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새벽
세월 많이 흐르고
시대 또한 많이 변했다.
오래 전 이야기라고 하지만
내가 스스로 산동네에서, 공단 자취방에서
부르던 노래이야기들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1985년 나는
대구에 있는 경북농약의 노동자였다.
주간 11시간, 야간 13시간의 중노동이었다.
지급 받은 감기마스크 하나로는
쏟아져 들어오는 농약을 도저히 막아낼 수 없었다.
그런 연유로 저녁이든 아침이든 퇴근할 때는 언제나
회사 앞 구멍가게의 조악한 테이블에 앉아
찬소주로 농약으로 찌든 목구멍을 씻어내곤 했다.
그날 밤은 유난히 무더웠다.
새벽이 되자 팔달천에서는
어린 시절 충무의 앞바다에서 보았던 해무처럼
짙은 물안개가 피어 올랐다.
공장을 비추던 수은등은 물안개에 젖어 낭만적이기 까지 했다.
잊고 있었던 어린 날이 생각나기도 했고
노래 '공장의 불빛'을 흥얼거리기도 했다.
그날 새벽 기계를 보던 동료가 농약에 취해 쓰러졌다.
지치고 병든 몸으로 무리하게 일을 계속한 결과였다.
그는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였을 뿐 임신한 아내의 남편이며 가장이었다.
하루라도 빠지면
당일 임금 뿐아니라 모든 수당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결근은 생각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조장이었던 나는 기계를 세우고
그를 병원에 보냈다.
그날 아침 시린 가슴에 눈물 담긴 찬 소주를 부어 넣었다.
자치방으로 돌아와 몇 달 째 품에 안고 다니던 시에
단숨에 곡을 붙였다.
악보를 옮기는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노래가 바로 노동의 새벽이다.
참 오래 전 일이다.
그런데도 이 노래가 잊혀지지 않을 뿐아니라
다시 부르게 되니
그저
세월만 무심히 흐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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