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숙의 만남] 김근태치유센터 설립 준비하는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

"고문피해자 심신 후유증 치유 위한 의료지원 절실

사회정의 실현 없이는 완전한 치유란 멀고 먼 길"

 

"사회정의가 완전히 이뤄지고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한

고문 피해자들의 완전한 치유는 멀고먼 일이에요.

이 땅에 다시는 폭력이 발 붙이지 못한다는 확신만이

 이들을 치유할 수 있어요." 홍인기기자hongik@hk.co.kr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민간치유센터인 김근태기념치유센터가 생긴다. 이 센터를 설립하기 위한 준비모임이 2012년 12월 10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남영동 1985'라는 영화로 재연되고 있지만 김근태(1947~2011) 전 의원은 전두환 정권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보이는 파킨슨병에 시달리다가 불과 64세의 나에로 세상을 떠났다. 살아서 그는 울컥 성내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고문의 후유증을 앓는다는 생각을 주변에서 하지 못했고 되려 그에게 젊을 때의 활기로 민주화 운동을 해주길 심지어는 고문가해자인 이근안을 용서하기까지 바랐다. 그 이근안은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최근 책을 내고 변명 아닌 변명을 일삼고 있다. 이렇게 가치전도된 세상을 참아내는 것은 얼마나 힘든 것인가. 그 분노를 사회정의를 바로잡는 일에, 고문피해자를 위한 치유를 돕는 일에 써달라고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설립준비에 앞장선 이화영(53 내과전문의) 인권의학연구소 소장은 말한다.

 

- 인권의학이 뭔가요?

 

"과거에는 건강을 위협하는 고통의 원인으로 질병만 생각했습니다. 의료인들은 어떻게 하면 질병을 없앨까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을 중심으로 사회적인 고통을 함께 봐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습니다. 건강권은 인간이 누려야 할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차별 가난 폭력 이 세가지가 건강을 위협하는 사회적 고통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차별과 가난 폭력에 의료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인권의학의 관점입니다."

 

- 원래는 내과전문의로 암전문가였다는데 어떻게 인권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제가 77학번인데 그때는 대학생이 전체의 5%쯤 되었어요. 선배들이 '대학생은 95%에게 빚진 자다.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를 강조했어요. 2000년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암센터에 암연구를 하러 갔어요. 2001년에 9.11이 일어났지요. 이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이 터지는 과정에서 보니까 미국 보수 방송에서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의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를 계속 방영하였어요. 인권문제가 전쟁을 정당화시키는 도구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라크 전쟁 시작 후에는 북한인권상황을 계속 내보내는 거예요. 북한을 공격해도 미국인들은 정의로운 전쟁을 한다 믿겠구나 싶어서 조지메이슨대 국제분쟁분석해결학 연구소에 들어갔어요. 2003년이었어요. 면접하는 교수가 너 의사인데 테러리스트 하려고 이거 하느냐고 묻더라고요. (팔레스타인 투쟁단체) 하마스의 지도자가 소아과 의사에요. (웃음) 분쟁지녁에 가서 한달간 실습을 하는 것 때문에 이스라엘에 갔을 때 '인권을 위한 의사회'를 알게 되었어요. 팔레스타인 정치범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고문을 폭로하고 치료하는 단체였어요. 의료가 분쟁지역에서 화해의 도구가 될 수 있구나 깨달았지요. 1974년부터 덴마크에서 칠레 난민들의 망명신청을 위한 고문진단서를 써주던 국제 엠네스티의 의사들이 주축이 되어서 1982년 세계최초로 고문피해재활센터 RCT(rehabilitation center for torture)를 만들어요. 이게 IRCT라는 국제기구로 커졌고요. 70여개국이 가입해서 150여개 단체가 가입했어요. 미국에서도 1985년에 미국 최초의 고문피해자센터 CVT(center for victims of torture)가 생겼고 망명자를 치유하려고 이렇게 힘을 들이는데 정작 우리나라는 국가폭력이 엄청나게 일어났고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데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어요. 의료계에서도 폭력에 의한 트라우마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어요. 한국에 가서 의대생들부터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연세대 의대에서 '인권의학' 강의를 개설하였고 2007년 가을에 귀국했어요."


- 본격적으로 연구소까지 만든 이유가 있어요?

"2009년에 용산참사 피해자를 지원하던 신부님이 그러세요. 아이들이 천막에서 학교를 다니는데 심리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고. 현장에 가보니 아이들뿐 아니라 철거민, 유족들, 올라갔다가 살아온 사람들의 정신심리적 외상이 매우 심했어요. 정신과 의사 네 분이 개인치유 지원을 했어요. 2010년 10월부터 국가폭력 피해자 대상 집단치유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울릉도 조작간첩사건, 서울도시철도 해고근로자, 70~80년대 노동운동 국가폭력 피해자, 학림사건 피해자 집단치유를 했습니다."

 

- 집단치유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마음 속에 담긴 고통을 끌어내서 재조립하고 회복하려면 의료적 개입은 반드시 있어야합니다. 집단치유 첫 시간에 이 치유프로그램은 회복을 위한 시작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고문 피해를 당하신 분들이 대부분 개인의 잘못으로 이 문제를 담아두고 계세요. 당시 벌어졌던 일에 대해서도 내가 부주의했다고 말이죠, 그 후에 고문 후유증으로 생기는 분노나 우울증, 대인기피에 대해서도 내가 성격이 좀 안좋은가보다. 그러면서 사람을 피하고 잘 믿지를 못해요. 집단치유를 하면 다른 피해자들의 어려움을 들으면서 이게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구나, 당시 정치적인 상황에서 내게 벌어진 일이구나, 고문과 같은 그런 일을 겪으면 누구나 나와 같이 될 수 있구나를 받아들이게 돼요."


- 치유의 단계가 있습니까?

 

"무력감 상실감 분노, 자기자존감이 낮아지는 것들이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걸 알려드려요. 가해자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지만 내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 뿐이다. 그건 내 인생을 안 망가뜨릴 수 있는 것도 나 자신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지요. 아내나 아이처럼 가장 만만한 상대한테로 분노가 가는 걸 막는 분노조절을 알게 하고요. 무력감은 알코올 중독이나 자살하고도 연관되지요. 고문의 영향에 대한 이해, 증상과 감정에 대한 이해로 시작하여 자신과 가족, 동료들과의 관계 회복으로 연결되게 합니다.

 

- 국가폭력 피해자는 얼마나 됩니까?

 

"정확한 숫자는 없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인권의학연구소가 90년대 중반부터 국가기관에 의해서 조사된 숫자를 정래해 보았어요. 광주민주화 거창 제주 삼청교육대 등등 쭉 조사를 해봤더니 30만명이 넘고요. 국정원이나 경찰조사에서는 건수로만 나오는데 8,560건이예요. 한 건당 사람은 한명부터 추천명까지니까 수십만명이라고 보는 거지요. 30만명도 신고된 사람일 뿐 과거사 위원회에서 신청한 것을 보면 재일교포 사건만 해도 200명 중에 20명 정도만 재심을 신청하고 있어요. 인권의학연구소가 집단치유를 한 간첩조작 사건인 울릉도 사건도 47명이 구속되어 3명은 사형선고까지 받은 사건인데 지금까지 알려지지도 않았거든요."

 

- 울릉도 사건은 기자인 저조차도 처음 들어본 듯하네요.

 

"1974년 인혁당 사건과 같은 해에 일어났어요. 서울대 최종길 교수가 사망하면서 그 책임을 지고 중앙정보부 차철권이라는 사람이 좌천이 돼요. 그가 군대 후배를 통해 처남이 일본서 성공한 사업가라는 사실을 알고는 조총령과의 연관 관계를 떠올려 무차별적으로 엮어서 전주와 울릉도 지역의 47명을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이에요. 이 사건으로 차철권은 영전을 하고 그 이후 승승장구 했어요. 간첩으로 조작된 사람 중에 3명이 사형을 당했고요. 대부분 십여년의 형기를 마치고 나오셨지요. 울릉도 사건 피해자 중 한명인 이성희 선생님은 전북대 교무처장으로 총장 물망에 올랐는데 1960년대 도쿄대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는 북한에 가서 1주일을 보낸 것이 문제가 된 것이지요. 당시 김일 부주석을 만나 간첩 보내지 말라고 설득했다니 낭만적인 통일론자였던 거지요. 그러나 고문에 의해 간첩죄의 누명을 쓰고 17년 형을 살고 나와서 전주를 떠나 강원도에 살다가 2006년에야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신청을 하면서 이 사건이 알려졌어요. 다른 분들도 모두 숨어살고 서로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참고인으로 나오셨다 사건이 밝혀지게 됐고요. 이성희 선생님은 2012년 11월 22일 38년만에 고등법원에서 간첩죄 누명을 벗어났습니다. 나머지 20여 피해자들도 현재 재심 신청하고 진행 중입니다.

 

- 국가에서 나서야 할 일 같은데요.

 

"2012년 12월 10일에 인재근 의원이 '고문방지와 고문피해자 보상 구제법안'을 발의했어요. 고문 뿐 아니라 공권력 남용에 의한 피해자가 다 대상이 되어야 하겠지요."

 

- 사회적으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오늘 누리는 인권은 과거의 누군가의 희생 덕분에 누리는 것이지요. 이 분들의 치유에 모든 이들이 나섰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사회정의가 이뤄져야 해요. 심리적인 안정감을 취했다가도 사회정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증상들이 재발하거든요. 2007년 하반기에도 이병박이 대통령이 되면 다시 잡아가지 않느냐고 굉장히 불안해하셨어요. 하물며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된다면 그 분들의 공포심은 말로 못하지요. 전두환이 저렇게 떵떵거리며 사는 걸 보는 마음은 어떻겠어요."

 


(이 인터뷰 내용은 2012년 12월 17일 한국일보에 게재되었던 기사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기사 원문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212/h2012121621204021950.htm

 

 

Posted by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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