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꽃으로 피기까지
김봉준(화가, ‘상처꽃’미술감독)과의 만남
정리 : 장남수
(노동저술가, 『빼앗긴 일터』(창작과비평사, 1984) 저자, 前원풍모방노동자,
인권의학연구소 운영위원)
“그림 같은 글자, 글자 같은 그림”
‘울릉도간첩단 사건’의 생존자들을 ‘상처 꽃’이라는 세 글자에 형상화 한 김봉준화백의 그림은 절묘했다. “날카로운 칼부림에 찢어진 상처”가 처절한데 그 상처들이 승화해서 ‘꽃’으로 “부활”하는 듯, ㅊ받침이 촛불 꽃처럼 피어나는 그림이다. 김봉준표 캘리그라피다.
대학로 눈빛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상처꽃 울릉도-1974]에서는 눈을 사로잡는 치유미술영상들이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따뜻하면서 안온한 그림들이다.
농부들의 소박한 일상도 보이고, 탈을 쓴 마당극의 한 장면 같은 풍경도 있고, 걸어 들어가고 싶은 숲도 있고, 펄쩍 튀어 나올듯한 울릉도의 오징어잡이 어부 그림도 있다. 연극의 장면 장면들을 배경으로 가만히 받쳐주는 김봉준화백의 30여점 그림들은 연극과 잘 어울린다.
1974년도에 스무 살 무렵이었던 청년 김봉준은 ‘울릉도사건’을 듣도 보도 못했을진대.
극장 앞 작은 찻집에서 김봉준화백과 마주 앉았다.
“나는 다섯 가지 폭력의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어요.”
어릴 때 가정폭력을 겪었고, 학교폭력, 군대폭력도 겪었다. 또한 투옥과 수배 등의 과정에서 국가폭력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대학 2학년 때 동일방직노동자들과 함께하며 동일방직사건을 극으로 만드는 연출을 했는데 이때 연행되어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26세 되던 때 광주사건이 터졌고 이때는 포고령위반으로 고달픈 피신생활을 1년이나 해야 했다. 당시 착검한 계엄군들이 요소요소에서 검문하던 때였다. 이때의 뿌리 뽑히고 끈 떨어진 삶으로 인해 도망자의 트라우마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다 포고령이 해제된 후 자수하여 “이실직고” 하고 한 달 만에 풀려났다.
포고령위반으로 도망 다니면서 가진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 창작과비평에서 3개월여 일한 것이 전부였다. 그 후 대학까지 나온 놈이 그러고 있느냐는 눈총을 받던 중 농민회에서 불러 기독교농민회 문화간사로 들어가서 첫 만화를 그린 것이 ‘농사꾼 타령’이었다. 이것은 최초의 민중만화라고 꼽혔는데 그것 때문에 또 수배가 되었다. 그때 농민회 배종렬회장이 김봉준을 보호하고 대신 징역을 살았다. 긴 감옥살이 할 뻔 했는데 그렇게 넘고 넘었다.
그 다음엔 민중문화 협의회 활동을 하다가 끌려 들어가서 두들겨 맞고 그림도 빼앗겼다. 그 그림이 ‘상처꽃’극중에 등장한다. 목에 칼을 찬 사람을 가운데 두고 아낙네들이 둘러앉아 있는데 옆으로 총칼이 들어오는 그림이다. 당시 그 그림을 찾으러 종로경찰서에 갔는데 없다고 오리발 내미는 경찰들 탓에 찾지 못했다. 결국 구류를 살고 나온 후 화가 치밀어서 다시 그린 그림이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별따세(1985, 걸개그림)]
“내 트라우마는 여러 종류이지만 그 중 가장 힘든 것은 내부자 폭력이었어요. 폭력의 강도는 그리 크지 않지만 믿고 따랐던 선배가 나를 모함하고 억압하는 폭력, 뺨때기를 여러 대 맞았는데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나를 모멸하며 작살을 내는 것이 너무 억울했고 그 억울함이 진짜 오래갑디다.
그런데 그이도 그런 종류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폭력이 습관화된 사람이었고 그렇게 습관화 된 사람 옆에 있으면 맞는 사람이 많이 생겨요. 나만 겪은 게 아니라 그 사람 주변에서 겪은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상처가 되는 일들을 겪으며 몸이 몹시 피폐해졌다. 결혼한지 9년 쯤 되었는데 도시를 떠나야겠다고 작정했다. 당시 부천에서 ‘복사골 마당’ 이라는 문화공간을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한참 풍물강습을 하던 때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래가 시골생활이 맞는 체질이지만 워낙 ‘도시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터라 부천에 자리를 잡았던 것인데 몸이 피폐해지니 버틸 수가 없었다. 이후 몸 안에서 암이 3기말까지 간 것도 알게 되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산골에 있으면서도 환자 몸으로 계속 생활비는 벌어서 송금하고 가족들이 보고 싶어 한 달에 한번정도는 왕래하며 어느 새 20여년 세월을 훌쩍 지나왔다.
1993년 그렇게 떠난 원주 문막 화실터에다 ‘신화미술관’을 차렸다. ‘신화는 신성한 힘의 발견’(죠셉 캠벨) 이다. 문화치유는 치유자가 단서를 제공하면 내담자 스스로 치유의 길을 찾아서 부활과 재생의 빛을 만드는 과정이다. 죽음의 문화에서 살림의 문화로 부활하는 것이므로 문화치유는 그 자체가 신화창조이다.
문화치유는 크게 자연치유, 예술치유, 영성치유로 구분할 수 있다.
자연치유는 나와 밖의 관계를 자연처럼 순환의 관계로 만드는 것이다. 내 몸 안에 스스로 지닌 자연의 치유력으로 심신의 안정을 구하는 것이다. 당연히 자연치유력의 으뜸은 숲이다. 예술치유는 앞에서도 언급된 것이지만 詩書畵歌舞樂으로 도에 이르는 것이다. 書道 武道 畵道란 말처럼 예도로 치유하는 것이다. 그에 더해 근대 장르주의 예술개념을 넘어 놀이치유, 영상치유, 문학치유, 드라마치유 등 다양한 예술치유가 있다. 영성치유는 道 영성, 요가 등을 포함하여 이 또한 다양하고 융합적인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난장(1982)]
트라우마를 겪은 자가 그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면 대개 네 가지 단계를 밟는다.
처음에는 숨어드는 것이다.
상처받은 동물이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숲으로 들어가 자기 상처를 핥는다. 사람도 동물이다. 그가 산골로 들어갔던 것도 바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울컥울컥 분노가 치민다.
분노를 폭발하느라 주변사람이 다치기 쉽다. 그러니 시골로 들어갔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다치게 될까 두려웠던 때문이기도 하다.
문막에 살면서 산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그래서 그는 자연의 치유능력을 믿는다.
그 다음은 하소연하고 싶어진다. 위로와 지지가 필요해지는 단계인 것이다.
이 단계가 어느 정도 지나면 용서할 마음이 생긴다.
그렇다면 혼자는 치유하기 어려운가?
김봉준 화백은 그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예술은 혼자서도 치유 가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만이 사람을 치유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게 그것이다. 예술치유는 자기안의 상처를 꺼내서 치유하는 기제로서 역할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린 그림들이라 이번 치유연극에 잘 어울리는 그림들이 되었던 것이다. 울릉도 사건 당사자들을 만난 적은 없지만 동시대를 겪었고 오늘날이 트라우마의 시대이니까. 그동안 트라우마를 예술로 승화하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고 임진택감독과 김수진 연출이 김봉준미술의 치유성을 간파했다.
용서와 화해의 그림을 그리면서 좋은 나라에 대한 꿈을 꿔왔다. ‘상처 꽃’ 이라는 제목도 김근태치유센터에서 발제한 <치유문화론>을 양정순 작가와 임진택 감독이 보고 이번 연극 제목으로 쓰자고 한 것이다. 울릉도 사건에 맞춘 것은 아니었지만 잘 맞게 된 것이다.
“좋은 나라”라고 하는 것은 거대한 권력의 나라가 아니라 그의 그림에서 그려진 것처럼 작은 나라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그런 꿈(세계관)이 있어야 치유의 힘이 분명하게 생긴다. 자기 정체성과 정당성이 획득된다. 예술은 스스로 꿈을 가지고 스스로를 지지하기에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림 그려놓고 보면서 혼자도 좋아서 춤을 추기도 한다. 내가 걸어온 길이 옳았다고 확신하며 자기를 지지한다. 스스로에게 하소연하고 거리를 두기도 하고 지지받기도 하는 자기 소통의 방식이 치유예술이라고 말한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그리운고장(1991, 붓그림)]
“이 연극 큰일 내는 연극이군요.” 이 연극의 대본과 리허설을 본 후 극본을 쓴 양정순님과 밥을 먹으러 가며 한마디 던졌다. 연극의 본질은 사람들의 삶을 정면으로 이야기하는 예술이다. 국가정체성을 묻고 국가폭력과 맞장을 뜨니 한국 연극계에 큰 일 낸 것이 맞다.
재작년에 김근태 치유센터에서 ‘문화치유론을 발제하면서 한국근현대문화의 특징이 트라우마 시대이며 이를 치유하는 문화치유가 지금 절실하다고 말했다.
문화치유에는 자연치유와 예술치유, 영성치유가 있다고 문화치유론에서 말했지만 ‘상처꽃’은 이 세 가지가 모두 합쳐져 있다. 그렇다. 사람자체가 본래 하나다. 예술치유란 무엇인가. 상처를 드러내고 정면으로 응시하며 더러운 트라우마의 늪을 아름다움의 힘으로 스스로 빠져 나오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스스로를 살리고 서로를 살리고 세상을 살린다. 숲은 인류문화의 근원적 성지다. 싱그러운 아름다움이야 말로 상처를 ‘상처꽃’으로 부활시킬 것이다.
- 김봉준 <상처 꽃> 팜플렛에서
김봉준 화백의 새로운 살림의 정원에는 재생의 상처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1995년도에 그린 김순덕 할머니의 상처도, 위로와 지지가 필요한 우리 모두의 상처들도 그러하듯 김봉준 화백은 22년 간 숲으로 들어갔던 예술치유 경험에서 그 모든 상처들을 꽃송이로 이미 피워냈음을 볼 수 있었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화가 김봉준_ 상처꽃 그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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