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은 국가범죄인데, 치유센터는 전국에 1개뿐"

 

[이털남 380회]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

 

[이털남 2-360] '인권의학의 문을 열다, 이화영 소장' 서구에선 30년전부터 시작됐지만 아직 한국에선 생소한 개념인 인권의학. 그 문을 활짝 연 사람이 있다. '김근태 치유센터' 설립준비에 한창인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을 보이는 팟캐스트에서 만나본다.

ⓒ 이종호

 

인권의학,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하지만 서구에선 7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의학분야이다. 간단히 말하면 인권 가치에 입각해 의학 활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여기엔 인류 고통의 원인에는 질병뿐만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 차별 등 사회적인 고통도 있다는 인식이 전제된다. 즉, 인권의학은 의료인들의 인권감수성을 높임으로써 사회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인권피해자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도록 이론적·실천적 지침을 제시하는 새로운 의학 분야이다.

 

한국 인권의학의 문을 연 이가 바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설립에 앞장선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이다.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은 7월 5일 '보이는 팟캐스트'를 통해 이화영 소장과의 만남을 가졌다. 이 소장은 한국의 인권의학과 함께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고문 피해자들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국가, 국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인권' 이용

 

이화영 소장이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즈음 미국에서 암을 연구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미국의 보수 언론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여성의 인권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했고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부시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침공을 선언했다.

 

이 소장은 "인권 이슈조차도 미국의 자국이익주의를 정당화시키는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밝혔다. 이 소장의 이런 불편한 심기는 더 커졌다. 부시가 이번에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명했기 때문. 이 소장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패턴을 볼 때 이번엔 한반도가 전장이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다고 한다.

 

이 소장은 이를 계기로 국제분쟁학연구소의 석사 과정을 밝기 시작했다. 미국이 한반도를 어떻게 보는지 알고 싶었던 것. 이 소장은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지역에서 현장실습을 하며 인권의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소장은 "이스라엘의 '인권을 위한 의사회"를 보며 의료를 통해 갈등이 심한 두 공동체를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걸 한반도에 도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특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권을 위한 의사회'는 이스라엘 정부에 의한 팔레스타인 고문 등을 고발하고, 피해자들의 치유에 나서곤 했는데 그런 모습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는 것.

 

예상은 했지만 한국에 인권의학을 도입하는 일은 힘들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인권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은 터라 대다수 의료계가 꺼리는 상황. 그 장벽을 깨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의대의 빡빡한 커리큘럼도 장벽이었다.

 

이 소장은 갖은 노력 끝에 2007년 연세의대에 '인권과 의료인'이라는 인권학 과목이 처음으로 개설됐다. 이후 지금까지 고려, 아주, 한림, 원주 의대 총 5개의 대학에 인권의학 과목이 개설되었다. 미약하긴 하지만 한국에도 인권의학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고문으로 인한 PTSD 발생률은 성폭력보아 높아

 

이 소장은 인권의학에서도 고문 피해자의 PTSD에 큰 관심을 보였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의 설립에 앞장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녀는 "PTSD를 가장 많이 일으키는 트라우마는 고문에 의한 트라우마"라며 고문이 한 인간에게 얼마나 끔찍한 충격을 주는 것인지 설명했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보다도 PTSD 발생률이 높으니 그 고통은 감히 직잠할 수조차 없는 정도일 것이다.

 

"PTSD를 일으키는 원인 분석에 따르면 전쟁으로 인한 사람이 15%, 강간 등의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이 60% 정도 PTSD를 일으킨다. 그런데 고문을 겪은 피해자들은 70%로 나타났다. 고문은 PTSD를 일으키는 가장 가혹한 원인으로, 달리는 자동차에 그대로 치이는 것과 같은 심리적 충격을 준다. 그 사람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강하건 약하건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다."

 

한국 정부는 고문 피해자에 관심을 두고 있는가

 

사실 고문은 국가가 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행위이므로 국가가 고문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국가가 운영하는 치유센터는 광주트라우마센터 뿐이다. 미국이 약 30개의 트라우마센터를 운영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소극적인 자세이다.

 

법이 지금까지도 만들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한 마디로 관심이 없어서다. 2009년과 2012년 두 번의 바르이가 있었지만 제대로 토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 소장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법안을 만드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고문 피해자들의 대다수는 박정희 독재 정권 하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 부담을 더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과거의 잘못을 잊어버린다면 되풀이될 뿐이다. 고문 피해자들의 고통은 우리의 모두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이기도 하다. 이화영 소장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는 이유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지원책과 배려가 국가가 얼마나 정의로운지, 또 성숙한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2013년 7월 5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던 기사입니다. 기사 원문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82908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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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사찰 피해자의 고통

 

2012년 8월 초, 2009년 기무사에 의한 불법 사찰 피해자였던 엄윤섭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엄윤섭씨는 우울증을 알아왔다고 한다.

 

 

고 엄윤섭님 영정 ⓒ 최석희 오마이뉴스

 

미국의 권위 있는 언론지인 뉴욕타임지는 한국의 민간인 불법사찰(illicit surveillance of civilian) 사건을 1972년 당시 닉슨대통령을 사임하게 했던 워터게이트호텔 도청사건에 비유해 한국판 워터게이트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지는 또한 모든 한국 대통령이 공무원의 비리조사와 고위공지인사 검증을 위해 경찰, 검찰, 세무 당국의 협조 하에 조직을 운영해왔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사찰 피해자로 드러난 이들은 공직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다만, 현 정부에 비판적 말과 행동을 표현한 적이 있던 민간인들이었다. 사찰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국가기관의 사찰대상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심각한 스트레스로 고통 받았고, 그 중 한 명이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 사회의 불법 민간인 사찰을 처음 확인한 것은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에 의한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1990년이다. 물론 과거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새지설에 수많은 정치적 불법 사찰이 존재했지만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던 윤석양 이병은 1995년 올해의 인권상을 수여받았고, 당시 사찰 리스트에 올랐던 1,300여 명 중 145명은 국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998년 재판부는 '보안사가 군과 무관한 민간인을 사찰한 것은 명백한 헌법위반'이니 200만원의 위자료를 각각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그 후 보안사는 기무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기무사의 불법 정치사찰은 근절되지 않았다. 2008년 8월 쌍용차파업 농성장에서 민주노동당과 가족의 일상을 촬영한 동영상과 수첩이 공개되면서 그 실체를 또 드러냈다. 동영상에는 최근 자살한 엄윤섭씨와 그의 가족 동영상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신경과 치료를 받았던 엄씨는 "생업을 위해 일하는 작업실 앞에서 버젓이 동영상을 찍은 것을 보고 소름이 끼친다"고 했고 자신의 부인이 직장에 출근하는 모습이 찍힌 동영상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민간인 불법 사찰은 피해 당사자 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고 엄윤섭씨가 2009년 8월 17일 오후 국회 민주노동당 당대표실에서 열린

 '국군기무사령관 민간인 불법 사찰 관련 피해자 증언 및 2차 동영상 공개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모습이 촬영된 동영상을 보이며 기무사로부터 불법 사찰을 폭로하고 있다.

ⓒ 유성호 오마이뉴스

 

2010년, 이제는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사실이 드러났다. 청와대의 지시로 사찰대상자 파일의 삭제시도가 추가 폭로되면서 그 파장은 걷잡을 수없이 커지는 듯 했다. 사찰 피해자로 드러난 김종익씨는 블로그에 이명박 정권의 정책 비판 동영상을 올린 이유로 사찰을 받았고 국민은행 하청업체 사장이었던 그는 직장을 잃었다. 이 정도 사실로 사찰을 해왔다면 얼마나 많은 정치적 사찰이 국민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인 전 KB한마음 대표가 2012년 4월 1일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열린 '청와대 하명 불법 국민사찰 규탄 집중유세'에 참석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오마이뉴스 

 

민간인 사찰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사생활을 보호해야할 국가의 의무를 위반하는 명백한 위법이다. 국가기관이 민간인을 사찰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사샐활권을 침범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인데 과연 이명박 정부가 스스로 그 진상을 낱낱이 규명할 수 있을까 심히 우려된다.

 

사찰 피해자였던 엄윤섭씨의 자살 소직을 접하며 사찰이 한 개인에게 가하는 정신심리적 폭력의 무게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느껴진다. 과연 사찰 피해란 무엇이고 어떻게 치유되어야 할 것인가? 그대로 방치해 둔다면 제2, 제3의 엄윤섭씨와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까?

 

불행히도 국가기관에 의한 사찰 피해 관련 정신심리학적 논문이나 학계의 공식적 발표는 없다. 그러나 한 개인을 지속적으로 미행하고 괴롭힌다는 점에서 국가기관에 의한 조직적 스토킹(organized stalking)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구에서 오랜 기간 동안 연구되고 발표되어온 스토킹 피해를 준해 사찰 피해와 그 치유책을 살펴보았다.

 

민간인 불법사찰이 처음 알려졌던 2010년 12월 7일 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원충연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사무관의 수첩 사본 중 일부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스토킹 피해자 치료에 초점을 둔 한 리뷰 연구는 피해자들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이하 PTSD), 불안, 우울 증상을 특징적으로 보고하였다. 피해자의 80% 이상에서 극도의 불안과 수면부족, 과다경계, 비판적인 말과 행동 회피 등의 증세를 보였다. 피해자의 약 25%에서 공포와 무력감, 우울감을 극복하지 못해 자살 시도를 하였다. 불만 해소를 위해 담배나 알콜 섭취가 증가되었다. 심리적 고통 이외에도 오심, 피로감 같은 신체적 증상이 심해지고 고혈압이나 천식과 같은 기존의 질병이 악화되기도 했다. 1999년 한 연구는 대조군에 비해 스토킹 피해자들은 PTSD의 빈도와 강도가 훨씬 높았고, SCL-90R 결과 우울과 대인예민성이 매우 증가하였음을 보고하였다. 이 연구는 피해 당사자 뿐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 자녀, 직장동료, 친구들에게도 심리적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국민을 보호해야할 국가가 자신을 감시하고 미행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누구나 심각한 분노와 불안을 느낄 수 있다. 한 개인이 스토킹 하는 것도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함을 서구의 연구들에서 확인하였는데, 사찰 대상자들도 누군가의 감시에 높여 있다는 점에서 이들과 유사하게 극도의 스트레스로 불면증과 악몽, 자기검열, 우울증에 시달리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거대한 권력을 가진 국가기관이 도청이나 개인정보 수집 등 전문적이고 다양한 사찰 방법을 사용한다고 가정할 때 사찰 피해자가 느끼는 심리적 고통은 개인의 스토킹 경우보다 훨씬 더 클 수 밖에 없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미행당하고 도청당하고 있다는 것은 실제로 가해지는 신체적 폭력만큼이나 큰 심리적인 폭력일 수 있다. 그 결과 스트레스와 분노 반응, 지속적인 자기검열과 경계 때문에 비판적인 말을 삼가게 될 뿐 아니라 인간관계의 제한을 결과한다. 결국 사찰 피해자들은 사찰 스트레스로 인해 정상적인 대인관계, 직장생활, 사회생활을 해나가기 힘든 것이다. 즉 내가 누구를 만나면 그 사람도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사람들을 피하게 돼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피해자를 고립하게 만든다.

 

 

당시 민주노동당이 공개한 엄윤섭 씨 등의 사찰 내용이 담긴 기무사 수첩 

 

이러한 피해자 고통을 완화시키는데 정신심리 전문가에 의한 교육과 상담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피해자들의 분노, 불안, 과다경계, 자책감, 무력감, 우울, 고립과 같은 증상들이 사찰과 같은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발생하는 정상적인 반응임을 교육과 상담을 통해 이해시킨다. 인지행동요접은 피해자의 이 세상에 대한 잘못된 사고들을 변환하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아무도 믿을 만한 존재가 이 세상에는 없다는 사고들을 재고할 수 있게 한다. 심호흡법과 이완요법은 심각한 불안 증세를 완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집단치료는 피해자의 고립과 소외감을 덜게 한다. 또한 사찰로 인한 분노, 상실, 좌잘을 떨치고 안전하게 지지적인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다. 다만 그룹치료진행자는 정신건강전문가로 기술적, 정서적으로 숙련자여야 한다.

 

모든 피해자 치료의 주된 목표는 피해자 고통을 완화시키고, 정상적인 대인관계, 직장생활, 사회생활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치료는 더 이상 사찰을 받지 않는 것이지만 사찰이 중단되어도 적절한 치료적 개입이 없으면 피해자의 삶은 그 이전으로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거대권력의 감시와 미행에 놓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인간관계의 제한 등으로 우울증이 오고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면 자살까지도 결과하게 되는 것이다. 사찰 피해자의 고통을 개인적인 문제로 방치하면 안 되고 가능한 빨리 전문가에 의한 치료적 개입이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피해를 돌아보면서 결코 국가기관에 의한 민간인 사찰은 정당화될 수 없고 이는 국가권력의 남용이자 국가가 저지른 범죄임이 명백해진다. 엄윤섭 씨의 경우, 국가가 그를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었다는 정황에서 사회적 타살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사찰 사건의 진상 규명과 함께 사찰 피해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일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글은 (사)인권의학연구소 뉴스레터 제23호 실린 글입니다.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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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mk

    사기조직동두천경찰 폭파 daum qkmk

    2013.05.14 20:50 [ ADDR : EDIT/ DEL : REPLY ]

[서화숙의 만남] 김근태치유센터 설립 준비하는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

"고문피해자 심신 후유증 치유 위한 의료지원 절실

사회정의 실현 없이는 완전한 치유란 멀고 먼 길"

 

"사회정의가 완전히 이뤄지고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한

고문 피해자들의 완전한 치유는 멀고먼 일이에요.

이 땅에 다시는 폭력이 발 붙이지 못한다는 확신만이

 이들을 치유할 수 있어요." 홍인기기자hongik@hk.co.kr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민간치유센터인 김근태기념치유센터가 생긴다. 이 센터를 설립하기 위한 준비모임이 2012년 12월 10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남영동 1985'라는 영화로 재연되고 있지만 김근태(1947~2011) 전 의원은 전두환 정권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보이는 파킨슨병에 시달리다가 불과 64세의 나에로 세상을 떠났다. 살아서 그는 울컥 성내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고문의 후유증을 앓는다는 생각을 주변에서 하지 못했고 되려 그에게 젊을 때의 활기로 민주화 운동을 해주길 심지어는 고문가해자인 이근안을 용서하기까지 바랐다. 그 이근안은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최근 책을 내고 변명 아닌 변명을 일삼고 있다. 이렇게 가치전도된 세상을 참아내는 것은 얼마나 힘든 것인가. 그 분노를 사회정의를 바로잡는 일에, 고문피해자를 위한 치유를 돕는 일에 써달라고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설립준비에 앞장선 이화영(53 내과전문의) 인권의학연구소 소장은 말한다.

 

- 인권의학이 뭔가요?

 

"과거에는 건강을 위협하는 고통의 원인으로 질병만 생각했습니다. 의료인들은 어떻게 하면 질병을 없앨까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을 중심으로 사회적인 고통을 함께 봐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습니다. 건강권은 인간이 누려야 할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차별 가난 폭력 이 세가지가 건강을 위협하는 사회적 고통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차별과 가난 폭력에 의료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인권의학의 관점입니다."

 

- 원래는 내과전문의로 암전문가였다는데 어떻게 인권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제가 77학번인데 그때는 대학생이 전체의 5%쯤 되었어요. 선배들이 '대학생은 95%에게 빚진 자다.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를 강조했어요. 2000년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암센터에 암연구를 하러 갔어요. 2001년에 9.11이 일어났지요. 이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이 터지는 과정에서 보니까 미국 보수 방송에서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의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를 계속 방영하였어요. 인권문제가 전쟁을 정당화시키는 도구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라크 전쟁 시작 후에는 북한인권상황을 계속 내보내는 거예요. 북한을 공격해도 미국인들은 정의로운 전쟁을 한다 믿겠구나 싶어서 조지메이슨대 국제분쟁분석해결학 연구소에 들어갔어요. 2003년이었어요. 면접하는 교수가 너 의사인데 테러리스트 하려고 이거 하느냐고 묻더라고요. (팔레스타인 투쟁단체) 하마스의 지도자가 소아과 의사에요. (웃음) 분쟁지녁에 가서 한달간 실습을 하는 것 때문에 이스라엘에 갔을 때 '인권을 위한 의사회'를 알게 되었어요. 팔레스타인 정치범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고문을 폭로하고 치료하는 단체였어요. 의료가 분쟁지역에서 화해의 도구가 될 수 있구나 깨달았지요. 1974년부터 덴마크에서 칠레 난민들의 망명신청을 위한 고문진단서를 써주던 국제 엠네스티의 의사들이 주축이 되어서 1982년 세계최초로 고문피해재활센터 RCT(rehabilitation center for torture)를 만들어요. 이게 IRCT라는 국제기구로 커졌고요. 70여개국이 가입해서 150여개 단체가 가입했어요. 미국에서도 1985년에 미국 최초의 고문피해자센터 CVT(center for victims of torture)가 생겼고 망명자를 치유하려고 이렇게 힘을 들이는데 정작 우리나라는 국가폭력이 엄청나게 일어났고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데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어요. 의료계에서도 폭력에 의한 트라우마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어요. 한국에 가서 의대생들부터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연세대 의대에서 '인권의학' 강의를 개설하였고 2007년 가을에 귀국했어요."


- 본격적으로 연구소까지 만든 이유가 있어요?

"2009년에 용산참사 피해자를 지원하던 신부님이 그러세요. 아이들이 천막에서 학교를 다니는데 심리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고. 현장에 가보니 아이들뿐 아니라 철거민, 유족들, 올라갔다가 살아온 사람들의 정신심리적 외상이 매우 심했어요. 정신과 의사 네 분이 개인치유 지원을 했어요. 2010년 10월부터 국가폭력 피해자 대상 집단치유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울릉도 조작간첩사건, 서울도시철도 해고근로자, 70~80년대 노동운동 국가폭력 피해자, 학림사건 피해자 집단치유를 했습니다."

 

- 집단치유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마음 속에 담긴 고통을 끌어내서 재조립하고 회복하려면 의료적 개입은 반드시 있어야합니다. 집단치유 첫 시간에 이 치유프로그램은 회복을 위한 시작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고문 피해를 당하신 분들이 대부분 개인의 잘못으로 이 문제를 담아두고 계세요. 당시 벌어졌던 일에 대해서도 내가 부주의했다고 말이죠, 그 후에 고문 후유증으로 생기는 분노나 우울증, 대인기피에 대해서도 내가 성격이 좀 안좋은가보다. 그러면서 사람을 피하고 잘 믿지를 못해요. 집단치유를 하면 다른 피해자들의 어려움을 들으면서 이게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구나, 당시 정치적인 상황에서 내게 벌어진 일이구나, 고문과 같은 그런 일을 겪으면 누구나 나와 같이 될 수 있구나를 받아들이게 돼요."


- 치유의 단계가 있습니까?

 

"무력감 상실감 분노, 자기자존감이 낮아지는 것들이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걸 알려드려요. 가해자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지만 내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 뿐이다. 그건 내 인생을 안 망가뜨릴 수 있는 것도 나 자신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지요. 아내나 아이처럼 가장 만만한 상대한테로 분노가 가는 걸 막는 분노조절을 알게 하고요. 무력감은 알코올 중독이나 자살하고도 연관되지요. 고문의 영향에 대한 이해, 증상과 감정에 대한 이해로 시작하여 자신과 가족, 동료들과의 관계 회복으로 연결되게 합니다.

 

- 국가폭력 피해자는 얼마나 됩니까?

 

"정확한 숫자는 없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인권의학연구소가 90년대 중반부터 국가기관에 의해서 조사된 숫자를 정래해 보았어요. 광주민주화 거창 제주 삼청교육대 등등 쭉 조사를 해봤더니 30만명이 넘고요. 국정원이나 경찰조사에서는 건수로만 나오는데 8,560건이예요. 한 건당 사람은 한명부터 추천명까지니까 수십만명이라고 보는 거지요. 30만명도 신고된 사람일 뿐 과거사 위원회에서 신청한 것을 보면 재일교포 사건만 해도 200명 중에 20명 정도만 재심을 신청하고 있어요. 인권의학연구소가 집단치유를 한 간첩조작 사건인 울릉도 사건도 47명이 구속되어 3명은 사형선고까지 받은 사건인데 지금까지 알려지지도 않았거든요."

 

- 울릉도 사건은 기자인 저조차도 처음 들어본 듯하네요.

 

"1974년 인혁당 사건과 같은 해에 일어났어요. 서울대 최종길 교수가 사망하면서 그 책임을 지고 중앙정보부 차철권이라는 사람이 좌천이 돼요. 그가 군대 후배를 통해 처남이 일본서 성공한 사업가라는 사실을 알고는 조총령과의 연관 관계를 떠올려 무차별적으로 엮어서 전주와 울릉도 지역의 47명을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이에요. 이 사건으로 차철권은 영전을 하고 그 이후 승승장구 했어요. 간첩으로 조작된 사람 중에 3명이 사형을 당했고요. 대부분 십여년의 형기를 마치고 나오셨지요. 울릉도 사건 피해자 중 한명인 이성희 선생님은 전북대 교무처장으로 총장 물망에 올랐는데 1960년대 도쿄대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는 북한에 가서 1주일을 보낸 것이 문제가 된 것이지요. 당시 김일 부주석을 만나 간첩 보내지 말라고 설득했다니 낭만적인 통일론자였던 거지요. 그러나 고문에 의해 간첩죄의 누명을 쓰고 17년 형을 살고 나와서 전주를 떠나 강원도에 살다가 2006년에야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신청을 하면서 이 사건이 알려졌어요. 다른 분들도 모두 숨어살고 서로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참고인으로 나오셨다 사건이 밝혀지게 됐고요. 이성희 선생님은 2012년 11월 22일 38년만에 고등법원에서 간첩죄 누명을 벗어났습니다. 나머지 20여 피해자들도 현재 재심 신청하고 진행 중입니다.

 

- 국가에서 나서야 할 일 같은데요.

 

"2012년 12월 10일에 인재근 의원이 '고문방지와 고문피해자 보상 구제법안'을 발의했어요. 고문 뿐 아니라 공권력 남용에 의한 피해자가 다 대상이 되어야 하겠지요."

 

- 사회적으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오늘 누리는 인권은 과거의 누군가의 희생 덕분에 누리는 것이지요. 이 분들의 치유에 모든 이들이 나섰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사회정의가 이뤄져야 해요. 심리적인 안정감을 취했다가도 사회정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증상들이 재발하거든요. 2007년 하반기에도 이병박이 대통령이 되면 다시 잡아가지 않느냐고 굉장히 불안해하셨어요. 하물며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된다면 그 분들의 공포심은 말로 못하지요. 전두환이 저렇게 떵떵거리며 사는 걸 보는 마음은 어떻겠어요."

 


(이 인터뷰 내용은 2012년 12월 17일 한국일보에 게재되었던 기사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기사 원문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212/h2012121621204021950.htm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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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사건보다 더 큰 상처주는 2차 피해, 대책이 필요하다

 

 

 

 

이 화 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

 

 

<폭력 사건보다 더 큰 상처주는 2차 피해, 대책이 필요하다>

 

 

 

 

치료받지 못하는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

 

 

폭력적 사건으로 생명의 위협을 겪은 이들은 신체적 상해보다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으로 인해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특히 고문이나 강간과 같은 폭력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피해자의 약 90% 이상에서 만성적 심리 이상을 결과한다. 이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후에 오게 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 때문이다. 과거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폭력은 수사기관에서의 고문이나 가혹행위와 같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었다. 구금시설이나 군대와 같은 폐쇄적인 조직에서 폭력은 일상적인 것이었고 여성이나 아동과 같은 약자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은 지금도 높은 비율로 발생하고 있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폭력 피해자들의 치유로는 그들의 고통스러운 상처를 털어놓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많은 피해자들은 정치, 사회, 문화적 여건상 피해 사실을 본인 스스로 드러내지 못하고 적절한 가족적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그 증세가 만성화된다. 피해자들은 고통스러운 사건을 기억에서 의식적으로 묻어두고 마치 그런 사실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 때로 갑자기 분노가 발작적으로 폭발하거나 대인관계에 많은 어려움을 지닌 채 살아가기도 한다. 여기에 이차 피해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결과는 더욱 나빠진다. 피해자가 폭력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피해자에게는 그들이 경험한 폭력에 의해 발생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전문가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피해자들이 어쩌면 처음 털어놓을지도 모르는 그들의 트라우마를 들어주는 이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정신적 외상이 당장 눈에 보이는 상처가 아니기 때문에 정신심리적 치료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억울하게 당했을 뿐이지 정신질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병원에 가느냐고 한다. 정신과 진료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도 작용하였다. 어렵게 피해자들이 정신과 병원을 찾았으나 약물치료 이외의 지속적인 심리 상담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폭력 사건보다 더 큰 상처를 주는 2차 피해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사건 자체만으로도 피해자들에게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야기한다. 그러나 사건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들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으로 인해 심리적 고통이 가중되기도 한다. 이것을 이차 피해라고 하는데 때로 사건 자체보다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실제로 많은 피해자들이 사건 후 처음 만나는 대상은 정신적 외상 치유 전문가가 아니라 가족, 친구, 교사, 또는 종교인과 같은 비전문가들이다. 그들은 피해자들의 심리적 경험을 잘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차 피해를 유발시킬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피해자들의 치유가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태도, 피해자를 처음 대하는 치료자나 상담가의 접근방법, 사회적 지지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성폭력피해자나 매 맞는 아내들, 아동학대 피해자들은 매우 불안하고 혼돈스러운 상태라는 것을 이해하고 지지적인 태도와 자율성을 존중하는 태도로 대하여야 한다. 특히 성폭력인 경우, 피해 발생에 있어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피해자를 비난한다면 어렵게 도움을 청한 피해자에게 애초의 폭력 사건보다 더 심한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러한 선입견이나 편견은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들의 회복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다른 치료자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쳐 치유의 기회를 영영 잃을 수도 있다.

 

 

여성가족부 발표에 의하면 20 07년도 우리나라 전체 성폭력피해자의 신고율이 2.3%이고 성폭력상담소와 같은 지원 시설을 이용한 경우는 전체 성폭력피해자의 1.6%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이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비율이다. 피해자들이 신고를 기피하고 지원 시설을 이용하지 않은 것은 그 과정에서 겪는 경찰, 언론, 의료인, 상담가 등에 의한 이차 피해가 큰 이유라고 하겠다. 반면 이 과정에서 적절한 지지와 정보제공, 전문기관으로의 연계가 잘 된다면 피해자들이 회복할 기회는 높아질 수 있다.

 

 

 

<폭력 사건보다 더 큰 상처주는 2차 피해, 대책이 필요하다>

 

 

 

종교인에 의한 피해자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

 

 

미국의 한 연구는 정신적 외상을 입었을 때 지원을 요청한 피해자 중 42%가 성직자를, 29%는 일반의사, 17%는 정신과 의사, 10%는 그 밖의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았다고 보고하였다. 이 연구로부터 25년 후에 실시된 추적조사 결과, 정신적 외상 후 도움을 찾아 성직자에게 간 사람의 비율이 약간 낮아졌으나 여전히 34%의 피해자들이 성직자를 찾고 있었으며 다른 곳에 간 사람보다 많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현실적으로 종교인은 피해자 지원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폭력적 피해를 당한 후 많은 사람들이 종교단체를 찾아 도움을 청하지만, 성직자나 수도자와 같은 종교인들이 폭력 피해자에 대한 교육이나 인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을 만났던 종교인들은 성폭행을 자초한 면이 있다고 피해자를 나무라서 자책하게 하거나, '자녀를 위해 참고 극복하라'며 가정폭력 피해자를 돌려보내 지속적으로 폭력을 겪게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폭력적 사건으로 인한 피해는 질병이나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종교인들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정신적 외상을 입은 피해자들의 많은 수가 도움을 찾아 종교인들에게 간다면 종교인들은 폭력 피해자 문제에 적절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성직자나 수도자들에게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대한 이해나 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정보 및 면담기법과 같은 연수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이 교육에는 지역 교회의 목사, 신부 나아가 병원, 경찰서, 군대 및 기타 조직에서 피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종교인들도 포함되어야 한다. 신학교, 신학대학, 성직자 교육 시설에 폭력피해자 지원프로그램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종교인들을 위한 피해자지원 정보(소책자, CD, 훈련매뉴얼 등)를 작성하여 널리 보급시켜야 한다. 미국에서는 모든 종파의 성직자와 종교지도자에게 피해자 지원에 관한 기초훈련을 받게 하였고, 그 결과 만들어진 출판물이 “피해자: 성직자 및 종교단체를 위한 매뉴얼‘이며 현재 제4판이 출간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피해자 지원 시설을 이용한 성폭력피해자는 1.6%라는 통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많은 피해자들은 의료인들이나 지원시설의 상담가보다 성직자들이나 종교단체를 찾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 지원과정에서의 이차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절한 지원 제공을 위한 종교인 대상 교육이나 종교, 종파를 초월해서 “성직자들과 종교단체를 위한 폭력피해자 지원 매뉴얼” 등과 같은 자료는 전혀 없다.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군대폭력, 공권력에 의한 가혹행위 등 지금이 순간에도 폭력은 지속되고 있다. 언제까지 폭력 피해자의 정신, 심리적 충격을 개인의 극복 문제나 훈련되지 않은 민간, 종교 단체의 몫으로 남겨둘 것인가? 폭력피해자의 정신 심리적 치유와 이차피해 예방을 위해서 치료와 교육을 전담하는 전문적이고도 포괄적인 트라우마 치유센터의 설립으로 보건의료 전문가의 훈련과 함께 피해자 유형별 재활 프로그램의 수립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폭력 사건보다 더 큰 상처주는 2차 피해, 대책이 필요하다>

 

 

 

폭력 사건보다 더 큰 상처주는 2차 피해, 대책이 필요하다

 

 

 

 

이 글은 (사)인권의학연구소 뉴스레터 제11호 실린 글입니다.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
프 로 필
내과의사로 암환자를 진료하였고 미국에서 암연구를 하던 중 9ㆍ11 테러와 '테러와의 전쟁'을 지켜보았다. 이 경험이 미국에서 국제분쟁학 공부를 시작하게 했다. 폭력적 분쟁 해결과 화해의 방법으로 의료와 인권을 접목하여 한국 사회에 인권피해자 치유프로그램 (인권클리닉)의 도입을 준비했다. 2007년부터 의대생들에게 “인권의학"을 강의하고 있다. 번역서로 “배반당한 히포크라테스”를 출간했고 과거 군사정권에 의해 고문당했던 고문피해자들의 치유모임에 참여했다. 2009년 의료인들의 인권마인드를 높이고, 인권을 침해당한 피해자들을 지원하고자 “인권의학연구소”와 “인권클리닉”을 개소하였다.

 

현재는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설립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도 겸임하고 있다.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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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을 살리는 치유, 국가폭력 피해자 치유프로그램" 운영하는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소장을 만나다

 

 

 

 

장남수 jnsoo711@hanmail.net

 

 

 

 

 

 

 

“여기, 사람이 있다!”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망루에서 외치던 사람은 그러나 끝내,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다.
검은 연기와 함께 시커멓게 무너져 내리는 건물잔해처럼 철거민들의 삶은 무너졌다.

 

죽고 끌려가고 울부짖는 현장에서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체 따라 울다 천막귀퉁이에서 웅크리고 잠들었다. 용산참사 피해자 지원활동을 하던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빈민사목 팀의 눈에 이 아이들이 박혔다. 천막에서 자고, 밥 먹고, 등교하고, 천막으로 돌아와 이해할 수없는 험한 상황을 매일 목격하는 이 아이들의 마음상태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이사장, 함세웅신부)의 국가폭력피해자치유프로그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013년, 어렵게 시작된 새해의 스산함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곳,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소장을 뵙고 그간 진행되었던 치유프로그램내용을 들어보았다. 용산참사 피해자들과의 치유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은 2009년 12월이었다. 정신과 전문의 7명, 임상심리사1명, 내과1명, 예방의학1명으로 실무 팀이 꾸려졌고 그중 4명의 정신과전문의가 개별 치료를 맡았다.

 

피해자는 유족 10명(미망인5명, 자녀 5명)과, 망루에 올라갔던 당사자 4명, 그날 현장에서 사건을 목격했던 5명을 포함하여 19명이 개인 상담에 임했다.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빈민사목의 지원과 참여한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활동이 동력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폭력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치료 필요성을 절감한 인권의학연구소는 집단상담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추진하게 되었다.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 창립총회- 함세웅이사장, 이화영상임이사>

 

1기 팀은 2010년 10월 “보도간첩 사건의 전형을 보여준”(한홍구) 일명 ‘울릉도사건’(1974)관계자들이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울릉도사건에 대해 국가의 ‘기혹행위’를 인정했고 사건을 조사하던 조사관중 한분이 이들의 심리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치유프로그램을 권유한 것이었다.

 

동향감시, 피해의식, 사회적 편견 등으로 서로 만나지도 않고 두문불출하다시피 살아 온 이들의 심리상태는 심각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처음엔 매우 거북해하거나 긴장을 풀지 못하던 분들이 10회 정도 그룹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조금씩 온기가 돌았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진정성에 마음 한 자락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재심이 진행되고 있던 한 분이 간첩죄에 대해 무죄선고를 받는 일도 일어났다. 대한민국법정에서 ‘무죄’라는 한마디의 선고가 있기까지는 17년의 징역살이와 38년간 한限이 응어리가 되어 있었지만 이날까지 총 재판에 걸린 시간은 단 두 시간 남짓이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사회에서는 이 가혹하고도 질긴 주홍글씨를 벗겨내어야만 온전한(?) 국민의 이름으로 호명되는 것이기에 ‘선고’의 의미는 서럽고도 큰 것이었다. 현재 이 사건으로 11명이 재판을 진행하고 있고 치유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분들은 후속모임을 지속하며 조금씩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여가고 있다.
2기 팀은 도시철도 해고자들이었다.
이들은 40여명이 참여한 스트레스 평가에서 20여명이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위험군의 기준은 우울증을 넘어 자살의 위험까지도 있는 경우라고 한다.

 

이 중에서 상담에 동의한 7명과 함께 2011년 1월부터 치유프로그램이 가동되었다.

 

 

 

3기 팀은 필자도 참여한 70~80년대 국가폭력피해를 당한 여성노동자들이었다.

 

청계노조, 원풍노조, 한일도루코노조 등에서 노동조합활동을 하다 80년도 계엄사에 끌려가거나 징역살고 해고된 경우다. 첫 번째 상담에서 이들이 내놓은 단어는 분노, 억울함, 절망, 불안 같은 것들이었다. 물론 활동과정에서 느낀 기쁨, 희망 같은 단어도 없지는 않았다. 이들은 그동안 누적되었던 폭력의 기억들과 상처 입은 감정들은 끌어내어 말했고 함께 공감하고 위로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인권의학연구소는 만나는 날이면 공간을 최대한 따뜻하고 편안하게 꾸미려고 애썼고, 정갈한 음식과 따뜻한 차를 준비해두는 등 섬세한 배려를 해주었다. 우울, 분노 같은 감정들이 존중, 이해, 공감, 지지의 감정으로 바뀌면서 조금씩 신뢰가 쌓이고 마음을 내려놓는 휴식을 체험했다.

 

이들 또한 후속모임을 통해 음식도 나누고 마음도 나누고 있다.

 

이외에도 학림사건 피해자등 치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무수히 많은 시국사건의 피해자들이 있고 해고자들, 철도, 병원 등의 노동자들, 6.25양민학살피해자들, 공익제보자들, 불법사찰 대상자들 등 보호받아야 할 국민이 국가라는 이름의 거대한 폭력에 속절없이 당했던 후유증은 심각하다.

 

 

 

 

 

 

 

 

 

 

 

 

 

 

 

 

 

 

 

 

 

 

 

 

 

 

 

 

 

 

 

 

 

 

 

 

 

이화영소장께 마지막으로 물었다.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경우가 어떤 경우였는지요?
“모든 분들이 마음에 자리하지만 특히 학림사건에 관계되었던 한 분이 떠오르네요. 본인이 몹시 어려운 과정을 겪으신 분인데 그 무게를 넘어서서 타인들의 고통에 시선을 주기 시작하셨어요. 어느 모임에서 그분을 게스트로 모셨는데 본인의 이야기를 하시는 게 아니라 여성노동자 세분의 스토리를 풀어놓으시더라고요. 정보기관에서 폭행을 당한 후 부모에게 끌려가 결혼을 하게 되고, 과거전력이 밝혀지면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네가 빨갱이년이라 그렇다’고 구박받고 폭행당한 사례들이었어요. 지식인들과는 또 다른 고통이 노동자들, 특히 여성노동자들이 겪게 되는데 가족으로부터도, 주변으로부터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이중의 폭력을 겪는다는 것이지요. 그 사례들을 조곤조곤 풀어놓는데 장내가 숙연해졌어요. 이분이 자기를 혹사하던 상처가 조금씩 위로되면서 타인에 대해서 너그러워지는 것이지요.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표정이 달라지는 분들이 보여요. 울릉도 사건 같은 경우도 그렇지만 완벽한 고립공간에서 벗어나면서 밝아지고 웃는 표정이 나타나요. ‘자가 인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자기문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거든요. 표정! 이게 참 감동이죠.”

 

이렇듯, 인권의학연구소는 “눈물보 황주영선생”을 비롯하여 의료진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그러나 정말 말라서 안타까운 건 재정이다. 참여하는 의사들의 헌신과, 매월 1만원이라도 후원회비를 내주시는 분들이 있지만, 눈앞에 안타까움은 너무 많고 여러 가지 구상이 있지만 펼치기에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와 연관되는 문제이겠지만 내담자가 언제든지 자유롭게 찾아와 상담이 가능하려면 상시 심리 상담전문가가 대기하는 등 내담자에 맞춰지는 구조가 절실한데 그게 잘 안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이화영소장께 질문을 빼먹었지만, 의학이 사람 몸의 병을 고치는 학문이라면 ‘인권의학’은 사실상 건강을 위협하는 인간의 기본권 박탈에서 오는 좌절이나, 자존감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국가폭력은 근본적으로 근절해야겠지만 그로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을 보듬는 치유는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해서도 필수적일 것이다. 모쪼록 2013년 새해에는 국가폭력뿐 아니라 어떤 폭력으로도 상처 입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이미 바람은 공허해지고 인권의학연구소의 문턱은 더욱 분주해질 것만 같다.

 

                  "인권을 살리는 치유, 국가폭력 피해자 치유프로그램" 운영하는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소장을 만나다

 

<창립총회를 진행하는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소장>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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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살리는 치유, 국가폭력 피해자 치유프로그램" 운영하는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소장을 만나다

 

 

“여기, 사람이 있다!”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망루에서 외치던 사람은 그러나 끝내,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다.
검은 연기와 함께 시커멓게 무너져 내리는 건물잔해처럼 철거민들의 삶은 무너졌다.

 

죽고 끌려가고 울부짖는 현장에서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체 따라 울다 천막귀퉁이에서 웅크리고 잠들었다. 용산참사 피해자 지원활동을 하던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빈민사목 팀의 눈에 이 아이들이 박혔다. 천막에서 자고, 밥 먹고, 등교하고, 천막으로 돌아와 이해할 수없는 험한 상황을 매일 목격하는 이 아이들의 마음상태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인권의학연구소(이사장, 함세웅신부)의 국가폭력피해자치유프로그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013년, 어렵게 시작된 새해의 스산함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곳,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소장을 뵙고 그간 진행되었던 치유프로그램내용을 들어보았다. 용산참사 피해자들과의 치유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은 2009년 12월이었다. 정신과 전문의 7명, 임상심리사1명, 내과1명, 예방의학1명으로 실무 팀이 꾸려졌고 그중 4명의 정신과전문의가 개별 치료를 맡았다.
피해자는 유족 10명(미망인5명, 자녀 5명)과, 망루에 올라갔던 당사자 4명, 그날 현장에서 사건을 목격했던 5명을 포함하여 19명이 개인 상담에 임했다.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빈민사목의 지원과 참여한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활동이 동력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폭력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치료 필요성을 절감한 인권의학연구소는 집단상담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추진하게 되었다.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 창립총회- 함세웅이사장, 이화영상임이사>

 

1기 팀은 2010년 10월 “보도간첩 사건의 전형을 보여준”(한홍구) 일명 ‘울릉도사건’(1974)관계자들이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울릉도사건에 대해 국가의 ‘기혹행위’를 인정했고 사건을 조사하던 조사관중 한분이 이들의 심리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치유프로그램을 권유한 것이었다. 
동향감시, 피해의식, 사회적 편견 등으로 서로 만나지도 않고 두문불출하다시피 살아 온 이들의 심리상태는 심각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처음엔 매우 거북해하거나 긴장을 풀지 못하던 분들이 10회 정도 그룹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조금씩 온기가 돌았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진정성에 마음 한 자락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재심이 진행되고 있던 한 분이 간첩죄에 대해 무죄선고를 받는 일도 일어났다. 대한민국법정에서 ‘무죄’라는 한마디의 선고가 있기까지는 17년의 징역살이와 38년간 한限이 응어리가 되어 있었지만 이날까지 총 재판에 걸린 시간은 단 두 시간 남짓이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사회에서는 이 가혹하고도 질긴 주홍글씨를 벗겨내어야만 온전한(?) 국민의 이름으로 호명되는 것이기에 ‘선고’의 의미는 서럽고도 큰 것이었다. 현재 이 사건으로 11명이 재판을 진행하고 있고 치유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분들은 후속모임을 지속하며 조금씩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여가고 있다.

 

2기 팀은 도시철도 해고자들이었다.
이들은 40여명이 참여한 스트레스 평가에서 20여명이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위험군의 기준은 우울증을 넘어 자살의 위험까지도 있는 경우라고 한다. 이 중에서 상담에 동의한 7명과 함께 2011년 1월부터 치유프로그램이 가동되었다.

 

 

3기 팀은 필자도 참여한 70~80년대 국가폭력피해를 당한 여성노동자들이었다.
청계노조, 원풍노조, 한일도루코노조 등에서 노동조합활동을 하다 80년도 계엄사에 끌려가거나 징역살고 해고된 경우다. 첫 번째 상담에서 이들이 내놓은 단어는 분노, 억울함, 절망, 불안 같은 것들이었다. 물론 활동과정에서 느낀 기쁨, 희망 같은 단어도 없지는 않았다. 이들은 그동안 누적되었던 폭력의 기억들과 상처 입은 감정들은 끌어내어 말했고 함께 공감하고 위로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인권의학연구소는 만나는 날이면 공간을 최대한 따뜻하고 편안하게 꾸미려고 애썼고, 정갈한 음식과 따뜻한 차를 준비해두는 등 섬세한 배려를 해주었다. 우울, 분노 같은 감정들이 존중, 이해, 공감, 지지의 감정으로 바뀌면서 조금씩 신뢰가 쌓이고 마음을 내려놓는 휴식을 체험했다.
이들 또한 후속모임을 통해 음식도 나누고 마음도 나누고 있다.

 

이외에도 학림사건 피해자등 치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무수히 많은 시국사건의 피해자들이 있고 해고자들, 철도, 병원 등의 노동자들, 6.25양민학살피해자들, 공익제보자들, 불법사찰 대상자들 등 보호받아야 할 국민이 국가라는 이름의 거대한 폭력에 속절없이 당했던 후유증은 심각하다.

 

 

 

 

 

 

 

 

 

 

 

 

 

 

 

 

 

 

 

 

 

이화영소장께 마지막으로 물었다.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경우가 어떤 경우였는지요?
“모든 분들이 마음에 자리하지만 특히 학림사건에 관계되었던 한 분이 떠오르네요. 본인이 몹시 어려운 과정을 겪으신 분인데 그 무게를 넘어서서 타인들의 고통에 시선을 주기 시작하셨어요. 어느 모임에서 그분을 게스트로 모셨는데 본인의 이야기를 하시는 게 아니라 여성노동자 세분의 스토리를 풀어놓으시더라고요. 정보기관에서 폭행을 당한 후 부모에게 끌려가 결혼을 하게 되고, 과거전력이 밝혀지면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네가 빨갱이년이라 그렇다’고 구박받고 폭행당한 사례들이었어요. 지식인들과는 또 다른 고통이 노동자들, 특히 여성노동자들이 겪게 되는데 가족으로부터도, 주변으로부터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이중의 폭력을 겪는다는 것이지요. 그 사례들을 조곤조곤 풀어놓는데 장내가 숙연해졌어요. 이분이 자기를 혹사하던 상처가 조금씩 위로되면서 타인에 대해서 너그러워지는 것이지요.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표정이 달라지는 분들이 보여요. 울릉도 사건 같은 경우도 그렇지만 완벽한 고립공간에서 벗어나면서 밝아지고 웃는 표정이 나타나요. ‘자가 인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자기문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거든요. 표정! 이게 참 감동이죠.”
이렇듯, 인권의학연구소는 “눈물보 황주영선생”을 비롯하여 의료진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그러나 정말 말라서 안타까운 건 재정이다. 참여하는 의사들의 헌신과, 매월 1만원이라도 후원회비를 내주시는 분들이 있지만, 눈앞에 안타까움은 너무 많고 여러 가지 구상이 있지만 펼치기에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와 연관되는 문제이겠지만 내담자가 언제든지 자유롭게 찾아와 상담이 가능하려면 상시 심리 상담전문가가 대기하는 등 내담자에 맞춰지는 구조가 절실한데 그게 잘 안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이화영소장께 질문을 빼먹었지만, 의학이 사람 몸의 병을 고치는 학문이라면 ‘인권의학’은 사실상 건강을 위협하는 인간의 기본권 박탈에서 오는 좌절이나, 자존감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국가폭력은 근본적으로 근절해야겠지만 그로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을 보듬는 치유는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해서도 필수적일 것이다. 모쪼록 2013년 새해에는 국가폭력뿐 아니라 어떤 폭력으로도 상처 입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이미 바람은 공허해지고 인권의학연구소의 문턱은 더욱 분주해질 것만 같다.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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