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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센터 소식

[인권상황 실태조사] 고문피해자 인권상황 후속 실태조사 보고서

인권의학연구소는 국가인권위원회 용역사업으로 2011년 고문피해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수행한 이후 9년만인 지난 2019년에 후속 실태조사를 수행하였다. 그동안 고문피해자들이 형사재심과 민사배상소송 등 사법절차를 통해 얻어낸 무죄선고와 민사배상이 피해자의 삶의회복에 어떤 영향을 결과하였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고문피해자 인권상황에 대한 후속실태조사는 심층인터뷰와 설문조사의 2가지 형태로 각각 진행되었다.

 

심층인터뷰는 국가인권위 인권단체 공동협력사업으로 "고문피해자 인권증진에 대한 모니터링 사업"을 통해 수행되었으며 재심을 거쳐 무죄선고를 받은 고문피해자들의 심층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결과물을 영상과 인터뷰 기록물로 보고하였다. 심층인터뷰에 참여한 고문피해자는 총 22명이었다. 

고문 등 국가폭력으로 인한 신체적 후유증은 사라지지 않고 노년에 들어서면서 그 고통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고문의 체험은 정신적 후유증으로 남아 현재까지도 악몽으로 지속되면서 불면증을 유발하고, 관계의 단절과 소외를 가져오고 있었다. 고문피해자들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빨갱이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이로 인해 가족부터 해체되면서 다른 사회관계들과도 단절되고 고립되면서 일상이 파괴되었다. 한편, 피해자들의 고통은 자녀들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가족 관계 속에서 심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고, 자기비난을 거듭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진) 고문피해 신체적 후유증

 

고문피해자들은 재심 무죄판결을 통해 명예회복을 하고,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재심과정에서 과거의 잊어버리고 싶은 고통과 트라우마를 재경험하였다. 트라우마의 재경험은 때로 원래의 트라우마보다도 더 큰 고통을 피해자에게 가져다 줄 수도 있어서 재심과정을 진행하는 법조인들은 과거의 고통과 트라우마가 재발하지 않도록 세심히 관찰하고 배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재심 무죄판결을 받고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았어도 사회로부터 고통을 이해받지 못하고 더욱이 피해 당시와 같이 여전히 사회정의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은 다시 절망에 빠지게 된다. 특히 재심과 국가배상이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이고 국가의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근년에 이르러 국가가 이를 시혜적 조치로 오인하여 재심 기간을 지연시키고 있고, 손해배상액을 축소시키고 소멸시효를 단축시키면서 고문피해자들을 다시금 좌절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 피해자들은 2011년 대법원의 지연이자 산정시점 변경으로 손해배상액 반환과 국정원의 부당이익환수 소송으로 인해 과거보다 더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사진) 인권의학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손창호 정신과 전문의

 또한 인권재단 들꽃의 후원으로  "고문피해자 인권상황 후속실태조사"를 통해 재심 무죄선고 이후 고문피해자 삶의 회복 등 인권개선에 대한 설문조사를 수행하고 그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피해자는 총 72명이었다.

 

고문피해자들의 정신심리적 고통을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5.6%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었다, 재심 무죄와 국가배상소송으로 배보상을 받았으나 고문피해자의 정신심리적인 고통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폭력피해자들은 출소 이후 고문후유증 외에도 이혼, 이사, 친척과 거리감 등 가족 관계의 변화(58.6%)를 겪었고, 평균 8.5년의 오랜 기간 보안관찰(75.0%, 국외거주자를 제외하면 100%)로 인해 사회적 낙인, 고립으로 제한된 삶을 살아왔다. 특히 취업제한 (74.7%)으로 인해 심한 경제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간첩이라는 낙인과 출소 이후 보안관찰로 인한 고통의 심각성에 비해 피해자에 대한 사회 인식의 개선과 피해자의 지원이 미흡함을 시사한다.

 

현재 주관적 건강 상태가 건강하다고 응답한 고문피해자는 20%, 2018년 기준 60세 이상의 일반인구집단(27.2%)과 비교했을 때 낮은 수준이었다. 이들은 공황장애, 불안장애, 우울장애 등 정신질환뿐만 아니라, 골절, 요통 등 근골격계질환, 청각장애, 만성질환 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고문 관련 증상으로 의사의 진단을 받은 응답자는 35.7%에 지나지 않아 국가폭력피해자에 대한 신체적·정신적 의료지원이 시급하고 절실함을 보여준다.

 

고문피해자 중 형사재심소송을 신청한 98.4%(재심 진행 중 1명을 제외하면 100%)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재심 과정에서 무죄 확정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렸고(71.2%), 진술서 작성이나 자료 준비 등 재심 준비과정(60.6%)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응답자의 86.9%가 재심 과정에서 과거 고문 사건의 기억이 떠오르는 재트라우마 경험으로 고통을 받았다. 이는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으나, 재심 과정의 낮은 만족도(42.9%)에서도 잘 나타난다.

 

고문피해자들의 국가배상(민사)소송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낮았다. 국가배상소송에서 26.5%가 기각당한 경험이 있었다. 기각 사유는 소멸시효가 3년에서 6개월로 축소, 민주화운동보상법상 보상금 수령에 관한 화해조항, 긴급조치사건의 민사배상 불인정 결정이었다. 이런 조치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기의 사법 농단으로 밝혀지고, 일부 피해자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았다.

 

국가배상금을 받았어도, 그 결과에 대해 응답자의 75.4%가 예상보다 배상액이 적어서 실망스럽거나 아예 받지 않은 것이 나을 정도라고 했다. 그 이유는 판사의 재량에 따른 배상 금액의 차이, 정치적 상황에 배상 금액의 차이, 투옥 기간과 배상 금액이 비례 않다는 것이었다. 특히 응답자의 79.1%는 재심 무죄와 국가 배·보상을 받은 후에도 삶이 사건 발생 이전으로 회복되지 않았다고 응답하였다.

 

국가나 사회로부터 지원을 받은 경험이 있는 고문피해자는 43.7%로 나타났다. 그중 87.1%가 민간 고문피해자 지원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았고, 국가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피해자는 6.5%(1)에 불과했다. 피해자들은 국가가 신체 후유증 치료와 재활을 위한 의료 무상지원’(2.81, 매우 필요함 3), ‘명예회복과 사회적 인식증진’(2.81), ‘정신·심리적 후유증 치료를 위한 치유센터’(2.58), ‘경제적 지원과 적절한 보상’(2.56)을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사회적 치유를 위한 국가의 책임으로, ‘가해자에 대한 훈포상 취소’(2.91), ‘고문의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제도적 개선’(2.90)이 가장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국가, 가해 기관이 책임 있는 사과’(2.87), ‘고문 가해자에 대한 구상권 청구’(2.57), ‘국가의 고문 피해자 치유·지원’(2.81), ‘고문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기념사업’(2.71)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 일부 고문피해자들의 경우에서 고문피해의 극복 가능성을 볼 수 있었으나 이는 국가의 적극적 역할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가족과 동료 피해자, 인권단체와 시민사회의 연대활동에 기인한 것이었다. 2000년경부터 본격화된 고문피해자들에 대한 재심과 국가배상이 20년 가까이 진행되었음에도 피해자들의 후유증이 경감되지 않고, 국가의 신뢰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인권침해의 어두운 과거사가 여전히 온전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국가범죄의 진실을 은폐하고자 하는 과거 회귀적 시도가 계속되고 있음에 기인한다.

 

고문범죄와 피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은 고문피해의 당사자들이 이미 고령에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아울러 국가차원의 지속적이고 성의 있는 조치와 함께 사회 일반의 인권의식을 함양하고 사회정의를 확립하고자 하는 사회공동체의 노력도 매우 긴요하다. 고문피해는 고문피해 당사자의 신체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침습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고문피해를 극복하는 것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과제임을 알 수 있다. 국가와 사회공동체는 고문가해자이며 동시에 고문피해 극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