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국가폭력 피해생존자들, 타악기를 배우다.
타악기도 치유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인권의학연구소는 코로나-19 상황에서 2021년 1월부터 국가폭력 생존자 집단치유 모임을 줌회의를 통한 온라인으로 진행해왔다. 고령에 접어든 생존자들을 위해 ”웰다잉“과 ”웰빙“을 주제로 이화영(내과전문의), 손창호(정신과전문의), 백재중(내과전문의) 이사와 정형준(재활의학과전문의) 정회원 등 의료인들이 진행했었다. 그 결과 생존자 중 13명이 사전연명의료지향서를 작성하여 보건복지부에 등록을 마쳤고, 17명이 녹색병원에서 치매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다.
지난 3월부터는 매주 수요일마다 음악치료 경험이 많은 김태형 심리상담사의 진행으로 인권의학연구소 소강당에서 국가폭력 생존자 집단치유 모임을 갖고 있다. 코로나 방역지침을 준수하여 참여자는 10명으로 제한했고, 모임 중 마스크 착용을 원칙으로 약속하였다.
모임에서 다루는 타악기의 종류는 젬베, 봉고, 카혼, 쉐이커 등 다소 생소한 이름도 있지만 모두가 잘 아는 북도 포함되어 있다. 처음에는 모든 타악기를 돌아가며 그냥 두드려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2~3명이 그룹이 되어 같은 악기를 함께 쳐 보았다. 이후 다른 악기들과 되돌림 형식으로 협주를 하니 다른 악기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2개, 3개, 4개...의 타악기들이 각각의 소리로 리듬을 연주했는데, 협주를 하니 여러 악기들이 묘하게 하모니를 이루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박자 맞추기에 긴장했던 몸과 손은 어느덧 리듬을 타면서 자연스럽게 들썩이기도 했다.
트라우마로 인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에 효과적인 치료 방법 중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요법 (EMDR)“은 다른 치료보다 짧은 시간에 효과를 보면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MDR 치료는 현재의 문제와 연결된 과거의 상처 기억을 찾아 양측성으로 자극(안구를 좌우로 운동하게 함)을 주어 뇌의 정보처리시스템을 활성화한다. 그 결과 고통스러운 과거의 상처 기억이 다시 정리되고 통합되면서 과거의 것은 과거에 남겨둘 수 있게 되어, 더 자유롭게 현재를 살아가게 한다.
타악기 집단치유 모임의 참여자들은 두 손을 사용하여 악기를 두드린다. 대부분 두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타악기 연주에 열중하곤 한다. 그러나, 마치고 나서 다른 악기의 리듬에 맞춰 자신의 타악기 리듬을 연주하면서 웃음 가득한 표정들을 쉽게 보게 된다. 좌우 두 손을 번갈아 치는 타악기 연주 역시 EMDR에서 안구의 좌우 운동과 비슷한 효과를 뇌 시스템에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양손을 번갈아 사용하게 하는 타악기 역시 트라우마 치유 도구가 될 수 있겠다.
타악기 연주 연습을 막 시작했을 때 참여자들의 손짓, 몸짓과 표정은 다소 긴장하고 굳어 있었지만, 모임을 거듭할 때마다 손과 몸이 유연해져 리듬을 타기도 한다. 혼자의 연주가 아니라 다른 이의 연주 소리를 들으면서 내 리듬을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소통의 기술도 함께 배우고 있다. 무엇보다도 참여자들은 혼자가 아닌 더불어 함께 하기에, 타악기 연주 마당에서 매주 소소한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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