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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센터 소식

치유프로그램 후기(2)

"치유프로그램" 후기 (2)

 

 

 

 1. 지난주(8월말)에 끝난 국가폭력피해자 6기 치유모임. 여기에 참여했던 지난 석 달 동안은 피정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던 과거의 일을 계속 되돌아보고 꺼내야 했던, 때로는 힘든 시간이었다.

 

 나의 주위에는 국가폭력 피해자가 많다. 고문 피해, 장기 수감, 80년대 강제징집/녹화사업 피해, 요즘의 장기파업 피해, 각종 경찰폭력과 벌금폭탄 피해자에 이르기까지.... 그 분들에 비하면 나는 피해를 입은 것이라 할 수도 없기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뭔가 유난을 떠는 것 같기도 하다. 치유모임은 비공개모임이라 진행한 내용을 공개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제한된 조건에서나마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본다. 그리고 이제는 뒤돌아봄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2. 나는 만 스무 살 무렵에 수감된 적 있고, 출감 후에는 다른 선후배들처럼 여러 기관에서 취조를 받은 적 있다. 그리고 그 뒤에도 경찰의 감시를 받았고, 동생이 고문을 당하고 세 차례 수감되었던 아픈 기억도 있다.

 

 나는 80년대 초반에 사건을 겪은 직후에는 악몽과 수면장애 때문에 많이 고생했다. 그때는 잠들기만 하면 악몽을 꾸었고 그 때문에 심한 공포감과 무력감을 느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악몽을 꾸는 횟수는 줄었지만, 일이 풀리지 않거나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그런 종류의 공포감과 무력감이 저절로 마음속에서 올라왔다. 특히 운동조직의 동지들에게 많이 의지했는데, 그 관계가 무너지면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신경이 예민했고 건강이 좋지 않았다.

 

 

 운동단체 상근을 그만 두고 생계를 위해 직장에 다니면서부터는, 새로운 감정 때문에 또 다시 힘들었다. 운동을 할 동안에는 내가 낮은 곳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이타적인 사람, 또는 변혁이념을 전파하는 교사와 같은 존재라는 자부심이나 우월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운동조직이라는 거대자아가 나를 부풀리고 들뜨게 만들기도 했다.(이 말은 운동을 할 당시에 내 행동이 거짓이었다는 말은 아니며, 변혁이념을 정립하고 전파하는 노력이 쓸모없다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한 명의 익명적 노동자가 되면서, 부풀려져 있던 거대자아가 깨지게 되자 나 자신의 초라함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또한 조직 속의 인간이 아닌 낱개의 인간이 되면서 근거지를 잃은 것 같은 마음도 들었다. 동시에 생활인이 되고 아이를 키우는 돌봄노동을 하면서, 운동할 때는 몰랐던 과거 인간관계에서의 오류들이 눈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자책감도 심하게 일었다.

 

 

 3. 나는 예전에는 이런 종류의 국가폭력과 그 후유증을 운동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당연하게 겪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도 많은데 그 와중에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많은 증상들이 나의 성격이나 기질 때문에 생긴 것이며 혼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치유모임을 하면서, 다른 분들도 비슷한 감정을 갖고 살아왔음을 알았다. 그래서 매번 모임을 할 때마다 참 많이 울었고 모임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늘 휘청거렸다.

 

 

 치유모임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인간이 느끼는 공포감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일으키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몸에 어떤 위험이 닥칠 때, 이를 피하기 위해 미리 감각적으로 느끼는 경계신호와 같다는 것이다. 무력감이나 자책감도, 폭력 앞에 뭉개진 자존감을 어떻게든 능동적으로 만회하려고 하다 보니 일어나는 무의식적 반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은 한번 학습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모르고 그런 상황을 겪다가 나중에는 사소한 경우라도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런 감정이 더 심하게 일어나고,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는 것이 습관이 되기도 한다.

 

 그들, 권력을 가진 자들은, 60여 년 전에는 우리와 같은 사람을 바로 죽였다. 그러나 지금은 쉽게 죽이지는 않는 대신 우리에게 죽음에 이를 정도의 고통을 주어 그런 공포감, 무력감, 자책감을 학습시킨다. 국가폭력의 본질은 우리에게 이런 부정적 감정을 학습시키고 습관화시켜, 결국 우리의 영혼을 분해하고 말살하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4. 그간 나는 이 모임에 참여하기 전에도 스스로를 치유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래서 10년 전부터는 악몽을 꾸지 않는다. 수면장애는 지금도 겪고 있지만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만성적 증상들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미 하나의 강을 건넜다고 생각하기에 주어진 나날의 노동 속에 머물며 살아가고자 하고 있다. 또한, 삶에는 때로는 인과론적 교훈이나 해석적 의미를 찾는 것이 불가능한 순간도 있으며, 그런 순간은 오로지 직관으로서 그 존재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두운 죽음의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면 겪지 않아도 될 순간들을 겪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숱한 악몽과 불면의 밤들, 무의식 속에 올라오는 부정적 감정과 반복되는 기억에 좌절했던 순간들. 그 속에 덧없이 흘려보낸 시간들이 아깝다.

 

 좀 더 밝은 환경 속에서 자아를 마음껏 펼치지 못한 채, 어느 새 한 세대의 시간이 지나가버렸다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슬픔으로, 상실감으로 남는다. 그런 상실감은 일종의 부질없는 욕망에 의한 것이지만, 삶에 대한 애착심이 있는 한 앞으로 반복하여 느낄 수도 있는 것이기에 착잡하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동지들, 그대들의 삶에 대해서도 그런 마음이 든다.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통을 겪고도 꿋꿋이 살아남은 동지들, 정말 건강하게, 낙천적으로 잘 살아온 분도 많지만..... 그런 분들을 존경하면서도, 그들의 폭력에 휘말려서 사는 우리들의 한평생이 너무 아깝기만 하다.

 

그러니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쉽진 않지만, 무엇을 하든 그들보다 우리가 더 행복해지고 끝까지 살아남는 것, 그것도 우리의 중요한 투쟁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5. 마포의 '인권의학연구소'에서 진행했던 5기까지의 모임과 달리 6기 모임은 성가소비녀회 수녀원에 자리 잡은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에서 진행된 첫 모임이었다. 여기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공간에서, 치유센터 식구들, 선생님들, 뒷바라지 해주신 수녀님들의 깊은 정성과 기도의 손길을 느꼈던 시간들.... 깊이 감사드린다. 치유센터가 앞으로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