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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인터뷰

[인터뷰] “고문은 그렇게 잘했으면서 피해자는 돌보지 않는다”

[인터뷰] “고문은 그렇게 잘했으면서 피해자는 돌보지 않는다

  -문화창작집단  최현 대표-

 

지난 1, 눈이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몹시 추운 겨울 오후, 성가소비녀회에 위치한 인권의학연구소로 손님이 한 분 찾아왔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 큰 가방을 들고 온 그 손님은 마치 보부상처럼 보였습니다. 보부상처럼 보였던 그분은 인권의학연구소의 후원회원이자 문화창작집단 의 최현 대표였습니다. 최현 대표는 오랜 시간 기획하고 준비한 새로운 연극을 연구소에 알려주시기 위해 연극 포스터를 들고 찾아주었는데요.

 

지금부터 문화창작집단 에서 새롭게 준비한 연극은 어떤 연극이며, 최현 대표는 어떻게 연구소의 후원회원이 되었는지 들려드리겠습니다.

<사진 -1> 최현 후원회원과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찍고 있다.

Q. 최현 후원회원님, 이렇게 추운 날씨에 연구소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원회원분들에게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최현) 안녕하세요! 저는 연극을 전공했고, 공연을 기반으로 컨텐츠 기획·제작하는 극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배우들을 대상으로 연기코치(액팅코치)를 하고 있습니다.

 

Q. 후원회원님 SNS를 보면 연기도 직접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최현) , 근데 연기는 잘 못해요. (웃음) 그래서 오히려 연기를 가르치는 걸 잘하는 것 같아요. 저의 부족한 부분들을 공부하면서 오히려 코치를 더 잘하는 것 같더라고요.

 

Q. 연기도 하시고 코칭도 하는데, 그 바쁜 와중에 연극을 하나 만드셨잖아요. [보부상을 기다리며]라고 들었는데, 이건 어떤 연극인가요?

(최현) 이 연극은 제가 태어나고 살아온 도봉구로 돌아와서 지역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서 준비하게 된 연극이에요. 지역을 살펴보다가 도봉옛길을 알게 되고, 그곳에 다락원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는데요. 근데 그곳이 예전에 보부상들이 오고 갔던 곳이더라고요.

 

< 사진 -2> 연극 [보부상을 기다리며] 포스터.

Q. 어떻게 보면 우연히 지역을 공부하면서 보부상을 알게 되고, 그렇게 시작된 기획이었네요.

(최현) , 그래서 한반도가 나뉘기 전 보부상의 삶을 상상하면서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특히, 최근에는 한반도 평화가 다시 위협받고 있잖아요. 그리고 통일은 우리 청년들에게는 옛날이야기 또는 낡은 이념으로 취급받고 있고요. 그러나 분단의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요.

 

Q. 보부상을 모티프로 굉장히 깊은 의미가 담겨있을 것 같아요.

(최현) 그래서 이 연극을 어떻게 창작할지 고민을 하면서 이번 연극은 프랑스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가 쓴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을 차용해 재창작을 했는데요. 바라는 건 이 연극을 보신 분들이 한반도에서의 진정한 평화의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Q. 좋은 연극일 것 같은데요. 누군가 왜 이 연극을 봐야 하는지 물어본다면 대표님은 어떻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최현) 올해가 6.25 전쟁이 끝나고 휴전한 지 70년이 되었잖아요. 이 말은 여전히 우리는 전쟁의 위험에 놓여 있고, 이로 인해 여러 사회 갈등이 표출되고 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이 작품을 보시면 2023년 시점의 나 혹은 내 주변을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예요.

 

Q. 이 연극이 지난 1 28일 하루만 했다는 게 너무 아쉽네요. 대학로와 같은 극장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연구소와 관련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인권의학연구소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최현) 제가 하는 공연들이 주로 사회성을 띈 경우가 많은데요. 그 작품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이 반도체 소녀예요. 아시겠지만, 삼성반도체에서 일을 하시다가 백혈병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모티프로 해서 우리 시대의 문제를 지적한 작품이거든요. 그때 제가 살던 지역의 국회의원이었던 인재근 의원이 이 연극을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러면서 저도 인재근 의원의 활동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인재근 의원이 인권의학연구소 활동을 한다는 것을 보고 연구소를 알게 되었죠.

 

Q. 그럼 인재근 의원을 통해 알게 되셨네요. 그런데 단체를 아는 것과 단체를 후원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인데요. 어떤 이유에서 후원을 결정하게 되셨어요?

(최현) 처음에는 제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을 했고, 그렇다면 제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도움을 주신 분에 대한 하나의 예의라고 생각을 하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후에 연구소의 활동들을 살펴보면서 이건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 사진 -3> 최현 후원회원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Q. 주변의 더 많은 시민분들이 선생님처럼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웃음)

(최현) 그리고 저는 개인적인 배경 때문에 분단,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 분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아버지께서 육군 첩보 부대인 HID 출신이셨는데 5.16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시면서 저희들에게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실제는 다르다고 많이 말씀해 주셨었어요. 특히, 아버님은 광주분이셨거든요. 그래서 군에서 제대하고 나셔서도 트라우마도 있으세요. 나라를 위해 정말 희생과 헌신을 하셨는데, 국가의 민낯을 알고 많이 힘들어하셨었죠.

 

Q. 아버님께서 정말 힘드셨을 것 같아요. 정말 어려운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현) 이런 배경이 있다 보니 연구소에서 도움을 드리는 국가폭력 피해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 선생님들이 조금 더 다르게 생각되는 것 같거든요. 그러면서 제가 김근태 전 의원님께 죄송했던 게, 영화 [남영동 1985]를 만들었던 정지영 감독님과 같은 모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영화를 봤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고문을 당했던 김근태 전 의원님께 너무 죄송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예전에 영화 [변호인]에 잠깐 출연을 했었는데, 그때 맡은 배역이 고문형사 역할이었어요.

 

< 사진 -4> 김근태 전 의원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남영동 1985'(왼쪽)와최현 후원회원이 고문경찰로 출연했던 '변호인'(오른쪽)

Q. 고문형사라! 아주 나쁜 역할을 맡으셨네요!

(최현그렇죠그러면서 고문을 어떻게 하는지 공부해야만 했으니까요그러면서 정말 인간의 잔혹함들을 보면서 연구소가 돕고 있는 피해자분들이 더 생각났던 것 같아요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사회가 고문은 그렇게 잘했으면서실제 고문피해자들을 지원하고 그들을 다독여주는 건 전혀 없었고지금도 없구나!”

Q.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럼 연구소를 후원하면서 뿌듯했던 적이 있으실까요?

(최현) 매번 느끼죠. 연구소에서 지원하고 있는 고문피해자 분들이 정말 오랜 세월 동안 고생을 하신 분들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일반 시민들이 위안부 할머니 또는 강제징용 피해자는 잘 알고 있지만, 7-80년대 간첩조작 사건들을 겪으신 피해자분들은 시민들이 그리고 우리 사회가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아요. 근데 연구소에서 그분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거니까요.

 

Q. 그럼 마지막으로 연구소에 아쉬운 점이 어떤 게 있으실까요?

(최현) 아쉬운 건 고문피해자 분들의 실상과 연구소의 활동이 더 많이 알려지지 못한 거죠. 물론 소수여도 정말 농도 있게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더 많아지면 좋은 거잖아요. 그리고 이 피해자 선생님들이 정말 시간이 얼마 없잖아요.

 

 

1시간가량 이어진 최현 대표와의 이야기는 보부상이라는 점으로 시작해, 한반도의 분단과 분단이 낳은 간첩조작 사건과 같은 고문피해자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분단이 현재진행형이듯이 고문피해자의 아픔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최현 후원회원님과 같은 분들이 계셔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마음과 함께 고문피해자를 돕는 연고소의 활동이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는 점이 가슴 한켠을 아프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