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힘이 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글-이수빈 

 

지난 4월 8일 대학로 눈빛 극장에서 연극 상처꽃 – 울릉도 1974를 보았다. 공연을 보기 전에 극의 탄생 배경에 대해 들었다. 1974년에 국가에 의해 조작된 울릉도 간첩단 사건 이야기였다. 공연을 보는 동안, 보고 난 뒤에 나는 1970년대와 자신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상처꽃-울릉도 1974] 1974년 박정희 긴급조치(유신)

 

1974년이면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다. 1970년대, 한국사회에 대한 내 생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성인이 되어서 습득한 지식으로, 책이나 지면 영상 등을 통한 것이다. 이것은 암울하고 폭력적이며 상식이 말살된 야만의 시대였다는 것.

 

두 번째는 부모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와 가족 앨범, 그리고 내 유년의 기억에 의한 것이다. 부모님은 맨몸으로 서울로 상경해 고단하고 빈곤했지만, 기회가... 많았다고 했다. 산기슭에 허술하게 판자로 만든 집이었지만, 우리 집을 갖게 된 것도 이때였다. 그래서 이 시기는 젊은 부모님의 나이만큼이나 생동감이 넘치는 시대였다.

 

[상처꽃-울릉도 1974] 금지곡_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_양희은

 

그러나 이 두 번째 기억도 잘 들여다보면 중간 중간 걸리는 부분이 나온다. 반공 포스터 그리기, 반공 표어 짓기, 이승복 어린이의 절규, 똘이 장군 같은 반공 만화영화, 간첩 신고를 독려하는 광고, 민방위 훈련을 알리는 사이렌. 수상하면 무조건 신고하고, 자수하면 광명을 찾을 수 있다며 111을 눌러야 했던 시대. 당시 나는 하루에도 한 트럭씩 간첩들이 내려오는 줄 알았다. 내 주위를 둘러보면 어디에나 간첩이 있을 수 있다고 하니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상처꽃 장면4의 막간극인 간첩특강에서,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던 삼촌이 찾아오면 간첩인가를 먼저 의심하라고 했을 때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간첩신고 외에도 혼·분식 장려 운동, 쥐잡기 운동, 가족계획 운동, 새마을 운동 등 국가에 의해 온 국민이 동원되던 시대였다. 당시 내가 초등학생 때 제일 많이 한 것이 각종 표어 짓기,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상처꽃-울릉도 1974] '울릉도 사건' 고문생존자


 

국가가 국민의 일상생활은 물론 정신 상태까지 관리하던 시대가 1970년대였다.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분단 상황이라는 것이 가장 클 것이다. 표면상 사상의 차이로 분단된 이 땅에서 반공은 모든 국가폭력과 독재를 정당화시키는 황금 카드가 되었다. 1974년 울릉도 간첩단 사건은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다. 이 사건은 1970년대가 평범한 어부를, 아이들과 자고 있던 엄마를, 부인과 함께 있던 대학교수를 다짜고짜 끌고 가 모진 고문에 의해 간첩으로 둔갑시키던 시대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의 생명과 삶을 송두리째 빼앗고도 멀쩡한 시대라고 말한다.

 

 

[상처꽃-울릉도 1974] '울릉도 사건' 고문생존자와 가족

 

공연 관람 내내, 나는 이 사실에 깊게 공감하면서 가슴 한쪽을 쓸어내렸다. 나와 가족에 대한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인생이란 것도 실은 타인과 함께 라는 사실을 자꾸 잊었다. ‘내 인생’이라고 할 때, ‘내’가 너무 강하게 인생 앞에 버티고 있어서 ‘나’만을 생각하게 되었다.

 

타인의 비극적 삶이나 상황을 접하게 되면 마음이 아프다가도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그렇게 안심하며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국가나 사회에 의해 부당하게 희생당한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피해자가 나와 가족이 아니란 사실에 감사했다.

 

 

[상처꽃-울릉도 1974] 마틴 니묄러 ‘그들이 왔다’


상처꽃에서는 장면2와 장면9에 ‘그들이 왔다.’라는 군무가 등장한다. 배우들이 나치시대 독일의 목회자인 마틴 니묄러의 ‘다음은 우리다’에서 따온 대사를 읊을 때, 나도 모르게 주변을 흘끔거렸다. 누군가 내게 너 이야기 아니냐며 손가락질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처꽃-울릉도 1974] 관객들의 감상

 

 

 

그동안 나는 타인의 상처를 보고 동정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개인의 아픔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뿐이었다. 그 단계에서 나의 안일함과 이기주의를 살피지는 않았다. 모든 것은 그들과 사회의 문제일 뿐, 정작 그 사회에 사는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여겼다.

 

<상처꽃 – 울릉도 1974>를 보며 타인의 아픔을 사회문제로 인식하는 단계를 지나 자신의 문제로 환원시킬 수 있는 계기를 삼기로 한다. 이 극의 양정순 작가의 말처럼 세상 착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서로에게 힘이 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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