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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센터 소식

[장학사업] 장학금 수여식, “아버지에게 감사합니다.”

[장학사업] 장학금 수여식, “아버지에게 감사합니다.”

 

3 4, 형식은 독특하고 의미는 특별한 장학금 수여식이 있었다. 이는 제2회 인권의학연구소 장학금 수여식이다. 지난 토요일 오후 2시 인권의학연구소 1층 소강당에서 진행된 이번 장학금 수여식은 참석자 모두에게 발언권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형식상의 독특함이 발견된다. 동시에 이 장학금은 성적과 같은 조건이 아닌,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조·부모의 저항과 희생의 숭고한 의미를 되새긴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2기 장학생으로 선정된 6명의 학생들의 조·부모는 노동운동 관련 피해자가 3, 민주화운동 피해자가 1, 조작간첩사건 피해자가 2명이었다. 이날 행사에는 장학생은 물론 가족이 모두 참여했다.

< 사진 -1> 3월 4일 토요일, 인권의학연구소 1층 소강당에서 장학금 수여식을 마치고 장학생과 가족이 다같이 사진을 찍고 있다.

2022 5, 2023 6명의 장학생을 선발한 인권의학연구소 장학사업은 지난 2021 7월 청계피복 노동자였던 신순애·박재익 선생의 기부로 시작하였다. 두 선생은 197-80년대 당시 청계피복 노동자로서 노동 조건 개선과 생존권 보장을 위해 피 흘리며 싸웠다. 노동조합에 가입해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료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신한 결과, 이들에게 되돌아온 것은 구속, (합동수사본부에서의) 수사, 투옥, 해직 등 가혹한 국가폭력이었다. 국가폭력의 굴레는 그 이후에도 블랙리스트, 취업의 어려움 등으로 지속되었다.

 

그러나 신순애·박재익 선생은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국가폭력에 굴하지 않았고, 지난 40여 년을 단단하게 당당하게 살아냈다. 마침내 지난 2021 7, 국가를 상대로 불법 노조탄압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하였고, 두 선생은 민사보상금 전액을 인권의학연구소에 장학사업 기부금으로 쾌척하였다.

< 사진 -2> 제2회 인권의학연구소 장학금 공지 포스터.

이런 배경 하에 마련된 인권의학연구소 장학사업은 올해로 2회 차를 맞았다. 지난 1월 신청자를 모집하고, 2월 운영위원회를 거쳐 6명의 장학생을 선발하였다. 아래 포스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장학생은 연간 5~10명을 모집하고 있으며 1인당 100~200만 원을 받는다. 중학생은 100만 원, 고등학생은 150만 원, 대학생은 200만 원이다. 장학생으로 선발되는 대상은 국가폭력 피해 당사자를 포함, 국가폭력 피해 가족(2세대, 3세대)이다. 이 장학금은 등록금을 면제 또는 감액 해주는 다른 장학금들과 달리 학생에게 직접 지급되기 때문에 학생이 평소 학업 등 자신의 꿈을 펼치는데 보다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 사진 -3> 지난 2월 8일, 운영위원들이 접수된 장학금 신청자들의 신청서를 검토하고 있다.

장학금 수여식 당일, 전북 군산, 강원도 정선, 경기도 양평 등 전국에서 장학생과 그 가족들이 참여했다. 함세웅 이사장의 개회사로 시작된 장학금 수여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 반주에 기대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신 수많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기리는 추모의례로 이어졌다. 추모 의례가 끝나고 기부자인 신순애 선생이 학생들과 가족들에게 이 장학금의 의미를 간단하게 전해주었다. 여느 다른 장학금 수여식이라면 이즈음에 장학생에게 장학증서를 수여했을 것이다.

 

이와 달리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은 장학생과 장학생의 조·부모를 소개하며,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한 국가폭력 피해자의 희생을 설명하였다. 1970년대 인혁당 사건, 1980년대 사북항쟁, 1981년 학림사건, 19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 1980년대 청계피복 노조 활동까지.

 

< 사진 -4>  이화영 소장이 장학금 수여식에서 조 ·부모의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이야기를 듣자 장학생들을 비롯한 참석자들과 장내 분위기가 절로 숙연해졌다. 6명의 장학생들은 조·부모의 사건의 의미를 듣고 돌이키며 함세웅 이사장에게 장학증서를 받았다.

 

이로써 끝날 것 같았던 장학금 수여식은 함세웅 이사장이 장학생들과 그 가족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이어졌다. 함세웅 이사장과 인권의학연구소는 장학생들과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여기서만큼은 그 누구도 마이크로부터 소외되지 않길 바랐다. 이에 장학생들은 물론 참여자 모두가 돌아가며 소회를 밝히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먼저, 1980년 사북 노동자 총파업을 이끌다 신군부에게 모진 고문을 당했던 이원갑 선생은 사건 이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식들에게 제대로 교육을 시켜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항상 있었는데, 이번 장학금으로 조금이나마 자식과 손자에게 도움을 준 것 같아 뿌듯하다고 밝혔다.

 

다른 국가폭력 피해자는 대학생이 된 딸과 자신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생각도 하지 못했으나 이번 장학금 수여식이 대화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고 말했다. 수여식에 오는 길이 마치 딸과 데이트를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전해주었을 때, 그의 얼굴에 만연한 미소로 참석자 모두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의 이야기를 들었던 장학생들은 한 목소리로 이 장학금의 의미를 되새기며 할아버지의 자손답게, 아버지·어머니의 자녀답게 우리 사회를 위할 것을 다짐했다.

 

< 사진 -5> 장학금 수여식에서 참석한 장학생과 가족이 모두 발언권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2기 인권의학연구소 장학금 수여식을 마치며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인권의학연구소의 장학사업은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다양한 답을 할 수 있지만, 이번 수여식을 통해 확인한 것은 가족의 화해. 국가에 의해 깨질 수밖에 없었던 가족, 국가에 의해 서로 이해할 수 없게 된 가족이 조금씩 서로의 삶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과정. 그래서 서로가 직접적으로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지만, 미안함과 고마움을 가슴으로 느끼는 장이 아닐까? 이날 장학금 수여식에 참여했던 한 분은 마이크를 들고 흐느끼며 이렇게 고백했다.

 

“어린 시절 저는 아버지를 참 많이 원망했습니다.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모가 되고 사회를 알아가며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딸이 할아버지의 희생으로 마련된 이 장학금을 받으면서

아버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분은 자신의 딸이 자신의 아버지가 겪은 희생으로 받은 장학금의 의미를 이렇게 표현했다. 장학금을 매개로 할아버지, , 손녀 3대에 걸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