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을 기억하는 이유]
1894년 동학농민혁명운동은
부패정권에 저항하는 혁명이었으며,
일제침략을 저지하는 전쟁이었습니다.
이에 우리는 5월 11일을 기억합니다.
지금처럼 19세기말 동북아 국제정세는 격변기를 맞습니다.
청은 영국에 연달아 패배했고
일본은 미국에 강제로 개항했습니다.
그런데
조정은 매관매직을 일삼고
탐관오리는 수탈과 학정을 일삼았습니다.
1894년 2월 15일,
전봉준과 동학농민군 1,000여 명은 고부에서 봉기합니다.
두 달 만에 동학농민군은 10,000여 명으로 증가합니다.
그리고 동학농민군은 황토현 전투에서 대승합니다.
결국 동학농민군은 백성을 위한
집강소를 설치, 폐정개혁안을 실현합니다.
그러나 조선의 권력자들은
민중의 소리를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조정은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했고,
일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텐진조약을 구실로 인천에 상륙합니다.
결국 백성을 위한 동학농민군의 희생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동학농민군이 조선의 민중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본과 싸울 때 조선의 권력자들은 없었습니다.
결국 조선은
10여 년 뒤, 을사조약으로 일제에 외교권을 박탈당했습니다.
5년 뒤, 한일병합조약으로 일제에 병탄되었습니다.
36년의 일제강점 간, 전 국토와 국민이 일제에 짓밟혔습니다.
이후 박정희, 전두환은 독재정권의 정당화를 위해
동학농민혁명을 왜곡하고 이용했습니다.
이때도 민중들은 마치 조선 말기
부패정권에 저항했던 동학농민혁명처럼
목숨을 걸고 저항했고, 희생했습니다.
부정부패에 저항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일제의 침략야욕에 대한 의병전쟁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으로
독재정권기 민주화운동으로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5월 11일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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