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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최창남의걷기

노래이야기- 노동의 새벽 노동의 새벽 세월 많이 흐르고 시대 또한 많이 변했다. 오래 전 이야기라고 하지만 내가 스스로 산동네에서, 공단 자취방에서 부르던 노래이야기들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1985년 나는 대구에 있는 경북농약의 노동자였다. 주간 11시간, 야간 13시간의 중노동이었다. 지급 받은 감기마스크 하나로는 쏟아져 들어오는 농약을 도저히 막아낼 수 없었다. 그런 연유로 저녁이든 아침이든 퇴근할 때는 언제나 회사 앞 구멍가게의 조악한 테이블에 앉아 찬소주로 농약으로 찌든 목구멍을 씻어내곤 했다. 그날 밤은 유난히 무더웠다. 새벽이 되자 팔달천에서는 어린 시절 충무의 앞바다에서 보았던 해무처럼 짙은 물안개가 피어 올랐다. 공장을 비추던 수은등은 물안개에 젖어 낭만적이기 까지 했다. 잊고 있었던 어린 날이 생각나기도 했고 .. 더보기
설겆이의 즐거움 설겆이를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면서부터 좋다. 찬물이 손에 닿는 느낌도 좋고 깨끗해진 컵이나 접시의 감촉도 참 좋다. 내 마음도 깨끗해지는 듯하다. 청소를 해도 그렇다. 6일 간 비워 놓았던 집의 열린 창으로 들어온 먼지들을 쓸고 닦고 나면 내 마음의 묵은 것들을 모두 꺼내어 닦은 것 같다.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아 그저 묻어 두었던 사람들에 대한 아프고 나쁜 기억들도 깨끗이 씻어지는 것 같다. 내가 없는 동안 제각기 혹은 함께 있었던 모든 집기들, 가구들에게도 일일이 눈길을 주고 말을 건넨다. 잘 지냈는지... 외롭지 않았는지... 영화에서처럼 자기들끼리 파티를 하며 즐겁게 보냈는지... 내가 없어 좋았는지... 내가 그립지는 않았는지... 화분의 꽃들에게는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살갑게 이야기를 .. 더보기
용눈이 오름 용눈이 오름입니다. 바람 따라 흘러 바람을 닮고 물결 따라 흘러 물결을 닮고 눈물 따라 흘러 눈물을 닮아 있었습니다. 세월을 간직한 여인의 몸을 어루만지듯 오름이 내어준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더보기
높은 오름에서... 높은 오름에서 만나다 생각해 보니 불과 며칠 전인데 어쩌면 이렇게 아득한 옛 일 같지요..? 기억도 잘 나지 않네요. 꼭 전생의 일을 생각해 내듯 아스라하기만 하네요. 며칠 전 일인데 이리도 멀리 느껴지다니 그것도 참 신기하네요. 높은 오름, 그 하늘가에 서 있던 날 말이에요. 젊은 날에 대한 기억은 더 신기해요. 신기하다 못해 신비롭기 까지 하네요. 수십 년 전 일들인데도 마치 어제처럼 느껴지잖아요. 아직도 젊었을 때의 느낌과 설렘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말이에요. 그 싱그러웠던 젊은 날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다는 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을 때가 많지요. 그 젊은 날, 이데올로기 차고 넘치고 광풍처럼 몰아쳐 사람보다 이데올로기가 더 중요시 여겨지던 날들이 있었지요. 그런 풍토가 있었어요. 마치 이데올로기.. 더보기
직소 폭포... 직소폭포 가는 길 고요하다. 바람, 잔 풀잎, 원추리 피고 시들고, 물결 일고 흐르는 소리 천둥 같고 우뢰 같다. 이런 적막함이 참 좋다. 폭포 소리 오히려 한적하다. 돌아 오는 길 참 평화롭다. 더보기
변산 - 고사포 해안을 걷다 바다는 슬픔 가득한 듯도 했고 슬픔 따위는 모르는 듯했다. 고요하고 한가로웠다. 바람은 여유롭고 갈매기들은 유유자적하였다. 우두커니 서서 바다를 바라보다 슬그머니 내 슬픔 흘렸더니 파도에 쓸려 갔는지 바람에 묻어 갔는지 이내 사라지고 없었다. 흔적조차 남지 않아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하였다. 고사포 해안은 참 아름다웠다. 바다도, 모래도, 바람도, 소나무도, 새들도, 게들도,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슬픔들을 머금고 있으면서도 그리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슬픔이 원래 아름다운 것일까. 슬픔은 때로 고요하고 한가로운 듯도 하고 때로는 찬란한 빛을 품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슬픔은 때로 아름답다. 찬란한 슬픔이고 아름다운 슬픔이다. 그래서 슬픔도 참 좋다. 더보기
받아 들이는 사랑 대지가 제 마음을 열어 수많은 생명들 품어 살리듯이 받아들이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커다란 바위가 제 단단한 가슴을 갈라 소나무들을 품어 살아가게 하듯이 받아들이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나무가 제 영혼을 열어 숫한 생명들과 함께 정령의 숲을 이루어 가듯이 받아들이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풀이 부드러운 제 몸 내어주며 바람을 받아 들이고 바람이 어우러져 흐르며 풀을 받아 들이 듯이 받아들이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산이 나를 받아들여 숲의 일부가 되게 하듯이 우리는 받아들이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주는 사랑이 아니라 받아 들이는 사랑입니다. 더보기
능소화 능소화는, 오지 않는 사랑 기다리다 세월을 잊은 꽃이다. 삶을 다하는 순간까지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 저를 잊은 사랑을 탓하지 않고 잠들지 않은 영혼으로 몸 활짝 열어 기다리다 만개한 채 그대로 뚝, 떨어져 시드는 꽃이다. 처연한 슬픔을 품고 있는 꽃이다. 그래서 가슴에 저며드는 꽃이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꽃이다. 그런 사랑이 그립다. ( 사진 : 서융 ) 더보기
안도현 - 그의 절필 선언에 대한 짧은 소회 얼마 전 안도현 시인이 절필 선언을 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시를 단 한 편도 쓰지 않고 발표하지 않겠다." 나는 시인의 절필 선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인다. 절필 선언은 지극히 작가의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이다. 절필 선언도 하나의 표현이고 글일 수 있다. 하여, 그의 시와 글을 사랑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적지 않은 시간 고민하고 내렸을 그의 결정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의 단호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이번 결정에서 기개를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유약함이 느껴진다. 너무 정치적이라는 느낌도 갖게 된다. '정치적 계산을 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받는다. 그 동안 오직 시로만 말하던 시인이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는 지난 대선에서 야당의 공동선대위원장을 했다. 선거에 참여한 것이다.. 더보기
발로 생각하기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이 사람은 관계의 존재입니다. 태어남부터 그러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두 생명의 관계 속에서 태어납니다. 그 뿐인가요. 아기는 세상에 나올 때 첫 숨을 내뱉습니다. 날숨입니다. 하지만 숨이란 들숨이 있어야 날숨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기가 세상에 나오며 내쉬는 첫 숨인 날 숨은 어머니에게 받은 들숨입니다. 태중에서 어머니에게 받은 숨을 세상에 나오면 내뱉는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은 태어나기 전부터 관계 안에 놓여 있습니다. 관계의 존재입니다. 사람을 뜻하는 인간의 한자어가 ‘인’(人) 한 글자로 이루어지지 않고 ‘간’(間)자가 붙어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사람은 ‘사이의 존재’ ‘관계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사이’ ‘관계’를 잃어버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