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민주화운동

[동학농민운동을 기억하는 이유] [동학농민운동을 기억하는 이유] 1894년 동학농민혁명운동은 부패정권에 저항하는 혁명이었으며, 일제침략을 저지하는 전쟁이었습니다. 이에 우리는 5월 11일을 기억합니다. 지금처럼 19세기말 동북아 국제정세는 격변기를 맞습니다. 청은 영국에 연달아 패배했고 일본은 미국에 강제로 개항했습니다. 그런데 조정은 매관매직을 일삼고 탐관오리는 수탈과 학정을 일삼았습니다. 1894년 2월 15일, 전봉준과 동학농민군 1,000여 명은 고부에서 봉기합니다. 두 달 만에 동학농민군은 10,000여 명으로 증가합니다. 그리고 동학농민군은 황토현 전투에서 대승합니다. 결국 동학농민군은 백성을 위한 집강소를 설치, 폐정개혁안을 실현합니다. 그러나 조선의 권력자들은 민중의 소리를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조정은 청나라에 군대를 요.. 더보기
[특집] 동학농민혁명, 보다 인간된 권리와 정치적 주체로서의 삶을 위해 [동학농민혁명, 보다 인간된 권리와 정치적 주체로서의 삶을 위해] 우리는 과거로부터 무엇을 계승해야 할까요? 숱한 역사적 사건들의 기록과 기억 속에서 무엇을 교훈삼고 체화하여 살아가야 할까요? 후대에게 무엇을 가치와 미덕으로 전해주어야 할까요? 과연 무엇을 승계하여 이로써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이 아닌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기 위해, 오늘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을 맞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한국 근현대사의 전환점 중 하나였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당시 조선의 부패정권에 저항하는 혁명이자, 일제의 침략야욕을 저지하는 전쟁이었습니다. 민중의 지역 연대를 통해 나타난 전국적 규모의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은.. 더보기
[카드뉴스] ‘상처받은 치유자’, 그도 고문피해자였습니다. ‘상처받은 치유자’, 그도 고문피해자였습니다. 1970년대 그는 노동운동에 헌신했습니다. 1980년대 그는 민주화운동에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1978년 당시 참혹했던 노동 현실을 알리기 위해 [어느 돌멩이의 외침]을 펴냈습니다. 그 책은 당시 민주화운동을 하는 이들과 대학생 사이에서 필독서가 되었으나 정작 저자는 독재정권에 의해 1981년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37일 동안 고문을 당했습니다. 고문이 남긴 후유증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습니다. 오랜 시간 그는 노숙을 전전했고, 수차례 자살시도를 했고, 대인기피증을 겪었습니다. 그는 인권의학연구소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지난 상처를 조금씩 이겨냈습니다. 이제 그는 매주 일요일 오전, 서대문형무소에서 ‘그들’의 역사를 알리고 있습니다. ‘그들’.. 더보기
[장학사업] 장학금 수여식, “아버지에게 감사합니다.” [장학사업] 장학금 수여식, “아버지에게 감사합니다.” 3월 4일, 형식은 독특하고 의미는 특별한 장학금 수여식이 있었다. 이는 제2회 인권의학연구소 장학금 수여식이다. 지난 토요일 오후 2시 인권의학연구소 1층 소강당에서 진행된 이번 장학금 수여식은 참석자 모두에게 발언권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형식상의 독특함이 발견된다. 동시에 이 장학금은 성적과 같은 조건이 아닌,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조·부모의 저항과 희생의 숭고한 의미를 되새긴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2기 장학생으로 선정된 6명의 학생들의 조·부모는 노동운동 관련 피해자가 3명, 민주화운동 피해자가 1명, 조작간첩사건 피해자가 2명이었다. 이날 행사에는 장학생은 물론 가족이 모두 참여했다. 2022년 5명, 2023년 6명의 장학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