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사건보다 더 큰 상처주는 2차 피해, 대책이 필요하다
이 화 영 (인권의학연구소, 소장)
<폭력 사건보다 더 큰 상처주는 2차 피해, 대책이 필요하다>
치료받지 못하는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
폭력적 사건으로 생명의 위협을 겪은 이들은 신체적 상해보다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으로 인해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특히 고문이나 강간과 같은 폭력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피해자의 약 90% 이상에서 만성적 심리 이상을 결과한다. 이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후에 오게 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 때문이다. 과거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폭력은 수사기관에서의 고문이나 가혹행위와 같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었다. 구금시설이나 군대와 같은 폐쇄적인 조직에서 폭력은 일상적인 것이었고 여성이나 아동과 같은 약자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은 지금도 높은 비율로 발생하고 있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폭력 피해자들의 치유로는 그들의 고통스러운 상처를 털어놓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많은 피해자들은 정치, 사회, 문화적 여건상 피해 사실을 본인 스스로 드러내지 못하고 적절한 가족적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그 증세가 만성화된다. 피해자들은 고통스러운 사건을 기억에서 의식적으로 묻어두고 마치 그런 사실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 때로 갑자기 분노가 발작적으로 폭발하거나 대인관계에 많은 어려움을 지닌 채 살아가기도 한다. 여기에 이차 피해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결과는 더욱 나빠진다. 피해자가 폭력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피해자에게는 그들이 경험한 폭력에 의해 발생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전문가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피해자들이 어쩌면 처음 털어놓을지도 모르는 그들의 트라우마를 들어주는 이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정신적 외상이 당장 눈에 보이는 상처가 아니기 때문에 정신심리적 치료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억울하게 당했을 뿐이지 정신질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병원에 가느냐고 한다. 정신과 진료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도 작용하였다. 어렵게 피해자들이 정신과 병원을 찾았으나 약물치료 이외의 지속적인 심리 상담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폭력 사건보다 더 큰 상처를 주는 2차 피해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사건 자체만으로도 피해자들에게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야기한다. 그러나 사건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들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으로 인해 심리적 고통이 가중되기도 한다. 이것을 이차 피해라고 하는데 때로 사건 자체보다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실제로 많은 피해자들이 사건 후 처음 만나는 대상은 정신적 외상 치유 전문가가 아니라 가족, 친구, 교사, 또는 종교인과 같은 비전문가들이다. 그들은 피해자들의 심리적 경험을 잘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차 피해를 유발시킬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피해자들의 치유가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태도, 피해자를 처음 대하는 치료자나 상담가의 접근방법, 사회적 지지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성폭력피해자나 매 맞는 아내들, 아동학대 피해자들은 매우 불안하고 혼돈스러운 상태라는 것을 이해하고 지지적인 태도와 자율성을 존중하는 태도로 대하여야 한다. 특히 성폭력인 경우, 피해 발생에 있어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피해자를 비난한다면 어렵게 도움을 청한 피해자에게 애초의 폭력 사건보다 더 심한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러한 선입견이나 편견은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들의 회복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다른 치료자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쳐 치유의 기회를 영영 잃을 수도 있다.
여성가족부 발표에 의하면 20 07년도 우리나라 전체 성폭력피해자의 신고율이 2.3%이고 성폭력상담소와 같은 지원 시설을 이용한 경우는 전체 성폭력피해자의 1.6%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이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비율이다. 피해자들이 신고를 기피하고 지원 시설을 이용하지 않은 것은 그 과정에서 겪는 경찰, 언론, 의료인, 상담가 등에 의한 이차 피해가 큰 이유라고 하겠다. 반면 이 과정에서 적절한 지지와 정보제공, 전문기관으로의 연계가 잘 된다면 피해자들이 회복할 기회는 높아질 수 있다.
<폭력 사건보다 더 큰 상처주는 2차 피해, 대책이 필요하다>
종교인에 의한 피해자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
미국의 한 연구는 정신적 외상을 입었을 때 지원을 요청한 피해자 중 42%가 성직자를, 29%는 일반의사, 17%는 정신과 의사, 10%는 그 밖의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았다고 보고하였다. 이 연구로부터 25년 후에 실시된 추적조사 결과, 정신적 외상 후 도움을 찾아 성직자에게 간 사람의 비율이 약간 낮아졌으나 여전히 34%의 피해자들이 성직자를 찾고 있었으며 다른 곳에 간 사람보다 많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현실적으로 종교인은 피해자 지원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폭력적 피해를 당한 후 많은 사람들이 종교단체를 찾아 도움을 청하지만, 성직자나 수도자와 같은 종교인들이 폭력 피해자에 대한 교육이나 인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을 만났던 종교인들은 성폭행을 자초한 면이 있다고 피해자를 나무라서 자책하게 하거나, '자녀를 위해 참고 극복하라'며 가정폭력 피해자를 돌려보내 지속적으로 폭력을 겪게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폭력적 사건으로 인한 피해는 질병이나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종교인들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정신적 외상을 입은 피해자들의 많은 수가 도움을 찾아 종교인들에게 간다면 종교인들은 폭력 피해자 문제에 적절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성직자나 수도자들에게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대한 이해나 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정보 및 면담기법과 같은 연수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이 교육에는 지역 교회의 목사, 신부 나아가 병원, 경찰서, 군대 및 기타 조직에서 피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종교인들도 포함되어야 한다. 신학교, 신학대학, 성직자 교육 시설에 폭력피해자 지원프로그램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종교인들을 위한 피해자지원 정보(소책자, CD, 훈련매뉴얼 등)를 작성하여 널리 보급시켜야 한다. 미국에서는 모든 종파의 성직자와 종교지도자에게 피해자 지원에 관한 기초훈련을 받게 하였고, 그 결과 만들어진 출판물이 “피해자: 성직자 및 종교단체를 위한 매뉴얼‘이며 현재 제4판이 출간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피해자 지원 시설을 이용한 성폭력피해자는 1.6%라는 통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많은 피해자들은 의료인들이나 지원시설의 상담가보다 성직자들이나 종교단체를 찾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 지원과정에서의 이차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절한 지원 제공을 위한 종교인 대상 교육이나 종교, 종파를 초월해서 “성직자들과 종교단체를 위한 폭력피해자 지원 매뉴얼” 등과 같은 자료는 전혀 없다.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군대폭력, 공권력에 의한 가혹행위 등 지금이 순간에도 폭력은 지속되고 있다. 언제까지 폭력 피해자의 정신, 심리적 충격을 개인의 극복 문제나 훈련되지 않은 민간, 종교 단체의 몫으로 남겨둘 것인가? 폭력피해자의 정신 심리적 치유와 이차피해 예방을 위해서 치료와 교육을 전담하는 전문적이고도 포괄적인 트라우마 치유센터의 설립으로 보건의료 전문가의 훈련과 함께 피해자 유형별 재활 프로그램의 수립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폭력 사건보다 더 큰 상처주는 2차 피해, 대책이 필요하다>
폭력 사건보다 더 큰 상처주는 2차 피해, 대책이 필요하다
이 글은 (사)인권의학연구소 뉴스레터 제11호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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