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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화영의인권감수성

"인권을 살리는 치유, 국가폭력 피해자 치유프로그램" 운영하는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소장을 만나다 - 장남수

              

                  "인권을 살리는 치유, 국가폭력 피해자 치유프로그램" 운영하는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소장을 만나다

 

 

 

 

장남수 jnsoo711@hanmail.net

 

 

 

 

 

 

 

“여기, 사람이 있다!”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망루에서 외치던 사람은 그러나 끝내,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다.
검은 연기와 함께 시커멓게 무너져 내리는 건물잔해처럼 철거민들의 삶은 무너졌다.

 

죽고 끌려가고 울부짖는 현장에서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체 따라 울다 천막귀퉁이에서 웅크리고 잠들었다. 용산참사 피해자 지원활동을 하던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빈민사목 팀의 눈에 이 아이들이 박혔다. 천막에서 자고, 밥 먹고, 등교하고, 천막으로 돌아와 이해할 수없는 험한 상황을 매일 목격하는 이 아이들의 마음상태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이사장, 함세웅신부)의 국가폭력피해자치유프로그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013년, 어렵게 시작된 새해의 스산함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곳,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소장을 뵙고 그간 진행되었던 치유프로그램내용을 들어보았다. 용산참사 피해자들과의 치유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은 2009년 12월이었다. 정신과 전문의 7명, 임상심리사1명, 내과1명, 예방의학1명으로 실무 팀이 꾸려졌고 그중 4명의 정신과전문의가 개별 치료를 맡았다.

 

피해자는 유족 10명(미망인5명, 자녀 5명)과, 망루에 올라갔던 당사자 4명, 그날 현장에서 사건을 목격했던 5명을 포함하여 19명이 개인 상담에 임했다.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빈민사목의 지원과 참여한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활동이 동력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폭력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치료 필요성을 절감한 인권의학연구소는 집단상담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추진하게 되었다.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 창립총회- 함세웅이사장, 이화영상임이사>

 

1기 팀은 2010년 10월 “보도간첩 사건의 전형을 보여준”(한홍구) 일명 ‘울릉도사건’(1974)관계자들이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울릉도사건에 대해 국가의 ‘기혹행위’를 인정했고 사건을 조사하던 조사관중 한분이 이들의 심리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치유프로그램을 권유한 것이었다.

 

동향감시, 피해의식, 사회적 편견 등으로 서로 만나지도 않고 두문불출하다시피 살아 온 이들의 심리상태는 심각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처음엔 매우 거북해하거나 긴장을 풀지 못하던 분들이 10회 정도 그룹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조금씩 온기가 돌았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진정성에 마음 한 자락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재심이 진행되고 있던 한 분이 간첩죄에 대해 무죄선고를 받는 일도 일어났다. 대한민국법정에서 ‘무죄’라는 한마디의 선고가 있기까지는 17년의 징역살이와 38년간 한限이 응어리가 되어 있었지만 이날까지 총 재판에 걸린 시간은 단 두 시간 남짓이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사회에서는 이 가혹하고도 질긴 주홍글씨를 벗겨내어야만 온전한(?) 국민의 이름으로 호명되는 것이기에 ‘선고’의 의미는 서럽고도 큰 것이었다. 현재 이 사건으로 11명이 재판을 진행하고 있고 치유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분들은 후속모임을 지속하며 조금씩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여가고 있다.
2기 팀은 도시철도 해고자들이었다.
이들은 40여명이 참여한 스트레스 평가에서 20여명이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위험군의 기준은 우울증을 넘어 자살의 위험까지도 있는 경우라고 한다.

 

이 중에서 상담에 동의한 7명과 함께 2011년 1월부터 치유프로그램이 가동되었다.

 

 

 

3기 팀은 필자도 참여한 70~80년대 국가폭력피해를 당한 여성노동자들이었다.

 

청계노조, 원풍노조, 한일도루코노조 등에서 노동조합활동을 하다 80년도 계엄사에 끌려가거나 징역살고 해고된 경우다. 첫 번째 상담에서 이들이 내놓은 단어는 분노, 억울함, 절망, 불안 같은 것들이었다. 물론 활동과정에서 느낀 기쁨, 희망 같은 단어도 없지는 않았다. 이들은 그동안 누적되었던 폭력의 기억들과 상처 입은 감정들은 끌어내어 말했고 함께 공감하고 위로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인권의학연구소는 만나는 날이면 공간을 최대한 따뜻하고 편안하게 꾸미려고 애썼고, 정갈한 음식과 따뜻한 차를 준비해두는 등 섬세한 배려를 해주었다. 우울, 분노 같은 감정들이 존중, 이해, 공감, 지지의 감정으로 바뀌면서 조금씩 신뢰가 쌓이고 마음을 내려놓는 휴식을 체험했다.

 

이들 또한 후속모임을 통해 음식도 나누고 마음도 나누고 있다.

 

이외에도 학림사건 피해자등 치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무수히 많은 시국사건의 피해자들이 있고 해고자들, 철도, 병원 등의 노동자들, 6.25양민학살피해자들, 공익제보자들, 불법사찰 대상자들 등 보호받아야 할 국민이 국가라는 이름의 거대한 폭력에 속절없이 당했던 후유증은 심각하다.

 

 

 

 

 

 

 

 

 

 

 

 

 

 

 

 

 

 

 

 

 

 

 

 

 

 

 

 

 

 

 

 

 

 

 

 

 

이화영소장께 마지막으로 물었다.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경우가 어떤 경우였는지요?
“모든 분들이 마음에 자리하지만 특히 학림사건에 관계되었던 한 분이 떠오르네요. 본인이 몹시 어려운 과정을 겪으신 분인데 그 무게를 넘어서서 타인들의 고통에 시선을 주기 시작하셨어요. 어느 모임에서 그분을 게스트로 모셨는데 본인의 이야기를 하시는 게 아니라 여성노동자 세분의 스토리를 풀어놓으시더라고요. 정보기관에서 폭행을 당한 후 부모에게 끌려가 결혼을 하게 되고, 과거전력이 밝혀지면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네가 빨갱이년이라 그렇다’고 구박받고 폭행당한 사례들이었어요. 지식인들과는 또 다른 고통이 노동자들, 특히 여성노동자들이 겪게 되는데 가족으로부터도, 주변으로부터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이중의 폭력을 겪는다는 것이지요. 그 사례들을 조곤조곤 풀어놓는데 장내가 숙연해졌어요. 이분이 자기를 혹사하던 상처가 조금씩 위로되면서 타인에 대해서 너그러워지는 것이지요.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표정이 달라지는 분들이 보여요. 울릉도 사건 같은 경우도 그렇지만 완벽한 고립공간에서 벗어나면서 밝아지고 웃는 표정이 나타나요. ‘자가 인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자기문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거든요. 표정! 이게 참 감동이죠.”

 

이렇듯, 인권의학연구소는 “눈물보 황주영선생”을 비롯하여 의료진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그러나 정말 말라서 안타까운 건 재정이다. 참여하는 의사들의 헌신과, 매월 1만원이라도 후원회비를 내주시는 분들이 있지만, 눈앞에 안타까움은 너무 많고 여러 가지 구상이 있지만 펼치기에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와 연관되는 문제이겠지만 내담자가 언제든지 자유롭게 찾아와 상담이 가능하려면 상시 심리 상담전문가가 대기하는 등 내담자에 맞춰지는 구조가 절실한데 그게 잘 안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이화영소장께 질문을 빼먹었지만, 의학이 사람 몸의 병을 고치는 학문이라면 ‘인권의학’은 사실상 건강을 위협하는 인간의 기본권 박탈에서 오는 좌절이나, 자존감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국가폭력은 근본적으로 근절해야겠지만 그로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을 보듬는 치유는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해서도 필수적일 것이다. 모쪼록 2013년 새해에는 국가폭력뿐 아니라 어떤 폭력으로도 상처 입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이미 바람은 공허해지고 인권의학연구소의 문턱은 더욱 분주해질 것만 같다.

 

                  "인권을 살리는 치유, 국가폭력 피해자 치유프로그램" 운영하는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소장을 만나다

 

<창립총회를 진행하는 인권의학연구소 이화영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