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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양광모의영화속건강

에일리언과 기생충

영화 에일리언은 전 국민이 한번은 봤던 영화일 겁니다. 보통 1편만한 속편은 없다고 하지만 에일리언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국내에서 2편이 먼저 상영되고 그 인기로 1편이 뒤늦게 상영되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게다가 실감나는 특수효과와 한층 더 영리해진 에일리언을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최근까지 발표된 속편들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에일리언은 여전사 스타일의 여주인공으로 등장한 시고니 위버(리플리 역)를 스타로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흥행한 3D 영화 아바타에서는 외계인을 연구하는 그레이스 박사로 나오는데, 그녀가 영화에서 외계 생명체를 만나면 그 영화는 대박나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드네요.

하지만 외계생명체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180도 다릅니다. 1979년 리플리로 외계 생명체를 처음 만났을 때엔 인류를 위협하는 외계생명체 에일리언을 박멸하기 위해 애썼지만, 2009년 그레이스 박사로 판도라 별을 방문했을 땐 그 별의 토착 외계인 나비(Na'vi)와 인류가 공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재자가 되었으니까요.

 

 

<같은 외계생명체인데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180도 다르다>

 

무엇이 그녀를 변하게 했을까요? 완전히 다른 영화에 배우로서 다른 역할을 맡은 것일 뿐리아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여러분이라도 외계생명체가 누구(?)냐에 따라 태도가 자연스럽게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사람을 해치는 에일리언과 인간적 대화를 나누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이 에일리언도 할 말은 있을 겁니다. 자신들이 살아가고 번식하기 위해서 인간이 필요한 것이었지, 뭐 나쁜 감정이 있어 해코지 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이죠. 에일리언을 보신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성체 에일리언은 인간을 잡아다가 자신들의 알에서 나온 유체들의 영양분을 공급하는 숙주로 이용합니다.


이런 에일리언의 생활사는 기생충과 아주 흡사합니다. 그러나 에일리언이 기생충보다 더 똑똑하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강한 턱과 날카로운 발톱, 무엇이든 녹이는 산성 타액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자신들의 종족을 유지하는데 실패하고 멸종했으니 말이죠. 그에 반해 우리 곁에 있는 기생충들은 에일리언 보다 훨씬 더 똑똑한 전략으로 잘 번창해 왔습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기생충들은 숙주인 인간을 살려두는 것이 자신들에게도 이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가급적 증상을 나타내지 않으면서 사람의 몸속에서 자손들을 번식시킵니다. 만약 에일리언처럼 한 마리만 들어올 수 있거나, 숙주를 쉽게 해쳐버렸다면 기생충들도 일찌감치 박멸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증상이 없는 기생충이라도 그 수가 많아지면 숙주에게 해를 가하게 됩니다. 인체에 무해한 밥이라고 하더라도 엄청나게 많이 먹으면 배가 터지는 그런 원리와 비슷한 것이죠. 기생충 입장에서 본다면 한 번의 실수가 엄청난 재앙을 불러온 일이 있었습니다.

 

1964년 우리나라에 의료선교를 하러 왔던 구바울이란 의사는 7살 여아의 뱃속에서 1064마리의 회충을 수술로 빼냅니다. 안타깝게도 그 아이는 생명을 잃고 말았죠. 이 사건이 보도된 후 우리나라 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기생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이후 대대적인 기생충 박멸 운동이 벌어졌고, 1966년에는 기생충 질환 예방법이 법률로 제정되어 국가 차원에서 기생충을 박멸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30~40대 성인들은 어린 시절 한 해 두 번식 채변 봉투에 응가를 담아 갔던 기억이 나실 겁니다. 만약 충이 나오면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이 주시는 구충제를 먹어야했죠. 그래도 별로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같은 교실에 절반은 나와서 구충제를 함께 먹었으니까 말이죠.

 

기생충 박멸 사업은 너무나 효과적이었습니다. 1969년 학생들 감염률 55.4%를 보였던 회충은 1987년 이후 감염률이 0.9%로 급감했고, 편충은 1969년 74.2%에서 최근에는 0.02%로 급감했습니다. 이제 기생충 씨가 말랐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기생충이라는 단어는 우리 머릿속에서 지워져갔습니다.

 

<이젠 어쩌다가 내시경에서 회충이 발견되면 학회에 보고할 지경>

 

하지만 올해 관심을 가져야할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2000년부터 2006년 사이 건강검진을 받은 환자들 중 기생충 감염 양성율을 조사해봤더니 2001년 2.63%에서 2006년 4.56로 매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인간과 기생충간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일까요? 주목해야 할 것은 전쟁에 참전한 주역들이 바뀌었단는 것입니다. 과거 주류를 이뤘던 창내 선충, 앞서 말씀드린 회충과 편충은 적었고 담수어 생식으로 생긴 간흡층은 증가했습니다.

 

'에이, 뭐 기생충이야 약국에서 약 사먹으면 되는 것 아니겠어?"

 

'기생충 좀 있다고 뭐 별일이야 생기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의 대표적 기생충인 회충과 편충은 아주 순한 기생충이였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셔도 됩니다면, 간흡충은 상당히 독한 기생충에 해당됩니다. 간흡층을 치료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담도염이나 담도 아을 유발할 수 있기에 치료가 꼭 필요합니다. 게다가 간흡충은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 구충제로는 제거되지 않는다는 것도 꼭 기억하셔야합니다. 간흡충 치료제는 프라지퀀텔이라는 전문의약품으로만 치료가 되는데 이 약물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서 간흡충 감염이 확인된 사람에게만 의사가 처방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러니 민물 회를 좋아하시거나 드셨던 분들은 먼저 검사를 받아야겠죠.

 

이 간흡충보다 더 독한 기생충들도 최근 속속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뱀, 개구리 생식으로 인한 스파루가눔이라는 녀석입니다. 스파루가눔의 무서움은 증상이 수십 년 후에 나타난다는 것이죠. 위장 관을 빠져나와 유방, 서혜부, 뇌로 이동해 정상 조직을 파괴하고 통증을 유발합니다. 제가 만난 환자 중에는 20년 전에 군대에서 뱀을 잡아 먹고 별 탈 없이 지내다가 두통가 사타구니에 뭐가 만져져 병원에 내원했는데 수술해보니 스파루가눔이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이 기생충은 분변 검사로도 나오지 않고, 약을 먹어 제거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정말 두렵습니다.

 

많은 분들은 약물 한 알로 모든 종류의 기생충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것이 있다면 마법의 약물이라고 불릴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은 기생충은 1년에 한번 약 먹으면 고민 끝이란 생각이 남아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과거에 국민 대다수가 감염된 기생충이 장내 기생충이었기 때문에 기생충 박멸 운동차원에서 1년에 한번 씩 장내 기생충을 제거하는 알벤다졸, 플루벤다졸 계열의 약물을 복용할 것을 권했습니다. 지금도 약국에서 판매하는 구충제들의 대부분이 이들 성분입니다. 옛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어서 지금도 기생충은 1년에 한번 구충제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고 또 기생충은 구충제만 먹으면 금방 해결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90년대 이후 장내 기생충의 감염률이 1% 미만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매년 구충제를 복용하는 것을 권하지 않고 있습니다. 득과 실을 따져본다면 장내 기생충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은 너무 적고 오히려 약을 먹고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한때 국민적 구호로 1년에 한번 온 가족이 구충제를 먹자라고 했던 것은 이제 먼 옛 이야기일 뿐입니다.


 

<간흡충 예방을 위해서는 자연산 민물고기 생식을 하지 않아야합니다.>

 

다행이 식품관리가 체계화되고 위생개념이 확대되면서 과거와 같은 기생충 창궐은 다시 일어나기 힘들 겁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간흡충은 민물 생선을 날 것으로 먹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스파루가눔과 같은 기생충은 야생 동물을 날 것으로 먹지 않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겠죠.

 

오히려 최근에는 기생충과의 공존을 다시 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연구도 나오고 있습니다. 기생충을 치료에 쓰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는데 2005년 미국 소화기 내과학회지에 발표된 자료를 보면 궤양성 대장염과 같은 자가면역질환 환자에 있어 돼지 편충감염이 증상 호전에 도음이 되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개발도상국에는 크론씨 병이나 궤양성 대장염과 같은 자가면역질환 발생이 적다는 것도 기생충이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인류의 전쟁사에서 적국이었던 나라가 우군이 되듯 기생충과의 전쟁사에서도 일부 기생충은 적에서 아군으로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 재미있네요.

 

집단생활의 증가로 머릿니, 요충과 같은 접촉으로 전염되는 기생충도 다시 증가하고, 몸에 좋다는 야생 동물 보양식을 찾아 해외로도 떠나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언제든 새로운 기생충 감염이 우릴 공격할지 모를 일입니다. 영화 에일리언과 인간의 싸움에서는 우리 인간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이 기생충과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양광모 (비뇨기과전문의, 청년의사 편집장)
 

양광모 편집장은 의사에서 저널리스트로 변신한 분입니다.

최근 팟캐스트 인기 프로그램인 '나는 의사다'의 기확자이기도 하고,

건강-의학정보 관련 '코리아헬스로그'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이기도 합니다.

의사에서 블로거로, 그리고 저널리스트로의 길을 걷게 된 양광모 편집장은 인권의학연구소의 운영위원입니다.

 

이 글은 '코리아헬스로그'에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