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센터2017.07.10 11:02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숨” 개소 4주년과 UN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김근태 기념치유센터 “숨” 개소 4주년과 UN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행사가 지난 6월 23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국회헌정기념관 강당에서 열렸다.

 

 


 이 날 행사에는 고문 생존자분들과 여러 시민단체와 국회의원들 그리고 성가소비녀회 수녀님 등 약 300 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1부 함께 하는 마당은 함세웅 이사장의 인사말씀으로 시작되었다. 함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국가폭력의 문제는 희생자 치유지원 뿐 아니라 가해자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새로운 정부에서 국가폭력의 가해자들에 대한 조사와 적절한 조치에 나설 것을 촉구하였다.


 
 이어서 인사말에서 김근태 기념치유센터 의 공동대표인 인재근 국회의원 역시 고문피해자 문제의 국가적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특히 올해에는 현재 발의상태인 고문피해자 치유지원법안의 입법화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축사를 하였다. 우원식 의원도 국회차원에서 고문피해자 문제 해결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노력을 약속하였다.


 손창호 소장은 지난 1년간 김근태 기념치유센터의 활동을 소개하였다. 고문피해자들에 대한 개인 및 집단상담 그리고 재심 법정동행 지원은 예년과 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트라우마 치유” “사회적 트라우마 치유”“내 삶이 인권을 만나다” 등의 주제 아래 지난 1년간 총 10회의 대중 공개강좌를 하였다. 그리고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내에 재일동포 양심수 역 사전시실을 개관한 바 있다. 특히 2016년에는 김근태 기념치유센터가 국제 고문피해자 재활협회(IRCT)의 회원이 됨으로써 국제적 연대활동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올 해의 감사패는 유해우(유동우) 선생에게 주어졌다. 유해우 선생은 지난 40년 이상의 세월을 노동운동에 헌신해 왔다. 본인 역시 1981년 소위 “학림사건”에 연루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오랜 시간 고통을 겪은 바 있는 유해우 선생은 2012년 이후 인권의학연구소와 함께 고문피해자 치유지원에도 힘써오고 있다.



 1부 마지막으로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의 합창이 있었다. 이번에 부른 노래 “꽃”은 청중들에게 감동과 위안을 선사하였다.


 2부 치유마당은 임진택 명창의 지도하에 준비한 고문생존자 판소리 모임인 길음 판소리의 공연으로 시작하였다. “사철가” 와 “농부가”로 흥이 돋워진 청중의 신명은 앵콜곡 “고고천변”에서 최고에 이르렀다.


 두 번째 무대는 이소선합창단 대표를 맡고 있는 테너 임정현 님이 맡아주었다. “님이 오시는 지” “남촌” “후대에게” “상록수” 그리고 “그날이 오면”을 열창하였다. 특히 “상록수”와 “그날이 오면” 은 청중들과 함께 부르며 참석자 모두가 하나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공식 행사가 모두 마친 후에 국회 헌정기념관 식당에서 참석자 분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진 것으로 이날 행사는 마무리 되었다.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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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센터2017.05.30 10:35

2017년 UN 국제고문피해자 지원의 날과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숨" 개소 4주년 기념행사


일시: 6월 23일(금) 늦은 3시
장소: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2층)

고문·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삶과 회복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공감과 위로 그리고 연대와 희망을 나누는 자리에 함께 해 주시길 바랍니다.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숨' 공동대표 
함세웅, 인재근, 김상근, 이창복, 이석태 드림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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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극장에 모인 수많은 눈빛들에 반짝반짝 물빛이 어립니다.

 

때로는 끝내 참지 못해 흐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그 얼얼해진 눈빛들에 자글자글 웃음기가 모이면서 폭소들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웃고 울고, 그렇게 두 시간여 동안 극장 안에는 공감과 감동이 차오릅니다.

 

 

 

<상처꽃- 울릉도 1974> 43일 공연이 시작된 후로 연일 좌석이 꽉 차고 있습니다.

그중엔 까메오 출연하시는 분들의 지인들도 계시고 김근태기념치유센터의 회원들도 계시고 소문을 듣고 인터넷으로 표를 구매한 분들도 계시지만 아무튼 빈 좌석이 없는 지경입니다.

 

극장문이 막 닫힐 지경이 되어 헐레벌떡 달려오신 분이 공연 끝나고 나올 땐 눈이 벌개져 서 울먹울먹하시며 안내 석에 서 있던 제 손을 잡고 고맙다너무 감동받았다고 한 일없이 졸지에 제가 인사까지 받는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상처꽃-울릉도 1974-첫공연(4월 3일) 특별출연_함세웅 신부, 이철 전 의원, 이사영 님(울릉도사건 당사자)] 

 

 

첫날 까메오로 출연하신 함세웅신부님은 사제복과는 어쩐지 비슷하면서도 다른 판사복을 입고 많은 생각이 담긴 표정으로 담담하게 법관배역을 잘 수행하셨고요, 울릉도사건 당사자이신 이사영선생님도 배석판사역활을 하셨는데 그 자리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뵙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더라고요.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전력을 지닌 이철 전의원은 또 어떠셨을지....

 

 

[상처꽃-울릉도 1974-4월 4일 특별출연_인재근 의원, 유은혜 의원, 최상명 김근태 민주주의 연구소 소장] 

 

 

 

둘째 날 주심판사역을 하신 인재근의원은 역할 잘 하셨는데 객석에 앉아 관람하시는 동안 얼마나 눈물을 흘리시는지... 배석판사 유은혜 의원, 최상명 선생님도 마찬가지였지만요.

인재근의원은 고문장면을 보는 게 힘드셨다고, 죄수복 입은 배우들이 힘겹게 고비를 넘던 장면, 아이들을 떼놓고 하루아침에 간첩이 되어 10년 이상을 복역한 여성배우의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팠다, 하시더군요.

 

[상처꽃-울릉도 1974-4월 5일 오후 3시 특별출연_장영달 전 의원, 조형국 님, 유형준 님] 

 

 

 

셋째 날, 박문숙선생의 영결식을 치른 후 장지로 가던 길에 시간에 쫓겨 차를 돌려 오신 장영달의원은 눈빛이 형형하여 카리스마 넘치는 법관 같으셨고요.

이부영 의원님, 홍세화선생님, 한회에 세 분씩 벌써 10여분 이상이 까메오 출연으로 무대를 빛내 주시고요.

 

 

[상처꽃-울릉도 1974-4월 5일 오후 7시 특별출연_이부영 전 의원, 소설가 윤정모 님, 서울시극단 예술감독 김혜련 님]

 

 

 

[상처꽃-울릉도 1974-4월 6일 특별출연_홍세화 님, 학습공동체 '가장자리' 협동조합 조합원 김경미 님, 장성환 님]

 

마치 울릉도 사건의 당사자였던 듯, 잘 표현되어 배경화면을 채우는 김봉준화백의 그림과, ‘아름다운 사람’ ‘타박네야’ ‘세노야등 음악들도 무대를 채웁니다.

 

그렇게 뛰어난 연출, 열정이 넘치는 배우들과, 사연 있는 까메오들, 깊게 공감하는 관객들이 어우러지면서 <상처꽃>4월의 대학로에서 영롱한 빛깔로 만개하고 있습니다.

이 연극 못 보시면 후회합니다.

좋은 님들 만나 마로니에 공원 산책도 하시고, 손 잡고 눈빛극장으로 오세요.

좋은 기억 한 장면, 지니게 되실 겁니다.

 

[상처꽃-울릉도 1974-미술감독 김봉준 님, 「난장」(1982)]

 

글: 장남수[ 노동저술가,  前 원풍모방 노동자, 『빼앗긴 일터』(창작과비평사, 1984) 저자, 

                인권의학연구소 운영위원]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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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센터2013.08.05 19:09

지난 1년 6개월 동안의 치유센터 건립기금 모금과 설립추진과정을 거처 마침내 지난 6월 25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 성가소비녀회(수녀원)내 성재덕관에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숨'(이하 치유센터)이 문을 열었습니다.

  

 

개소식 날 축하 손님들은 낮부터 미리 오셔서 치유센터 내부와 뜰, 잔디마당을 둘러보셨습니다. 따가운 6월의 햇살도 구름 속에 숨었고 산들바람이 간간이 수녀원 나무 그늘로 불어 행사 준비를 하는 일꾼들은 한결 일이 수월해졌습니다. 전철 길음역에서 내린 손님들은 길가에 나붙은 행사 포스터와 오렌지색 풍선길을 따라 쉬이 치유센터를 찾아오셨습니다. 

  

 

치유센터 3층 대강당에서는 사전행사로 오후 4시부터 장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가 상영되었습니다. "남영동 1985"는 김근태 민청령 의장이 1985년 악명놓은 경찰청(당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이근안 등 고문경관들로부터 가혹한 고문을 당한 사건을 그린 영화입니다. 여러 수녀님들을 포함한 200여 명의 관람객들은 고문의 참상과 이를 저항하는 고문피해자의 사투를 참담하게 또 뜨겁게 지켜보았습니다.

  

 

영화 상영이 마칠 즈음 도착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3층 대강당에서 '고문 근절'과 '피해자 치유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인사말을 드렸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인권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국가보안법의 폐해와 고문이라는 국가폭력을 책("야만시대의 기록-1,2,3)으로 출판했던 고문조사와 기록의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이어 박원순 시장은 고문피해자들을 비롯한 내빈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치유센터 내부를 함께 둘러보았고, 집단치유 진행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6시부터 성가소비녀회 수녀원에서 마련한 '소박한 밥상' 나눔이 피정의 집에서 있었습니다. 수녀님들이 준비한 150명분의 식기는 금방 동이 났습니다. 급히 식기를 더 준비하였고 조금 늦게 식당을 찾은 분들은 작은 접시에 식사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모두 맛나게 저녁식사를 마쳤습니다.

 

 

한편 그즈음 치유센터 건물 앞 중간 잔디마당에서는 강원도 원주에서 오신 김봉준 화백의 작품 전시와 "소망 글쓰기"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손님들은 치유센터에 바라는 희망의 말씀을 메모지에 남기고, 줄을 서서 김봉준 화백의 희망 손글귀를 받았습니다. 김봉준 화백은 신화와 민속의 원형 세계에서 인간본유의 치유 가능성을 회화와 조형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한일간 문화교류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계십니다. 

 

 

 

식사를 마친 후 치유센터와 잔디마당은 삼삼오오 김근태 의장과 인권의학연구소의 활동 사진을 둘러보고 치유공간을 산책하는 분들로 살짝 붐비는 느낌마저 주었습니다.

 

 

행사장 곳곳에서 함세웅 설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와 차 클레멘스 총장수녀님, 70여 명의 설립추진위원들,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이 함께 손님을 맞았습니다.

 

 

참석하신 손님들 중에는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과정에서 국가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각자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거나 정부나 의회,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 분들도 많지만, 지난 시기 국가폭력의 상흔과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한 동변상련의 감정은 모두를 예전의 하나 된 모습으로 되돌려 놓고 있습니다.

 

 

개소식 본행사는 "마당음악회"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서울 성북구에서 청소년 대상 봉사활동을 해오고 계시는 센트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5중주의 따듯한 음악이 파릇한 잔디마당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사회자 권해효 님은 축하객들에게 반가운 인사말을 드렸습니다. 함세웅 신부님, 성가소비녀회 총장 차 클레멘스 수녀님, 인재근 국회의원께서 차례로 뜻깊은 개소식을 맞은 소회를 담담하게 말씀하였습니다. 2012년 1월 김근태 의장 영결미사에서 고문피해자 치유센터를 처음 약속했던 함세웅 신부님은 남다른 감회를 들려주셨습니다. 인재근 의원님은 하늘에 계신 김근태 의장을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특히, 클레멘스 총장수녀님은 이 모든 것이 있기까지 수고하신 모든 이들에게 평화의 축복을 기원하셨습니다.

 

 

특히 재일동포 모국유학생 조작간첩 사건의 대표적 피해자인 이철 선생님은 오사카의 생업까지 잠시 미루고 멀리 일본에서 오셔서 치유센터 개소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일본에 거주하는 많은 고문피해자들을 대신하여 치유센터의 발전과 조국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말씀을 드려습니다.

 

마당음악회의 클라이맥스는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의 독창, 합창이었습니다. 참석하신 분들의 후문에 따르자면, "아베 마리아"를 들으며 영혼이 맑아지는 큰 감동을 받았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학생수녀님들의 합창도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치유센터 소식을 듣고 꼭 참석하고 싶다는 연락을 먼저 해 오신 남성중창단 "별 헤는 밤"의 씩씩한 남성중창 소리에 인근 주민들도 하나둘 씩 행사장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행사 중간에 짙어진 구름이 비가 되어 잠시 내렸습니다. 먼저 가신 고문피해자들의 얼어붙은 한이 조금씩 녹아 흐르는 것이었을까요. 참석자들은 내리는 비를 다같이 맞고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름없는 고문피해자들이 혼자 비를 맞도록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녁이 이슥하면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개소식은 막을 내렸습니다.

6월25일, 이 날은 고문과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치유 지원하기 위한 작은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만남을 통해 한 분 한 분의 치유가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마음에 전해진 깊은 울림과 감동으로 모두들 위로받는 밤이기도 했습니다.

 

 

(개소식 날 마당음악회를 "라이브 서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을 클릭하세요.)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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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2013.05.22 16:13

인재근 의원 '진실의 힘' 인권상 수상 연설문

 

2012년 6월 26일, 고문 생존자들의 모임인 '진실의 힘'은 '진실의 힘 인권상' 2회 수상자로 민주주의자 김근태를 선정했다. 이 글은 인재근 의원이 남편 김근태를 대신해 상을 받으며 발표한 수상 연설문이다. 인재근 의원은 수상 연설문에서 치유센터 설립 의사를 밝혔다.

 

 

 

 여러분, 그리고 김근태를 기억해 이 자리에 오신 모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재근입니다.

 

 흥사단에 서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30여 년 전 바로 흥사단에서 오늘의 인권상 수상자인 민주주의자 김근태와 결혼을 했습니다. 수배를 받던 시절이라 아들 병준이를 먼저 낳고 4개월쯤 되었을 무렵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우리 세 식구가 신혼여생을 버스를 몇 번인가 갈아타고 공주 우금치로 다녀왔습니다. 마치 엄마아빠를 위한 결혼 선물을 주듯 갓 백일을 지난 아들 병준이는 떼도 쓰지 않고 잘 울지도 않고 착하게 굴었습니다. 그렇게 인연을 맺고 30여 년 만에 다시 선 흥사단이지만 결혼식 때처럼 설렙니다. 진실의 힘 때문인가요. 오늘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30년 전 그 날보다 김근태가 더 강하게 느껴지고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아마도 남편 김근태가 살아있었다면 이 상을 받지 않았을 겁니다. 김근태는 늘 미안해 했습니다. 반독재·민주화 운동 기간 동안 고문 받고 다치고 심지어 목숨을 잃은 분들이 너무나 많은 데 그분들에 비해 김근태 자신은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에 대한 보상과 치유, 그리고 그분들을 둘러싼 잘못된 역사바로잡기가 더디기만 한 것을 속상해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진실이 밝혀지고 보상을 받게 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남편 김근태는 인권상 보다도 진실의 힘의 존재 그리고 여러분과의 만남을 더 귀하게 여겼을 겁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김근태는 미안한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진심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고문피해자 분들과 그 가족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했을까 생각하며 미안해하고 마음 아파했을 겁니다. 그리고 고문의 기억이 되살아나 며칠 몸살을 앓았겠지요. 바로 그것이 고문의 트라우마가 주는 고통이고 아픔입니다. 그렇게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보살피고 배려하는 것, 그리고 함께 힘을 모아 스스로 치유와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 바로 이것이 진실의 힘이 아니겠습니까. 진실의 힘의 활동을 보고 직접 체험하였다면 김근태는 너무나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했을 겁니다. 김근태의 흐뭇한 미소와 믿음으로 일렁이는 눈빛이 이곳에 한가득 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길고 빼곡한 진실의 힘 인권상 수상 이유를 보았습니다. 김근태와 인재근의 지난날에 크고 깊은 의미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수상소감을 어찌할지 궁리를 할수록 김근태가 진실의 힘 인권상을 수상하고 그 상을 이곳 흥사단에서 인재근이 해야 할 이유를 더 찾아오라는 시험문제를 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늘까지 그 답을 다 찾지는 못했습니다. 비록 계속 답을 찾아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제가 진실의 힘, 인권상, 김근태, 이재근을 화두로 삼고 생각한 바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저의 첫 번째 화두는 남편 김근태의 갑작스런 소천 이후 인권상과 함께 찾아 온 진실의 힘은 과연 어떤 인연, 어떤 뜻인 것일까 입니다.

 

 작년에 남편인 민주주의자 김근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파킨슨병으로 고생을 해왔는데 뇌정맥혈전증이 갑자기 찾아왔고 고비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저나 지인들 심지어 의사마저도 예상치 못한 급격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파킨슨병으로 몸이 점점 굳어지긴 했어도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읽고 쓰기는 물론 말도 잘했고 축구나 산책 같은 운동도 하고 민주대연합 관련 대외활동도 활발히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을에 갑자기 상태가 나빠졌고 끝내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바로 가을이었습니다. 남편 김근태는 가을만 되면 늘 며칠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고문을 받던 계절이 가을이어서 늘 고문의 계절이 되면 어김없이 못살이 나고 몸을 옴싹달싹 못할 정도로 아팠습니다. 직접 겪어보지 봇한 저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했을 고통의 시간들을 정신력이 워낙 강한데다 타고난 성품이 고운 사람이라서 짜증이나 화풀이 없이 혼자서 다 이겨냈던 것 같습니다. 몸이 다 부서졌다가 다시 조립되는 느낌이었지만 남편 김근태는 미소와 넉넉한 눈빛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 조차도 남편의 고통과 상처를 점점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남편 김근태가 떠나고 세상이 김근태의 인생과 파킨슨병에 주목하게 되고 민주주의와 고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께서 남편 김근태가 떠나는 길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이름으로 김근태를 기억하겠노라고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남편을 보내고 많은 분들이 김근태와 고문, 그리고 이근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보며 저 역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파킨슨병을 여러 이유 때문에 쉬쉬했던 점이 특히 후회가 되었습니다. 파킨슨병을 감추게 되자 파킨슨병의 원흉인 고문후유증도 감춰지게 되고 결국 고문을 국가나 사회가 아닌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치부하고 말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문의 개인적 차원조차 김근태의 강한 정신력과 온화한 성품으로 인해 치유가 아닌 불편함의 인내 정도로 치부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병상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고통의 한복판에서 눈을 껌벅거리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남편 김근태의 모습을 보면서 사실은 고문이 김근태를 너무나 힘들게 했엇고 그의 몸과 정신을 거의 다 허물어 뜨려 놓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상은 벼랑 끝에서 웃고 있는 김근태의 용기와 절규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아내조차 넉넉함과 부드러움으로 오해했던 것은 아닌가 싶어 문든문득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김근태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고문으로 인한 상처와 치유였습니다. 강한 정신력과 천성이 고왔던 것과 별개로 김근태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이근안을 만났어도 용서도 안 되고 치유도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전문적이지 못한 즉흥적인 이벤트로 치유가 될 리가 없었습니다. 고문을 직접 겪어보지 못했고 김근태의 인격을 높게 평가했던 주변 사람들의 제안으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고문은 이쯤 되면 용서할 때가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깊은 연구와 관심 그리고 꾸준한 치료를 통해 치유되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함세웅 신부님이 고문치유센터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저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형식으로 고문치유센터를 만들 것인가 고민하던 차에 진실의 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늦어서 죄송합니다. 남편 김근태와 함께 은페된 고문의 진실을 밝히고 현재와 미래의 고문을 막아내며 고문의 국가적, 사회적 치유에 좀 더 일찍 헌신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늦은 게 아니라 지금 시작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햐겠습니다. 김근태의 이름을 걸고 진실의 힘과 함께 고문이 없는 나라, 고문의 상처가 없는 나라를 만드는 길에 매진하겠습니다. 그 출발은 바로 고문치유센터입니다. 진실의 힘과 김근태 인재근이 만나게 된 이유를 저는 고문의 치유와 국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바로 제가 구한 첫 번체 화두의 대답입니다.

 

(중략)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진실의 힘 여러분, 그리고 동지, 동료 여러분, 감사합니다. 김근태가 영원한 민주주의자이듯, 저 인재근은 영원한 인권지킴이입니다. 인권상을 통해 케네디가문이 20세기 인권운동가 인재근에게 큰 힘이 되었듯이 진실의 힘은 인권정치인 인재근에게 좋은 친구가 될 것입니다. 비록 미약할지라도 제 모든 최선을 다해 진살의 힘의 좋은 친구로 남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김근태와 저는 진실의 힘 인권상을 통해 고문에 대한 진실과 치유, 그리고 인권의 지킴과 증진이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소명의 길은 함께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진실의 길, 인권의 길, 그리고 세상의 힘이 되는 길에 언제나 김근태가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때론 왼발이 되고 때론 오른발이 될 때 진실의 힘도 영원하고 김근태도 영원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www.ijk.or.kr/rb/?m=bbs&bid=society&uid=587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20622115012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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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센터2013.04.18 13:43
김근태기념 치유센터 설립추진을 위한 제5차 집행위원회가 지난 3월 22일(금) 인권의학연구소에서 열렸습니다. 남평오, 문국주, 이화영, 임채도, 현창하 위원들이 참석하였습니다.

 

 

김근태기념 치유센터 제5차 집행위원회에서는 지난 해 김근태기념 치유센터 "후원의 밤" 행사 보고와 현재 후원금 현황에 대한 보고에 이어 김근태기념 치유센터 개소 준비를 위한 장소 검토안과 조직 인선 등을 논의하였습니다. 그리고 4월부터 기획팀과 치유팀 각각 1명씩 선임하여 지원 프로그램 점검과 상담, 홍보 등의 실무를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김근태기념 치유센터 설립을 위한 모금 기획 자문회의에서 대중홍보와 모금을 위한 컨셉과 온라인 모금방법들이 소개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김근태기념치유센터 블로그를 활용하기로 하였습니다.
다음 집행위회의는 4월19일(금)로 정하였습니다.

 

 

김근태기념 치유센터 설립을 위한 후원금 총액은 현재 216,651,336원이고 후원해주신 분은 141명입니다.
 
함께하고 있는 김근태기념 치유센터 설립추진위원들은 70명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함세웅, 김상근, 이창복, 이석태, 인재근 (이상 공동대표)
 
강창일, 김동규, 김민기, 김봉준, 김부겸, 김수정, 김영준, 김용익, 김형태, 문병호,

민병두, 박경욱, 박민규, 박순희, 박영선, 박재영, 석정각, 손창호, 송기복, 송기홍,

신인령, 신좌섭, 심재환, 양길승, 오영식, 유시춘, 유영표, 유은혜, 유인태, 유종일,

유충희, 유해우, 윤영전, 이낙연, 이명춘, 이부영, 이영문, 이왕준, 이재명, 이철,

이철(재일), 임수경, 정강자, 정동영, 정성헌, 정인재, 정청래, 주영수, 차인현,

최규성, 천정배, 최인순, 최창남, 한명숙, 한홍구, 함주명, 현승민, 황주영(이상 설립위원)

 
남평오, 문국주, 염형국, 이상희, 임채도, 현창하, 이화영 (이상 집행위원)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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