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은 국가범죄인데, 치유센터는 전국에 1개뿐"
[이털남 380회]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
[이털남 2-360] '인권의학의 문을 열다, 이화영 소장' 서구에선 30년전부터 시작됐지만 아직 한국에선 생소한 개념인 인권의학. 그 문을 활짝 연 사람이 있다. '김근태 치유센터' 설립준비에 한창인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을 보이는 팟캐스트에서 만나본다.
ⓒ 이종호
인권의학,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하지만 서구에선 7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의학분야이다. 간단히 말하면 인권 가치에 입각해 의학 활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여기엔 인류 고통의 원인에는 질병뿐만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 차별 등 사회적인 고통도 있다는 인식이 전제된다. 즉, 인권의학은 의료인들의 인권감수성을 높임으로써 사회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인권피해자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도록 이론적·실천적 지침을 제시하는 새로운 의학 분야이다.
한국 인권의학의 문을 연 이가 바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설립에 앞장선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이다.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은 7월 5일 '보이는 팟캐스트'를 통해 이화영 소장과의 만남을 가졌다. 이 소장은 한국의 인권의학과 함께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고문 피해자들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국가, 국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인권' 이용
이화영 소장이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즈음 미국에서 암을 연구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미국의 보수 언론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여성의 인권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했고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부시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침공을 선언했다.
이 소장은 "인권 이슈조차도 미국의 자국이익주의를 정당화시키는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밝혔다. 이 소장의 이런 불편한 심기는 더 커졌다. 부시가 이번에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명했기 때문. 이 소장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패턴을 볼 때 이번엔 한반도가 전장이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다고 한다.
이 소장은 이를 계기로 국제분쟁학연구소의 석사 과정을 밝기 시작했다. 미국이 한반도를 어떻게 보는지 알고 싶었던 것. 이 소장은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지역에서 현장실습을 하며 인권의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소장은 "이스라엘의 '인권을 위한 의사회"를 보며 의료를 통해 갈등이 심한 두 공동체를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걸 한반도에 도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특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권을 위한 의사회'는 이스라엘 정부에 의한 팔레스타인 고문 등을 고발하고, 피해자들의 치유에 나서곤 했는데 그런 모습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는 것.
예상은 했지만 한국에 인권의학을 도입하는 일은 힘들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인권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은 터라 대다수 의료계가 꺼리는 상황. 그 장벽을 깨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의대의 빡빡한 커리큘럼도 장벽이었다.
이 소장은 갖은 노력 끝에 2007년 연세의대에 '인권과 의료인'이라는 인권학 과목이 처음으로 개설됐다. 이후 지금까지 고려, 아주, 한림, 원주 의대 총 5개의 대학에 인권의학 과목이 개설되었다. 미약하긴 하지만 한국에도 인권의학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고문으로 인한 PTSD 발생률은 성폭력보아 높아
이 소장은 인권의학에서도 고문 피해자의 PTSD에 큰 관심을 보였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의 설립에 앞장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녀는 "PTSD를 가장 많이 일으키는 트라우마는 고문에 의한 트라우마"라며 고문이 한 인간에게 얼마나 끔찍한 충격을 주는 것인지 설명했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보다도 PTSD 발생률이 높으니 그 고통은 감히 직잠할 수조차 없는 정도일 것이다.
"PTSD를 일으키는 원인 분석에 따르면 전쟁으로 인한 사람이 15%, 강간 등의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이 60% 정도 PTSD를 일으킨다. 그런데 고문을 겪은 피해자들은 70%로 나타났다. 고문은 PTSD를 일으키는 가장 가혹한 원인으로, 달리는 자동차에 그대로 치이는 것과 같은 심리적 충격을 준다. 그 사람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강하건 약하건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다."
한국 정부는 고문 피해자에 관심을 두고 있는가
사실 고문은 국가가 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행위이므로 국가가 고문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국가가 운영하는 치유센터는 광주트라우마센터 뿐이다. 미국이 약 30개의 트라우마센터를 운영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소극적인 자세이다.
법이 지금까지도 만들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한 마디로 관심이 없어서다. 2009년과 2012년 두 번의 바르이가 있었지만 제대로 토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 소장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법안을 만드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고문 피해자들의 대다수는 박정희 독재 정권 하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 부담을 더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과거의 잘못을 잊어버린다면 되풀이될 뿐이다. 고문 피해자들의 고통은 우리의 모두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이기도 하다. 이화영 소장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는 이유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지원책과 배려가 국가가 얼마나 정의로운지, 또 성숙한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2013년 7월 5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던 기사입니다. 기사 원문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8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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