진 기자입니다. 누군가의 남편으로, 누군가의 아버지로 평화롭게 살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

news.sbs.co.kr

 

[미싱타는 여자들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
오는 20일 극장개봉을 앞둔 영화가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감독 이혁래·김정영) 스틸컷 (출처: 여성신문)

그 영화는 1970년대 평화시장에서 여자 전태일로 살았던 분들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Sewing sisters)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감독 이혁래·김정영) 포스터
1970년대 섬유·의류 산업은 여성 노동자들이 떠받쳐온 산업입니다. 당시 평화시장 노동자 2만6800명 중 85.9%가 14~24세 여성이었고, 그중 절반이 18세 미만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초기 산업이 성장하는데 이분들은 핵심이었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아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들을 단순히 '공순이'라며 외면이 아닌 무시했습니다. 이들이 제대로 조명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없었으면 1970년대 한국경제는 없었습니다.

 

[고문피해자에게 가혹한 대한민국]
고문피해자였던 故 김근태 의원의 10주기 추모미사에 같은 고문피해자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추모미사가 끝나고 아무 말 없이 피켓을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10년이 지나도록 19대, 20대, 21대 인재근 의원의 1호 법안인 '고문피해자 지원법안'이 잠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를 기다리듯이
한국 정부와 국회는 고문피해자분들이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리는지.
이분들에게 시간이 없습니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590011&plink=NEWLIST&cooper=SBSNEWSSPECIAL 

 

김근태를 계승하겠다는 정치인들이 우선 챙겨야 할 법안

김양기/전두환 군사정권 고문 피해자 우리들 입장에서는 국가가 너무..차라리 우리가 뭐 촛불 들고 그렇게 할 때만 해도 뭔가 좀 변해지겠다 하는 그런 희망, 그런 거기서 기대를 가지고 말이지

news.sbs.co.kr

 

[SBS] "고문 가해자 공개하라" 법원 판결에도 정부는 '감감'  

 

 김양기, 김철, 이사영, 최양준 선생은 SBS와 인터뷰를 통해 훈포상이 취소된 고문가해자의 이름을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는 행정안전부에 대한 심경을 밝혔습니다.

 

 지난 11월, (사)인권의학연구소는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훈포상이 취소된 고문가해자의 이름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에서 승소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이 판결이 있은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행정안전부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위 사진을 클릭하시면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전두환의 고문공화국]

전두환의 죽음을 두고 보도하면서
뉴욕타임스는 전두환을 ‘전 군부 독재자’로
AP통신은 ‘학살자’라고 명명했습니다.
 
▲   1979년 11월 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발표하는 전두환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그 표현 이면에 내재된 사실은 단순히 전두환이 5.18 민주항쟁을 무참하게 학살한 사실만을 두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가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손에 쥔 약 7년의 시간 동안 한국 사회는 ‘고문공화국’이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시기 국민들을 향해 자행한 고문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인권탄압 과정에서 자행됐다. 일제는 수많은 고문기법을 개발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친일 경찰들이 독재 정권에서도 그대로 활동하게 됐고 이들의 잔혹한 속성과 각종 고문기술 등은 민주화 운동가들을 탄압하는 데 그대로 활용”된 것입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일제가 조선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다르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문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집권 시기 내내 어떠한 거리낌도 없이 자행할 수 있었던 것이죠.
아직도 우리는 당시 고문 피해자라고 하면 유명한 몇몇의 정치인만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지만, 전두환 정권 아래 안기부, 보안사, 치안본부에 의한 고문 피해자는 숫자를 셀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전두환의 죽음을 보며 당시 전두환 정권은 고문공화국이었다는 사실과 그 시절 하에 희생당한 고문 피해자들을 과연 우리는 지금 어떻게 대우할 것인지 숙고해야 합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90198&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 

 

전두환 정권의 또다른 이름, '고문공화국'

[전두환 사망] 5공화국 시절에 고문이 그토록 많았던 이유

www.ohmynews.com

 

[우리가 기억하고 추모해야 할 죽음이 따로 있습니다]

 

지난 23전 군부 독재자전두환 씨가 사망했습니다.

모든 언론이 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 광주에서 또 다른 부음이 전해졌습니다.

 

24일 오전 광주 북구의 한 장례식장에 이광영씨의 빈소가 차려져 있다. 이씨가 22일 가족 앞으로 쓴 유서에는 ‘5.18에 원한도 없으려니와 작은 서운함들은 다 묻고 가니 마음이 홀가분하다’며 아버지께 가고 싶다고 적혀 있다. (출처: 한겨레)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돼 후유증에 시달리던 이광영(68)씨의 죽음이었습니다.

 

전두환 독재자 때문에 평생을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던 이광영 선생.

 

우리는 전두환의 죽음이 아니라 이광영 선생의 죽음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합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기사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1020608.html?fbclid=IwAR2XLKxcv8Gge4ry5-LGgALGd60820QkrWY92is6Ctf_1xh-CWeKuA99HkY 

 

전두환 사망날 세상 떠난, 5·18 생존자 빈소에 갔습니다

[신문사진편지] #17하반신 마비 후유증 시달리던 이광영님의 명복을 빕니다

www.hani.co.kr

 

[박순희 선생님 한겨레와의 인터뷰]    

 

“말년까지 건강하게 골프 치다가 집에서 그렇게 갔다니… 광주에서 수백 명의 목숨을 빼앗고 수만 명을 가슴앓이시킨 ‘살인마’가 갈 곳은 영원한 지옥 그보다 더한 곳일 겁니다.”     

 

박순희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연합 지도위원. (출처: 한겨레)

저희 연구소와도 연이 깊은 박순희 선생님의 인터뷰 기사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박순희 선생님은 1980년대 원풍모방 노동조합의 부지부장으로 있으면서 80년 5.18 민주항쟁이 일어나자 당시 원풍모방의 1,700여 명의 조합원들과 함께 ‘5.18 성금’ 470만 원을 조성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금을 전달했다가 81년 4월 안기부에 잡혀가야 했습니다.     

 

전두환은 사과 없이, 추징금도 내지 않고, 누릴 걸 다 누리고 떠났지만,

그로 인해 몸과 마음에 상처 받은 수많은 시민들은 여전히 그 아픔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기사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0628.html

 

“나는 세탁기 소리에도 덜덜 떠는데…전두환은 편안히 눈 감았다”

[원풍모방 노조 탄압]박순희 전 노조 부지부장 “하루 한 번 고문소리·신음 듣게학살자는 말년까지 골프 치다가집에서 편안히 눈감다니…분노”

www.hani.co.kr

 

[1억 6712만 원]

 

지난 11일 제주지방법원 제2민사부에서 35년 전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7년의 세월을 억울하게 옥살이했던 故 오재선 선생에게 국가배상의 책임이 있다며 “1억 6712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1986년 오재선 선생님은 경찰(당시 치안본부)에 연행되어 한 달 동안 불법 구금과 모진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하고 간첩이 되었습니다. 그 거짓 자백으로 기소된 법정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한 당시 1심 주심판사가 바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입니다.

그 이후의 삶을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고문과 옥살이, 그리고 30여 년을 간첩의 딱지로 한국사회에서 살아야 했을 故 오재선 선생과 그 유족들. 반면, 그런 판결을 내리고도 법조인으로 가장 높은 자리라고 할 수 있는 대법원장까지 역임한 양승태.

과연 “1억 6712만 원”이 故 오재선 선생과 유족들의 망가진 삶을 대변하는 돈인가.

그런 판결을 내리고도 양승태가 지난 30여 년 동안 누린 잘못된 부와 명예는 얼마일 것인가.

터무니없는 금액도 화가 나지만, 마치 이 돈으로 피해자와 그 유족들의 아픔에 국가는 모든 의무를 다한듯한 기사를 보면 이건 정말 아닙니다.

(아래 사진이 살아계실 때 오재선 선생님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1985년 설립된 이래 고문 생존자들의 치료와 그들을 지원하고 있는 Freedom from Torture는 32년 전 오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음을 보여주는 사진을 게시했습니다.

 

<사진> 11월 9일, 고문피해자들을 위한 영국의 자선 단체 Freedom from Torture가 페이스북에 올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의 사진.

여전히 분단되어 있는 한반도에서 이 사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국제정치적 혹은 종전선언의 관점이 아니라 분단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픈 피해를 봐야 했던 고문 피해자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싶다.

 

분단이라는 구조 하에서, 대한민국의 역대 권력들은 국가보안법이라는 제도를 악용해 수많은 간첩들을 양산했습니다. 가장 힘없는 국민들을 불법 구금하고, 고문해 간첩을 잡은 것이 아니라 양산했습니다.

 

국정원, 경찰청, 국방부라는 엄청난 국가기관들은 의해 인간이라면 차마 상상하지 못한 고문으로 무고한 시민이었던 사람을 하루아침에 간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간첩이 된 분들은 지금도 자신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사법부라는 국가권력을 향해 스스로 법정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Freedom from Torture는 이 사진을 게재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동독과 서독을 가르는 벽이 아니라 다리를 만드는 것을 기념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분열시키는 요소보다 우리 안에 더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When we celebrate our shared humanity and build bridges instead of walls, we realise that we have far more in common than that which divides us.)

 

하루빨리 한반도에도 이같이 두 사회를 가로막고 있는 철조망이 아니라 다리가 연결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상호 이해의 폭이 넓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그전에 한반도 분단이 낳은 그리고 그 비극의 일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고문피해자들의 아픔을 국가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깊이 돌아보길 바랍니다.

 

32년 전, 서독과 동독을 가로막던 벽이 무너지고 서로의 차이보다 공통점을 발견한 날.

 

분단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고문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아픔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검찰의 민낯]    

 

연구소에서 법정 동행을 자주 합니다. 방청석에 앉아 검찰의 행태를 보면 분노가 올라옵니다.      

 

이러한 일은 통일운동가 故 박기래 선생의 재심 재판에서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박기래 선생님은 1974년 통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을 받고 17년을 감옥에서 지내셨습니다.     

 

이런 사건을 만든 공범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검찰인데, 잘못을 시인하기는커녕 재심에서도 검찰은 무기징역이라는 구형을 유지했습니다. 그것도 서면으로.     

 

재심은 법원이 엄격한 판단을 거쳐 내린 결정인데도 불구하고, 검찰은 기계적으로 무기징역을 구형합니다.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도 없이 말입니다.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짓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자세한 기사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16067.html

 

보안사 고문에도…“재심조차 무기징역 구형, 박정희 검찰인가”

통일운동가 박기래 선생 ‘통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검찰 중형 구형…유족 “국가폭력 피해자 두번 죽여”

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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